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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TAFF] 오필영 무대디자이너 [No.132]

글 |안세영 사진 |심주호 2014-09-23 8,335
새로운 재미를 전하는 무대

<싱잉 인 더 레인>, <블러드 브라더스>, <드라큘라>. 최근 공연한 굵직한 대형 뮤지컬이라는 것 외에 이 세 작품이 지닌 공통점은? 
라이선스 작품이지만 국내 프로덕션에서 새로이 무대를 디자인했다는 것, 그리고 그 무대를 디자인한 사람이 오필영 디자이너라는 것이다. 
<해를 품은 달>부터 <더 데빌>까지 그가 올해 참여한 뮤지컬 작품만 벌써 여섯 편. 
스타일을 정의하기 힘들 만큼 매번 색다른 무대를 보여주고 있는 그에게 그간 작업한 무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올해 초 재공연한 <해를 품은 달>은 조각보의 이미지를 활용한 무대로 초연 때부터 주목을 받았어요. 어떻게 이런 무대를 구상했나요?
사실 대본상으로는 60번 정도의 장면 전환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그것들을 다 사실적인 공간으로 배치하면 재미도 없을 뿐더러 드라마하고 차별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정서적인 측면에서 접근했을 때,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연’이에요. 그 인연들이 이어지고 흩어지는 모습을 표현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한 끝에 조각보라는 오브제를 활용하게 됐죠. 조각보 안에 서로 다른 천 조각이 얽혀있는 것처럼 여러 인연이 얽혀있다는 의미로요. 

<라스트 로얄 패밀리>의 무대에도 조각보와 흡사한 격자무늬가 활용됐어요.
어떻게 보면 비슷한 패턴이지만 출발점은 달라요. <라스트 로얄 패밀리>의 경우, 과거와 현재가 뒤죽박죽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도와줄 수 있는 무대를 고민했어요. 처음에는 창살을 얽히고설키게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죠. 무대 뒤편에 보면 얽혀있는 창살들이 있잖아요. 구조물에 그려진 격자무늬는 그 창살무늬의 연장선상에 있는 패턴이에요. 다양한 크기와 색깔의 네모 칸이 얽혀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창작뿐 아니라 라이선스 작품에서도 무대를 새롭게 디자인했어요. <싱잉 인 더 레인>의 경우, 비가 쏟아지는 무대를 위해 신경 써야 할 점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배수 시스템상 최종적으로 물이 무대 앞쪽으로 흘러내려야 했어요. 그 물을 어디로 어떻게 흐르게 할 것인가가 무대 디자인에서 가장 큰 고민이었죠. 보도블록 사이에 파인 홈에서 그 해법을 얻었어요. 무대 바닥을 인도처럼 디자인해서 비가 내리면 홈을 통해 물이 흘러 내려가게 한 거예요. 또 그렇게 흘러내린 물은 객석 가까이, 차도처럼 보이는 공간에 고여서 배우들이 관객 쪽으로 물을 튀길 수 있게 했어요. 결론적으로 극장에 물이 새진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블러드 브라더스>는 오케스트라를 그대로 노출시킨 삼층 구조물이 인상적이에요. 
글렌 연출이 저한테 준 단 하나의 숙제가 ‘밴드 온 스테이지’였어요. 글렌 연출은 이 작품이 비극이 아니라 코미디라는 걸 강조했어요. 그렇다면 밴드 역시 관객에게 즐거움을 줘야 한다는 거였죠. 밴드가 연주하는 모습, 중간중간 극에 개입하는 모습을 보면서 관객이 즐거움을 얻을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설득당했죠. (웃음) 무대 위에 오케스트라를 올리는 방법은 실제 영국 리버풀에 있는 빈민촌의 철제 구조물을 참고했어요. 당대 영국 계급사회의 분위기가 드러나길 바랐거든요.

미키와 에디가 살아온 대조적인 환경은 어떻게 표현했나요?
정중앙을 보면 무대를 가로지르는 계단이 있어요. 그래서 존스턴이 라이언스의 집으로 가려면 계단을 올라가야만 하고, 반대로 에디가 미키네 집에 놀러 오려면 계단을 내려와야만 해요. 거기서 두 집안의 계급 차를 드러내고 싶었어요. 자세히 보면 건물 벽돌도 정중앙을 기준으로 패턴이 달라요. 서로 다르면서도 잘 어우러지도록 디자인하는 게 어려웠죠. 

메인 막의 두 줄기로 갈라진 나무 그림은 서로 다른 삶을 살게 되는 쌍둥이 형제의 운명과 닮아 의미심장하게 느껴졌어요. 
원래는 다른 형태의 나무였는데, 조명 감독님이 한 뿌리에서 시작돼 두 개로 갈라지는 형태가 어떻겠냐고 아이디어를 주셨어요. 서곡에서 조명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보시면 처음에는 전체 나무를 비추던 조명이 뒤엉킨 뿌리로 옮겨가요. 거기서 붉은 빛을 비춰 핏줄을 연상시킨 다음, 다시 두 개로 갈라진 가지로 포커스가 가는 거죠. 그걸 보면서 저도 감탄했어요. 메인 막 하나로 모든 이야기를 하는구나.

메인 막뿐 아니라 무대에도 나무의 그림자가 보이던데요.
사실 이 나무에는 3단계에 걸친 이야기가 있어요. 우선 메인 막의 나무 그림이 있고, 그게 올라가고 나면 무대 전체에 큰 나무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요. 이 나무 그림자의 의미는 두 가지예요. 첫째는 고달픈 삶을 사는 존스턴 부인에게 제가 주고 싶었던 휴식, 둘째는 그 삶에 계속 드리워져 있는 어둠의 그림자. 마지막으로 존스턴 부인이 빈민촌을 떠나며 ‘Bright New Day’를 부를 때는 이 뒷벽이 올라가면서 배경막에 화사한 꽃나무가 드러나요. 하지만 실제로는 그 환상적일 것 같았던 새로운 삶이 인물들을 파국으로 이끄는 거죠.



<드라큘라>는 국내 최초로 4중 턴테이블 무대를 선보였어요. 아이디어의 출발점이 궁금해요.
저는 이 작품을 드라큘라가 400년간 아내만을 그리워하며 고립돼 있다가, 아내와 닮은 미나를 만나면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이야기로 파악했어요. 네 개의 원이 겹쳐있는 턴테이블의 형태는 드라큘라의 힘이 중심에서 퍼져 나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거예요. 특히 드라큘라의 초인적인 힘이 드러나는 ‘It's Over’와 ‘Fresh Blood’ 장면에서는 네 개의 판이 서로 엇갈려 움직이면서 미스터리한 힘을 느끼게 했어요. 관 뚜껑이나 묘지 문이 저절로 열리는 것도 드라큘라의 초인적인 힘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 중 하나죠. 

새로운 시도인 만큼 어려운 점도 많았을 것 같아요.
디자인을 하면서도 공연에서 문제가 되진 않을지 걱정이 많았어요. 구상대로 네 개의 판이 각각 따로 회전하면서 한 판처럼 동시에 회전하기도 하려면 아주 정확한 움직임이 필요했거든요. 그런데 기존의 턴테이블에서 쓰던 마찰을 이용한 회전 방식으로는 그런 정확한 포지션을 잡기가 어려웠어요. 결국 특수효과 팀에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전혀 다른 방식의 턴테이블을 만들어냈죠. 기어를 이용한 회전 방식이 고안됐고, 연동 시스템을 비롯한 여러 가지 기술이 도입됐어요. 결과적으로 지금 이 네 개의 판이 동시에 움직일 때 거의 1mm의 오차도 나지 않아요. 제작소에서 테스트를 해보자마자 감동받아서 실장님 손을 꼭 잡고 감사하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공연을 하면서도 턴테이블 때문에 속 썩은 일은 한 번도 없었어요. 

거대한 돌기둥들로 이루어진 드라큘라의 성은 보고만 있어도 압도당하는 듯해요.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나요?
리서치를 하다가 굉장히 많은 돌기둥이 각각 다른 높이로 높게 솟아있는 어떤 기념물의 사진을 보게 됐어요. 그 기둥들 앞에 사람이 한 명 서있는데, 그걸 보니 드라큘라가 보는 인간, 인간이 보는 드라큘라의 모습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인간들은 드라큘라의 실체를 모르면서 그 존재 자체만으로 두려워하잖아요. 그런 드라큘라와 인간의 관계를 높은 돌기둥과 작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내고 싶었어요. 

그럼 마지막 장면에 쓰러져 있는 기둥들은 어떤 의미인가요? 
앞에서 말한 드라큘라의 힘과 이어지는 얘기예요. 무대에는 총 21개의 기둥이 존재하는데 그중 9개의 기둥이 턴테이블과 함께 회전하며 다양한 장면을 만들어내요. 그 기둥들이 이전까지 드라큘라의 힘으로 미나라는 목적지를 향해 움직였다면, 미나에게 거부당한 순간부터는 방향성을 잃고 모두 무너져 내린 거죠. 그곳에 서 있는 것은 포옹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새긴 조각상들뿐이에요. 드라큘라가 간직한 마지막 희망을 표현한 부분이죠.

그 외에도 드라큘라의 성에는 많은 조각상이 등장해요. 
드라큘라가 400년간 살아온 삶의 흔적을 어딘가에 남겨놓고 싶었어요. 그 긴 시간 동안 드라큘라는 무엇을 했을까? 죽은 아내를 그리워했을 거다. 그리워하면서 무엇을 했을까? 저는 아내의 모습을 조각했을 거라고 상상했어요. 보시면 알겠지만 무대 위에 있는 조각상들은 모두 여자의 형상이에요. 객석 앞에 있는 벽제에도 여자 조각상이 서있죠.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조각상은 드라큘라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순간을 조각한 거예요. 

<드라큘라>의 무대가 화제가 되고 있는 데 대해 어떻게 느끼나요? 
그간의 노력을 보상받는 것 같아 즐겁고 감사하죠. 그런데 너무 4중 턴테이블이라는 기술적인 부분에만 포커스가 가는 건 좀 불편해요. 무대 위의 모든 부분은 서로 연결되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지, 단순히 이 4중 턴테이블만 따로 떨어뜨려 볼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럼 무대 디자인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뭔가요? 
이야기죠. 이 이야기의 전달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 개인적으로는 작품의 정서가 무엇인가부터 고민을 시작해요. 리서치를 할 때도 실제적인 건 철저히 배제하고 정서적인 걸 먼저 하죠. 그러다 보면 매번 다른 성격의 디자인이 나오는 게 재미있어요. 그리고 작품의 템포에 대해서도 신경을 많이 써요. 특히 뮤지컬은 음악의 비트까지 머릿속에 새겨두지 않으면 공연 전체의 템포를 읽을 수 없어요. 그래서 작업 내내 집착에 가깝도록 음악을 듣죠. 디자인을 하는 순간만큼은 그 뮤지컬 음악 외에 다른 어떤 음악도 듣지 않아요. 

지금까지 작업해온 무대를 보면 한마디로 스타일을 정의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이 오필영이라는 이름에서 떠올렸으면 하는 것이 있나요?
아뇨, 전 무언가 하나로 딱 얽매이는 게 싫어요. 좀 예상할 수 없는 사람이고 싶어요. 남들이 ‘저 사람은 당연히 이러겠지’라고 생각할 때, 꼭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형식은 항상 고민이죠. 거부감을 주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시도. 그런 시도를 통해 세상을 더 재밌게 만들고 싶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2호 2014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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