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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ulture in Musical] 죽은 여왕들이 부르는 노래 [NO.101]

글 |김영주 2012-02-15 4,388

<명성황후> <엘리자벳> <에비타>

 

세 사람의 여자가 있다. 조선의 왕비, 오스트리아 황후, 아르헨티나의 퍼스트 레이디였다. 그들의 왕국은 다른 대륙에 있었고, 타고난 신분도,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도 달랐으며, 인생을 걸고 추구한 목표도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국모의 위치에 있었다는 사실과 격동의 시대를 살았다는 것, 그리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고 생전에도, 사후에도 증오와 사랑을 함께 받았다. 명성황후와 엘리자베트와 에바 페론은 조선과 오스트리아와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흠결 없고 존경 받을만한 왕비는 아니었지만, 자기 왕국의 다른 어떤 여인보다 강렬한 인상을 후세에 남겼다. 그리하여 20세기 말, 그들의 삶과 죽음을 다룬 뮤지컬이 영국과 오스트리아, 한국에서 각각 만들어졌다. 한 나라의 가장 고귀한 여성으로서 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었고, 어떤 일을 했나. 그리고 후세에 만들어진 뮤지컬은 그들의 어떤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을까.

 

 

 

왕실의 역사는 곧 피의 역사이며, 특히 조선 종실은 개국 초부터 피내음이 가실 날이 없었다고 하지만 명성황후만큼 처참한 최후를 맞은 왕비는 없었다. 그녀의 운명은 유년기부터 기구했다. 민자영은 조실부모하고 피붙이 하나 없이 외롭게 성장했지만 두 왕비를 배출한 서인계열 명문 여흥 민씨 집안의 여식이었다. 게다가 인현왕후의 아버지 민유중의 6대손이니 방계도 아니었다. 혈통만 보면 남부러울 것 없지만 남자형제가 없으니 힘을 받쳐줄 뒷배가 없다는 사실은 외척의 발호를 경계하는 흥선대원군을 흡족하게 했고, 아내 부대부인 민씨의 친정 조카뻘이라는 것 또한 힘이 되어 소녀 민자영은 소년왕 고종의 중전으로 간택된다. 대원군은 이 며느리가 있는 듯 없는 듯 살기를 바랐고, 세자의 모후로서 권력을 갖게 되는 것을 저어하여 그 몸에서 적통 후계자가 태어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1884년, 영국의 전권대사로 한양에 부임하여 왕비를 알현한 해리 파크스 경의 딸은 자신이 만난 조선의 왕비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왕비는 키는 아주 작지만 당당하게 처신을 합니다. 그녀는 영리하고 명랑하며, 남자인 왕을 이끌 줄 아는 용감한 여성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또한 저명한 여행가 엘리자베스 비숍 여사는 이렇게 기록했다. “왕후의 우아함과 매력적인 태도, 사려 깊은 친절과 그녀의 독특한 지성과 영향력, 통역을 이용했지만 뛰어난 화술에 나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중략) 그녀는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그 중의 으뜸은 왕의 부친인 대원군이었습니다.” 조선의 왕비에 대한 서구 귀부인들의 높은 평가는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노래 한 곡을 통해 소개된다. (‘왕비는 오늘 불어공부를 하신다.’) 정적인 시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끝장내고 외부문물을 받아들이게 유도했던 왕비의 정치적 영향력을 짐작하게 하는 곡이기도 하다.


힘을 쓸 수 없는 약한 패라고 확신하고 선택한 며느리가 당대 조선에서 보기 드문 여걸이었던 것은 대원군의 운명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역사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명성황후의 공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90년대 중후반에는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는 비장한 유행어를 남긴 역사소설과 드라마, 그리고 뮤지컬의 히트 덕분에 민비로 격하되어 불리고, 망국의 원인으로 손꼽히던 명성황후에 대한 재평가의 바람이 불었다. 식민사관에 대한 반성이 사회 전체의 분위기로 흐르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최근에는 민중사관에 입각하여 외세를 끌어들여 동학농민항쟁을 진압하고 권력투쟁 과정에서 청일전쟁을 유발한 주범으로 지목 당하면서 통렬한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뮤지컬 <명성황후>는 이처럼 다양한 관점을 작품에 반영하고 있지는 않다. <명성황후>를 만든 이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민자영이라는 본명을 가진 한 여성을 얼마나 입체적이고 모순적이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인물로 풀어내느냐가 아니다.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핵심은 이 조선의 국모가 일본 세력에 맞서 정치력을 발휘하다가 처참하게 시해되었고, 그 사건이 한국인들의 심장을 뜨겁게 한다는 점이다. 홍계훈과의 로맨스 같은 야사의 영향을 받은 가상의 이야기가 첨가되어 있지만 한 인물의 일대기를 편년체로 서술하고 있는 <명성황후>에서 히로인은 외부 세계와 갈등할 뿐, 내면의 문제를 드러낼 기회를 잡지 못한다.

 


봉건적 절대왕정의 수호자였던 명성황후에게 백성들을 일깨워 민족의 흥왕을 종용하는 숭고한 여신의 자리를 마련해주는 <명성황후>와 달리 <에비타>와 <엘리자벳>의 작가들은 자신의 히로인을 인정사정없이 몰아세운다. 엘리자베트 아말리아 에우게니아 폰 비텔스바흐라는 긴 이름의 여인은 명성황후보다 14년 앞서 바이에른 왕국에서 태어났다. 왕의 외손녀였지만 아버지는 공작에 불과했으므로, 그녀 역시 거듭된 근친혼으로 미모와 정신분열증을 모두 물려받은 평범한 비텔스바흐 가문의 왕족 중 한 사람으로 살다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종사촌오빠인 프란츠 요제프 1세가 뜻밖으로 오스트리아 황위를 계승하게 되고, 가까운 친족 중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하게 되면서 인생이 대단히 복잡해진다.


뮤지컬 <엘리자벳>의 주인공은 명성황후와 달리 권력투쟁을 벌이지 않으면 생명을 부지하기 힘든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해있지 않다. 엘리자베트의 전쟁은 그녀 자신이 원하는 본연의 모습으로서의 삶과 사회적인 신분에 따라 요구되는 의무로 가득한 삶 사이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도 흔히 경험하는 갈등이다. 물론 엘리자벳의 경우 그 신분이 오스트리아 황후라는 점에서 특별하기는 하다. <엘리자벳>은 황후 시해범 루이지 루케니가 저승에서 100년 째 받고 있는 재판으로 극을 시작하고 있지만 사실상 루케니가 아니라 황후 엘리자베트의 삶을 관객들이 배심원으로 있는 재판정에서 재현한다. 냉소적인 사회자 루케니가 엘리자베트를 조롱하다가 이따금 연민을 드러낼 때 관객들은 오스트리아의 연인으로 불렸던 그녀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또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인지를 깨닫게 된다.

 


미하엘 쿤체가 <엘리자벳>을 쓰는데 강렬한 영향을 준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팀 라이스의 뮤지컬 <에비타>에서는 실제로는 에바 페론과 만난 적도 없는 체가 루케니의 역할을 한다. 시골 농장주의 사생아에서 아르헨티나 최고의 여성으로 신분 상승을 한 야심만만했던 젊은 여인의 장례식장에서부터 그녀의 일대기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논란 가득한 삶을 산 히로인에 대한 당대 사람들의 엇갈린 평가, 그리고 그녀 자신의 항변이 재현된다. 에비타는 명성황후나 엘리자베트와 달리 존중 받기 힘든 신분으로 태어났고, 자신을 간택해서 여왕으로 만들어줄 왕자님이 찾아오지 않을 것을 일찌감치 알아채고 계단으로 쓸 수 있는 남자들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마침내 인생의 마지막 남자가 될 만한 전도유망한 장교 후안 페론을 만나 그를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자리에 올려놓는데 성공한다. 권력기반이 취약한 그녀에게는 민중의 힘이 필요했고, 가난한 사람들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날아오른 성녀 에비타에게 큰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에비타는 자신과 동일시하기 좋은 가난한 노동자, 여성, 빈민들을 위해 노동자 임금을 인상하고 여성의 시민적 지위를 개선시켰으며, 혼인과 친권 문제에 있어서 헌법이 남녀평등을 보장하게 하는 한편, 해외자본을 추방하고 산업기반을 국유화했다. 서민들은 열광했으나 페론 부부는 그 지지를 기반으로 자신들을 우상화하고, 언론 탄압을 통한 독재의 기반을 닦기 시작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에, 특히 정치의 세계에 100퍼센트 순수한 선의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이 명백한 사실은 대극장 뮤지컬에서 다루기에 썩 좋은 소재는 아니다. 하지만 <에비타>는 가난한 사람들의 성녀였고 가진 자들에게는 악녀였지만 사실상 그 찬사와 비난 모두 근거가 있었던 한 여성의 모순적인 삶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보여준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았던 에바 페론의 삶을 무대에 옮긴 작품이지만 극적이라기보다는 음악적이며, 주인공의 의도와 본심에 대해 하나로 단정 지어서 말하지 않는다. 체가 아무리 다그치고 조롱해도 에바는 자신의 속내를 모두 털어놓는 대신 정치라는 현실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대해 뜨거운 목소리로 노래할 뿐이다. 만약 연극이라면, 이러한 주인공은 용납받기 힘들 것이다. <에비타>는 에바 페론이 어떤 사람인지 냉철하게 파고들어 속속들이 파해쳐 주는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가 노래할 때, 아르헨티나의 민중들이 왜 이 사람을 사랑했는지, 시간이 지나면서 밝혀진 과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하는지 납득할 수 있게 해준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1호 2012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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