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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FACE] <블랙메리포핀스> 김대현 [No.104]

글 |김슬기(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심주호 2012-05-15 4,668

 

여기, 한 배우가 자라고 있다

 

배우가 스스로 성장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기까지는 꽤나 지난한 시간들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을 넘어서면 마침내 배우의 무대에는 생기가 돈다. 연습을 하면 할수록 속속 새로운 것들이 발견되고, 결국 각고의 노력은 보상받는다. “좋은 배우가 된다는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라, 욕심부터 앞서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서서히 해 나가야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일까. 계속해서 나아지고 있기 때문에 무대에 서는 일이 즐겁다는 김대현에게서는 맑은 빛이 난다.

 

 

요즘 한창 연극 <모범생들>을 공연하고 있는 그는, 새로운 작품 <블랙메리포핀스> 연습을 병행하면서도 힘든 내색이 전혀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들이 무작정 감사하고, 새롭게 배우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고 한바탕 ‘연기’에 대한 생각들을 풀어놓는다. “기본적으로 같이 공연하는 형님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많이 배우고 있어요. 제가 무대에 서 있지 않을 때도 무대 뒤쪽에서 계속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봐요. 그게 정말 큰 도움이 되거든요. 그리고 연극 연기를 하면서 내 색깔을 찾는다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된 것 같아요. 처음에는 더블로 출연하는 다른 배우를 따라하느라 바빴는데, 이제는 어떻게 하면 제 연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어요.”


2005년에 데뷔를 했지만 그 사이 우여곡절도 정말 많았다. 성대 수술을 하게 되어 오디션까지 합격했던 <미스 사이공> 공연을 포기해야만 했고, 최근에는 다리 부상으로 <페임> 연습에서 중도 하차하고, <왕세자 실종사건>도 마음만큼 잘해 낼 수 없었다. 학창 시절 개그맨이 되고 싶었다던 그는, 우연히 친구의 권유로 연극 동아리에 들어갔다가 배우의 꿈을 키웠다. “입시 때 연극영화과 시험을 많이 봤는데 엄청 떨어졌어요. 할 줄 아는 게 없었으니까요. 대머리 가발 쓰고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여관집 주인 노래를 했는데, 마지막으로 시험 본 학교에서 교수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그런 걸 하냐고. 그리고 대학에 붙었죠. 헌데 학교 다니면서도 여전히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시키는 것들은 뭐든 열심히 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뭐든 열심히 했기에 계속해서 새로운 가능성들을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매 작품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행운의 여신도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건 아니다. “처음에는 춤을 추는 게 좋았어요. 혼자 연습하기 가장 수월하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제 옆에 있는 어떤 친구가 정말 춤을 잘 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저런 느낌이 날 수 있는 걸까, 고민하면서 결국 그게 연기라는 걸 알게 됐죠. 눈빛과 손짓, 몸짓 모든 것들을 통해서 연기를 해야만 하는 거였어요.” 그렇게 그는 춤을 통해 연기를 배웠고, 새로운 작품에 들어갈 수 있었고, 다시 그 작품에서 노래를 배웠고, 결국에는 한번도 써본 적 없는 목소리까지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목소리라는 게 천성적으로 타고 나는 것 같지만 연습하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거든요. 저도 제가 이런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몰랐어요. 물론 아직도 발성은 좀 부족하지만 예전에는 낮은 소리는 아예 못 냈거든요. 공연을 하나씩 끝낼 때마다 소리가 좋아지는 걸 느끼면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똑같이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는 연기일지라도 목소리 톤에 따라 연기의 결은 완전히 달라질 터. 그가 배우로서 점차 자신의 영역을 확대해가며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낼 수 있게 된 것도, 연습을 통해 숨어있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이내 그는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고 순순히 자백한다. 너무 솔직해서 어쩐지 그것이 결점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사실 저는 처음에 대본을 읽으면 바로바로 이해하지는 못하는 스타일이에요.(웃음) 그러다 보니 대본을 아주 많이 읽게 되는데, 앞뒤 얘기가 맞아떨어지는 것들을 찾고 싶은 거죠. 대개는 작품을 감정적으로, 정서적으로 연기하려고 하는 편이라 분석하면서 이해하는 작업이 쉽지는 않거든요. 그간에는 완벽한 동기를 찾지 못해도 일단 느낌만으로 연기하고 그것들을 섬세하게 다듬어가는 과정들을 거쳤는데, 이 인물이 지금 왜 이런 행동을 할까, 이유를 찾아내니까 연기하기 훨씬 편해지더라고요.” 어쩌면 그것은 이제 막 무대에서 날개를 펴기 시작한 배우라면, 누구나 한 번쯤 진지하게 맞닥뜨리게 되는 성장통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블랙메리포핀스> 역시 이러한 과정이 재미있는 작품이라고. 공연을 보는 관객들이 흐름을 놓치지 않고 이야기를 잘 따라가려면 어느 정도 추리가 필요한데, 그 전에 배우가 먼저 퍼즐을 완성해내야 하는 건 너무나 자명한 일. “<블랙메리포핀스>는 좀 음산한 분위기에서 시작되고 계속해서 긴장을 놓지 말아야 하는 작품이에요. 그래서 연습 과정에서 제가 힘들면 힘들수록 관객들은 더 재밌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논리적인 이유를 찾고 나면 이해가 되니까 표현이 더 수월해지겠죠? 제가 맡은 요나스라는 역할은 호기심이 많은 친구고 항상 즐겁고 행복한 인물이에요. 가끔 토할 것처럼(!) 귀여운 척도 해야 하고요. 하하하. 헌데 그러던 아이가 갑자기 왜 공황장애에 빠지게 됐을까요? 그건 작품을 보고 확인해 주세요!” 그는 열심히 한 만큼 이번 작품 역시 정말 자신 있다고 말한다. 그가 흘린 땀방울들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되돌려주겠다는 포부가 대단하다.


“저는 제가 배우인 게 참 좋아요. 언제나 배우 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사실 이거 말고 할 줄 아는 것도 없긴 하지만.(웃음) 특히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제 공연을 보고 나서 웃고 즐기고 눈물 흘릴 때? 저로 인해서 행복한 사람들이 있다는 게 좋아요. 제가 자랑스럽다고 말해주던 친구가 있었거든요. 물론 관객 분들이 좋아해주시는 것도 너무 감사하죠. 어느 글에선가 읽었는데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오롯이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이 전부 합해봐야 채 하루도 안 된대요. 저는 그런 순간들을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무대를 보면서, 그리고 작품을 보면서, 새로운 세계와 만나는 것이 좋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 좋다고 한다.


무엇보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연기가 가장 좋은 연기라고 믿는다는 김대현은 그래서 항상 함께 호흡을 맞추는 배우의 눈을 읽는다고 한다. 그리고 상대가 자신에게 주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한다. “사실 제가 잘해서가 아니고, 이 모든 것들은 저랑 함께 작품을 만드는 분들 덕분이에요. 제가 배우로서 성장해가고 새로운 것들을 배워 나가는 데 언제나 큰 힘이 되어주시죠. 그래서 마음 편하게 연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을 이끌어준 모든 이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는 김대현을 보며, 지금, 여기, 한 배우가 자라고 있음을 느낀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4호 2012년 5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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