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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한국 뮤지컬 음반 1 [No.69]

글 |박병성 2009-06-17 7,714

한국 뮤지컬 음반의 변천사

 

브로드웨이의 경우에는 장기공연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뮤지컬들이 음반을 제작하는 편이다. 그러나 국내 뮤지컬은 규모가 작은 작품들이 많고 기간이 정해진 한시적인 공연들이 대부분이라 음반 제작을 하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음반 제작은 그만큼 경제적인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완성도 있는 뮤지컬 음반이 등장한 시기가 근래의 일이어야 하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뮤지컬의 음반 역사는 한국 뮤지컬의 역사와 같이 한다.

 

 

처음으로 뮤지컬 음반을 만든, 예그린

 

한국 뮤지컬 최초의 음반은 한국 뮤지컬의 효시라고 여겨지는 <살짜기 옵서예>(1966) 음반이다. 뮤지컬 음반은 재정적인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예그린은 그 어느 때보다 뮤지컬을 제작하는 데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집단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생겨난 예그린은 전 자민련 총재인 김종필을 후원회장으로 두고 국내 유수의 기업 회장들을 후원회에 가입시켰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1960년대 뮤지컬 음반을 제작했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게다가 <살짜기 옵서예>는 미리 데모 테이프가 방송국에 배포되어 공연 전부터 뮤지컬 노래가 전파를 탔다. 1970년대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경우 음반이 먼저 제작된 후 공연되어 큰 인기를 끌었고, 현재 프랑스 뮤지컬의 주요 마케팅 방법 역시 사전에 음반 및 DVD를 제작하여 노출한 후, 대중들의 관심 속에서 공연을 올리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이런 홍보, 마케팅 전략을 무려 1960년대에 시작했던 것이다. 이렇게 빠른 시기에 획기적인 기획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당시 예그린 기획실장으로 있던 황운현의 공이 크다. 언론사 출신이었던 황운현은 <살짜기 옵서예> 음반 정식 발매에 앞서 방송을 통해 노래를 대중의 귀에 익게 했다. 당시 기획팀이었던 박만규에 따르면 예전 드라마센터 자리에서 오케스트라를 객석에 앉히고 합창단은 무대에 세워서 녹음을 했다고 한다. 애랑 역을 맡았던 패티김이 부른 ‘살짜기 옵서예’는 지금까지도 기억되는 명곡으로 남아있다. 최창권은 1967년 제3회 TBS 가요대상에서 최창권은 이 앨범의 ‘살짜기 옵서예’로 작곡상을 받기도 했다.
<살짜기 옵서예>는 이후에도 공연을 할 때마다 별도의 캐스팅으로 네 차례나 음반으로 제작되었다. 최창권이 극단 미리내를 차리고 <살짜기 옵서예>를 공연할 때는 제주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답게 돌하루방 이미지를 표지로 해서 앨범을 만들었다. 예그린 악단에서는 <살짜기 옵서예> 이외에도 <꽃님이 꽃님이>, <대춘향전> 등의 뮤지컬 앨범을 만들었다. 당시 예그린 배우였던 강대진에 따르면 이 앨범들은 장충동에 있는 녹음실에서 녹음되었다고 한다. <대춘향전> 앨범을 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공연에서는 춘향 역에 패티김, 이몽룡 역에 김성원이 캐스팅되었지만, 음반에서 이몽룡 역을 노래한 것은 ‘웨딩드레스’를 부른 한상일이었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가수 한상일에게 <대춘향전> 몽룡 역의 캐스팅 제의가 있었으나 거절하고 대신 음반 작업에만 참여했던 것이다. 한상일의 또 다른 히트곡인 ‘애모의 노래’ 역시 뮤지컬과 인연이 깊은 곡이다. 이 노래는 1969년 공연된 <카니발 수첩>의 주제가였다.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는 서울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뮤지컬 공연 당시 남녀 듀엣으로 불려진 이 세미 클래식조의 노래는 많은 가수들이 탐내었으나 가수 겸 작곡가 안길웅 씨는 이 노래만큼은 밝고 힘 있는 한상일 씨 목소리가 최적이라고 판단, 그에게 취입케 했다.” 1960~70년대에는 이처럼 TV 드라마나, 영화 주제가들이 작곡가나 가수의 컴필레이션 음반으로 엮여져 나오곤 했는데, 뮤지컬 곡도 이런 식으로 남겨지는 경우가 있었다.
예그린에서는 뮤지컬 앨범 이외에도 우리 민요를 채보해서 오케스트라 반주로 된 독창과 합창곡으로 만들어 콘서트를 열고 음반으로 만들기도 했다. 예그린 1기에 해당하는 1962년 9월 추석을 즈음하여 시민회관에서 4일 동안 공연을 하고 예그린 민요집을 레코드로 제작하였다. 또한 “캠퍼스의 젊음과 낭만을 엮은 건전가요와 농어촌을 소재로한 가요들을 만들어 「예그린 고운 노래」라는 레코드를 내기도 했다.”(박만규 회고 기사, 스포츠조선 1990년 11월 2일자) 이 앨범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민요 ‘갑돌이와 갑순이’, ‘자진방아 타령’ 등이 수록되었다. 그런데 이 앨범의 첫 곡이 ‘일하는 대통령’이었다. 예그린이 정치적인 영역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집단이었음을 보여주는 일화다.

 

제작이 희귀했던 70~80년대 음반


뮤지컬 음반 제작은 자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예그린에 대한 정치권의 지원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사실상 제대로 된 음반 제작이 어려웠다. 관 단체 성격을 띤 예그린을 제외한다면 민간단체에서 음반을 제작할 수 있는 민간단체가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197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라이선스 뮤지컬을 소개한 현대극장과, 민중, 대중, 광장을 비롯한 몇몇 극단만이 뮤지컬 제작을 병행했을 뿐 전문적인 뮤지컬 제작사조차 없었다.
1980년대 뮤지컬의 대중화에 기여한 작품은 <아가씨와 건달들>이다. 1983년 민중, 대중, 광장 세 단체가 공동 제작한 <아가씨와 건달들>은 대중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으며, 이 작품은 2000년까지 거의 매해 공연되다시피 했다. 작품이 워낙 인기를 끌자, 민중, 대중, 광장이 각각 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1985년에 민중극단에서 카세트 테이프 형태의 「아가씨와 건달들」 음반이 발매되었다. 총 16곡이 수록된 이 카세트 테이프는 피아노 반주 하나로만 녹음이 되어서 당시의 열악한 상황을 잘 알 수 있게 해준다.
이 시기에 발매된 공연 음반으로는 김민기의 작업이 눈에 띈다. 김민기의 노래굿 <공장의 불빛>은 노동자들의 삶을 노래로 담아낸 노래극이다. 이 노래 테이프가 암울한 현실 속에서 정치권의 눈을 피해 비밀리에 제작되었다. 송창식의 개인 스튜디오에서 담요로 창문을 가린 채 강근식, 배수연, 조원익 등 당대의 뮤지션들이 연습 한 번 제대로 맞춰보지 못한 채 녹음을 하였고, 이것은, 원주 카톨릭 센터 스튜디오에서 편집되어 2000개의 불법 카세트로 만들어졌다. 앞면에는 노래가, 뒷면에는 반주가 담겨 있었으며 복제를 거치면서 노동 현장과 대학로에 퍼져 나갔다. 첫 곡에는 김민기 인사말이 담겨 있는데 이 테이프가 어디에서 만들어졌으며 뒷면의 반주를 이용해서 공장에서도 공연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하얀 테이프 앞면에는 누런 종이에 적힌 ‘노래굿 / *공장의 불빛*’, 뒷면에는 ‘*반주*, 김민기 작곡/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 제작’이란 표시가 투명 테이프로 붙여졌다. 
1987년에 만들어진 김민기의 또 다른 음반 <노래극 (노래일기/ 개똥이)>는 1984년 만들어진 일기 형식의 작은 이야기 음악극 <엄마, 우리 엄마>의 곡들과 <개똥이>의 곡을 모아 만든 앨범이다. 당시 뮤지컬 <개똥이>를 제작하려고 했으나 공연윤리심의위원회 심의에 ‘도대체 사람들은’이란 곡이 걸리는 바람에 공연으로 올리지 못하고, 두 작품의 곡들을 엮어서 1987년에 앨범으로 만든 것이다. <개똥이>는 1995년에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1997년 문예회관 대극장을 거쳐 2006년에는 학전블루에서 재공연되었으며 미완의 작품으로 아직도 진행 중이다. 1987년 발매된 앨범에는 대표곡인 ‘날개만 있다면’이 실려 있으며, 민중가요로도 유명한 ‘제발 제발’은 ‘꾸러기 행진곡’이란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이후 ‘날개만 있다면’과 ‘제발 제발’은 민중가요 앨범 속에 수록되기도 했다.
또한 1985년 산울림의 김창완이 작곡한 어린이 뮤지컬 <피노키오>도 음반으로 제작되었다. 지금도 어린이 공연장에서는 캐릭터 상품 판매가 활기를 띠는데, 당시에도 음반이 중요한 머천다이징으로 종종 만들어지곤 했다. <피노키오>는 1부, 2부 공연을 담은 실황 음반으로 각각 26분씩이 녹음되었다. 
 
CD의 등장, 90년대 뮤지컬 음반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서서히 뮤지컬계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우선 대기업인 롯데의 참여가 눈에 띄는데, 롯데는 1989년 롯데월드 지하에 공연장을 마련하고 전문적으로 뮤지컬을 제작하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뮤지컬 전문배우’이라는 인식이 없었는데 롯데월드 예술극장에서는 단원들을 ‘뮤지컬 전문배우’라고 명칭하면서 전문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롯데월드 예술극장은 1993년 <레 미제라블>을 다섯 번째 작품으로 남기고 문을 닫았다. 이 작품의 한국 캐스트가 노래하는 CD와 카세트 테이프가 만들어졌다. 뮤지컬 넘버 중 대표곡 18곡이 수록되었으며 장발장 역으로는 임태성이 출연하였고, 남경주가 마리우스 역을 맡았다.
현대극장에서 <에비타>를 한국 캐스트로 제작하기도 했다. <에비타>는 1981년 한국에서 초연되었는데, 이후 1993년 앙코르 공연 당시 한국 캐스트 음반이 만들어졌다. 에바 페론 역에는 1981년 당시 대대적인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히로인 이경애가 에바 페론 역을, 유인촌이 페론 역을, 그리고 가수 조영남이 체 역을 맡았다. 2CD로 총 26곡이 수록되었는데 송쓰루 뮤지컬인 <에비타>인 점을 감안해서인지 트랙의 구분 없이 녹음되었다. 지금도 라이선스 뮤지컬에서 번역은 큰 난관이지만 이 당시 한국 캐스트가 참여한 라이선스 뮤지컬을 들어보면 멜로디에 억지로 구겨넣은 듯한 가사 때문에 노래를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또 가사를 일반 대사와 별반 다르지 않게 사용하고 있어서 직접적이고 과격한 표현, 심지어 욕설조차도 가감 없이 넣고 있어 놀라움을 준다.
이 시기에는 주로 창작뮤지컬들의 음반이 제작되었다. 히트 뮤지컬의 경우에는 카세트 테이프 형태로 해당 공연장에서만 음반을 판매하곤 했다. 1994년 하희라가 출연해 인기를 끌었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음반이 이러한 형태로 판매되었다. 또한 <사랑은 비를 타고>(1995), <쇼 코미디>(1997)는 공연 실황의 형태로 제작되었다. 공연실황이다 보니 춤을 추는 곡에서는 배우의 거친 숨소리가 함께 들리기도 하고. 흥겨운 곡이 나오면 관객들이 박자를 맞추기도 하며, 곡이 끝나고 난 후 관객들의 박수소리가 담겨 있어 공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표지는 매우 간단하게 만들어졌는데 ‘이 테잎은 공연실황 녹음입니다. 이 테잎은 시중에서 판매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박혀 있다. 아쉬운 것은 표지에 뮤지컬 넘버가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표지에 심의번호나 음반사가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공연 제작사에서 임의로 만들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1995년 예술의전당에서 올린 <그리스> 역시 대우음반에서 대표곡 11곡을 수록한 테이프 형태로 발매되었다. <그리스>는 지금도 인기리에 공연되고 있는데 이 음반은 디스코풍으로 편곡되어 있어서 마치 <토요일 밤의 열기>을 듣는 듯한 느낌을 준다.
1996년도에 <지하철 1호선> 음반이 CD로 발매가 된다. 원래는 그 이전에 나올 수 있도록 준비 중이었는데 가사 내용이 심의에 걸리는 바람에 늦춰진 것이다. 국내에서 음반 검열이 시작된 것은 1971년 「김민기」로부터였는데 음반 사전 검열에서 마지막으로 문제가 된 음반도 바로 김민기의 <지하철 1호선>였다. 1996년 음반에서는 청량리 588 아가씨들이 부르는 ‘사랑이 꽃필 때’, 안경이 부르는 ‘서울의 노래’, 그리고 ‘단속반 탱고’ 등이 빠져 있다. 그리고 수록된 곡들조차도 가사를 조금씩 다르게 고쳐서 실어야 했다. 2001년 17곡이 모두 수록된 <지하철 1호선> 음반이 나왔는데 이 음반에는 독일 원작에는 있지만 국내 공연에서는 사라진 ‘꿈을 꿔요’라는 곡을 함께 실었다. 그리고 2004년 <지하철 1호선> 10주년을 기념해서 다시 음반을 제작했다. 이것은 2001년 음반을 믹싱하고 마스터링을 한 것으로, 독일 그립스 극단이 1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아카펠라 형식으로 부른 ‘아침이슬’이 실려 있다. 
90년대부터 창작뮤지컬들도 CD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뮤지컬 <명성황후>(1995), <겨울나그네>(1997), <마녀사냥>(1999), <록 햄릿>(1999), <갬블러>(1999), <태풍>(1999) 등의 음반이 제작되었다. 특히 1999년 만들어진 <태풍>의 OST는 오케스트라 부분을 체코 프라하에서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로 녹음을 하는 등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양적으로 증대된 2000년대 뮤지컬 음반
2002년 <오페라의 유령>이 성공하면서 뮤지컬 시장의 흐름이 달라졌다. 작품 수도 많아졌고, 질적으로도 높아졌다. 시장이 커지자 작품의 규모부터가 달라졌다. 당연히 홍보 수단이자 중요한 머천다이징 상품인 음반의 제작도 증가했다. 초연 때 음반을 발매한 작품이 재공연을 할 경우 다시 음반을 발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우선 캐스팅이 변하기 때문에 비교해서 듣는 재미가 있다. <마리아 마리아>의 경우 모노 뮤지컬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주인공의 힘이 절대적인데 강효성과 김선영이 마리아 역을 맡은 두 음반을 듣다보면 두 배우의 음색과 호흡에 따라 노래의 맛이 다르게 느껴진다. <로미오와 줄리엣> 2002년 음반에서 민영기, 김선영 커플과, 2003년 음반 민영기, 조정은 커플의 조화를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다.
더블캐스팅의 경우 음반에서는 이 곡을 누가 부를지 배우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그래서 보통 대표곡일 경우 보너스 트랙을 두어 앞에서 부르지 않았던 캐스팅의 노래를 추가한다.

 2005년 <돈키호테>의 경우 돈키호테 역에 류정한, 김성기가 더블 캐스팅해서 2CD 음반을 발매했다. 류정한과 김성기가 곡을 나누어 부르는데, 이 작품의 대표곡인 ‘Man of La Mancha’는 본 곡에서는 류정한이 부르지만 스페셜 트랙에 김성기가 부르는 ‘Man of La Mancha’를 넣었다. 둘시네아 역을 맡은 강효성, 이혜경도 같은 방식으로 주요곡에서 제외된 배우의 노래를 스페셜 트랙에 두었다. 2007년에는 <맨 오브 라만차>라고 공연명을 바꾸면서 2CD의 음반을 만들었는데, CD1는 조승우, 김선영, 이훈진 팀이, CD2는 정성화, 윤공주, 권형준 팀이 부르는 방식으로 더블 캐스팅의 모든 노래를 수록했다.
또한 같은 작품의 음반이라고 해도 전곡이 들어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으니 확인할 필요가 있다. 2000년 발매된 <렌트> 앨범에는 로저 역에 남경주, 미미 역은 최정원이 부른 주요곡 18곡이 실려 있지만, 2002년 앨범에는 새롭게 참여한 이건명과 정선아, 쏘냐가 부른 전곡이 담겨 있다. 2000년에 발매된 <명성황후> 앨범은 한 장짜리 하이라이트 앨범이지만 초연 당시 만들었던 1995년도 앨범은 전곡이 담겨있다. 게다가 대화 부분까지 담아놓아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며 노래를 들을 수 있다. 단지 <명성황후>가 끊임없이 개작된 작품이기 때문에 초기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좋으나 여러 면에서 음악적으로 거친 부분이 있다. 2008년에 발매된 <노트르담 드 파리> 한국 버전 싱글 앨범에는 단 네 곡(‘서곡’, ‘보헤미안’, ‘새장 속에 갇힌 새’, ‘춤을 춰요, 나의 에스메랄다’)만이 수록되어 있다.
2000년대 들어서 뮤지컬 음반 발매가 늘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뮤지컬이 산업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장기공연으로 이어지지 않고, 소수 관객들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들어지는 뮤지컬 앨범들 역시 전문 음반사에 제작을 의뢰하기보다는 여전히 공연 제작사에서 직접 스튜디오를 대여해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제작되다 보니 음반사에서 제대로 유통시키지 못하고 공연장이나 제작사 홈페이지에서만 음반을 구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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