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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차선의 선택 버추얼 오케스트라 [No.85]

정리| 박병성 2010-11-03 4,330

김문정의 Music Finder 차선의 선택 버추얼 오케스트라

 

2003년 브로드웨이에서는 뮤지션 노조와 제작자들 간의 마찰로 파업이 일어났다. 그때 제작자들이 뮤지션들이 파업을 지속하면 버추얼 오케스트라로 대체하겠다고 압박해왔다. 다른 노조에서 뮤지션 노조를 지지하면서 파업이 순조롭게 끝났지만 버추얼 오케스트라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던 사건이었다.


‘버추얼 오케스트라’란 진보된 형태의 디지털 연주 방식으로 오케스트라의 개별 악기의 음색을 디지털화해 악보에 맞춰 입력, 간단한 키보드 조작으로 박자와 완급은 물론 악기 편성까지 조절하는 첨단 시스템이다. 버추얼(Virtual, 가상의)이란 명칭대로 연주자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대신 시스템이 가상의 연주자가 되어 연주하는 방식이다. 이전에는 소리의 파형을 조절하여 악기의 음색을 만들어 냈지만-예를 들어 신시사이저의 경우 피아노 소리와 플루트의 소리는 분명 다르지만 파형은 같다. 단지 피아노 소리의 앞부분 어택(Attack)을 조절하면 부드러운 플루트의 소리가 되는 것이다-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실제 악기를 연주한 소리를 그대로 녹음하여 컴퓨터에 저장한 후, 편집하여 건반으로 연주하면 그대로 재현되기 때문에 버추얼 오케스트라가 가능해졌다. 버추얼 시스템에서는 연주자 없이 키보드의 조작만으로 연주가 가능하다. 이를 테면 호른의 소리를 입력한 데이터만 있으면 그것을 조작해서 시스템으로 해당 음을 낼 수 있어 호른 파트를 연주할 수 있다.

 

 

 

 

 

 

 

 

 

 

 

 

 

 

 

 

 

 

 

 

 


기술의 발달에 따라 버추얼 시스템도 진화하고 있다. 브라스 악기의 음원을 받아 건반으로 연주할 경우, 건반은 화음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러 명의 호른이 연주하는 효과를 낼 수 있기도 하는 반면 솔로 연주는 악기 특성상 화음이 불가능하므로 솔로 브라스 버추얼 시스템에서는 먼저 누른 음이 끝나야 다음 소리가 나는 식으로 악기의 성격에 맞게 프로그램되어 있다. 또한 파트를 나누어서 오른손 부분은 현악기가, 왼손은 브라스 악기를 입력해서 한 연주자가 동시에 두 악기를 연주하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 <맘마미아>의 경우에는 하나의 음을 누르면 특정 부분이 연주되도록 입력되어 있는 몇몇 곡은 박자를 잘 맞추기만 하면 누구든 연주할 수 있을 정도다. 심지어 연주자나 기술자가 없이 지휘자의 지휘를 인식해서 작동하는 버추얼 시스템이 실험 중이라고 한다.


브로드웨이에서 오래 공연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버추얼 오케스트라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버추얼 시스템은 단순히 작품에 사용되는 악기 소리뿐만 아니라 음향도 입력되어 있다. <프로듀서스>의 경우 고양이들이 놀라는 소리, 컵 깨지는 소리 등 작품에 필요한 효과음들까지 다 담겨 있다. 이런 부분들은 어느 박자에 어떤 음길이를 지키라는 지시로 악보에 노트로 버젓이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라이선스 뮤지컬에서 버추얼 시스템이 사용되었다. 앞서 말한 <맘마미아>의 경우 버추얼 시스템을 함께 들여오는 조건으로 공연의 라이선스를 준다. <미스 사이공>이나 <오페라의 유령>도 그들이 사용하는 음원 샘플을 사와서 라이브 연주와 병행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을 하다 보니 라이선스 뮤지컬을 제작할 때 우리 측에서 먼저 버추얼 시스템이 있는지 문의한 후 그것을 가져다 사용하기도 한다. <프로듀서스>를 할 때도 그랬고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도 버추얼 시스템의 여부를 확인한 후 음원 소스가 담긴 하드를 사와서 사용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록 뮤지컬이다 보니 록 밴드 7명이 연주를 했는데 버추얼 시스템을 이용해 하드와 연결된 건반 하나로 OST 사운드와 흡사한 풀 오케스트라에 버금가는 풍성한 악기 편성을 할 수 있었다.


연주자가 한 명도 참여하지 않는 완전한 버추얼 오케스트라 연주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영화처럼 완성된 영상을 상영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에서 살아 움직이는 작품을 만들어가는 공연에서 그것만으로 연주한다면 많은 어려움을 감수해야 한다. 버추얼 오케스트라만으로는 연주자들의 손맛을 느낄 수도 없고 그날그날 변하는 공연과 완벽하게 호흡하기도 힘들다. 가장 좋은 것은 풀 오케스트라로 구성된 라이브 연주겠지만 많은 작품들이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풀 오케스트라를 고용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제작비를 고려해서 소수의 연주자들로 음악적으로 빈약한 공연을 만드는 것이 현명한 방법만은 아니다. 그래서 국내 제작자들이 종종 선택하는 것이 MR, 녹음 반주라는 형태다. 물론 공연장에서 연주자의 공간 확보의 어려움도 있지만 많은 작품들이 녹음 반주를 사용하는데, 라이브가 생명인 공연에서 녹음 반주는 공연의 가치와 매력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라이브 연주와 버추얼 오케스트라를 병행하는 것은 연주자들을 모두 고용한 연주보다는 못하겠지만, 비용이 절감되고 연주자들의 손맛과 적은 인원으로 풍성한 사운드를 맛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창작뮤지컬 중에서도 몇몇 작품들에서 버추얼 시스템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 결과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버추얼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초기 셋업 비용이 적지 않게 들어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장기 공연을 해야만 제작비 절감 효과가 발생한다. 단기로 하더라도 재공연을 통해 롱런을 할 수 있다면 버추얼 시스템을 만들어놓는 것이 제작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다. 그런데 국내 창작뮤지컬 중 장기 공연으로 이어지는 작품이 많지 않고, 재공연으로 이어지더라도 초기 스태프진이 바뀔 경우 재수정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 애써 만들어놓은 시스템을 다시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초연일 경우 버추얼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과 제작비가 지원되지 않아 완성도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형편이다. 버추얼 시스템은 시간과 자본이 투여될수록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데, 창작의 여건이 열악하고 공연 오픈 일이 다 되어가야 노래가 완성되는 나쁜 제작 습관 때문에 제대로 된 버추얼 시스템을 갖추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해도 녹음 반주로 공연의 생명력을 제거하는 것보다 버추얼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낫다. 버추얼 시스템은 라이브한 공연의 생명력과 풍성한 사운드를 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기 때문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5호 2010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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