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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기획] 캐스팅 - 뮤지컬 캐스팅 비하인드 스토리 [No.86]

글 |김영주 2010-11-15 6,123

배우가 인생의 작품을 꿈꾸는 것처럼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도 실력과 인성, 티켓 파워를 모두 갖춘 이상적인 배우를 기대한다. 꿈과 현실 사이 어딘가에서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은 무대 위의 환상을 만드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인지라,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인데, 각각의 사연들을 모아놓고 보면 몇 가지 갈래가 보인다. 아는 사람들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국내외의 뮤지컬 캐스팅 비화들을 모아보았다.

 

신데렐라여, 우리를 놀라게 해주오
오디션은 캐스팅을 위한 가장 공식적이고 일반적인 방법이다. 보통 공개 오디션과 비공개 오디션으로 나뉘는데, 두 가지가 병행되는 경우도 많다. 완전한 공개 오디션이라고 해서 공평무사한 자율 경쟁의 장이라  보기 어려운 이유는  프로덕션 측으로부터 미리 참가 요청을 받은 배우들이나 커리어가 화려한 스타들에게는 아무래도 시선이 더 쏠리기 때문이다.


물론 단물 쓴물 다 빠진 클리셰 같지만 ‘신데렐라 탄생’의 기적 같은 순간이 없지는 않다. 반복되는 오디션에 지쳐 있던 심사위원들이 역시나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낯선 얼굴의 참가자에게 따분해하고 있는데, 그가 노래를 (또는 연기를, 춤을, 하여튼 뭐든) 시작하자 갑자기 번개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고 감동의 눈물이 마구 솟구치는, 과장되고 극적인 『유리가면』의 실사버전 같은 상황 말이다. 2009년 4월 서울에 재입성하는 <노트르담 드 파리> 라이선스 공연을 위해 진행된 오디션에서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매력적인 배우들이 안타깝게도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축 가라앉아 있었던 오디션장에 아무리 좋게 봐줘도 어색한 정장 차림의 풋내 나는 신인이 들어섰을 때, 심사위원들이 그에게 무슨 기대를 얼마나 했겠나. 하지만 그가 ‘대성당들의 시대’를 부르기 시작하자 긴 테이블 뒤에 앉아있던 네 명의 심사위원들의 머릿속에는 동시에 ‘얘는 됐다’라는 확신의 메시지가 계시처럼 내려왔다고 한다. 뮤지컬 무대 경험이 전혀 없었던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 출신의 신예 전동석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국내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탐내는 그랭구아르 역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그랭구아르의 대표곡을 불러서 그랭구아르로 캐스팅이 된 전동석과 달리, 이 오디션을 보러갔다가 알지도 못하는 저 작품에 픽업이 되는 일도 심심찮게 생긴다. 오페라와 뮤지컬 사이에서 고민을 하던 대학생 최재림은 배우로서의 자질을 평가받고 싶어서 박칼린 감독이 심사하는 킥스튜디오의 오디션을 보러 가서 준비곡을 열창했다. 처음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박칼린 감독도 그의 노래가 끝나자 신이 나서 감재성 연출까지 불러  이 친구 노래하는 걸 좀 들어보라면서 완전히 콜린이라고 칭찬 했다. 당시 최재림은 콜린은커녕 <렌트>가 뮤지컬인지 연극인지도 모르는 문외한이었지만 그렇게 인연이 닿아 2009년 <렌트> 공연에 서 엔젤의 남자 친구를 연기하게 된다. 평생 소원이 콜린을 연기하는 것이고, 그 캐릭터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는데도 역할과 목소리가 맞지 않아 기회를 잡지 못하는 배우라면 분할 수도 있지만, 박칼린 감독이 최재림을 발견한 것이 그해 <렌트>를 본 관객들에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이 작품 오디션을 보러 왔는데 생뚱맞은 다른 작품에 캐스팅되는 경우는 브로드웨이에도 종종 있는 일이다. 그쪽에서는 보통 캐스팅 디렉터라는 직함으로 온갖 오디션에 다 참석해서 매의 눈을 빛내는 전문 직업인들이 그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프로페셔널한 월하빙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최재림의 경우처럼 양쪽 작품에 모두 인연이 닿은 프로덕션 관계자가 직접 선을 연결해주는 경우가 많다.
낭중지추, 앙상블 속에 섞여 있는 재능 있는 신인배우에게 하늘에서 온 선물처럼 기회가 오는 일도 있다. 김보경은 2005년 당시 <아이다>에서 비중 있는 조연도 아니고, 앙상블 중 1인으로 출연 중이었다. 다만 앙상블 중에서 가장 높은 음역을 소화해야 하는 역이었는데, 공연을 보러 왔던 <미스 사이공> 해외 스태프가 그녀의 목소리를 알아차렸다. <미스 사이공>의 킴으로 딱 맞는 좋은 목소리이니 오디션을 봤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는데, 그때 김보경은 이미 2006년 <맘마미아>의 소피 커버 배우로 예정돼 있었다. 그 때문에 공연 기간이 겹치는 <미스 사이공>은 아예 오디션을 볼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뜻밖의 제안을 받은 것이다. <맘마미아>의 제작사인 신시컴퍼니의 박명성 대표가 좋은 기회이니 오디션을 보라고 양해를 해주면서 인생이 바뀌는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이렇게 운 좋게 하늘에서 복덩이가 떨어지는 것처럼 적임자를 찾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사실 캐스팅 과정은 아주 많은 헛수고와 실패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존 뮤지컬 배우 풀에서 찾는 데 그치지 않고 뮤지컬계 밖까지 확장시켰을 때는 일이 더 커진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콰지모도 역에 적합한 배우를 찾기 위해 음원 사이트 멜론을 켜놓고 대한민국에서 발매된 모든 신인 남자 배우의 노래를 들었다는 캐스팅 담당자의 사연은 참으로 절절하지만, 그래도 그 노력 끝에 찾아낸 것이 윤형렬이니 고생한 보람은 있었던 셈이다.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고
시작은 미미했지만 끝은 창대하다는 찬사가 생각나는 사례들도 있다. 애초에 메인 캐스트가 아니었지만, 작품이 진행되면서 입지가 점점 더 넓어진 <모차르트!>의 박은태 같은 경우다. 유희성 연출은 “오디션에서 굉장히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지만 메인으로 내세우기에는 조금 불안하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럼에도 놓치기가 아까운 배우라는 판단에 얼터로라도 몇 번이라도 무대에 세우고 싶다고 제작사 측에 이야기를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리고 뒷이야기는 모두가 알다시피 해피 엔딩이다. 박은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한국판 <모차르트!>에서 타이틀롤을 맡은 네 배우 중 다방면에서 고르게 좋은 평가를 얻은 배우로 손꼽히게 되었다. 사실 공연 기간이 길고 영화와 달리 한 캐릭터를 한 사람 이상의 배우가 연기하는 것이 일반적인 뮤지컬계에서는 이런 흐뭇한 성공 사례가 드물지 않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갑작스런 부상이나 건강 악화 때문에 배우가 교체되는 경우 역시 없지는 않다. <브로드웨이 42번가>의 도로시 브룩처럼 말이다. 그리고 도로시가 남기고 간 빈자리를 채울 페기 소여를 어디선가 찾아내야만 하는 것이 프로덕션의 임무이다.


<제너두>의 초연을 앞두고 주역을 맡았던 배우가 롤러스케이트를 타다가 넘어져 다리가 부러졌을 때, <올슉업>의 채드 역으로 열연하며 섹시하면서도 복고적인 매력을 과시했던 젊은 배우 샤이앤 잭슨을 생각해낸 캐스팅 담당자는 스스로에게 상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차르트!>의 주역으로 캐스팅된 네 배우 중 대중적으로 가장 인지도가 높았던 조성모가 방송 도중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을 때, 프로덕션의 조감독은 자신이 동방신기 리드보컬과 친척이라는 사실에 진심으로 감사했을 것이다.


뮤지컬 계와 직접적인 연줄이 없는 아이돌 캐스팅이 성사되는 과정을 들어보면 한국 사회에서는 역시 인맥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현역 아이돌 스타의 뮤지컬 진출 붐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승리의 경우, 당시 서울시뮤지컬단을 이끌었던 유희성 단장이 출강하는 학교에 YG엔터테인먼트의 관계자가 있었던 것이 인연이 되어 <소나기> 오디션에 참가해 소년 역으로 캐스팅되었다. 주지훈이 <돈 주앙>에 출연하게 된 배경에는 뜻밖의 인맥이 다리가 되었는데,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에서 주지훈에게 불어를 가르쳤던 이다도시가 제작사인 NDPK 산하 매니지먼트사 소속이었던 것이다. 주지훈 본인이 뮤지컬 무대에 서고 싶다는 꿈이 있었고 마침 스케줄이 비어 있어서 여러모로 조건이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금발이 너무해>와 <형제는 용감했다>에 소녀시대와 샤이니의 인기 멤버가 출연하게 되기까지 방송계에서도 인맥이 두터운 송승환 대표의 영향이 적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누가 먼저 백조를 알아보나요
사실 공연계는 어느 판 못지않게 말이 많은 곳이다. 어떤 배우가 프로덕션의 거물과 특별한 관계라서 누구나 탐내는 배역에 곧바로 캐스팅되었다고 하면 뒷말을 듣기에 딱 좋다. 특히 그 인맥이라는 것이 연인 관계라면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 누가 <오페라의 유령>에 사라 브라이트만을 캐스팅한 앤드루 로이드 웨버를 손가락질 할 수 있으랴. 1981년 <캣츠> 초연 공연에서 처음  브라이트만을 만난 웨버는 3년 후 그 젊고 아름다운 여배우와 결혼에 골인하면서 그녀를 자신의 뮤즈로 삼아 많은 작품을 썼다. <오페라의 유령>의 가장 아름다운 넘버 중 하나인 ‘밤의 노래(The Music of the Night)’도  브라이트만의 생일선물로 헌정된 곡이다.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작품 전체가 브라이트만과 웨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는 수군거림이나, ‘오직 사라 브라이트만을 빛나게 할 목적으로 그녀의 음역대에 맞춰 쓴 작품’이라는 비평도 있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웨버는 이 작품으로 뮤지컬의 제왕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고, 브라이트만은 원하던 명성을 얻게 되었으니 일석이조의 성공적인 캐스팅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창작자들은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를 필요로 하는 법이다. 작품을 무대에서 형상화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인 뮤지컬 작곡가들의 경우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지혜 작곡가는 <첫사랑>의 음악을 쓰는 동안 홍광호에게서, 고궁 뮤지컬 <대장금>을 작업하면서는 리사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이는 브로드웨이에서 배우가 프리 프로덕션 과정부터 작품에 직접적으로 참여를 하고 대신 오프브로드웨이, 최종적으로는 브로드웨이 공연까지 설 수 있는 권리를 보장 받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이런 작업을 통해서 창작자와 배우는 더욱 긴밀한 유대감을 유지하면서 작품을 함께 완성해 나갈 수 있다.  


이지혜 작곡가가 당시 신인이었던 홍광호와 함께 작업을 하게 된 과정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프로듀서스> 오디션 때 막 제대를 한 홍광호를 처음 봤는데, 노래를 정말 잘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 ‘노래는 괜찮은데 다른 부분들이 아쉽다’며 눈여겨보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때는 사람들이 홍광호의 목소리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작곡을 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그런 부분에 집중하게 되니까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어졌고, 그게 인연이 되었다.”
규모와 역사, 환경이 너무 다른 국내 뮤지컬계와 브로드웨이의 캐스팅 관행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 짧은 역사와 부족한 인력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킬 무대를 만들어내려면, 우리는 아마 브로드웨이의 그들보다 훨씬 더 공들여서 흙 속의 진주를, 백조가 될 새끼 오리를 찾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결국 뮤지컬 무대에서도 인사가 만사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6호 2010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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