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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Focus] 알면 더 재미있는 뮤지컬 속 패러디 [No.86]

글 |이민선 2010-11-29 4,494

 

올 하반기에 인기를 얻고 있는 코미디 뮤지컬에서 눈에 띄는 것은 웃음을 주는 포인트가 상당 부분 뮤지컬 패러디에 있었다는 점이다. <톡식 히어로>와 <스팸어랏> 등이 대표적인 예인데, 다른 뮤지컬에서 보았던 눈에 익은 캐릭터와 장면이 예상치 못한 곳곳에서 등장해 큰 웃음을 주었다. 패러디는 기존의 것을 모방하되 익살맞게 변형, 과장하여 원작을 아는 이에게는 두 배의 웃음을 줌과 동시에 낯을 찌푸리지 않고도 어떤 대상을 풍자하는 효과를 준다. 관객이 보편적으로 공감할 만한 패러디로 성공적인 웃음을 선사할 수도 있지만, 원작의 유명세만 믿고 맥락 없는 패러디를 했다가는 저급의 코미디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물론 관객이 알아차리기 어려운 장면을 삽입하여 패러디도 창조도 아닌 것이 되어도 곤란하다. 원래의 것을 비틀어 재현하는 패러디의 방식은 단순하지만, 모방하는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뮤지컬 속 패러디의 양상은 조금 더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누구나 알 만큼 유명한 뮤지컬 속 캐릭터나 장면을 삽입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는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제 무대가 아닌 곳에 모습을 드러낸 캐릭터의 등장이 낯설어 일단 시선이 가게 된다. 그리고 본디 패러디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똑같이 재현하느냐가 아닌, 특징을 부각시켜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이므로 분장이 우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유명 캐릭터의 코스프레만으로는 일시적인 웃음을 주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고, 기존의 캐릭터와 새로운 캐릭터의 접점을 찾아 활용하는 경우 조금 더 발전된 형태의 패러디를 볼 수 있다.


패러디 장면이 많기로 유명한 <스팸어랏>이 뉴욕에서 서울로 넘어오면서 일부분은 한국식으로 수정되었다. <스팸어랏>의 제작사와 연출가가 참여한 작품 속 장면을 패러디하기도 했는데, 거기에 <맨 오브 라만차>도 포함되어 있다. 엉터리 영주인 여관 주인과 돈키호테, 그의 보좌관 산초가 행하는 기사 작위식 장면이 아서 왕과 갈라하드, 팻시로 인물만 바뀐 채 패러디되어 여전히 귀엽게 예를 갖춘 의식이 행해진다. 기사 작위식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그것이 그들끼리 얼렁뚱땅 해치우는 권위 없는 의식이라는 점, 하물며 위치는 바뀌었지만 <맨 오브 라만차>에 출연했던 배우가 <스팸어랏>의 같은 장면에도 등장한다는 점에서 관객들은 머릿속에서 기존의 장면과 패러디 장면이 교차하는 경험을 하고 웃음을 터트리게 된다. 또한 돈키호테 패러디를 통해 아서 왕뿐만 아니라 원탁의 기사 역시 얼마나 모자란 이들인지, 극의 의미를 명확히 전달하는 역할도 한 셈이다.


<톡식 히어로>에서는 <지킬 앤 하이드>의 ‘Confrontation’을 패러디하여 한 명의 여배우가 여시장과 엄마로 분하여 두 배역을 한 무대에서 보여주었는데, 이중인격자의 대명사인 지킬과 하이드의 대면은 원작에서 아주 강렬한 인상을 준 덕에 <이블 데드>나 <아이 러브 유> 등 많은 작품에서 패러디된 것으로 유명한 장면이다.


원작의 장면과 전혀 비슷한 상황이 아닌데도 패러디가 효과적인 경우는 원작의 이미지를 모방하되 그것이 담고 있지 않았던 메시지를 추가함으로써 어떤 대상이나 상황을 풍자했을 때이다. 그 대상이 뮤지컬의 제작 관행이나 결과물인 경우가 많은데, 이를테면 <프로듀서스>의 ‘The King of Broadway’ 같은 장면이 그렇다. 한때는 ‘브로드웨이의 왕’이었던 제작자 맥스가 현재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노래를 부른다. 뮤지컬 제작자들은 곧 유태인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로 브로드웨이를 움직이는 인물들의 상당수가 유태인이다. 맥스 자신도 유태인이지만 지금은 몰락해버린 신세. 스스로를 위로하며 노래하는데 웬 바이올리니스트가 등장하여 경박하게 연주를 하기 시작한다. 곧이어 앙상블이 보여주는 안무가 압권인데, <지붕 위의 바이올린> 중 ‘The Wedding Dance’를 패러디한 것이다. 남자들이 무릎을 들어 올리며 뛰거나 발끝을 차는 동작, 옆 사람과 어깨동무를 하고 단체로 열을 지어 큰 원을 그리며 도는 것이 유태인들의 전통 춤 그대로이다. 게다가 트레이드마크인 바이올리니스트도 있고 말이다. 온정 넘치는 유태인식 결혼식 풍경이 한물간 유태인 제작자를 위로하는 장면으로 재탄생하여, 유태인 손 안에서 움직이는 브로드웨이 제작 시스템을 비꼬아 이야기한다. 무릇 풍자의 대상은 일반인보다 강자의 위치에 있는 권력가와 재력가 또는 그들이 가진 것, 그리고 왜곡된 진실이라는 점에서 이런 패러디는 제 역할을 한다. <스팸어랏>의 ‘The Song That Goes Like This’는 뮤지컬에 자주 등장하는 전형적인 사랑의 아리아에 유머러스한 일침을 가한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팬텀과 크리스틴이 등장하듯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온 두 남녀가 듀엣 곡을 부른다. 낭만적인 멜로디에 맞춰 우아한 표정과 몸짓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내뱉는 가사는 “노래 왜 이래. 끝날 줄을 몰라. 끝은 항상 이렇게” 따위이다. ‘부드럽게 시작해서 조 바꿔 2절로 넘어가고 키스로 끝나는, 모든 공연에 꼭 나오는’ 진부한 아리아에 대한 풍자이다. 또한 <스팸어랏>의 ‘You Won`t Succeed On Broadway’는 현지화에 맞게 패러디를 사용한 경우인데, 유태인이 없으면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성공시킬 수 없다는 내용이 한국에서는 연예인이 없는 뮤지컬은 성공할 수 없다는 의미로 각국에 맞는 제작 여건을 풍자하도록 바뀌었다. 패러디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관객에게만 효과가 있긴 하나, 뮤지컬이 생산해낸 콘텐츠를 재미있게 재활용하여 그들 스스로를 풍자하는 것은 씁쓸하면서도 통쾌한, 그리고 영리한 웃음을 선사한다.


국내에서 선보였던 대부분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패러디는 신랄한 비판의 목적보다는 관객을 자극하고 웃음을 주는 기제로 활용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브로드웨이보다 좀 더 실험적이고 도발적인 작품을 내놓는 오프브로드웨이에서는 패러디를 좀 더 전면적으로 내세워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포비든 브로드웨이>는 1982년에 개막하여 2009년 막을 내릴 때까지 시대에 맞게 내용을 수정해가며, 브로드웨이 신작과 유명 배우, 이슈 등을 패러디하여 패러디 뮤지컬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뮤지컬 오브 뮤지컬스>는 5막으로 이루어진 작품인데, 각각의 막에서 다섯 명의 유명 작곡가 스타일을 패러디하였다. 리처드 로저스, 스티븐 손드하임, 제리 허먼, 앤드루 로이드 웨버, 존 칸더의 음악적 특성과 대표작의 캐릭터 등을 부각시켜, 패러디를 작품을 관통하는 컨셉으로 삼았다.


뮤지컬이 아닌 다른 장르를 패러디한 경우는 어떨까. 원작이 있는 뮤지컬 중에서 원작의 스토리와 캐릭터 자체를 패러디의 대상으로 취하기도 한다. <숲 속으로>는 『신데렐라』와 『잭과 콩나무』, 『빨간 망토』 이야기를 섞어 동화 속 환상을 뒤집고 재해석했다. 빵집 주인과 그의 아내, 잭과 신데렐라, 빨간 망토 소녀는 그들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숲 속으로 들어간다. 원작의 동화와 같은 이야기가 전개되고 모두 다 원하는 것을 얻어 행복한 결말을 맞는 듯 보인다. 하지만 <숲 속으로>에서는 동화에서 한없이 착할 뿐이었던 주인공들이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고민하고 혼란스러워하면서 자신이 처한 상황과 적당히 타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동화에서처럼 선한 사람과 악인을 구분하지 않으며, 해피 엔딩 이후에 맞는 현실적인 시련과 고통을 통해서 각각의 캐릭터들이 성숙해지는 모습까지 담는다. 동화 속 캐릭터를 다른 각도에서 비틀어 봄으로써 동화가 구축한 왜곡된 환상을 깨뜨려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깨달아야할 현실적인 덕목을 가르쳐준다. 창작뮤지컬 <거울공주 평강이야기>의 경우도 전래 동화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에서 이야기를 가져왔지만, 온달과 평강이 아닌 평강의 시녀 연이를 주인공으로 하여 또 다른 온달과 평강의 캐릭터를 창조함과 동시에 공주가 되고 싶은 시녀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한다. 독창적인 댄스 뮤지컬을 선보이고 있는 매튜 본 역시 <백조의 호수>와 <호두까기 인형> 등에서 원작을 비틀어 스토리를 전개하거나 클래식 발레를 풍자한 장면을 재창조하곤 하였다.

 

 

 

 

 

 

 

 

 

 

 

 

 

 

 

코미디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뮤지컬에서 코미디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풍자를 기술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이 바로 패러디이다. 대사와 가사, 노래, 안무, 무대 등 다양한 요소가 종합된 장르라는 점에서 뮤지컬에는 패러디의 재료가 굉장히 많다. 각각의 재료들을 흩트리고 재배열하여 무수히 많은 패러디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여 가치를 전복시킴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패러디가 무대에 드러났을 때 관객은 희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역사가 짧은 뮤지컬의 특성상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기존의 작품이나 인물, 음악 등을 직접적으로 패러디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혀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의 작품들이 한 무대에서 어우러진 광경을 보는 것은 굉장히 재미있는 경험이다. 이미 학습한 작품을 재학습한다는 의미에서 관객들은 뮤지컬 장르에 대한 애정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된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6호 2010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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