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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기획-2] 잡히지 않는 신기루 - 록 뮤지컬의 역사(2) [No.89]

글 |박천휘(작곡가, 번역가) 2011-02-07 4,813

(전편에 이어)

 

기름과 물을 섞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기적뮤지컬에서 작곡가에게 가장 크게 요구되는 것은 최소한의 음악적 재료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것이다, 몇 가지 중요한 극적인 모티프를 연결하고 또 반복할 때마다 변주하여 새롭게 들리게 하는 것, 즉 얼마나 리프라이즈를 잘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웨버는 <지저스>에서 이런 리프라이즈 대신 콘트라팍둠을 쓰고 있다. 콘트라팍둠이란 음악을 거의 바꾸지 않고 가사만 바꿔 부르는 (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 일명 노가바) 형식을 말하는데, <지저스>에서 그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다른 인물들이 부르는 노래에서조차 음악을 통으로 그대로 반복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사실 음악을 똑같이 반복하면서도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그의 천부적인 멜로디 감각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관객들은 몇 가지 안되는 단순한 음악을 무수히 반복해서 듣게 되는데, 사실 반복이 많을수록 관객들은 그 음악을 기억하고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는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이용할 줄 아는 작곡가이다. 그의 노래들은 멜로디 중심이고 극적인 결합력이 약하기에 뮤지컬의 극적인 상황에서 분리해도 팝처럼 독립적으로 향유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록이 뮤지컬 음악과 가장 다른 점은 단순하고 반복적이라는 데 있다. 록은 클래식이나 뮤지컬 음악과 비교해 화성과 멜로디가 단순하며, 코드 자체의 숫자도 적다. 구조도 간단해 코러스 부분은 가사조차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리듬 역시도 반복적이며, 곡의 템포가 중간에 바뀌는 일도 거의 없고, 강한 비트감이 시종일관 깔리게 된다. 하지만 반대로 뮤지컬에서 노래는 등장인물의 말이다 보니, 등장인물의 성격(캐릭터), 노래를 부르는 상황, 시시각각 변하는 인물의 감정, 이야기 구조, 인물이 숨기고 있는 속마음(서브 텍스트)까지 수많은 정보들로 가득 차 있게 된다. 그렇기에 음악은 변화무쌍해야 하고,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듯 극음악과 대중음악의 본질적인 차이는 결과적으로 록 뮤지컬이란 잡히지 않는 신기루를 만들어내었다. 1970년대 초 곧 도래할 것만 같았던 록 뮤지컬의 르네상스는 수많은 졸작들만 남긴 채, 제작자들에게 록 뮤지컬이 얼마나 승산이 없는 게임인지만을 뼈저리게 가르쳐 주었다. 대부분의 록 뮤지컬은 저예산에 무대도 거의 없이, 오프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만들어졌고, 그러한 경향은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웨버는 사실 <지저스> 이후 <에비타>, <캣츠>, <오페라의 유령> 등으로 1980년대까지 엄청난 성공을 거뒀지만, 그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지저스>에서 다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지저스>에서 물과 기름이라 할 수 있는 록과 뮤지컬 음악을 융합해내는 기적 같은 재주를 한 번 부리고는 이후로 점점 더 소프트한 록을 기반으로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된다. 역시 반복의 천재였던 웨버는 대중적인 멜로디를 무기 삼아 스토리보다는 볼거리 중심의 쇼들을 만들면서 유로 뮤지컬, 또는 메가 뮤지컬이란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나갔다. 형식적으로는 록오페라 또는 팝 오페라라는 형식을 따라 대사 없이 모든 것을 노래로 처리했고, 이후 유럽 뮤지컬의 전반적인 흐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본질적으로는 단순한 대중음악에 오케스트레이션으로 과대 포장하는 이런 팝페라식 어법은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갔고, 그 이전에 뮤지컬이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하는 배타적인 예술 장르란 인식을 깨고 뮤지컬을 세계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물론 이런 식의 메가 뮤지컬이 저급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사탕발림이란 비판도 있고, 심지어 뉴욕에서는 그저 멸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1980년대 미국 뮤지컬이 공황 상태에 빠졌던 시기, 웨버의 작품들이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되어 주었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뮤지컬이 수용한 대중음악브로드웨이 입장에서 보면, 그나마 성공을 거둔 1970, 80년대 록 뮤지컬로는 스테판 슈왈츠의 <갓스펠>과 <피핀>, 그리고 알란 맨켄의 <리틀 숍 오브 호러스>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슈왈츠와 맨켄은 웨버처럼 대중음악과 뮤지컬 음악에 능통했고, 웨버가 대중음악 쪽에 더 중심이 쏠려 있었다면 이들은 좀 더 자유롭게 두 가지 스타일을 넘나들었다. 맨켄은 이후 디즈니 애니메이션 뮤지컬의 르네상스를 이끌며 이 만화들을 다시 무대화한 디즈니표 뮤지컬을 만드는 데 일조했고, 스테판 슈왈츠는 <위키드>란 또 다른 메가 뮤지컬로 아직까지 건재함을 알린 바 있다. 또 1980년대 <드림걸즈>와 <위즈>의 등장은 새로운 세대의 흑인 뮤지컬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뮤지컬 음악에 알앤비, 소울 등 흑인 음악적 요소들도 도입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팝 음악은 록보다는 더 쉽게 뮤지컬 문법 안으로 흡수될 수 있었다. 록이 팝 음악의 근원이라면 사실 팝은 모든 대중음악을 포괄하는 의미로 쓰이는 단어이다. 록이 팝의 근원이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1980년대 유행한 팝 음악은 발라드, 가스펠, 소울, 재즈, 컨트리, 클래식, 댄스 등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을 가리지 않고 소화해 만든 상업성 짙은 잡식성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팝은 워낙에 다양하기도 했고, 1980~90년대에 이르면 팝음악에서 영향을 받지 않은 작곡가는 아무도 없다고 할 정도로 생활에 밀착한 음악이 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나타난 젊은 신진 작곡가들에게 팝 음악의 요소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그만큼 팝 음악은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음악이고 본질적으로 상업 예술인 뮤지컬에 가장 어울리는 동시대의 음악이 된 것이다. 상황이 이 정도에 이르자 1990년대에는 뮤지컬에 자연스럽게 팝 음악 작곡가들을 데리고 오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많은 팝 음악 작곡가들이 뮤지컬에 도전했지만 그중에 유일하게 여러 작품을 하며 성공을 거둔 케이스는 <라이온 킹>, <아이다>, <빌리 엘리어트>의 엘튼 존 정도밖에 없다. 가장 큰 이슈를 만들며 참패한 폴 사이먼의 <케이프맨>에서 볼 수 있듯이, 평생 대중음악 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극을 위해 음악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1990년대 이후 록 뮤지컬의 각개 전투1990년대 이후 주목할 만한 본격적인 록 뮤지컬로는 <렌트>, <헤드윅>, <스프링 어웨이크닝>을 꼽을 수 있겠다. <렌트>는 뮤지컬의 혁명을 꿈꾸었던 무모한 보헤미안 조나단 라슨이 가슴으로 써 내려간 눈물겨운 자서전이었고, 록과 뮤지컬의 경계를 그냥 무시하고 저돌적으로 돌진해 성공한 기적이었다. 라슨은 이 작품이 유작이 되지 않았다면 정말로 록 뮤지컬의 역사를 바꿀 수 있었을지도 모를, 원대한 꿈을 품은 청년이었다. 반면 오프오프브로드웨이의 한 클럽 액트로 시작했던 <헤드윅>은 록 카바레라는 형식을 차용하면서 콘서트와 뮤지컬의 줄타기를 통해 록 뮤지컬의 어색함을 기가 막히게 극복해 냈다. 글램 록, 펑크 록 등 멋진 록 음악을 구사한 트래스크는 진짜 자기 밴드 멤버들을 데리고 직접 출연까지 했는데, 그는 ‘모든 록 뮤지컬은 난센스다, 왜냐하면 다 록 음악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썼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 외에도 <뱃보이>와 <넥스트 투 노멀>, <인 더 하이츠> 등은 뮤지컬 작곡가가 록 음악적인 요소를 아주 잘 차용한 예라면,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던컨 쉬크라는 뮤지션을 뮤지컬의 틀에 가두지 않고 정교한 연출로 극적이지 않은 음악을 극적으로 보이게 만든 아주 특별한 경우였다.
록이 뮤지컬 안으로 들어왔던 1960년대 이후 벌써 4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록 뮤지컬의 일반적인 성공 공식은 나오고 있지 않다. 한껏 록을 길들여서 팝으로 타협한 유럽의 메가 뮤지컬이 그나마 나름대로의 성공 공식을 보여주었고, 1980년대를 정점으로 웨버와 쇤베르크의 전성기가 지나면서 그 흐름은 이제 디즈니와 브로드웨이가 근근이 이어가고 있다. 역사 속 몇 안 되는 성공한 록 뮤지컬들은 자기만의 교묘한 비틀기와 무모한 정공법으로 사막 위를 질주해 갔지만, 그들이 찾았던 신기루로 가는 길은 언제나 이미 모래바람에 다 지워지고 없는 것처럼 보인다.
뮤지컬 황금기 이후, 전통적인 뮤지컬이 깨지면서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뮤지컬은 발전해 갔다. 하나는 뮤지컬적인 음악의 극성을 최대한 살려서 더 섬세하고, 더 예술적이며, 더 고집스럽게 뮤지컬 장르의 가능성을 넓혀 간 거장 스테판 손드하임과 그의 영향을 받은 포스트 손드하임 세대들의 지속적인 예술 실험이고, 또 하나의 경향은 뮤지컬의 허구성과 위선을 정면 비판하면서 현재 젊은이들의 정서를 폭발적으로 담으려 했던 록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상업화 일로를 걷고 있는 브로드웨이에 그나마 생명력을 연장해주며 그래도 뮤지컬다운 뮤지컬을 수혈해 주고 있는 이 두 가지 흐름 모두 상업성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순수한 창작자들의 호기에 있다는 것이다.
뮤지컬은 우리의 삶, 동시대의 음악과 다양한 기술의 발전, 그리고 인접해 있는 수많은 예술 장르의 변화 등을 다 폭식해 가면서 발전, 진화해 가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예술이다. 사실 어떤 작곡가가 무대와 대중음악 차트를 동시에 정복하는 달콤한 꿈을 꾸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도 어디선가 대중음악과 극음악이 하나가 되는 뮤지컬 르네상스를 꿈꾸고 있는 수많은 창작자들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록 뮤지컬 그리고  힙합, 랩 뮤지컬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9호 2011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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