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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기획-3] 학전, 고맙습니다 [No.91]

글 |김영주 사진 |심주호 2011-05-02 4,178

모르는 사람은 영영 모를 것이다. 서울 시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외견의 작은 건물 안에 20년을 버텨온 못자리 같은 극장이 있다는 것을. 김광석이 뜨겁게 노래하고 노영심이 관객들에게 상냥하게 말을 걸고 박광정이 교육 현실을 비판하는 뮤지컬을 만들었던 곳, 학전이다. 학전의 스무 번째 생일을 맞아 그 공간을 채웠던 <지하철 1호선>과 <의형제>에 더해 <개똥이>, <우리는 친구다>, <고추장 떡볶이>와 <분홍병사>, <도도>를 한자리에서 보기 위해 모여든 학전 식구들, 그리고 기쁜 잔치에 초대받은 관객들의 표정을 담았다.   글 | 김영주  사진 | 심주호           

“난 <의형제> 노래만 들어도 눈물이 나.”
“난 간난이가 무대에 나오는 것만 봐도 막 눈물이 나.”
20주년 기념 공연에서 나란히 ‘안경’ 역으로 출연한 서범석과 최재웅이 흡사 경쟁이라도 하듯 열렬한 사랑을 토로한 <의형제>는 2001년 종연 이후 처음으로 무대에 올려졌다.

“<개똥이>를 연습하던 중에 이 아이가 제 곁으로 왔고, 이듬해 봄에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서 이 무대에서 함께 노래를 하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아빠가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곳에서 노래를 하게 되어서 기쁩니다.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는 제가 이곳에서 공연을 하고, 아빠가 객석에서 저를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개똥이>의 ‘날개가 있다면’을 함께 부른 이정열과 그의 딸 이지민. 학전이라는 공간의 역사 속에 부녀의 특별한 하루가 더해지는 날이었다.

좋은 작품을 본 기쁨에 마음이 든든하게 찬 관객들이 밖으로 나오면  분장을 채 지우지 않은 배우들이 나란히 서서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 학전의 전통이다. 객석 맨 앞줄에 앉은 관객의 발이 닿는 자리가 그대로 무대와 이어지는 이 극장 안에서 작품 속 세계는 그렇듯 자연스럽게 우리의 현실과 이어지는 것이었다.

자기보다 덜 가엾은 여자를 위로하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낮고 비참한 여자가 노래를 한다. 그 노래는 함께 아파야할 일에 아픈 줄도 모르고 슬픈 일에 슬퍼하는 법도 잊어버린 채 저 억울한 것만 아는 우리에게 와서 닿는다. <지하철 1호선>은 그렇게 저마다 각자인 사람들의 마음을 서로에게로 끌어다가 나란히 기댈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지하철 1호선>의 선녀와 <분홍병사>의 메이드 인 아시아로 출연한 방진의. 리허설 중인 극장의 어둠 속에서 스승에 대한 한없는 신뢰를 담은 젊은 배우의 얼굴이 밝게 빛났다.


<의형제>의 쌍둥이, 무남과 현민으로 10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추기 위해 권형준과 김학준은 극장 앞에서도 계속 동선을 확인했다. 손을 맞잡은 두 사람과 10년 전 포스터의 쌍둥이들이 겹쳐 보였다. 

학전의 진짜 생일인 3월 15일, 김민기 대표는 공연을 시작하기 30분 전부터 극장 입구에 서서 관객들을 맞았다. 주인도, 손님도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서로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2001년, 조승우는 그의 뮤지컬 데뷔작인 <의형제>에서 걸인이자 예언자인 해설자 역을 맡았다. 갓 스물을 넘긴 어린 배우는 이 작품을 통해 학전이라는 밭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10년 후 제자리로 돌아와 같은 역을 했다. 아마도 지난 10년 동안 그가 공식적으로 선 것 중 가장 작은 극장일 학전에서 객석을 향해 인사를 할 때, 조승우의 얼굴 가득 울음이 차올랐다. 

기타를 치는 김광석의 노래비가 있는 학전 마당에 천막이 세워지고, 십시일반으로 마음을 모아 준비한 잔치 음식이 너른 상 위에 펼쳐졌다. 가장 인기가 있었던 메뉴는 ‘옛날 떡볶이’. 학전 어린이 무대의 히트작 <고추장 떡볶이>의 주제곡을 기념 공연에서 듣고 나온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버스 끊겼겠는데?” “괜찮아, 나 오늘 학전 호텔에서 자고 갈 거야.” 두 어르신이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나누는 대화를 훔쳐 들었다. 특별히 분위기를 띄우려고 애쓰는 사람 하나 없어도 그저 기쁘고 좋아서 좀체 자리를 뜨는 사람이 없는 동네잔치 같았다.  

설경구와 김윤석, 대한민국에서 최고 수준의 몸값을 받는다는 연기파 배우들이 이번 공연에서 맡은 배역은 극장 문 앞에서 입장하는 관객들의 티켓을 받는 것이었다. 처음 극단에 발을 들였던 까마득히 먼 햇병아리 시절 이미 졸업했을 그 역할을 하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리 공연계에서 20년 동안 극단을 운영한다는 것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의미합니다. 아주 비범하거나 아니면 아주 미련하거나. 그런데 김민기 대표는 둘 다예요.” 구자흥 명동예술극장은 농반진반의 덕담으로 학전의 지난 20년을 가능하게 한 김민기 대표의 공을 기렸다.

“제가 마흔 살에 이곳에서 극장을 시작했는데 벌써 20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정말로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 뭐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배우들 연주자들 스태프들 고생만 시켰습니다.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20주년 기념 공연이 끝난 후 무대에 있던 모두가 객석으로 들어가서 관객 사이에 섞이고, 사진작가는 무대에서 객석의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어제도 오늘도, 학전은 참 학전답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1호 2011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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