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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영화 속 숨은 뮤지컬 배우 찾기 [No.80]

글 |배경희 2010-06-08 6,824


영화 속 숨은 뮤지컬 배우 찾기

영화 속 뮤지컬 배우들을 숨바꼭질하듯 찾아내 친절히 한 곳에 모은 까닭은 단지 이들이 작은 역으로 출연했기 때문이 아니다. 알고 나면 “어머나!”하고 손뼉을 탁 치게 될, 이 기막힌 명장면들을 평생 모르고 놓칠까봐 하는 얘기다.

 

 

주.지.훈, 주인공 지인으로 출연한 훈남 모음
주인공 친구와 동생 그리고 때때로 제자, 주인공 지인을 연기한 배우들이 영화 속에서 어떻게 등장했는지 찾아봤다.

 

이석준 <4인용 식탁> 정원 친구 창현

<4인용 식탁>에서 이석준은 딱 한 신을 제외하고 모두 내부 공사 중인 건물 ‘안’에서 등장한다(나머지 한 신 역시 차 ‘안’이라는 사실). 이석준의 극 중 직업이 인테리어 디자이너이고, 정원(박신양 분)과 함께 정신병원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이석준의 오디션 에피소드. “대본 리딩 때 여자 분이 한 분 앉아 계셨는데 조연출인 줄 알았거든요. 감독님이시더라요.”

 

 

 

이신성 <비열한 거리> 병두 동생 병식

광식이 동생 광태만 있는 게 아니다. 병두(조인성 분) 동생 병식이도 있다. 삼류 조폭인 형과 형 말 안 듣고 형과 같은 길을 걸으려는 동생, 두 형제의 사이가 좋을 리 없다. 아, 좋은 때가 딱 한 번 있긴 있다. 바로 병두네 집에 병두의 첫사랑 현주(이보영 분)가 놀러 온 날. 온 식구가 다같이 상에 둘러 앉아 팥 칼국수를 먹는데 병식이가 웬일로 예쁜 말을 한다. “형수님, 소금하고 설탕 좀 넣어 드세요.”, “뭘 벌써 형수님이야. 부담스럽게.” 말은 그렇게 해도 병두 입은 이미 귀에 걸려 있다.

 

 

김승대 <취화선> 승업 제자1

영화 중반, 이리들 나와 보라는 장승업(최민식 분)의 부름에 발딱 일어나 밖으로 나오는 세 제자가 있으니, 그 중 황록색 도포를 입고 왼쪽에 선 사람이 바로 김승대다. 지뢰라도 밟은 것처럼 바짝 서서 눈 한 번 깜박이지 않다가, 스승의 말씀이 끝나자 가르침을 마음에 깊이 새긴 듯 입술을 꼭 깨문다. 비록 영화에서는 한 장면 밖에 등장하지 않지만 너끈히 선생의 사랑을 받을 만한 제자다.

 

 

 

 

오, 당신이 눈 감은 사이에
황사가 심한 날, 아래 세 영화는 보지 않는 게 좋겠다. 간지러운 눈을 썩썩 비비는 사이에 이들을 놓쳐 버릴지 모르니까.

 

<주유소 습격사건>(1999)
송용진이 <주유소 습격사건>에 출연했다는 사실을 글로 안 사람은 꽤 있다. 그런데 알고 봐도 그가 어느 장면에서 등장하는지 단박에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스크린 속 송용진이 궁금한 사람은 영화 중반부터 2배속 느리게 보기 기능을 사용할 것을 권한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어설픈 로커 딴따라(강성진)의 회상 신에서 딴따라 밴드의 일원으로 등장해, 긴 머리를 찰랑찰랑 흔들며 기타를 치는 송용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백만장자의 첫사랑> (2006)
영화 초반 재경(현빈 분)과 재수(박상훈 분)의 주차장 싸움 신. 재수의 손짓에 재수 뒤로 각목과 쇠파이프를 든 재수 쫙 깔린다. 각목이 날아다니고, 사람들이 붕붕 날아다니는 화려한 액션신에서 재수 친구로 출연한 김태훈을 포착하기란 ‘월리를 찾아라’보다 더 힘든 일이다. “앵글에 맞춰 때리고 맞아야 해서” 이 장면에 출연하는 배우 전원이 한 달 동안 액션 스쿨에서 수업을 받았다고. 참, 사진 제일 왼쪽에서 청자켓에 청바지를 입고 완벽한 싸움 준비 자세로 서있는 남자가 김태훈이다.

 

<괴물>(2006)
첫 영화 출연 소감에 대해 이훈진은 이렇게 말했다. “발연기했죠, 발만 잘 떨어주면 되는 연기, 하하.” 대체 어떤 역을 맡으면 이런 답변이 가능할까. 영화 초반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뚱뚱남’이 바로 사랑스러운 ‘산초’ 이훈진이다. 괴물이 한 입에 팔, 다리, 몸통을 집어 삼키기 때문에 그를 알아차리기란 역시 쉽지 않다. 이훈진은 이 장면을 위해 오랜 시간 와이어에 매달려 있어야 했는데, 그 최장 기록은 40분이었다고 한다.

 

 

교복이 잘 어울려요
아래의 세 배우는 각기 다른 영화에서 여고생을 연기했다. 신기한 건 그녀들이 출연한 세 편의 영화 모두 2001년에 개봉했다는 사실이다.

 

방진의 <번지 점프를 하다> 김현경
천계영의 『오디션』을 보면서 킥킥대고 웃고 있는 사람이 방진의라는 건 한눈에도 알 수 있다. 극 중 방진의는 혜주(홍수현 분)의 같은 반 친구로 총 다섯 번 등장하는데 자주 손에 뭔가를 들고 나타난다. 첫 번째 신에서는 만화책을, 두 번째 신에서는 과자 봉지를, 세 번째 신에서는 응원 도구를 손에 쥐고 등장한다. 나머지 두 신에서는 뭘 들고 등장하냐고? 음, 네 번째 장면부터는 그냥 빈손으로 나온다.

 

 

문혜원 <와이키키 브라더스> 인희 아역
문혜원은 극 중 여주인공 인희(오지혜 분)의 아역으로 출연했다. 새까만 생머리, 흰색 하복 셔츠가 잘 어울리는 여고생 문혜원은 그때나 지금이나 참 예뻐서 박해일(성우 아역)을 한눈에 반하게 할 법하다. 이건 영화 속 상황이지만, 그녀가 ‘I Love Rock`n Roll’을 부르는 모습에 실제로 여러 남학생들이 마음을 태웠다.

 

 

 

구원영 <와니와 준하> 여고생 1
와니(김희선 분)의 고교 시절 친구로 나오는 구원영. 단발머리, 동그란 안경, 무릎을 덮은 치마 길이, 검정구두에 흰색 양말, 전형적인 모범생이다. 그런데 웬걸. 하굣길, 와니를 마중 나온 이복동생 영민(조승우 분)을 남자친구로 오해한 그녀가 와니에게 여고생 특유의 안짱다리 포즈를 하고 짧고 굵게 외치는 한마디는 다음과 같다. “새끼 쳐야 해!”

 

 

 

 

경찰청 사람들
다음은 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를 위해 힘쓰는 경찰청 사람으로 출연했지만,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경찰 삼인방이다.

 

김태한 <살인의 추억> 고참 의경
연쇄살인 사건 용의자 현장 검증을 앞두고 아침부터 부산스러운 경찰서 로비. 피해자 이향숙의 대역을 맡은 동료 의경이 여장을 하고 나타나자, 입을 삐죽거리며 이죽거리는 고참 의경이 바로 김태한이다. 어쩐지 국방색 군복을 갖춰 입긴 했는데 모자를 살짝 비뚤게 쓰고 나왔더라고.

 

 

 

임기홍 <시크릿> 형사
회의 시간에 피자를 우걱우걱 먹던 임기홍(시인 백석을 떠오르게 하는 머리 스타일까지는 좋았는데)은 예고 없이 등장한 반장에게 결국 한 대 맞는다. 다같이 먹었는데도 맞는 사람은 꼭 따로 있다. 창문을 열라는 반장의 지시에 “예”하고 창문을 열러 가서도 여전히 입  안 가득한 피자를 열심히 씹는다. 그래도 블라인드 끈을 잡아당기는 손놀림은 얼마나 빠르던지.

 

 

이율 <반가운 살인자> 의경
살인 사건 현장을 지키는 신입 의경 이율은 현장은 안 지키고 딴전만 부린다. 막대기 들고 쪼그리고 앉아 땅파기, 돌 위에 걸터앉아 휘파람 불기, 여자친구하고 전화하기. 하이라이트는 동네 백수(유오성 분)을 형사로 착각해서 살인 사건 현장으로 들여보내 준 것. 그래도 선배(착각이지만)에게 인사하는 목소리에는 신입답게 기합이 팍 들어가 있다. “아이고! 나오셨습니까!”

 

 

 

딱이시네요
짧지만 절묘해서 강한 인상을 남겨준 환상의 캐스팅 사례를 모았다.

 

전수경 <공공의 적> 생수 아줌마
철중(설경구 분)이 아까 사간 다 식어 뜨듯해진 생수를 차가운 걸로 바꾸려고 하지만 아줌마, 전수경의 태도는 단호하다. “안돼요.” 철중이 당황해서 말한다. “아줌마! 나 경찰이야, 경찰!” 이에 응대하는 전수경의 답. “경찰? 니가 경찰이면 난 영부인이다, 이놈아. 여기가 어디라고 행패야! 행패가!” 그러고는 철중을 확 밀쳐낸다. 역시 전수경이다.

 

 

 

홍지민 <바람난 가족> 술집 여자
바를 찾은 영작(황정민 분)과 윤주(김병춘 분). 윤주가 영작에게 변태 성욕 무용담을 늘어놓자 앞에서 듣고 있던 ‘술집여자’가 핀잔주듯 말한다. “아우 됐어. 만날 뻥은!” 그래도 윤주는 멈출 줄을 모르고, 참다못한 ‘술집여자’가 마른안주를 집어던지면서 소리를 빽 지른다. “야!” 어둠 속에 가려서 몰랐겠지만, 이 ‘술집여자’가 바로 홍지민이다. 듣는 사람 속 다 시원하게 만드는 그 목소리란.

 

 

신성록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농구선수
전직 농구 선수 박성원(김수로 분)의 회상 장면, 농구 시합 작전 타임 시간.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포카리스웨트 수건을 목에 두르고 있는 선수가 신성록이다. 그런데 신성록이 농구선수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고등학교 때 부상으로 농구를 그만둔 뒤 배우로 방향을 바꿨다고 한다. 전직 농구 선수의 농구 선수 연기,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그밖에 3종세트
아래의 내용들이 별로라서 ‘그밖에’로 분류하는게 아니다. 이게 진짜 하이라이트다.

 

이보다 더 많을 순 없다

뮤지컬 배우 최다 출연 영화 <하류인생>
임권택 감독의 <하류인생>에는 최소 열한 명이상의 뮤지컬 배우가 출연한 걸로 추정된다(김학준, 문정희, 김수용, 서범석, 오상원, 이주원, 전병욱, 이황의, 최민철, 남문철, 강필석). 이렇게 많은 배우들이 <하류인생>에 대거 출연하게 된 까닭은 조승우의 추천으로 극단 학전 배우들이 단체로 오디션을 봤기 때문이다. ‘영화 쪽 선배’ 조승우가 부산에 뒤늦게 온 ‘선배들’ 모아놓고 영화가 낯선 선배들에게 카메라 연기 오리엔테이션도 해주고, 돈 모아서 회도 사주고 그랬다고. 

 

주옥같은 대사를 남기고
<후 아 유>의 수현 배해선
동료들이 모두 마다하는 인어쇼를 성공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수족관 다이버 인주(이나영 분)에게 동료 수현이 하는 말. “나 수영 그만두고 가장 힘들었던 게 뭔 줄 알아? 승부욕. 0.01초 아끼려고… 사는 거 그렇게 등수 매길 순 없는 건데.” 맞다. 사는 건 등수 매길 수 없는 거다.

 

 

영화 속 멀티맨
<신석기 블루스>의 성기윤
영화 속에도 멀티맨이 있다. <신석기 블루스>에서 성기윤은 세 번 등장하는데, 세 번 다 다른 역이다. 선술집 주인, 화공 약품 가게 주인, 악기점 주인. 물론 인사로 하는 첫 대사도 상황마다 다 다르다. “어서오세요”, “뭘 찾아요?”, “아무리 중고래도 50만 원이면 거저 드리는 거예요.”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0호 2010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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