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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월드컵에 대한 기억 [No.81]

정리| 편집팀 2010-08-04 5,310

월드컵에 대한 기억

 

누가 월드컵 송을 불렀네, 누구하고 누가 월드컵 캠페인을 찍었네, 연일 월드컵과 관련된 소식이 들려오고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월드컵으로 달아오를 조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6월, 월드컵 시즌을 맞이해 배우들의 월드컵에 대한 기억을 한번 들어볼까요?

 

홍경수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거의 모두가 열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2002년 월드컵, 몇 강이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예술단 동료들과 TV로 경기를 시청했다. 결과는 우리 한국 팀의 승리!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동료들과 난 밖으로 나와 거리의 인파들과 함께 기쁨을 나눴다. 다들 기억나겠지? 모르는 사람들끼리 포옹도 하고, 버스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과 신나서 함께 응원도 하고. 그런데 문제는 너무 많은 인파로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다는 것. 그렇게 나와 동료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수역 지하철 아래 플랫폼까지 인파에 밀려 결국 지하철을 타고 강남역에서야 가까스로 내릴 수 있었다. 내려보니 동료들은 다들 연락이 두절되고(당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서로 통화를 해서 통신 장애가 있었다), 이미 지하철도 끊긴 시각이라 강남 역에서 또 모르는 사람들과 신나게 응원을 펼치며 사당까지 걸어왔다. 하하.     

 

 

 

 

 

 

 

 

 

 

 

 

 

 

 

 

 

 

 

 

 

 

 

 

 

오나라

2006년 독일 월드컵이 열렸을 때 전 오만석 씨, 전병욱 씨와 함께 <김종욱 찾기> 초연에 참여하고 있었어요. 우리나라 대표팀의 첫 경기였던 토고전이 마침 공연이 끝나는 시간에 열려서 공연 종료 후 관객들과 함께 극장에서 경기를 관람했었답니다. 일종의 이벤트였어요. 각각의 배우 팬클럽에서 준비해온 간식에 캔맥주를 마시면서 재밌게 응원했지요. 참, 그날 공연도 월드컵 버전으로 수정해서 했어요.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이 바에서 맥주를 마시는 장면에서 “아, 오늘 토고전 이겨야 할 텐데” 같은 애드립도 했었고, 멀티맨이었던 전병욱 씨는 붉은 악마 복장으로 뿔 달고 나와서 “대한민국”을 외치고 들어가기도 했고요. 커튼콜 때는 모든 배우가 붉은 악마 복장으로 나와 인사를 했는데 전 미나의 월드컵 복장으로 유명했던 ‘배꼽티에 치마’를 입었죠. 나름대로 파격적인 시도였어요. 하하. 

 

배해선
월드컵의 열기가 가장 뜨거웠던 2002년, 나 역시 배우들과 거리 응원에 참여했다. 시청,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대학로 등 많이도 다녔다. 상암동에서 홍대까지 걸어가며 거리 행진을 한 기억도 난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미리 약속하지 않아도 곳곳에서 배우들이 삼삼오오 모여 결국은 한자리에서 응원을 하게 되곤 했다. 우리끼리 옷도 맞춰 입고, 액세서리도 두르고, 물통을 북 삼아 두드리며 유난히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으니 아마 사람들 눈에 좀 띄었을 거다. 사실 대학로에서 경기를 보고 있으면 앞사람에게 가려서 경기 장면은 잘 보이지 않았다. 앞쪽에서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면 골을 넣은 건가 싶어서 따라서 환호했다가, 파도치듯 “골 아니래요”라고 뒤쪽으로 소식이 전해지면 아쉬움에 탄식하던 기억도 난다.

 

 

 

 

 

 

 

 

 

 

 

 

 

 

 

 

 

 

 

 

 

 

 

 

 

박은태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린 2002년, 한국 사람은 딱 두 분류로 나눌 수 있다고 하죠. 한국에 있었던 사람과 외국에 있었던 사람. 하지만 한 부류가 더 있어요. 그건 바로 군대에서 월드컵을 보낸 부류! 제가 바로 거기 속하는 사람이에요. 2002년 5월 6일에 입대를 했으니(너무 억울해서 날짜도 정확히 기억해요) 정말 월드컵 직전에 입대를 한 셈이죠. 생각해보세요. 500명 정도 되는 인원이 조그만 텔레비전 앞에 모여 각 잡고 앉아서 경기를 시청하는 모습을요. 처음에는 아예 안 보여준다고 해서 무척 걱정했는데, 우리나라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둬서 우리나라 경기는 다 보긴 했어요. 골을 넣었을 때 소리 지르는 것까지도 봐줬고요.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고 곧바로 정자세로 앉아 시청해야 했죠. 군인이니까요! 뉴스에서 시청에 모인 사람들을 보고 나서 이 시점에 군대에 온 걸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우리나라가 잘하면 잘할수록 마구 후회했어요. ‘아, 월드컵 보고 올걸, 보고 올걸.’ 이다음 월드컵도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그때의 그 분위기는 안 나더라고요.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그 감동의 기회를 놓친 게 아직도 아쉬워요.

 

김소현
2002년 월드컵은 <오페라의 유령>의 첫 라이선스 공연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즈음이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공연하는 날과 16강, 8강, 4강 경기가 치러지던 날들이 겹쳐서 붉은 좌석을 마주한 채 공연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더랬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오페라의 유령>은 그때 유일하게 매진된 공연이었고, 우리가 16강에서 8강, 4강으로 올라갈수록 공연장에 ‘Be the Reds’ 티셔츠를 입고 나타나는 ‘붉은 악마’들이 늘어갔다. 커튼콜 때 우리나라가 이겼다는 소식을 듣고 신이 난 배우들과 스태프들, 관객들은 모두 하나 되어 ‘대/한/민/국!’을 외치며 기쁨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특히 승부차기로 이겼던 스페인전이 끝나고 배우들하고 빨간 티셔츠를 입고 역삼역에서 강남역까지의 길거리 응원 행렬에 동참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내가 출연했던 낮 공연을 보셨던 관객 분이 나를 알아보고 사인을 부탁하셨다. 사인도 어색하던 신인 시절이었는데.(웃음) 8년이 흐른 2010년 6월에도 난 크리스틴으로 <오페라의 유령>을 공연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월드컵에는 잠실역에서 걸을 일이 생겼으면 좋겠지만… 이제는 체력이… (웃음)

 

김하늘
2002년 월드컵 때 저는 중학생이었어요. 미국전을 앞두고 수업을 할지, 경기를 관람할지 투표를 했거든요. 물론 반 아이들 전원이 한 마음으로 경기 관람에 한 표를 던졌죠. 근데 저희 반만 수업을 안 하고 미국전을 보는 줄 알았더니 골이 들어갈 때 마다 복도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 나오더라고요. (웃음) 2006년 월드컵 때는 친구들과 광화문으로 나가서 응원을 했어요. 광화문의 붉은 물결 기억하시죠? 기억에 남는 건, 우리나라가 골을 넣은 그 감격의 순간, 제 옆에 계시던 여자 분이 갑자기 제게 뽀뽀를 하는 거예요! 그때 정말 엄청 당황했어요. 근데 그분은 정말 기뻤는지 저뿐 아니라 옆에 있던 사람 모두에게 뽀뽀를 하더라고요. 하하. 당혹감과 안도감이 교차했던 순간이었죠. 아, 한 가지 더 생각나는 게 있는데요. 경기가 끝나고 나서 주변의 쓰레기를 줍고 청소하는 모습이 진짜 인상적이었어요. 그 시민의식! 이번 월드컵도 기대되는데 저의 <쓰릴 미> 첫 공연 날이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어서 공연 무사히 마치고 광화문으로 달려갈 생각이랍니다. 코리아 파이팅!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1호 2010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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