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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달콤쌉사름한 발렌타인데이의 기억 [No.77]

정리 | 편집팀 2010-03-29 5,125

달콤쌉사름한 발렌타인데이의 기억

 

이건명
동랑연극앙상블에서 <베이비 베이비 베이비>라는 뮤지컬을 할 때였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입단한 신입 단원이어서 출연은 물론이고 뒤에서 코러스를 할 서열도 안 됐다. 그 때 내가 한 일은 공연 전단지 돌리기(그 시절에는 배우들이 거리에서 공연 홍보 전단지를 나눠주고 포스터도 붙이고 그랬다). 발렌타인데이에도 어김없이 홍대로 전단지를 돌리러 갔는데, 이건 뭐 사람들이 너무 안 받아주는 거다. 모든 연인이 두 손을 꼭 잡고 다른 한 손에는 초콜릿 바구니를 들고 있는데 받아 줄 리가 있나. 한 팀이었던 (문)상윤이 형하고 오늘은 하지 말자며 철수하려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걸 경찰한테 걸렸다(길에서 전단지를 돌리는 건 경범죄에 해당한다). 다행히 상윤이 형이 얼마 전에 의경을 제대했던 터라 금방 경찰서에서 나오긴 했지만 얼마나 서럽던지. 그 날 우리는 눈물의 자장면을 먹고 헤어졌다. 이보다 더 최악의 발렌타인데이는 없을 것 같긴 해도, ‘발렌타인데이’ 하면 그때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양소민
남편을 만나고 처음 맞은 발렌타인데이가 기억에 남아요. 어떤 이벤트를 해줄까 고민하면서 한참 인터넷을 검색했는데 결국에는 이것저것 사람들이 추천하는 일들을 다 했던 것 같아요. (웃음) 초콜릿도 직접 만들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만들자마자 손에서 다 녹아버리는 거예요. 원래는 하트 모양이었는데 형체를 전혀 알아볼 수 없게 됐죠. 그래도 그이를 위해 처음으로 만든 건데 그냥 두기는 싫더라고요. 아까운 마음에 일단 상자에 담아두고는 제과제빵을 전공한 동생을 협박해서 초코 케이크를 만들어 선물했어요. 손수 만든 케이크를 받고 기뻐하는 그 사람에게 “내가 진짜로 만든 건 이거야” 하며 망친 초콜릿을 건넸더니 더 좋아하더라고요. 케이크는 같이 나눠 먹으면서도 초콜릿은 혼자서 아껴 먹겠다며 집으로 가져갔어요. 하하하. 아, 이 얘기 듣는 분들 배 좀 아프시겠어요.

 

 

김수용
아주 처참했던 기억이 있어요. 유리처럼 섬세하고 예민하던 사춘기 학생 때였어요. 그때까지 전 발렌타인데이에 단 한 번도 초콜릿을 받은 적이 없었답니다. 애들끼리 우정 초콜릿이니 뭐니 해서 받은 적은 있지만, 오로지 저만을 위해 준비한 초콜릿을 받은 적은 없었죠. 으흑흑. 고 1이던가 고 2던가. 발렌타인데이가 임박했던 시기였어요. 어느 날 학교에서 친구들과 모여서 놀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와서 어떤 여자애가 저를 부른다는 거예요. 어린 마음에 ‘내 인생 처음으로 초콜릿을 받는 게 아닐까?’ 잔뜩 긴장했죠. 제가 성당 주일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거기서 본 친구였어요. 속으론 므흣한 마음이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목소리를 깔고 “어~ 너니? 무슨 일이야?” 그랬더니 아무 말 없이 뒤에서 초콜릿이 한 가득 든 양동이를 꺼내는 거예요. “사실 너한테 얘기할 게 있어.” “…(침 꿀꺽)” “이거 … 종엽이 좀 가져다 줄래?” 종엽이는 저의 베스트 프렌드였어요. 너무 서운하고 민망한 마음에 “아, 됐어. 뭐야, 니가 줘”라고 하니 그 친구가 갖다 주면 소원을 들어주겠다더라고요”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이거랑 똑같은 초콜릿 양동이 선물해주면 갖다줄게!”라고 말했더니, 정말 하나 를 가져다줬어요. 그렇게 억지로 딱 한 번 초콜릿을 받은 기억이 있답니다.

 

 

이정
발렌타인데이에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게 고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그때는 남학생이 공식적으로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았지요. 그때 또래 그룹 중에 인기 많았던 여학생을 내심 좋아하고 있었는데, 그 여학생이 발렌타인데이에 나한테 초콜릿을 주었어요. 편지나 쪽지 같은 건 없었지만, 굉장히 공들인 포장이어서 아직도 기억이 나요. 곰처럼 생긴 유리병 안에 ‘아카시아 껌 종이’로 접은 종이학과 초콜릿이 담겨 있었어요. 기분이 좋잖아요. 그래서 바로 먹지 않고 친구한테 자랑을 하러 갔는데, 그 친구 방에 내 것이랑 비슷한 유리병에 비슷한 껌 종이로 접은 종이학과 비슷한 수량의 초콜릿이 담긴 선물이 있더라고요. 자존심 때문에 그 여자친구가 준 거냐고 묻진 않았어요. 그렇지만 아마도 그랬을 거라고 짐작했어요. 아직까지 미스터리에요. 하하.

 

 

김소현

제가 발렌타인데이처럼 특별한 날을 잘 챙기는 타입은 아니에요. 연애 관계에서도 이벤트를 거창하게 해주는 것보다, 서로 편안하고 친구처럼 챙기는 사이가 좋고요. 남자친구를 사귀어도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하고 그런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아주 어렸을 때 기억이 하나 있는데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사춘기였어요. 같은 반 제 앞자리에 앉는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제가 그 애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초콜릿을 주고 싶은 마음에 예쁜 걸로 골라서 포장까지 해놓고 같이 넣을 쪽지까지 썼어요. 그런데 사실 그 아이를 좋아하는 여자애들이 우리 반에 굉장히 많았어요. 제가 주려고 했을 때는 이미 초콜릿을 너무 많이 받은 거죠. 갑자기 쑥스럽고 부끄러워져서 집에 도로 가져와 그냥 저 혼자 먹었어요. 진지하게 첫사랑이나 뭐 그런 것보다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워낙 인기가 많은 친구고 하니까 자연스럽게 좋았던 것 같아요. 성인이 된 후에는 배우가 됐는데, 보통 사람들에게 특별한 날이 저희들에게는 일을 많이 해야 하는 날이잖아요. 그래서 발렌타인데이에 뭘 한다는 건 더 상상도 못하게 됐어요. 또 배우들끼리 그렇게 살갑지 않아서 기분 내라고 초콜릿을 챙겨주거나 하는 일도 흔치 않아요. 초등학교 때 좋아했던 친구는 지금 어떻게 됐냐고요? 학교 졸업한 후에도 교회에서 가끔 얼굴을 보는데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결혼도 하고 잘 살고 있어요.(웃음)

 

 

김아선
저는 발렌타인데이 때도, 화이트데이 때도, 다 제가 선물을 받아요. 우리 신랑 멋있죠? 하핫! 항상 그랬던 것 같아요. 아, 이건 별로 재미없는 내용일까요?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77호 2010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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