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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바람과 함께 사라진 것과 남은 것 <바람사>

글 | 박병성 | 사진제공 | 쇼미디어그룹 2018-06-07 930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미국인들이 사랑해 마지않은 콘텐츠이다. 1,037페이지에 달하는 소설(1936)은 발간된 지 6개월 만에 100만 부가 팔렸고, 2014년 한 리서치에서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로 꼽히기도 했다. 소설이 대단한 인기를 얻자 곧바로 영화 판권을 획득한 데이비드 셀즈릭은 캐스팅 하나부터 대본 수정 및, 장면 하나하나까지 공들여 영화를 만들어냈다. 영화(1939)에서 스칼렛이 애틀랜타를 벗어나는 장면을 위해 <킹콩>에서 사용한 무대 세트를 실제로 불태웠으며, 전쟁의 참혹함을 강조하기 위해 병상이 부족해 거리에 널부러져 있는 부상당한 남부 군인들을 부감으로 찍은 장면은 800명의 엑스트라와 800개의 마네킹을 동원했다고 한다. 221분이나 되는 러닝 타임 동안 화려한 의상과 스펙터클한 장면으로 눈을 떼지 못하게 했던 이 영화는 블록버스터의 교과서로 꼽힐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로 관객을 압도했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당시 3억 9340달러의 수익을 올렸는데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현재 가치로는 34억 4000만 달러로 이것은 <아바타>, <타이타닉>, <스타워즈> 등 최근의 흥행작의 박스 오피스 기록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를 인정받아 2014-2015 월드 기네스북에 기록되기도 했다.



1939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미국으로 이주해와 대농장을 개척한 아일랜드인의 땀과, 우아하고 아름다운 귀부인들과 명예를 중시하는 신사도 문화를 만들어낸 미국 남부인들의 역사가 담긴 작품이다. 남부 대지주의 장녀로 아름답고 개성이 강하며 주체적인 여성 스칼렛이 남북전쟁에 휩싸여 모든 것을 잃게 된 후, 무너진 집안을 다시 세우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파란만장한 여정을 그린다. 외형적으로는 스칼렛의 성장 드라마라고 할 수 있지만 이면에는 사명을 중시하는 이상적인 남부인들의 문화의 붕괴를 보여준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길게 서술되는 문구는 바로 작품의 핵심을 드러내고 있다. “예의바른 신사들과 목화밭의 땅이던 옛 남부가 있다. 이 아름다운 지방은 기사도가 살아있는 마지막 땅으로 이곳에서 기사들과 아름다운 귀부인, 주인과 노예를 마지막으로 보게 된다. 책 속에서나 찾을 이곳은 이제 잊지 못할 꿈에 불과하다. 문명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

작품은 외형적으로는 혼란스런 사회 격동기를 배경으로 철부지 스칼렛이 성장기와 더불어 순수하고 낭만적인 사랑의 대상인 애슐리와 현실적이고 애증의 관계인 레트 버틀러 사이에서 방황하는 스칼렛의 로맨스를 펼쳐낸다. 그러나 이면에는 명예를 중시하고 노예와 지주가 공존하며 살아가는 남부인의 문화와 그것의 몰락이 놓인다. 애슐리에 대한 스칼렛의 한결같은 사랑에도 남부의 정신이 연관되어 있다. 스칼렛은 애슐리도 자신을 사랑하지만 그놈의 남부 남자들의 책임감 때문에 멜라니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오해한다. 멜라니가 죽자 애슐리가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표정으로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 스칼렛은 비로소 모든 것을 깨닫고 “당신은 나에게 멜라니를 사랑한다고 했어야 했어”라며 절규한다. 이처럼 외형적으로는 스칼렛가 얘슐리와 레트 버틀러 사이에서 벌어지는 로맨스의 구조이다. 그러나 본질은 남부의 귀부인으로 태어났지만 (마치 아일랜드인들이 처음 남부의 황무지를 일구어냈던 것처럼) 현실적이고 강인한 투지를 지닌 스칼렛이 남부가 지켜온 전통(얘슐리)과 그에 반하는 새로운 문화(레트) 사이에서 갈등하다 모두 잃은 후 다시 (황무지와 같은 허허벌판의 그 예전 선조들이 미국에 왔을 때와 같이) 타라로 돌아가 새로운 내일을 꿈꾸는 이야기인 것이다.


 

마거렛 미첼의 첫 작품이자 마지막 소설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10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로맨스의 틀을 하고 있지만 역사물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이 소설은 다음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영화는 스펙터클한 무대와 화려한 의상과 영상미로도 유명하지만 소설의 본질을 놓치지 않고 담아낸다. 미국의 역사와 가치를 담은 매우 미국적인 이 작품을 2003년 프랑스 창작진들이 뮤지컬로 만들었다. 2015년 이 뮤지컬을 국내 창작진들이 영화의 유명한 테마곡 ‘타라의 테마’를 사용하는 등 좀 더 영화에 가까운 연출로 국내 초연했고, 올해까지 세 차례 재공연하고 있다.

프랑스 뮤지컬이나 한국 뮤지컬 모두 원작 소설이나 영화의 본질, 즉 미국 남부 사람들이 노예들과 공존하며 대농장을 일구고, 이를 바탕으로 한 경제적인 부로 우아하고 고상한 삶과 사상을 유지했던 삶을 담아내는 데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원작 소설과 영화는 남부인들의 시각에서 노예제를 바라보고 흑인을 체제에 순응하거나 지적으로 부족한 인물로 그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프랑스 뮤지컬은 이런 비판을 의식한 것인지 만인은 모두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다는 프랑스 혁명 정신을 담아낸다. 원작에서 충실한 하인이었던 빅 샘은 뮤지컬에서 남부의 근간인 노예제를 비판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1막의 ‘검다는 건’, 그리고 2막의 첫 곡 ‘인간은 다 같아’는 빅 샘이 보편적인 평등과 자유를 노래하는 매우 인상적인 곡이다. 그러나 뮤지컬 또한 전반적으로 노예제나 남부의 정신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뮤지컬에서는 남부의 정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2막 첫 곡 빅 샘이 부르는 '인간은 다 같아'는 흑인제에 반대하고 보편적인 자유와 평등을 노래한다

 

원작을 단순한 로맨스물을 넘어서 미국의 역사를 반영한 남부의 정신과 가치의 소멸을 담아낸 작품으로 만든 부분은 뮤지컬에서 대부분 편집되어 거의 그러한 가치가 드러나지 않는다. 뮤지컬에서는 주로 남북전쟁의 혼란과 전후 타라를 재건하는 과정에서의 스칼렛의 성장 스토리를 중점으로 애슐리와 레트 버틀러 사이에서의 로맨스를 그린다. 대중적인 오락물 성격이 강한 장르인 뮤지컬에서 성장 스토리나 로맨스 모두 인기 있는 형식이기 때문에 제대로만 보여준다면 원작과는 별개의 콘텐츠로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워낙 원작의 서사가 방대하다 보니 노래를 중요 표현 수단으로 하는 뮤지컬 방식으로 다양한 관계와 복잡한 스토리를 효과적으로 풀어내지 못했다. 원작의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압축했지만 여전히 뮤지컬은 스토리 자체를 따라가기가 버거워 보인다. 이는 영화에서도 어느 정도 드러나는 점이다. 방대한 소설을 압축하다 보니 지나치게 빠르게 전개된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어쨌든 영화에서는 원작의 메시지와 사건들을 담아내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뮤지컬은 원작의 스토리를 압축하고 생략했지만 원작의 본질적인 메시지는 물론 성장 스토리의 서사도, 로맨스의 감정도 담아내지 못한다. 원작에서 철부지 대지주의 딸 스칼렛은 전쟁을 겪고 타라로 돌아와 집안을 재건하기 위해 명예와 귀부인으로서의 예절은 애시당초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재건을 위해 전념하는 모습이 강조됐다. 그러나 그에 해당하는 뮤지컬에서는 스칼렛의 집안을 되살리겠다는 의지가 잘 드러나지 않아 그녀의 생각이 변하고 성장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뮤지컬을 로맨스물로 컨셉을 잡은 것이라면 스칼렛과 레트 버틀러 간의 밀당이 중요한데 둘의 감정 교감이 특히 2막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극의 말미에 스칼렛은 애슐리의 낭만적인 사랑의 환상에서 깨어나 레트 버틀러를 사랑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2막의 마지막에 ‘사랑했어’란 노래로 스칼렛은 절절히 사랑을 호소하지만 이 노래를 부르기 전 어떤 장면에서도 레트 버틀러에 대한 스칼렛의 호감을 느낄 대목이 없다.

 

뮤지컬이 뮤지컬만의 서사를 구축하지 못한 데에는 원작의 방대한 서사에도 원인이 있지만 뮤지컬만의 컨셉을 구축하지 못하고 노래가 단순한 스토리를 전개하는 구실만 하거나 지나치게 대극장 공연을 염두에 두고 쇼적인 역할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노예장 빅 샘의 노예제를 비판한 노래들은 중심 이야기와 무관한 독립된 장면으로 장면 자체의 메시지와 비주얼적 임팩트는 강하지만 극 전체의 서사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원작에서 레트의 허물없는 친구이자 연인이자 유흥업쇼의 주인인 벨 와틀링은 남부의 고상한 정신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인물로 스칼렛과 비교되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뮤지컬에서 벨 와틀링은 1막과 2막에 한 번씩 그녀를 위한 장면이 등장하는데 모두 유희들이 벌이는 쇼 장면으로만 소비되고 만다. 벨은 서사에서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하고 단지 쇼를 만드는 도구적 존재로 전락한다.

소설과 영화는 노예와 공존하는 대농장의 경제적 부를 바탕으로 우아한 귀부인과 믿음직한 남편이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이상적인 가치를 지켜가는 남부인들의 문화가 바람과 함께 사라진 씁쓸한 풍경과 달라진 스칼렛을 통해 새로운 남부의 미래를 기대하게 한다. 그러나  뮤지컬은 원작의 본질과 메시지를 온전히 따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새로운 메시지도 구축하지 못한다. 원작의 아우라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그저 남은 것은 맥락 없는 쇼와 의아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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