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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KETCH] <레 미제라블> 오디션 현장에서 본 인상적인 순간들 [No.137]

글 |배경희 사진 |이배희 2015-03-04 6,609

지난 1월 서울에 위치한 한 극장의 연습실에서는  <레 미제라블>의 공개 오디션이 3주 동안 진행됐다. 
올 연말에 개막하는 이번 공연은 지난 2102년  초연 이후 2년 만에 다시 올라가는 재공연. 
하지만 이 작품을 향한 배우들의 열정은 여전히 놀랍도록 뜨거웠다. 
<레 미제라블>의 오디션은 한마디로 이 작품이 얼마나 좋은 작품인지 그대로 보여주는 자리였다. 


€서류 탈락자가 없는 오디션    €


<레 미제라블> 오디션에 참가 신청서를 낸 지원자는 무려 2,500명. 하지만 여타의 다른 오디션과 달리 서류 전형에서 탈락한 지원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많은 지원자를 모두 심사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기회비용을 들여야 할 텐데, 왜 이런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치는지 의아했다. 프로덕션 측이 밝힌 이유는 이랬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작품에 어울리는 최상의 배우를 찾기 위해서.” 2012년에 열린 <레 미제라블> 초연 오디션 역시 지원자 전원을 참가시키는 방식으로 치렀다. 그리고 취재차 찾은 2차 오디션 현장에서 <레 미제라블> 팀이 이 같은 방법을 고수하는 이유를 직접 느꼈다. 에포닌 역을 지원한 여고생이 ‘On My Own’을 부르는 순간, ‘이래서 고단한 심사 전쟁을 치르는구나’ 하고 실감했으니 말이다. 뮤지컬 경험이 전혀 없음에도 가창력과 표현력에 이해력까지 갖춘 열아홉 살 소녀는 심사위원들의 감탄사를 이끌어내며 만장일치로 최종 오디션에 올라갔다. 물론 이 도전자가 캐스팅 명단에 이름을 올릴지 확신할 수 없다. 오디션 마지막 단계까지도 가장 매력적인 후보일지, 최종 선발된 다른 배우들과 이미지적으로 어울릴지, 무대에 오르기까지 통과해야 할 관문은 아직 너무나 많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런 심사가 아니었다면 원석 같은 도전자를 발견하지 못했을 거란 사실이다. 



€최단 1분에서 최대 10분까지    

 
학생 혁명단의 리더인 앙졸라로 오디션을 요청받은 지원자들이 준비해온 곡은 ‘ABC Cafe / Red and Black’과 ‘Do You Hear the People Sing’, ‘Drink with Me’. 하지만 모든 지원자가 그 세 곡을 다 부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서 어떤 이들은 ‘ABC Cafe / Red and Black’을 끝까지 마치지 못하고 1분 만에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오디션 장에서 퇴장해야 했다. 반대로 가능성을 보이는 지원자에게는 세세한 주문이 내려졌다. “학생들은 라마르크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모든 게 다 끝났다고 생각해요. 라마르크는 혁명을 지지해준 유일한 인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앙졸라만은 라마르크의 죽음이 혁명단의 계획을 사람들에게 퍼뜨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죠. 그런 아이디어가 막 머릿속에 떠오른 거예요. 앙졸라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혁명의 시작입니다. 표정에서 흥분한 게 보였으면 좋겠어요.” 1차 오디션 통과자는 기본 노래 실력을 갖추고 있는 만큼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연출가의 노트를 얼마나 잘 받아들이는지가 관건. 심사위원들은 관심을 끄는 배우를 발견할 때마다 상세한 코멘트를 덧붙여 같은 장면을 다시 해볼 것을 요청했고, 지원자들은 모두 한결같이 의욕적인 태도를 보였다.



€각양각색의 지원자들               

오디션을 지켜보면서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는 극과 극의 태도로 오디션에 참여하는 참가자들을 보는 일이었다. ‘이번엔 코제트군!’ 하고 캐릭터에 빙의된 모습으로 오디션 장에 나타난 지원자는 확실히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연출가 크리스토퍼 키는 캐릭터에 맞게 준비한 옷차림이 오히려 오디션에 방해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의외의 이야기를 했다. 이유인즉슨, 준비 과정에서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겠지만, 막상 오디션 장에서 스스로 멋쩍어 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날 실제 그런 일이 벌어졌다. 한 지원자가 ‘Drink with Me’를 위한 소품이라 짐작되는 술병을 들고 나타났는데, 연출가가 ‘ABC Cafe’를 요청하자 다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 반면 기본자세를 갖추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특히 가사를 외우지 못해서 악보를 들고 노래하는 지원자가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는데(2차 오디션에 가사도 외우지 않고 오다니!), 심사위원들의 설명에 따르면 대개 오디션 경험이 부족한 지원자들이 이런 실수를 저지른다고. 불성실한 모습이 좋아 보일 리 없다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떼나르디에 부인 역을 희망하는 한 지원자가 응시곡 세 곡을 부르는 내내 악보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들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걸 보고, 결국 오디션에서 중요한 건 실력과 재능이라는 점을 재차 확인했다. 


캐릭터별 대표 지정곡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인상적인 코멘트                                     

장 발장  ‘Valjean's Soliloquy’

“장 발장은 지난 몇 십 년간 감옥에서 쇠사슬에
묶여 일만 한 사람입니다. 여기선 야수 같은 
야만스러운 모습이 보여야 합니다.”

자베르  ‘Stars’  

“장 발장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장 발장
처럼 그릇된 길을 가면 지옥에 불타버릴 
것이라고 경고하는 거예요. 자베르는 자신의
신념에 관해서 굉장히 고지식한 인물이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반드시 장 발장을 찾아내리라 믿게 해야 해요.”

팡틴  ‘Dreamed A Dream’

“세상이 원망스러웠던 지나간 날을 회상하면서 부르세요.”

마리우스  ‘Empty Chairs At Empty Tables’

“친구들과 혁명을 꿈꿨던 행복했던 때를 떠올리다 
슬퍼지는 과정이 보여야 해요. 중요한 건, 회상에 잠겨 있는 게 
아니라 지금 현재 시점에서 과거의 기억이 몰려오는 겁니다.”

코제트  ‘A Heart Full Of Love’

“마리우스와 마주친 뒤 갑자기 긴장돼서 몸이 떨려요. 
지금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막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죠.
마치 샴폐인의 기포처럼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음을 느껴야 해요.”

에포닌  ‘On My Own’

“마리우스에 대한 감정을 인정하고, 자기가 방금 처음으로 ‘나는 
그를 사랑해’라고 소리 내어 말한 사실을 깨달았다는 점을 생각하세요.”

앙졸라  ‘ABC cafe / Red and Black’ 

“친구들에게 혁명에 대해 말하면서 자신 또한 흥분해 있어야 해요. 앙졸라는 가슴속에 불꽃이 있는 사람인데, 바로 이 순간에 
그 불꽃이 활활 타올라야 해요.” 



MINI INTERVIEW                                  
연출가 크리스토퍼 키 & 음악감독 존 릭비                                    

초연에 이어 두 번째로 오디션을 진행한 소감은?
크리스토퍼 키 ? 초연 오디션을 진행할 때는 <레 미제라블>이 어떤 스타일의 작품인지 이해가 부족한 상태로 온 지원자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엔 이미 공연이 한 번 올라가서 그런지 작품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고, 자신이 어느 역에 적합한지 알고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초연보다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 같다. 


심사에서 중요하게 보는 것은?
크리스토퍼 키 ? 노래를 훌륭하게 잘 부르는 게 중요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 작품은 노래만 잘해선 붙기 어렵다. 스토리텔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레 미제라블>은 현실과 동떨어진 낡은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우리가 갈망하는 꿈에 대해서 말하는 작품이니까. 응시곡을 부를 때, 지금 이 노래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인지하면서 내용 전달에 좀 더 주력했으면 좋겠다.
존 릭비 ? 작곡가 클로드 미셸 쇤베르크가 내게 해준 이야기로 답을 대신하겠다. <레 미제라블>에 어울리게 노래를 잘하는 배우는, 노래가 시작된 30초 후에 그 노래를 듣고 있는 관객들이 저 배우가 노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드는 사람이다. <레 미제라블>에서 노래는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노래로 명확하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의외로 캐스팅이 어려운 역할이 있다면?
크리스토퍼 키 ? 일단 아무래도 장 발장을 맡을 배우를 찾는 게 가장 어렵다. 장 발장을 하려면 넓은 음역대의 노래를 소화할 수 있는 가창력과 세월의 변화를 표현해내는 연기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니까. 코제트 캐스팅도 힘들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하이 소프라노의 배우를 찾는 것도 힘들고, 캐릭터에 맞게 나이가 어리면서 연기력이 있는 배우를 찾기란 쉽지 않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7호 2015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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