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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NEW FACE] <웨스턴 스토리> 김이후, 잠 못 드는 밤 [No.211]

글 |이솔희 사진 |맹민화 2022-09-15 2,034

<웨스턴 스토리> 김이후
잠 못 드는 밤

 

“잠 못 드는 밤이 계속됐으면 좋겠어요.” 배우로서 마지막까지 지키고픈 신념을 묻자 한참 고민하던 김이후는 이렇게 말했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고민들로 매일 밤 잠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좋은 배우’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면 기꺼이 인내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대학로가 주목하는 신인 배우로 김이후를 꼽는다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테다. 2017년, 신인 등용문으로 불리는 <베어 더 뮤지컬>로 무대에 발을 내디딘 김이후는 <그리스> <앤ANNE> 등을 거쳐 2020년 <알렉산더>를 만나 봄날의 꽃처럼 화려하게 피어났다. 균형 잡힌 실력과 맑은 목소리, 사랑스러운 분위기까지, 그간 숨겨져 있던 김이후의 매력이 한껏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잠재력을 확실히 입증한 그가 지난 2년 동안 출연한 작품은 10개에 달한다. 능청스러운 일인이역 연기로 관객에게 눈도장을 찍은 <해적>, 현실감 넘치는 연기로 웃음을 줬던 <블러디 사일런스>, 특유의 밝은 에너지가 빛을 발했던 <뱀파이어 아더> 등 매 작품 반짝이는 존재감을 자랑했다. “책을 한 권만 읽은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말이 있잖아요. <알렉산더>에 출연할 때까지만 해도 저는 그 ‘무서운’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나는 뭐든 다 해낼 수 있어’라는 마음으로 열의에 불탔거든요. 근데 무대에 서는 경험이 많아질수록 제 부족함을 깨닫는 시간도 많아졌어요. 잘하는 배우가 되려면 준비해야 할 게 정말 많다는 걸 알게 됐죠. 하지만 부담에 짓눌리지는 않으려고요. 다른 인물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 직업이 정말 재밌어서 오래도록 공연하고 싶거든요.”


김이후는 최근 <웨스턴 스토리>의 제인 존슨으로 맹랑한 현상금 사냥꾼의 삶을 살고 있다. <웨스턴 스토리>는 미국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저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다이아몬드 살롱에 모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 뮤지컬. 살롱의 주인인 제인은 등장인물들을 살롱으로 불러들이는 인물이기에 극 중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모든 계획이 어긋나는 와중에 숨 돌릴 틈 없이 관객을 웃겨야 하는 이 작품에서 평정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제가 생각하는 제인은 풋내기지만, 상황이 틀어져도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근데 그 과정이 굉장히 어리숙하다는 걸 자기 자신만 모르죠. (웃음) 모든 인물과 어우러져야 하는 캐릭터라서 공연 직전까지 걱정이 정말 많았어요. 극 중에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혼돈에 휩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장면마다 각각의 캐릭터가 보이는 행동의 원인에 집중했어요.” 에녹, 오소연, 원종환 등 깊은 내공을 지닌 배우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자신만의 방향성을 찾아갈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교훈을 얻었다. “선배들을 보면서 무대에서 제 몫을 해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게 됐어요. 어떻게 하면 무대 위에서 관객들을 설득할 수 있는지, 등장하는 모든 장면에서 무대를 빈틈없이 채울 수 있는지를요. 자기 몫 그 이상을 해내는 선배들을 보면서 저도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배우로서 이루고 싶은 또 다른 목표에 대해 묻자 다소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저, 똑똑해지고 싶어요.”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그 어떤 장문의 답변보다 밀도가 높았다. 단순히 지식의 우위에 서고 싶다는 것이 아닌, 다양한 메시지를 지닌 작품 중에서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작품을 선택하고, 그 작품의 색채를 온전히 흡수해 무대에 펼쳐 낼 수 있는 실력을 지닌 배우로 성장하고 싶다는 뜻을 함축한 의미다. 김이후에게 ‘똑똑한 배우’와 ‘좋은 배우’는 곧 동의어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쌓아 놓은 벽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자책’의 벽이다. “저는 행복해야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인데, 저를 미워하고 깎아내리는 건 정작 제 자신이더라고요. 가족, 친구들부터 관객분들까지 저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정말 많잖아요. 근데 이 소중한 사람들이 해 주는 응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제 마음속 자책에만 집착하는 게 이들에게 되게 미안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나 자신에게만 나쁜 나’를 이겨 내려고요.”


쉴 새 없는 활약 속에서도 쉽게 자만하지 않고 더 나은 모습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 김이후가 앞으로의 행보가 더 기대되는 배우로 꾸준히 언급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제 막 배우로서 성숙기에 접어든 그는 수많은 고민들로 잠 못 드는 밤이 부쩍 많아졌다고 한다. “매일 밤 생각이 많아져요. 저를 기다리고 있는 내일이 설레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궁금해지거든요. 배우로서 책임감이 커져서 그런가 봐요. 하지만 이런 시간들로 인해 성장하는 거라면, 저는 잠 못 드는 밤이 계속됐으면 좋겠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1호 2022년 4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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