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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OLUMN] <용의자 X의 헌신> 살인에 정당방위를 주장할 수 있을까 [No.220]

글 |고봉주(변호사) 사진 |신스웨이브 2023-01-11 609

<용의자 X의 헌신> 
살인에 정당방위를 주장할 수 있을까

*이 글은 공연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모녀의 살인은 정당방위일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무대화한 <용의자 X의 헌신>은 단둘이 살고 있는 모녀 야스코와 미사토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야스코는 폭력적인 전남편 토가시를 피해 이사를 했지만, 토가시는 또다시 이들을 찾아와 돈을 뜯어내고 행패를 부린다. 심지어 한때 술집 호스티스로 일했던 야스코의 중학생 딸 미사토에게 “3년만 기다리면 돈을 잘 벌 것, 여기저기서 탐낼 것”이라는 성희롱을 하며 위협적으로 다가간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모녀는 우발적으로 토가시를 죽이게 된다. 야스코와 미사토는 토가시에 대한 살인죄의 공동정범이다. 하지만 사건의 정황을 지켜본 관객은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토가시의 괴롭힘 때문에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질렀으니, 정당방위를 주장할 수 있지 않을까?

 

정당방위’란 현재의 부당한 침해로부터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방위하기 위하여 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벌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즉,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그 행위에 참작 사유가 인정되면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당방위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제도인 만큼 매우 엄격하게 성립 여부를 따지며, 특히나 살인 행위에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중범죄가 현재의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로 상당성을 인정받는 것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살인의 정당방위 인정 여부를 놓고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건이 있다. 아홉 살 때부터 의붓아버지에게 12년간 성폭행을 당한 딸이 남자친구와 합심해 자고 있던 의붓아버지의 가슴을 칼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다. 이를 두고 정당방위로 보아야 하지 않느냐는 여론이 일었지만, 결론적으로 두 사람에게는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았다. 의붓아버지가 제대로 반항할 수 없는 상태에서 칼로 찔러 살해한 행위는 상당성이 결여된다고 본 것이다. 다만 형량은 일반적으로 살인죄를 저지른 경우보다 낮게 받아, 피해자를 칼로 찌른 남자친구에게는 징역 5년, 이를 도운 딸에게는 징역 3년이 선고되었다. 성폭행 피해자이자 직접 살인 행위를 하지 않은 딸은 최종적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는데, 이는 살인죄에 집행유예가 선고된 이례적인 사건이다. 이러한 판례의 입장을 살펴볼 때, 토가시가 금품을 갈취하고 미성년자를 성희롱했다고 해서 야스코와 미사토의 살인이 정당방위로 인정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시가미의 진짜 죄는 무엇일까

 

야스코를 짝사랑하는 이웃 이시가미는 야스코와 미사토의 살인을 눈치채고 모녀의 범죄를 숨겨주기 위해 계획을 짠다. 이시가미는 토가시의 시체를 숨긴 다음, 노숙자를 살해하여 시체를 훼손한다. 그리고 경찰로 하여금 노숙자의 시체를 토가시의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이시가미가 범행을 저지르는 동안 야스코와 미사토는 영문도 모른 채 이시가미가 시키는 대로 영화관에 간다. 엉뚱한 시체 때문에 범행 시각을 착각한 경찰은 같은 시간에 완벽한 알리바이를 지닌 모녀를 범인으로 체포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경찰이 계속해서 모녀를 의심하자 이시가미는 자신이 토가시를 죽였다고 거짓 자백을 하기에 이른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시가미를 어떤 사건의 피고인으로 특정해야 하는가이다. 노숙자를 살해한 이시가미에게는 당연히 살인죄가 성립된다. 하지만 토가시 살인 사건에 있어서는 무죄다. 그러나 극 중에서는 노숙자의 시체를 토가시의 시체로 오인한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이 진행된다. 이시가미 역시 노숙자의 존재를 부정한 채 자신이 죽인 사람은 토가시라고 거짓말을 한다. 시체의 신원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면, 이시가미는 이대로 토가시에 대한 살인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유죄판결이 내려진 이후 진짜 토가시의 시체가 발견된다면 어떻게 될까? 새롭게 발견된 시체의 정체가 토가시로 밝혀진다면, 이미 토가시에 대한 살인죄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이시가미는 해당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대신 그는 노숙자에 대한 살인죄로 다시 재판을 받을 것이며, 야스코와 미사토 또한 토가시에 대한 살인죄로 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이렇듯 이시가미는 진범을 숨기는 과정에서 살인을 저질러 자신 또한 범죄자가 되고 말았다. 만약 이시가미가 진범을 숨기기 위해 단순히 피의자인 척하는 데 그쳤다면 어떨까? 그래도 처벌을 받아야 할까? 실제로 음주 운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 운전자가 가중처벌을 피하기 위해 동승자가 운전대를 잡았다고 거짓말하는 사건이 종종 발생한다. 이 경우에 동승자가 단순히 자신이 운전했다고 거짓말하는 것만으로는 죄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음주 측정을 위해 필요한 운전자의 혈액이나 소변을 바꿔치기하는 것처럼 수사 기관을 적극적으로 기망하는 행동을 한다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 범인도피죄로 처벌이 가능하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0호 2023년 1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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