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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DIARY] <앤줄리엣> 황주민 [No.226]

글 |최영현 사진 |황주민 2023-07-25 624

2019년 <프롬>의 유일한 동양인 캐스트로 이름을 올렸던 황주민이 <앤줄리엣>으로 다시 한번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다. 이번에는 배역을 맡아 무대에 섰다고. 하루하루 꿈을 향해 나아가는 황주민이 <앤줄리엣>과 함께한 일상을 보내왔다.

 

 

▲ 즐거운 출근길, 손드하임 극장 앞에서

 

 

내가 <프롬>에 이어 두 번째로 참여하게 된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앤줄리엣>이다. <앤줄리엣>은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이 죽지 않고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선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상상한 작품이다. 나는 이 작품에서 앙상블과 프랑수아 역의 언더스터디를 맡았다. 브로드웨이 공연은 원캐스트로 진행되기 때문에 주요 배역마다 언더스터디가 있다. 언더스터디는 상황에 따라 비정기적으로 공연에 투입되는데, 바로 오늘이 내가 프랑수아로 무대에 서는 날이다! 프랑수아는 자유분방하고 신념이 뚜렷한 줄리엣을 만나 진짜 자신을 찾아가는 인물이다. 브로드웨이에서 한국 국적 배우가 서양인 캐릭터를 맡아 무대에 서는 건 아마 내가 처음일 거다. 우선 한국 국적의 배우가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는 일이  매우 드물고, 설령 무대에 오른다 해도 대부분 동양인 캐릭터로 한정되었으니까. 브로드웨이에서 활동 중인 동양인 배우들을 위해, 그리고 한국 뮤지컬배우의 저력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지!

 

 

▲ 로미오와 함께 분장실에서

 


공식적인 콜타임은 공연 시작 30분 전이지만, 배우 각자의 스케줄에 맞춰 공연을 준비하는 게 일반적이다. 나도 콜타임보다 일찍 극장에 도착해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 준비를 시작했다. 오늘 나의 대기실 짝꿍은 로미오를 연기하는 벤 잭슨 워커다. 잘생긴 얼굴에 감미로운 목소리까지 겸비한 벤은 누가 봐도 로미오 역할에 찰떡이다. 분장을 마치고 무대에 오르기 전 동료 배우들과 간단히 호흡을 맞춰보았다. 토니상 수상자인 파울로 쇼트와 <킹키부츠>의 오리지널 찰리인 스타크 샌즈와 한 무대에 서는 날이 오다니! 너무 꿈만 같아서 볼을 꼬집어보니 아프다. 꿈이 아니라 다행이다.

 

 

▲ 실력도 최고, 성격도 최고인 나의 동료들

 


<앤줄리엣>이 전하는 메시지 중에 하나가 바로 ‘포용Inclusion’인데, 그 메시지에 걸맞게 다양한 인종의 배우들이 작품에 출연 중이다. 요즘 브로드웨이 무대에는 예전보다 다양한 인종의 배우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동양인 배우가 설 자리는 여전히 좁다. 아시아계 배우 행동 연합에서 2018-2019 시즌에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뉴욕에서 배역을 맡아 활동 중인 아시아계 배우는 전체의 6.3%에 불과했다. 다행인 것은 2018년 한국계 미국인 배우 애슐리 박이 <민 걸스>에 출연하면서부터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지나며 다양한 인종을 캐스팅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더 다양한 인종의 배우들이, 더 다양한 역할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설 수 있기를!

 

 

▲ 잊지 못할 커튼콜

 

 

공연 전 살짝 긴장했지만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 관객들의 박수 소리에 프랑수아로 처음 무대에 섰던 날이 떠오른다. 감사하고, 벅찬 마음에 객석을 향해 넙죽 큰절을 올렸다.  하하하. 커튼콜이 끝나는가 싶었는데 스타크 샌즈가 마이크를 잡고 “10년 전만 해도 영어로 말 한마디 못 했던 배우가 오늘 조연으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섰다”며, 정말 대단하다고 나를 추켜세웠다. 그의 말에 그동안 고생했던 일들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 꿈을 이루기 위해 무작정 미국에 건너온 건 스물여덟 살 때였다. 다들 나보고 미쳤다고,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이 자리까지 왔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이만하면 좀 자랑스러워해도 되겠지? 오늘 공연도 잘 마쳤으니 집에 가서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자축해야겠다.

 

 


▲ 생애 두 번째 토니 어워즈! 

 


<앤줄리엣>이 제76회 토니 어워즈에서 베스트 뮤지컬상을 포함해 9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덕분에 <프롬> 이후 두 번째로 토니 어워즈 축하 무대에 올랐다. 토니 어워즈 축하 무대는 베스트 뮤지컬상 후보작으로 꾸며지기 때문에 브로드웨이에서 오래 활동했다 하더라도 이 무대에 서지 못하는 배우가 많다. 그런 무대에 두 번이나 서다니! 아무래도 전생에 나라를 구한 모양이다. 올해 토니 어워즈는 유나이티드 팰리스 시어터에서 개최되었다. 극장 규모가 예년의 절반 정도로 작아지면서 덩달아 대기실도 줄어, 축하 공연 팀들이 버스와 밴에서 대기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축하 공연을 마치고 <앤줄리엣>에 참여하는 스태프와 배우들이 모두 모여 신나게 파티를 즐겼다. 브로드웨이의 가장 큰 축제인 토니 어워즈의 떠들썩한 밤이 지나간다. 다음에는 축하 공연팀이 아닌 수상자로서 토니 어워즈 무대에 서길 바라본다. 그날을 향해 지금처럼 한 걸음 한 걸음 성실하게 나아가야지.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6호 2023년 7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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