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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ZOOM IN] 세 개의 질문, 하나의 대답 - <블랙메리포핀스> [No.229]

글 |이솔희 사진 |컴인컴퍼니 2023-10-25 1,960

<블랙메리포핀스>는 화재 사건의 생존자인 네 남매 한스, 헤르만, 안나, 요나스가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2012년 초연하여 올해로 여섯 번째 시즌을 맞은 이 작품은 시즌별로 각기 다른 인물을 중심으로 사건을 서술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시즌에는 한스, 헤르만, 요나스에 이어 안나를 서술자로 내세운 마지막 버전 ‘안나의 방’이 관객을 만나고 있다. <블랙메리포핀스>의 연출, 극작, 작곡을 맡아 작품을 이끌어온 서윤미 작가에게 각 버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비로소 마주한 위로
<블랙메리포핀스>는 작품의 큰 틀과 주요 사건에 변화를 주지 않고, 서술자만 바꿔 등장인물에 얽힌 이야기를 깊이 파고드는 구성이 돋보인다. 서윤미 작가는 어떻게 이러한 형식의 작품을 구상하게 됐을까? 처음 <블랙메리포핀스>를 집필할 당시, 그는 작품의 결말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타인의 상처를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마음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고 생각하고, 네 남매의 내면을 차근차근 들여다보기로 결정했다. 한스, 헤르만, 요나스 버전을 순서대로 완성한 후 서윤미 작가는 <블랙메리포핀스> 시리즈를 어떻게 끝맺어야 할 것인가 다시 한번 고민에 빠졌다. 고민 끝에 두 개의 키워드를 떠올렸다. ‘마침내’와 ‘비로소’다. 그는 상처에 갇혀있던 인물들이 서로의 마음을 마주하는 순간 그 상처가 마침내, 비로소 치유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 안나 버전에서는 네 남매가 서로를, 그리고 스스로를 안아주며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모습을 그린다. 
“극 중 네 남매는 보모인 메리에게 ‘우리도 행복할 수 있냐’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메리는 ‘사랑이 우리를 감싸오면 마음속에는 행복이 피어난다’라고 대답합니다. <블랙메리포핀스>는 이와 같은 질문과 대답으로 구성된 시리즈입니다. 한스, 헤르만, 요나스 버전이 ‘우리도 행복할 수 있냐’라는, 이 작품이 던지는 본질적인 질문이라면 안나 버전은 ‘우리 마음속에 이미 행복이 존재하고 있다’라는 대답이죠.”

 

부제에 담긴 이야기 
한스 버전은 ‘메리포핀스 살인사건을 위한 변호’, 헤르만 버전은 ‘모래 사나이가 나오는 꿈’, 요나스 버전은 ‘숲의 기억’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이 세 가지 버전에서 최면에 걸린 한스, 헤르만, 요나스는 자신에게 가장 편안한 공간에서 과거의 기억을 진술한다. 재판장에 선 변호사 한스는 화재 사건에 숨겨진 진실과 함께 사라진 보모 메리에 관해 이야기한다. 첫 번째 버전이기 때문에 관객이 조금 더 쉽게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도록 추리극 형식을 가미했다. 메리에 대한 고발에서 시작해 그를 변호하는 것으로 끝나는 이야기이기에 부제를 ‘메리포핀스 살인사건을 위한 변호’라고 지었다. 
화가인 헤르만은 작업실에서 누군가와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악몽을 털어놓는다. 그의 악몽은 어린 시절 메리가 들려준 『모래 사나이』 이야기가 반영된 것인데, ‘모래 사나이’는 아이들이 잠들지 않으면 눈을 뽑아 사라지는 인물이다. 이는 과거 안나의 ‘눈’이 누군가를 살해하는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에서 비롯한 그의 트라우마를 상징한다.  
요나스는 네 남매 중 유일하게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1926년 화재 사건 이후, 메리가 최면으로 네 남매의 기억을 지울 때 최면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나스는 자신이 진실을 안다는 사실을 들키면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그는 화재가 발생한 대저택 곁에서 모든 일을 지켜본 숲이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자신을 옥죄는 상상을 한다. 요나스에게 숲은 곧 모든 기억을 묻어둔 공간이다. 그래서 ‘숲의 기억’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버전이 나누어져 있지만 네 버전 중 하나만 보는 관객분들도 작품의 메시지와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전체적인 틀과 내용은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치유와 회복의 순간 
마지막 버전인 ‘안나의 방’에서는 네 남매의 셋째 안나가 내레이터가 되어 과거의 사건을 돌아본다. 이번 시즌의 가장 큰 특징은 심리학자가 된 1945년의 안나가 새롭게 등장한다는 것이다. 1945년의 안나는 최면 속이 아닌 최면 밖에서 과거의 자신을 마주한다. 한스, 헤르만, 요나스가 최면 속에서 과거의 고통에 관해 이야기했다면, 안나는 최면 밖의 현실에서 오늘날의 치유와 회복, 성장에 대해 이야기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지막 버전은 네 남매가 과거를 직시하고,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품어주고, 비로소 과거의 아픔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존엄한 자유의지와 상처의 회복’이라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강조한다. 부제인 ‘안나의 방’ 역시 안나가 위로받고, 진실을 마주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한 단계 성장하게 해주는 모든 공간을 의미한다. 
“<블랙메리포핀스>의 무대는 다리 하나가 부러진 책상이 뒤집힌 모습을 형상화했는데, 세 개의 기둥은 한스, 헤르만, 요나스를 상징해요. 기둥이 없는 부분은 안나를 상징하고요. 세 개의 방향은 기둥으로 막혀있지만, 남은 한 방향은 기둥 없이 열려있는 거죠. 즉, 안나가 탈출구임을 의미합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9호 2023년 10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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