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칼럼] 한국 뮤지컬의 확장성과 미래

글 |최승연(뮤지컬 평론가) 사진 |. 2025-08-29 246

최승연 뮤지컬 평론가가 매월 주목할 만한 뮤지컬계 이슈를 심도 있게 들여다봅니다.


 

사진= 아이스톡

 

K-콘텐츠 혹은 K-컬처의 미래가 전방위적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뮤지컬은 상당히 오랫동안 한류의 바깥에서 ‘가능성’으로만 존재했으나 <위대한 개츠비>와 < Maybe Happy Ending >(이하 < MHE >) 브로드웨이 공연을 기점으로 ‘K-뮤지컬’ 역시 완연한 동시대적인 현상이 되었다. K-뮤지컬 담론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서 어떠한 방법으로 해외 관객을 사로잡을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K’가 구체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두 작품은 ‘K’를 매개로 서로 다른 모델을 제시했다. 미국의 이야기를 한국 프로듀싱으로 구현한 <위대한 개츠비>와 한국의 오리지널 뮤지컬을 브로드웨이 프로듀싱으로 완성한 < MHE >은 K가 하드 웨어와 소프트 파워에 존재할 때의 차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두 공연의 차이는 작품의 세계관과 연결되어 있다. 힌트는 연출의 이야기에 있다. <위대한 개츠비>의 연출가 마크 부르니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넘버를 통해 모든 인물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는 평단이 아니라 일반 관객을 위해 공연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뮤지컬 극장의 관객들은 보통 인물에 몰입하거나 화려한 무대를 보면서 자신이 지불한 티켓값의 가치를 체감한다는 설명이다. 한편, < MHE >의 연출가 마이클 아든은 ‘타임아웃’과의 인터뷰에서 두 로봇이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극의 세계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와이파이가 고장 난 올리버의 시선을 따라, 마치 휴대폰의 디지털 ‘세로 모드’에서 훨씬 더 유기적이고 자연스러운 ‘가로의 세계’로 이동하는 것 같은 세계관을 구축했다. 아든은 이러한 세계관이 휴&윌의 대본과 악보를 따른 결과라고 강조했다. 요컨대, 두 작품의 세계관에서 K가 프로덕션 전반을 이끄는 리더십과 공연의 핵심 세포로 존재할 때의 차이가 관찰된다.

 

두 공연이 확장되고 있는 방식도 서로 다르다. <위대한 개츠비>는 각각 새로운 프로덕션을 꾸려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 그리고 서울에서 ‘동시 공연’되고 있는 반면 < MHE >은 브로드웨이 공연에 집중하며 북아메리카 투어공연을 확정 지었다. 전자가 글로벌 시장 전체를 대상으로 공연의 브랜드를 구축하고 있다면, < MHE >은 미국 시장 자체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신춘수 프로듀서의 세계 시장 확장 마인드가 상대적으로 부각된다. 따라서 세계관의 차이는 당연하다. <위대한 개츠비>는 쇼뮤지컬로서 명확한 정체성을 구축하며 어디에서나 ‘보편적’으로 소통될 수 있는 계층 간의 갈등을 내세웠다. 1920년대 재즈 시대 아메리칸 드림의 허위는 마지막 넘버 ‘로어링 온(Roaring on)’ 리프라이즈 장면에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다. 좀비처럼 표현되는 앙상블의 안무에 당대의 문화와 상황을 은유적으로 넣었다. 한편, < MHE >은 예민하고 섬세하다. 복잡하고 입체적으로 구현되는 스테이지 리프트와 턴테이블, 모듈식 세트, 마치 카메라의 조리개처럼 운용되는 무대의 프레임, 그리고 마침내 반딧불이 장면에서 전부 열리는 무대는 점차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는 로봇의 내면을 비유적으로 드러낸다.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공연 장면. 사진=오디컴퍼니

 

작품성과 지속성 사이의 관계

이제 궁금한 것은 두 공연이 영미권 시장에서 얼마나 버텨줄 것인가의 문제다. 두 작품은 언제까지 공연될 수 있을까? 공연의 확장성은 지역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역과 더불어 ‘기간’ 역시 확장성의 중요한 지표다. 특히 오픈런 시스템인 브로드웨이에서는 보통 공연이 2주간 운영 손실을 기록하면 중단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전체 기간과 회차는 해당 공연의 브랜드 가치와 직결된다. 공연의 기간에서 ‘그다음’으로 확장될 수 있는 내적 동력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다.

 

근래 토니 어워즈 베스트 뮤지컬상 수상작들은 좋은 참고가 된다. 2019년부터 차례로 <하데스타운>(2019), <물랑루즈!>(2019), <어 스트레인지 루프>(2022), <킴벌리 아킴보>(2022), <아웃사이더>(2024) 그리고 < MHE >(2024)가 토니 어워즈의 선택을 받았다.1) 이중 < MHE >을 제외하고 현재까지 공연되는 것은 <하데스타운>, <물랑루즈!>, <아웃사이더> 세 작품이다. <어 스트레인지 루프>는 폐막 직전 객석 점유율 99%까지 상승하는 흥행 성적에도 불구하고 코비드-19의 직접 영향을 받아 1년을 못 채우고 막을 내렸으며2), <킴벌리 아킴보>는 토니 어워즈 직후 100%의 객석 점유율을 기록하는 특수를 잠시 누렸지만 브로드웨이 1년 6개월 공연 기록을 남기고 투어공연으로 전환했다.3) 오히려 <어 스트레인지 루프>와 같은 시즌의 신작인 <식스>와 < MJ >, 그리고 <킴벌리 아킴보>와 나란히 시작된 <앤줄리엣>이 모두 80% 이상의 객석 점유율을 보이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토니 어워즈가 작품성을 보증하고 일시적인 흥행을 견인할 수는 있지만 지속성까지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의 클래식을 쇼뮤지컬로 풀어낸 <위대한 개츠비>는 역사와 인물,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쇼’에 담은 <식스>와 < MJ >, <앤줄리엣>의 계열에 놓인다고 할 수 있다.

 

다양성, 너디컬

는 어떨까. 어떤 측면에서 는 <어 스트레인지 루프>와 <킴벌리 아킴보>의 계보를 잇는다. 뉴욕타임즈의 전 수석 연극평론가 제시 그린도 ‘너드(nerd)’와 ‘뮤지컬(musical)’을 결합한 ‘너디컬(nerdical)’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 MHE >을 계보화했다. 우리의 용어로 ‘덕후스러운 뮤지컬’이라는 뜻이다. 그는 ‘규모는 작지만 깊은 감동을 주는 똑똑하고 독창적인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라는 뜻으로 ‘너디컬’의 개념을 만들고, < MHE > 외에 <펀 홈>(2015), <밴드 비지트>(2017)4) 그리고 <킴벌리 아킴보>를 예로 들었다. 토니 어워즈가 비교적 작은 규모로 동시대의 풍경을 환기하는 작품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음을 그의 설명에서 읽을 수 있다. 젠더, 종교와 문화 갈등, 장애, 포스트휴먼까지 확장되는 뮤지컬의 테마를 토니 어워즈라는 ‘제도’가 품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작품성’은 기본이다.

 

그런데 이 ‘동시대적인 것’은 그야말로 다양성의 격전지다. 가령, <펀 홈>은 클로짓 게이 아버지를 둔 레즈비언 앨리슨 벡델의 이야기를 다루며, 작가의 자전적 뮤지컬 <어 스트레인지 루프>는 “Big, Black, and Queer-Ass American Broadway Show!”라는 선언 아래 ‘뚱뚱한 흑인 게이’의 내면을 메타적으로 조명한다. <밴드 비지트>는 유태인 문화와 이슬람 문화의 서로 다른 두 집단이 하룻밤에 친구가 되는 이야기이며, <킴벌리 아킴보>는 조로증과 같은 희귀 유전 질환에 걸려 60대의 외모를 가진 16살 킴벌리 레바코의 ‘비극’을 ‘코미디’로 그렸다. 개별적 주체를 하나의 우주로 만들거나 문화와 종교의 차이를 휴머니즘으로 감싸 공감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다양성을 충족시키는 방식이 확인된다.

 

이러한 방법론은 동시대 현실의 풍경에서 길어 올린 ‘새로움’을 가미하며 작품성을 견인하는 토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의 진짜 모습을 휴머니즘으로 가리거나 정치적 올바름을 단순한 유토피아적 도구로 활용할 여지도 있다. 실제로 <밴드 비지트>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슬림 밴드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모습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인종 말살 정책을 펼쳤던 당대 현실과 거리가 있으며 <킴벌리 아킴보>의 가족을 재현하는 코미디가 ‘과도하고 불쾌하게’ 보여 오히려 공연을 통해 장애를 차별적인 시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런 측면에서 < MHE >는 조금 다른 ‘너디컬’이다. 일단, 올리버와 클레어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브로드웨이의 첨예한 다양성 이슈에서 비껴나 있다. 그보다 < MHE >는 인간과 비인간을 전부 포괄하는 차원의 보편성을 향한다. 공연은 모든 존재를 철학적으로 껴안으며 한계와 사랑, 자유와 성장이라는 테마를 비극성을 내재한 세련된 코미디로 펼친다. < MHE >가 다양한 관객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뉴 브로드웨이 클래식’이 되기를 바랐던 박천휴와 윌 애런슨의 의도가 울리는 지점이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Maybe Happy Ending > 공연 장면. 사진=NHN링크

 

정서적 연대와 인종적 대표성5)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 MHE >는 ‘공연 수행성’의 측면에서 다양성 이슈와 충돌했다. 최근 < MHE > 프로덕션은 올리버의 오리지널 캐스트 대런 크리스(Darren Chris)의 휴식을 위해 앤드류 바스 펠드먼(Andrew Barth Feldman)을 캐스팅했다. 그는 2019년 <디어 에반 핸슨>을 통해 브로드웨이에 데뷔한 ‘소년미’ 넘치는 ‘백인’ 배우로서 9월 초부터 9주간 공연을 하게 될 것이라 공표되었다. 앤드류를 통해 소년미와 팝 보컬로 구현된 올리버 캐릭터의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캐스팅 발표는 ‘어떤 인종/집단이 보편성을 대표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며 미국 공연계의 뿌리 깊은 백인우월주의를 트라우마적으로 건드렸다. 아시안 배우들과 AAPAC (The Asian American Performers Action Coalition)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치며 캐스팅 결정에 반발했다.

 

첫째, 대런 크리스는 필리핀인 모친과 백인 부친 사이에서 태어난 ‘아시아계’ 혈통의 배우로 올리버는 그의 인종적 특징에서 배태된 캐릭터다. 둘째, < MHE > 프로덕션은 4명의 오리지널 캐스트와 3명의 공연 영상 속 캐스트, 그리고 5명의 언더스터디 및 스탠바이 캐스트6) 총 12명 중 11명을 AANHPI (Asian American, Native Hawaiian, and Pacific Islander) 커뮤니티에 속하는 아시안 배우들로 채웠다. 앤드류 캐스팅은 한국 원작을 아시안 배우들이 수행함으로써 만들어진 공연의 아시아적 정체성에 반하는 것이다. 셋째, 아시안 배우들은 < MHE >를 통해 드디어 서사의 결핍이 없는 ‘자신의 이야기’로 온전히 대표성을 취할 수 있는 공연에 출연하게 되었다. 따라서 백인 캐스팅 결정은 이러한 아시안 배우들의 ‘드문’ 자리를 뺏는 것이다. 드디어 자신과 닮은 사람이 브로드웨이 흥행작에서 주인공을 연기하는 것을 보는 기쁨, 나아가 미래의 아시안 세대가 받을 긍정적인 효과까지 삭제하는 것이다. 이는 다양성의 시대에 배제되고 차별받았던 과거로 역행하는 ‘백래시’일 뿐이다.

 

이들의 주장은 <미스 사이공>(1989)이 웨스트엔드에서 브로드웨이로 넘어오면서 ‘인종 재현과 대표성’ 문제로 크게 논란이 되었던 과거의 사건에서 논리적 근거를 취한다. 1991년 당시 미국 배우 조합은 ‘엔지니어’에 캐스팅되었던 조나단 프라이스(Jonathan Pryce) 캐스팅을 반대하면서 인종차별과 옐로우페이스(Yellowface) 이슈를 부각시켰다. 조나단은 웨일스 출신 백인 배우로 런던 무대에서도 같은 역할을 맡아 올리비에 어워즈 뮤지컬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지만, 눈을 보형물과 테이프, 아이섀도로 치켜올리고 피부를 어둡게 칠해 ‘옐로우페이스’ 즉 ‘동양화’ 논란을 만들었다. 런던에서 공연을 직접 관람했던 중국계 미국인 극작가 데이비드 헨리 황과 중국계 미국인 배우 B.D. 웡은 배우 조합에 공식적으로 항의 서한을 보내 베트남과 프랑스 혼혈인 엔지니어 역할을 옐로우페이스의 백인이 연기하게 될 것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특히 웡은 “아시아계 배우들이 민족성에 부합하는 캐릭터를 맡지 못한다면 이는 배우의 권리를 침해하는 피해”라고 강조했다.7) 이들의 항의 서한을 받은 배우 조합은 프라이스의 캐스팅을 공식 거절하며 “백인 배우가 아시아인으로 분장하여 출연하는 것은 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모욕이며, 아시아계 배우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라고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브로드웨이 아시안 배우들은 < MHE >의 캐스팅에 과거 <미스 사이공> 사건을 소환했다. 그리고 배제와 왜곡의 역사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며 공식적인 대응을 이어갔다. 1991년의 웡은 2025년의 웡으로 다시 등장하여, “우리[아시안 배우]는 얼마나 고통스럽게 외면당해 왔는지, 그것에 얼마나 익숙해졌는지, 그리고 ‘아시아인 쇼’가 얼마나 드문지 표현해야 한다”고 7월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하며 향후 대응을 위한 공식적인 서명을 요청했다. 이에 약 1,300명의 사람들이 참여하여 ‘그들-아시안’의 문제 제기에 동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모두가 ‘고통’이라는 감정에 참여함으로써 다양성이라는 정치적 ‘진보’에 응답한 것이다. 이처럼 < MHE >는 아시안 공동체의 감정과 기억이 겹쳐진 정체성 투쟁의 장이 되었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Maybe Happy Ending > 공연 장면. 사진=NHN링크

 

하지만 이 상황을 인종 정치의 맥락으로만 해석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특히 이는 예술과 도덕주의에 대한 아주 오래된 철학적 질문과도 닿아 있으며, 브로드웨이 뮤지컬 산업 구조에 놓인 < MHE >의 위치하고도 연관된다. 무엇보다 인종 표현에 있어서 < MHE >는 1991년 <미스 사이공>의 옐로우페이스와 다른 맥락에 놓여 있다. 과거 유라시안-엔지니어는 백인의 옐로우페이스로 표현된 ‘왜곡된’ 관점을 보여주었지만 < MHE >의 올리버는 특정 인종과 무관한 ‘로봇’이며 특히 ‘2064년’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을 감안하면 작품 속 한국은 상상된 공간에 가깝다.

 

그렇다면 거의 모든 배우를 아시안 혈통으로 구성한 < MHE >의 아시아적 재현은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 박천휴 작가는, 캐스팅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창작진들이 상상한 캐릭터와 어울리는 ‘이미지’ 그리고 ‘실력’이었다고 밝혔다. 박천휴와 윌 애런슨이 아시아 재현을 정치적으로 의도했다기보다, 대런 크리스의 캐스팅이 성사됨에 따라(그는 < MHE >의 공동 제작자이기도 하다) 다른 배우들의 실력과 이미지가 잘 조율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나아가 그들은 최종적으로 < MHE >이 특정 인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여러 인종이 저마다의 대표성을 갖고 재현할 수 있는 공연이 되기를 희망했다. 이런 측면에서 논점을 더 좁히면, < MHE >의 아시아성 역시 부조리한 개념이 될 수 있다. 여러 인종의 아시안 배우들이 ‘한국’을 재현할 때의 ‘대표성’ 역시 당사자성을 벗어난 관념적 정서나 문화적 거리감 속에서 형성된 ‘비논리적인 대표성’일 따름이다.

 

이뿐만 아니라 대런 크리스의 혈통, 즉 그의 ‘경계인’으로서의 위치 역시 그를 오로지 아시안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실제로 몇몇 인터뷰에서 그는 백인으로 보이는(white-passing) 자신의 외모가 주는 특권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8) 그러나 동시에 그는 필리핀계 미국인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으며 이러한 이중적 위치가 미국의 다양한 혼혈 경험에 접근하도록 도울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타자의 규정이 아닌 온전히 주체적인 감각과 인식 태도에 따라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B.D. 웡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강경하게 이야기한, “아시아인이 그냥 아시아인이라는 것은 너무나 단순한 진실이다. ‘정도’라는 것은 없다”라는 언급은 주체성을 타자가 규정하는 일종의 도덕적 정언명령과 같은 것이 된다. 마찬가지로 창작자의 의도를 대중이 ‘다양성’이라는 도덕의 가치로 판단하는 것 역시 정서적 연대의 힘이 창작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종의 권력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이처럼 < MHE >는 아시아 공동체의 내부 감정과 기억을 불러오는 역사적 현장이 되었다. 확장은 언제나 열린 세계를 향한 움직임이지만, 그 길목에서 정체성은 재정의가 필요한 순간을 통과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뮤지컬의 ‘K’ 역시 국가주의 프레임을 벗어나 하나의 장르로 인식되는 날을 꿈꾼다. “개별적인 것이 보편적인 것이다”라는 제임스 조이스의 목소리가 필요한 시대다. 자신의 목소리로 구현한 진정성 있는 작품이 보편적 가치를 취할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 안에 필요하다.

 


1) 코비드-19 셧다운으로 2020~2021년 시즌은 평가가 불가능했으며 대신 2019~2020년 시즌 시상이 2021년에 이뤄졌다.

2) 브로드웨이 라이시엄 극장에서 2022년 4월 6일 프리뷰, 4월 26일 오프닝 나잇을 시작으로 2023년 1월 15일까지 공연되었다. 

3) 브로드웨이의 부스 극장에서 2022년 10월 12일 프리뷰, 2022년 11월 10일 오프닝 나잇을 시작으로 2024년 4월 28일까지 공연되었다. 

4) 이 글에서 괄호 안의 연도는 브로드웨이 공연 기준이다. <펀 홈>은 2015년 제69회, <밴드 비지트>는 2018년 제72회 토니 어워즈에서 베스트 뮤지컬상을 수상했다. 

5) 이 이후의 내용은 필자의 글, 「의 ‘확장’과 감정의 공동체」, 『연극평론』 118, 2025 가을호의 내용을 재구성하고 정리한 것이다.

6) 배우들의 인종 구성은 다음과 같다. 오리지널 캐스트에는 대런 크리스(필리핀인+백인), 헬렌 J. 셴(중국계 미국인), 마커스 최(한국계 미국인), 데즈 듀런(백인), 아든 조(한국계 미국인), 영 마지노(한국계 미국인), 짐 캐플랜(김찬희, 한국계 미국인)이 이름을 올렸으며 언더스터디와 스탠드바이 캐스트에는 스티븐 후인(베트남계 미국인), 크리스토퍼 제임스 타마요(필리핀계 미국인), 다니엘 메이(한국계 미국인), 해나 케빗(중국계 미국인), 클레어 권(한국계 미국인)이 이름을 올렸다.

7) Mabel Ng, “Miss Saigon: Casting for Equality on an Unequal Stage”, UC Law SF Communications and Entertainment Journal, 14.3, 1992, p. 455.

8) Lauren Lola, “The Lessons Learned and To Be Learned from Darren Criss in ‘Hollywood’”, The Nerd of Color, 2020. 4. 28. https://thenerdsofcolor.org/2020/04/28/lessons-darren-criss-mixed-race-hollywood-netflix/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