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하나의 세계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대표하는 이 글귀는 ‘알에서 깨어나려 투쟁하는 새. 알은 곧 하나의 세계’(뮤지컬 넘버 ‘아브락사스’ 중)란 가사로 새롭게 탄생했다. 뮤지컬 <데미안>을 통해서다.
어제(3월 11일)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선 <데미안>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정인지와 김바다, 김주연과 유승현, 전성민과 김현진이 각각 싱클레어와 데미안 역으로 무대에 올라 ‘폐허’, ‘두 개의 세계’, ‘카인’, ‘꿈의 독백2’, ‘아브락사스’, ‘얼굴의 주인’ 등을 시연했다.
<데미안>을 쓴 오세혁 작가는 “얼굴”에 주목했다. 시연 후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세계대전 전쟁터에 같이 끌려온 젊은 병사들이 전쟁할 땐 같은 얼굴로 전투를 벌이다가, 죽을 때에서야 자기 얼굴로 돌아가 죽는다”는 원작 후반부 구절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자라면서 웃기도, 울기도, 화내기도 하고, 사랑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하는데, 어느 순간 몸담은 집단이 바라는 한 가지 얼굴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얼굴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했다. 공연을 보면서 “객석에서 보는 내내 진짜 얼굴이 무엇인지 찾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전했다.
연출가로도 활동 중인 오세혁 작가는 “문장이 흩어지지 않게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에 작가 역할에만 집중하게 됐다고 했다. “무대 언어로 만들었을 때 대사와 가사가 헤르만 헤세가 추구했던 방향 그대로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노력했다”고.
이대웅 연출은 “<데미안> 속 작가의 확고한 시각을 따라가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내 스스로가 이 세상의 모든 것과 마주할 수 있는 내 얼굴, 용기, 마음, 상태와 같은 것을 마주할 수 있다는 주제를 가장 신경써서 준비했다.”고 주안점을 둔 부분을 말했다.
<데미안>은 남녀 페어로 공연하되, 출연 배우는 배역을 고정하지 않는다. 어떤 날은 싱클레어로, 또 다른 날은 데미안으로 무대에 오르는 것.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로 이대웅 연출은 “작품은 진정한 나를 만나는 이야기다. 『데미안』을 쓸 때 헤르만 헤세가 융을 만났다고 한다. 융에게서 영향을 받은 부분이 무엇인지 찾았다. 한 자아 안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동시에 있다고 한다.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접점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오세혁 작가는 “대본 첫 장에 이 작품은 남녀의 구분이 없으며, 양쪽을 다 연기했으면 좋겠다고 썼다. 그래야 잃어버린 반쪽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생각해서 배우들을 직접 찾아가서 제안드렸다.”고 캐스팅 과정을 들려줬다.
이대웅 연출은 성별 구분 없이 캐스팅한 것에 대해 “<데미안>은 캐릭터 프리라고 생각한다. 실제 성별과 다른 배역을 하는 개념과는 다르다. 한 배우가 나오는 배역을 모두 소화하는 거다.”라며 젠더프리가 아닌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배우들에겐 이런 결정이 어떻게 느껴졌을까. 정인지는 원작을 읽을 때 성별을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대에서 싱클레어를 연기할 때에도 그런 점이 더 표현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도움받은 것은 상견례 날 배우들과 들은 칼 융 수업이었다. 수업을 듣기 전과 후에 느낀 『데미안』이 다르게 느껴졌는데, 수업 후엔 완성되는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싱클레어가 데미안이기도 하고, 데미안이 싱클레어이기도 한 성장기를 겪지 않나. 역할을 바꿔서도 하면 완전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했다”면서 “역할을 바꿔서 할 때도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상대를 바라보거나,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는 지점들이 있다. 오롯이 혼자이면서도 혼자가 아닌 것 같은 순간들인데, 그런 부분을 (연기로) 살려보고 싶다.”고 주안점을 둔 부분을 언급했다.
그밖에 어려운 점으로는 (전체) 대본을 다 외워야 한다는 것과, 음역대가 바뀌거나 화음을 쌓는 부분을 꼽았다.
김바다는 “뮤지컬에서 두 역할을 (같이) 하는 건 (출연을) 다시 생각해보게 할 만큼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원작을 처음 읽었을 땐 싱클레어의 입장에서 봤다는 그는 “작품을 하면서 다시 책을 읽어보니 다른 인물들의 입장에서도 읽게 되더라면서 다방면으로 세상을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새롭게 느낀 점을 말했다.
김주연은 “싱클레어의 성장 과정을 한 시간 반 동안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아직 데미안 역으론 공언하지 않아서 걱정이 되긴 하는데, 싱클레어를 하면서 데미안을 (상대역으로) 만났기 때문에 데미안 역도 재미있게 만들 수 있도록 해보려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유승현은 “작품을 할 때 상대 배역을 이해하면서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역할을 밀도있게 이해하는 건 아니다. (반면) <데미안>을 하면서는 (두 역을 모두 하기 때문에) 같은 논제를 봐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고 느낀 점을 말했다. “막상 역할을 바꿔서 해보니 어렵더라”고도 했다.
전성민은 “대본을 봤을 때 싱클레어에 마음이 더 갔다. 제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아서 처음부터 애정이 깊었다.”고 고백했다. 실제로 싱클레어 역으로 더 많이 공연하기도 한다고.
데미안 역을 연습하면서는 “‘이것까지 잘할 수 있을까?’ 하면서 많이 고민했지만, 이내 자신에게서 공통점을 느꼈다고 했다. “모든 공연은 자신에게서 출발하지만, <데미안>은 더더욱 그랬다. 저에 대해 사유하면서 그런 부분에 중점을 두고 연습했다.”고 방향성을 설명했다.
김현진은 처음에 제의받고 두 역할을 소화해야 한다는 말에 놀랐다면서, 대본을 읽으면서 자신이 표현하기에 더 수월하게 느껴진 역할은 싱클레어였다고 말했다. 데미안 역은 피스토리우스, 크로머, 에바부인까지 연기를 해야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잘 표현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고.
싱클레어를 연기할 때는 “드라마가 흐르면서 어떻게 변화하고 깨달아가는지를 보여줄지”를, 데미안을 연기할 때는 “무대에 등장하는 또다른 인물로서 싱클레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고민하면서 준비했다고 덧붙였다.
<데미안>은 바닥이 기울어 보일 만큼 착시를 부르는 경사진 무대가 특징이다. 이대웅 연출은 “‘폐허 속에 빛나는 별’이란 부제가 있어서 공간적인 개념을 폐허에서 출발했다. 폐허와 세계대전을 기반으로 조사하다가 철골구조 건물 에 전쟁 잔해를 그대로 둔 것을 봤다. 풀도 났고, 건물도 녹슨 상태였는데 세트의 모티브가 됐다.”고 무대 컨셉에 대해 말했다.
무대 경사가 심하게 느껴지는 부분에 대해선 착시 현상이라고 못박았다. 바닥은 평평하지만 무대 위 건물 세트가 기울어진 형태라 실제와는 다르게 인지된다는 설명이었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어려움을 묻는 질문에 마이크를 잡은 김현진은 “가벼운 상황이 아니라는 건 모두 알고 있다. 연습할 때부터 제작사에서 손세정제와 마스크를 비치해주셨다. 마스크를 쓰고 연습하기도 했다. 배우들도 조심해야겠지만, 극장을 찾아주시는 관객 분들 건강이 우선이다. 객석 소독과 체온을 측정하는 등 대학로에 있는 모든 극장들이 시행중인 대착을 잘 강구해서 하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한편, 새로운 시도에 나선 2인극 <데미안>은 4월 26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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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로 탄생한 <데미안> “두 배역을 모두 해야 잃어버린 반쪽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프레스콜)
글 | 안시은 기자 | 사진 | 안시은 기자 2020-03-12 4,956sponsored adv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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