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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 아재><오이디푸스>…국립극단 2026 라인업 공개

글: 이솔희 | 사진: 국립극단 2025-12-23 408


국립극단이 2026년 작품 라인업을 발표했다.


국립극단은 올해부터 2027년까지 3개년간 '현존과 좌표'라는 표제 아래 무대의 심부를 연극의 본연이자 존재의 재현이라는 ‘인간’에 집중한다. 표제 '현존과 좌표'는 연극은 인간 삶에 대한 서사와 실존의 표상이라는 화두로 인간으로서의 연극과, 또 연극으로서의 인간이라는 상호 관계성을 좌표계에 빗대어 명명됐다.

 

특히 2026년은 '불완전함의 역설'을 제재로 결점의 인간, 불완전성 속에서 비로소 꽃 피우는 삶의 드라마를 무대 위에 그려낸다. 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온 AI시대에 불완전성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근원적 힘이자, 실존은 결함을 전제로 태어난다는 섭리를 담은 공연들이 대항의 반기를 든다. 인간만이 감지할 수 있는 제3의 무언가, 그 행간의 여백을 들여다보는 작품들로 꾸린 국립극단 2026 시즌 라인업은 설명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한 인간의 삶이 곧 살아있음을 대변하고 존재한다는 것의 정의임을 보여준다. 

 

먼저 안톤 체호프의 전설적인 희곡 『바냐 아저씨』에 한국적 변주를 더한 <반야 아재>(작 안톤 체호프, 번안·연출 조광화)를 무대에 올린다. 국립극단은 기술의 발전 속도가 사상적 빈곤을 동반하는 오늘날, 시공간을 초월해 온 고전의 영속적인 힘에서 시대의 답을 찾고자 한다. 특히 혼란한 시대 속에 삶의 부조리와 인간 운명을 애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경쾌한 희극성으로 담아낸 『바냐 아저씨』를 새해의 고전으로 택한 데에는, 세기를 건너 21세기 인류의 단절과 고독을 비춰내는 19세기 작가 체호프에 특유의 극작술에 있다.

 

국립극단과 명동예술극장은 앞서 세 번의 다른 『바냐 아저씨』 프로덕션을 진행한 바 있다. 1986년 국립극단 무대에 처음 오른 <봐냐 아저씨>(연출 장민호)는 영원한 연극배우, 한국 연극의 분신 장민호의 연출 데뷔작이었다. 2004년에는 안톤 체호프 서거 100주기를 맞아 기념공연으로 국립극단 무대에 선보이기도 했다. 당시 백성희, 오영수, 이승옥, 문영수, 최상철, 이문수 등 걸출한 배우들이 <바냐아저씨>(연출 전훈)의 막을 함께 올렸다. 2013년에는 이성열 연출과 이상직 주연으로 명동예술극장에서 관객을 만난 <바냐 아저씨>(연출 이성열)가 변치 않는 고전 명작의 힘을 보여줬다. 

 

국립극단 『바냐 아저씨』의 네 번째 선수기를 올리는 조광화 연출은 <반야 아재>라는 번안으로 원작의 배경을 한국으로 옮겨온다. 조광화 연출은 원작에 혼란스러운 시대상과 현대적 감각을 더해 스러지는 인간의 욕망과 허상을 표상하는 동시에 내밀한 인간관계에 질량을 더하고 삶의 페이소스를 드리운다. <반야 아재>는 분열과 고독의 한국 사회에 그로테스크함을 간직하였으나 희망을 이야기하는 보드빌로, 관객에게 익숙하지만 새로운 울림을 전할 예정이다. 5월 22일부터 5월 31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이어 <안트로폴리스 5부작>이 새해 국립극단 무대의 막후에 들어선다. 국립극단은 올해 <안트로폴리스 5부작> 중 1부작 <프롤로그/디오니소스>(연출 윤한솔)와 2부작 <라이오스>(연출 김수정)를 국내 무대에 처음으로 소개하면서 큰 반향을 불러왔다. 2026년 새해에는 3~5부작 <오이디푸스>(9.24~10.18), <이오카스테>(10.28~11.21), <안티고네/에필로그>(12.2~12.26)가 순차적으로 무대에 올라 인간이 건설한 도시의 처참한 잔향을 펼쳐놓는다. 

 

<라이오스> 공연 장면. 사진=국립극단

 

가장 먼저 막 올리는 3부작 <오이디푸스>(작 소포클레스·롤란트 쉼멜페니히, 연출 강량원)는 [안트로폴리스]가 담고 있는 신화 중 가장 많이 무대화된 작품이다. <오이디푸스>는 5부작 중에서도 핵심의 중추, 허리의 역할을 담당한다. 시리즈 전반부가 보여주는 ‘도시의 기원’과 ‘권력의 비극’을 이어받아 본격적으로 인간 존재의 인식 구조를 탐구하는 작품은 ‘인간과 인간’ 또는 ‘인간과 국가’ 간에 가치 갈등과 전쟁, 폭력으로 얼룩지는 후반부 연작들을 견인한다.

 

4부작 <이오카스테>(작 롤란트 쉼멜페니히·아이스킬로스·에우리피데스, 연출 서지혜)에서 ‘오이디푸스’의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 두 형제의 왕위 다툼은 도시 전쟁의 위기로 번진다. 어머니 ‘이오카스테’는 중재와 설득에 나서지만 그녀의 외교론은 쉽게 화해를 부르지 못한다. 작가 롤란트 쉼멜페니히에게 <이오카스테>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오늘날 세계 분열이 가장 깊게 영향을 미친 작품이다. 작품은 광적인 욕망과 집착 앞에 인간의 이성과 자유의지의 구원이 과연 가능한지를 묻는다. 

 

<안티고네/에필로그>(작 소포클레스·롤란트 쉼멜페니히, 연출 정영두)에 이르러 그 비극적 계보가 도시의 침묵과 몰락으로 종결된다. ‘안티고네’는 신과 인간의 법 사이에 홀로 서는 인물로 사랑과 죽음이 교차하는 도시의 운명을 완성한다. 국가의 명령을 어기고 죽은 형제 ‘폴리네이케스’의 장례를 치르는 ‘안티고네’의 결단은 가족애를 넘어 국가와 권력, 윤리와 신념의 관계를 근원적으로 되묻는다. 

 

개인의 윤리와 도덕적 양심, 그리고 도시의 법과 규율을 충돌시키면서 인간 의지와 능동적 자유에 질서의 폭력성을 가하는 ‘안티고네’의 이야기는 ‘에필로그’로 이어진다. 권력의 종말과 인간의 한계를 총체하면서 인류의 오만과 죄의 대가를 냉정한 시선으로 응시하는 작품은 극장을 넘어 비극의 숙명적 굴레를 짊어진 현대사회에도 서늘한 시선을 드리우며 막을 내린다.

 

한국 낭만주의 희곡을 수사하는 함세덕 작가의 『동승』을 연출가 이철희가 재창작한 연극 <삼매경>은 3월 12일부터 4월 5일까지, 영국 유명 극작가 에반 플레이시의 장편 희곡 데뷔작 <그의 어머니>는 4월 16일부터 5월 17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지난해 진행된 창작희곡공모에서 30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대상을 수상한 김주희 극작의 <역행기>도 9월 3일부터 13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국립극단은 국내 최대 연극 제작단체로서,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한국 연극의 세계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그 시작으로 <헤다 가블러>와 <십이야>가 해외 투어에 나선다. <헤다 가블러>(작 헨리크 입센, 연출 박정희)는 싱가포르 국제 예술 축제(Singapore International Festival of Arts, 이하 SIFA)의 초청으로 내년 5월 싱가포르 드라마센터에서 관객을 만난다. SIFA의 예술감독 총쯔치엔(CHONG Tze Chien)은 지난 <헤다 가블러> 한국 공연을 직접 관람한 후 그 자리에서 예술제 초청을 결정했다. 

 

<십이야 Twelfth Night>(원작 윌리엄 셰익스피어, 각색·연출 임도완)는 새해 홍콩 공연으로 다시 한번 언어적 장벽을 뛰어넘어 전 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연극임을 증명한다. <십이야>는 프로덕션 단계부터 해외 진출을 염두하고 국립극단이 기획·제작한 작품이다. 홍콩 국제 셰익스피어 페스티벌(Hong Kong International Shakespeare Festival, HKISF)의 초청으로 2026년 6월 서구룡문화지구에 위치한 프리스페이스 더 박스 극장(The Box, Freespace)에서 막 올린다. 

 

이외에도 창작공동체 아르케의 <셋톱박스>, 공놀이클럽의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가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른다. 일본, 중국 외 새로운 언어권의 희곡 낭독공연을 선보이는 [세계희곡 낭독공연]도 진행한다. 온라인 극장에는 <그의 어머니> <태풍> 등 신작이 공개된다. '창작트랙 180°', '창작희곡공모', '청년교육단원', '국립청년극단'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 가능한 연극 생태계를 꾸려갈 예정이다. 명동예술극장은 '명동人문학', '한낮의 명동극', '희곡: 낭독으로 잇다', '백스테이지 투어' 등 참여형 예술 프로그램을 통해 관객과의 만남을 이어간다.

 

박정희 국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은 새해 국립극단의 다시 뛰는 도약을 준비하며 “인류사에 제동 없는 발전과 혁신의 속도가 기술의 진보를 쫓는 때에 국립극단은 원형과 본질로 다시 돌아가는 선택을 한다. 과거에서 오늘을 찾고 인간 존재의 본연에서 출발하는 연극들이 무대에 올라 시대의 질문을 던지길 바란다. 그 사명 아래 국립극단은 국경을 넘어 우리 연극의 도약을 이루고 민족 문화의 정체성을 이어 나가는 등 바라왔던 결실들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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