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FOCUS] 뮤지컬 안의 뉴미디어 기술 [No.126]

글 |송준호 사진제공 |HJ컬쳐, 서울국제공연예술제 2014-03-31 4,341

미디어 아트나 다원예술 공연에서는 첨단 뉴미디어 기술을 활용해
공연의 시각적 쾌감을 극대화하는 실험으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최근 뮤지컬에서도 뉴미디어 기술을 통한 가상현실 등의 착시 효과로
더욱 실감나는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기존 뮤지컬의 평면적인 무대 구성을 넘어
홀로그램, 3D 프로젝션 매핑 등 최신 영상 기법을 적극 활용하여
무대를 입체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무대라는 제한된 공간을 시각적으로 확장하게 하는 뉴미디어 기술의 현재를 들여다본다.

 

 


뉴미디어 기술의 향연장, 디지털 미디어 퍼포먼스

어둠 속에서 나타난 사람의 손에 희미한 불빛이 보인다. 잠시 후 불빛으로부터 수십 개의 글자들이 무대 위로 환하게 퍼지면서 떠오르기 시작한다. 장면이 바뀌면 바닥에 영사된 빛의 그물이 배우들의 움직임에 따라 움푹 꺼지고 갈라지기도 한다. 마치 실재하는 인간이 게임 속에 들어간 듯한 모습이다. 2011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 초청됐던 <시네마티크(Cinématique)>의 한 장면이다. 무대에 점, 선, 문자와 같은 디지털 오브제들이 투사되면, 이후 신체나 몸짓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상상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정교한 컴퓨터 그래픽 영상이 무대에서 공연자의 실감나는 연기와 어우러지면서 관객은 마치 3D 영화관에 있는 듯한 착시 현상에 빠진다. 예술과 최신 기술의 결합으로 탄생한 디지털 미디어 퍼포먼스다. 21세기 들어 활발히 시도되고 있는 이 새로운 양식은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완전히 새로운 느낌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한다. 이 같은 공연은 서사에의 몰입보다는 기술의 정밀한 구현에 초점을 맞춘 까닭에 연극이나 뮤지컬보다는 무용이나 다원예술 같은 신체극이나 퍼포먼스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어 왔다.
뉴미디어 기술의 진화와 함께 무대도 공연장 밖으로 확장되고 있다. 지난해 안무가 정지윤과 세계적인 영상 디자인 팀 ‘어반 스크린(Urban Screen)’은 ‘DANCE+MEDIA+SPACE’라는 공동 프로젝트로 시민들의 시선을 끌었다. 건물 외벽에 LED 조명을 설치해 미디어 기능을 구현하는 ‘미디어 파사드’로 단조로운 건물 외벽을 무용수의 무대로 만든 것이다.
한편 공연자와 영상이 상호작용하는 ‘인터액티브’ 공연도 있다. 2013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해외 초청작이었던 <손택 : 다시 태어나다>는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 수전 손택의 인생을 실제 배우와 영상으로 나누어 표현해 화제가 됐다. 젊은 시절 방황하는 손택은 무대 위 배우가, 지성의 아이콘이었던 학자 손택은 영상이 맡았다. 실재하는 배우 뒤로 비치는 영상 속 인물의 병치와, 두 인물이 섬세하게 상호작용하는 인터액티브 컨셉은 수전 손택이라는 인물을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는 형식으로 호평을 얻었다.

 

 

 

뮤지컬에 도입되는 뉴미디어 기술들

이처럼 기술력의 향상은 공연에서 표현 방식을 대폭 확장시킬 수 있다. 일반 관객에게까지 오래전부터 잘 알려진 기술은 홀로그램이다. 홀로그램 공연은 바닥으로 쏜 프로젝터 영상이 45도 각도의 대형 투명 필름에 반사돼 허공에 사람이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원리로, 일종의 착시 효과를 이용한 것이다. 얼마 전 일본에서 공연된 <천 번째 남자>가 이 홀로그램 기술이 활용된 뮤지컬이었다. 구미호 설화를 모티프로 한 이 작품은 영화 <구미호>의 변신 장면을 CG로 재구성해 홀로그램으로 만들었다.
최근 뮤지컬에서도 종종 눈에 띄는 3D 프로젝션 매핑(Projection Mapping)은 특정 오브제에 그래픽 영상을 투사해 착시 효과를 유도하는 기법이다. 이 기술은 대상을 스캔해 크기, 모양, 굴곡을 분석한 후 여기에 정밀하게 맞출 수 있는 영상을 비춰 오브제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효과를 낸다. 지난해 <살짜기 옵서예>는 제주의 풍광을 형상화해 더욱 입체적이고 화려한 영상을 선보였는데, 특히 돌하르방 머리에 눈을 깜빡거리는 영상을 투사해 흥미를 유발하는 데 성공했다.
공연 예술에 3D 프로젝션 매핑을 활용했을 때 가능한 가장 큰 변화는 무대 공간의 확장이다. 기존의 비디오 프로젝션 방식은 주로 평면 스크린에 영상을 투사하는 방식이었지만, 3D 프로젝션 매핑은 구조물을 적극적인 영상 요소로 활용해 무대 공간의 지속적인 변화를 이뤄낼 수 있는 매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얼마 전 중국에서 공연된 뮤지컬 <공주의 만찬>은 관객이 무대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공간까지 활용한 매핑을 시도해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다.

 

본격 가상현실 기술 공연 <빈센트 반 고흐>

한편 지난달 개막한 <빈센트 반 고흐>는 이런 뉴미디어 기술이 기획 단계부터 핵심 컨셉으로 들어온 뮤지컬이다.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선정한 가상현실 콘텐츠 지원 사업에 선정된 이 작품은 고흐의 그림과 인생을 첨단 영상 기법으로 보여준다. 무대 디자인도 프로젝션 매핑을 위해 굴곡 있는 공간으로 꾸며 다면 영상으로 처리하는 등 영상 기술과 콘텐츠가 극 연출의 핵심에 서 있다. 실제 제작 과정에서도 영상이 중심이 되고 배우와 음악이 뒤를 따르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작품에서 조명은 상대적으로 최대한 낮춰져 있다.
기술 면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특징은 프로젝션 매핑을 매우 복합적으로 쓴다는 것이다. 기존 뮤지컬에서 프로젝션 매핑은 대개 배경으로만 활용된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굴절된 배경 프로젝션과 플로어(바닥) 프로젝션, 그리고 오브제 매핑의 세 기술을 동시에 시도한다. 프로젝터 4대를 동시에 쓰면서 배경은 실내 공간을, 바닥은 고흐가 서 있는 밀밭의 풍경을 생동감 있게 되살린다. 방 안의 의자나 탁자, 침대 등 각종 소품들 역시 정밀한 매핑 작업을 통해 모든 시각적 요소를 고흐의 그림 세계로 몰입시키는 장치로 활용한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인터액티브 기술이다. 이번 영상 작업을 주도한 비주아스트의 고주원 영상디자이너는 멈춰버린 고흐의 그림을 어떻게 살아있는 시간으로 바꿀 것인가 고민했다. 그 결과가 인터액티브 기법이다. 예를 들어 캔버스를 살 돈이 없었던 고흐가 그림 위에 그림을 또 그리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과정을 배우의 연기와 영상이 연동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연출은 실제 무대에서는 배우가 그림 뒤로 랜턴을 가져가면 영상에서는 그림 속 그림이 나타나는 것으로 표현된다. 이런 다각적인 표현을 통해 고흐는 ‘불멸의 화가’라는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평범한 인간 고흐’로 재조명될 수 있다.
그동안 서사가 주가 되는 공연에서 이런 뉴미디어 기술이 많이 도입되지 못한 이유로 영상에 대한 기술적 이해 부족과 연출의 상상력 부재가 거론돼왔다. 하지만 최근 이에 대한 기획자나 연출가의 이해가 증가하면서 기존의 벽면 투사 방식을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 고주원 영상디자이너의 설명이다. 물론 기술 활용에는 여전히 예산이라는 난제가 남아있지만, 시각적 요소에 대한 관객의 기대감이 갈수록 높아지는 지금, 뉴미디어 기술에 대한 이런 시각의 변화는 공연 양식의 진화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6호 2014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