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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Oh! Broadway 브로드웨이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 `트라이아웃` [No.77]

글 |지혜원(공연칼럼니스트) 2010-02-03 7,803

브로드웨이 공연의 시험 무대로 알려져 있는 트라이아웃 공연의 개념이 보다 다양해지고 있다. 단순히 브로드웨이 상업 무대에 앞선 테스트 단계를 넘어서상업 프로듀서와 비영리 공연단체 사이의 적극적인 파트너십을 통해 보다 다양한 공연들이 개발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작품 개발의 마지막 단계, 트라이아웃
트라이아웃 공연이란, 장기공연을 앞두고 일정 기간 동안 평단과 관객의 반응을 살피면서 작품을 다듬어가는 단계 중의 하나로 활용되는 공연 형식을 말한다. 국내 공연계에 비해 작품 개발이 매우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브로드웨이의 경우 초기 단계부터 수차례에 걸친 리딩이나 워크숍 등을 통해 작품을 발전시켜 나간다. 대본이나 음악은 물론, 세트, 의상, 조명 등 디자인 분야에 이르기까지 공연에 필요한 거의 대부분의 요소들이 완성된 상태에서 무대에 오르는 트라이아웃은 작품 개발 과정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상업 공연이 오픈 런으로 공연되는 브로드웨이 시장에서 프로듀서들은 막을 올리기 전에 최종적으로 트라이아웃 공연을 통해 작품의 완성도와 상업성을 테스트한다.

 

<드라우지 샤프롱>의 한 장면


트라이아웃 공연은 대부분 뉴욕 외의 지역 중 공연시장이 활성화되어 있는 도시에서 이루어지는데(흔히 트라이아웃을 아웃-오브-타운 out-of-town 트라이아웃이라고 일컫는 이유이다), 주로 LA나 샌디에고, 시애틀, 시카고, 애틀랜타, 보스턴 등의 도시가 활용된다.

뉴욕 외의 지역을 돌며 공연하지만, 작품이 100퍼센트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연된다는 점에서 트라이아웃 공연은 브로드웨이에서 흥행성을 검증받은 작품이 차후에 여러 도시를 돌며 공연하는 내셔널 투어공연과는 개념이 다르다.

 

트라이아웃 공연이 뉴욕이 아닌 다른 도시를 돌며 많게는 수차례에 걸쳐 행해지는 이유는 비단 공연을 다듬는 창작과정의 일환에서만은 아니다. 지역 언론은 물론 타 도시의 관객들에게 공연을 소개하고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퍼져나가는 효과를 노리는 동시에, 공연이 브로드웨이에 입성할 때까지 평단과 관객들의 관심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제작비가 100퍼센트 마련되지 않은 공연의 경우 트라이아웃 공연 중에 투자자를 유치하고 뉴욕 외의 지역에까지 유통망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물론 예외도 있다. 2006년에 막이 올랐던 디즈니 시어트리컬의 <타잔>은 아웃-오브-타운 트라이아웃을 선택하는 대신 프리뷰 기간을 늘려 작품을 다듬었고, 2008년 토니상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던 <인 더 하이츠>의 경우 맨해튼 지역에 국한된 이야기라는 작품의 특성을 고려해 아웃-오브-타운 트라이아웃 대신 오프 브로드웨이 극장에서의 시험 무대를 거쳐 브로드웨이에 입성했다.


트라이아웃 공연은 형식 면에서 다소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창작자들에게는 작품을 다듬어 보다 양질의 작품을 브로드웨이에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되고, 프로듀서들에게는 브로드웨이 입성 전에 작품의 성패를 가늠하며 위험부담을 줄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실제로 2005년 브로드웨이 행이 예정되었던 <맘보 킹즈> Mambo Kings와 몇몇 작품들이 트라이아웃 공연 중 더 이상의 작품 개발을 포기해 제작이 무산되는 경우도 있었고, <나이스 워크 이프 유 캔 겟 잇>처럼 투자유치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해 아예 트라이아웃 공연 자체가 취소되고 제작이 무기한 연기되는 경우도 있었다. 작품에 참여한 스태프나 배우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더 큰 경제적 손실을 줄이고 시간을 벌어 다른 방향을 모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트라이아웃 공연은 프로듀서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가 아닐 수 없다.

 

 

 

비영리 공연단체와 상업 프로듀서의 전략적 파트너십
최근 들어 트라이아웃 공연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 실제로 브로드웨이 대형 뮤지컬의 경우 전체 제작비 예산이 평균 150억 원 정도에서 많게는 200억 원을 훨씬 웃도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작품 개발 당시 개발비 명목으로 적정 금액을 투자해 리스크를 줄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지만, 브로드웨이 개막이 확정되지도 않은 채 한없이 작품 개발비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여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 것이 상업 프로듀서와 지역 비영리 공연단체와의 협업 형태로 이루어지는 인핸스먼트 enhancement 계약을 통한 작품 개발이다.

 

인핸스먼트 계약이란 비영리 공연단체의 운영 예산에 상업 프로듀서의 자금이 유입되어 양측이 공연의 제작비를 분담하고 차후에 수익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배분하여 갖는 형식을 말한다. 미국의 비영리 공연단체는 우리나라와 달리 국·공립 비영리 단체보다는 민간 비영리 공연단체들이 주류를 이룬다. 매년 정해진 예산 안에서 각 공연단체의 성격에 맞게 시즌을 구성해야 하는 이 단체들은 상업 프로듀서의 자금으로 보다 양질의 대형 공연을 올릴 수 있게 되었으니 손해볼 일만은 아니었다. 상업 프로듀서는 비영리 공연단체의 무대를 일종의 디벨럽먼트 랩 development lab 으로 활용할 수 있고, 비영리 공연단체는 보다 수준 높은 공연을 자사의 회원들과 관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되므로 양쪽 모두에게 꽤 구미가 당기는 파트너십이 되는 셈이다.

 

또한 운이 좋은 경우(브로드웨이 장기공연이 성사될 경우) 비영리 공연단체는 상업 공연의 성패에 따라 로열티를 배분해 가져감으로써 매년 예산의 일부를 충당하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다.

 

인핸스먼트 계약은 크게 세 가지 정도의 형태로 나뉜다. 비영리 공연단체에서 자신들이 제작하고자 하는 공연의 비용을 자체 충당하기 어려운 경우 상업 프로듀서에게 개발을 제안하는 경우와, 비영리 공연단체에서 공연된 작품의 공연권이 다시 창작자들에게 귀속된 경우 상업 프로듀서가 원 창작자들과 계약을 하고 비영리 공연단체에게 일정 금액을 지불하는 경우, 그리고 상업 프로듀서가 비영리 공연단체에게 트라이아웃의 개념으로 공동 개발을 제안하는 경우이다.
마지막 형태에 속하는 트라이아웃의 형태가 최근 몇 년 새 늘어나고 있는 방식이다. 한 예로, 애틀랜타에 위치한 얼라이언스 시어터 컴퍼니 The Alliance Theatre Company 에서 1998년에 첫 선을 보인 디즈니 시어트리컬의 <아이다>를 들 수 있다. 당시에는 <아이다>가 아닌 <일래보레이트 라이브즈 : 더 레전드 오브 아이다> Elaborate Lives: The Legend of Aida 라는 긴 제목으로 공연됐고, 작품의 구성이나 디자인도 상당 부분 달랐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실제로 애틀랜타에서의 초연을 본 작곡가 엘튼 존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작품의 완성도에 불쾌감을 표현하며 공연 중에 자리를 뜨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 제작을 지속하기 위해 그를 설득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고 하니 첫 공연의 완성도는 가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아이다>는 몇 차례의 수정 작업을 거치고 1999년 시카고의 캐딜락 팰리스 시어터 Cadillac Palace Theatre 에서 업그레이드된 버전을 올린 후에도 여러 부분을 보안하고서야 2000년 브로드웨이이에 입성할 수 있었다.


디즈니 시어트리컬 최초의 순수 창작 프로덕션인 <아이다>는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에 기반을 두고는 있지만 자사의 애니메이션을 무대로 옮긴 <미녀와 야수>나 <라이온 킹>과는 그 출발부터가 다른 작품이었다. 디즈니는 프로젝트의 공동 개발을 애틀랜타의 얼라이언스 시어터에 제안했고, <아이다>는 최초 트라이아웃 공연 제작비의 일부를 인핸스먼트 금액으로 보조하고 얼라이언스 시어터가 자체 시즌 예산 중 일부를 이 프로덕션을 위해 편성하는 방식으로 최초의 프로덕션이 제작되었다. 순수 창작물의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한 디즈니의 영리한 선택이기도 했지만, 얼라이언스 시어터 역시 2004년까지 공연된 <아이다>의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에서 일정 비율의 로열티를 챙김으로써 공동제작의 이점을 누렸다.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고 있는 작품 중에서도 이러한 방식을 통해 트라이아웃을 거친 공연들의 수가 적지 않다. <저지 보이스>는 샌디에고에 위치한 라 호야 플레이하우스 La Jolla Playhouse 에서 최초로 제작되었고, <멤피스> 역시 라 호야 플레이하우스와 시애틀에 위치한 5번가 시어터 The Fifth Avenue Theatre 와의 공동작업으로 브로드웨이에 오를 수 있었다. 2006년 공연된 <드라우지 샤프롱>은 LA에 위치한 센터 시어터 그룹 Center Theatre Group 에서 초연되었다.

 

아웃-오브-타운이 아닌 오프 브로드웨이의 비영리 공연단체에서 브로드웨이로 옮겨오는 공연들도 인핸스먼트 계약에 의한 경우가 적지 않은데, <렌트>와 <애비뉴 Q>는 상업 프로듀서들이 먼저 작품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뉴욕의 비영리 극장인 뉴욕 시어터 워크숍과 비냐드 시어터에 각각 의뢰해 작품을 다듬고 발전시켜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렸다.


트라이아웃 공연은 이제 단순히 공연을 다듬고 언론과 관객에의 노출을 위한 수단으로서 거치는 단계가 아니다. 상업 프로듀서와 비영리 공연단체와의 협업을 통해 보다 수준 높은 작품이 보다 다양한 무대에서 선보일 있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작품을 발굴하고 개발하는 것에 의의를 지니는 비영리 공연단체의 대표들은 이제 더 이상 상업 프로듀서의 자본 없이는 작품 제작이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고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파트너십이 각 비영리 공연단체들의 설립 취지를 흐리고 성격을 모호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하다. 하지만 경기침체로 인해 회원의 확보가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정부나 재단의 후원금만으로는 운영이 어려운 비영리 공연단체들에게 상업 프로듀서들 제안하는 작품의 공동개발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 되고 있다.

 

<애비뉴Q>

 

브로드웨이로 향하는 신작들
가깝게는 2010-2011년 시즌, 길게는 향후 몇 년간을 내다보며 트라이아웃 공연 중인 작품들도 적지 않다. 우선 동명의 영화로 흥행성을 검증받고 개발단계에서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던 <캐치 미 이프 유 캔> Catch Me If You Can 의 경우 지난 여름 시애틀의 5번가 극장에서 성공적인 트라이아웃 공연을 마쳤다. 아직까지 브로드웨이 공연의 성사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기반으로 순조롭게 브로드웨이 행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또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조강지처 클럽> The First Wives Club 역시 지난 7월 샌디에고의 올드 글로브 시어터에서 첫 선을 보였고 브로드웨이행을 진행 중이다.
미국의 비영리 공연단체에서 공연된 후 브로드웨이가 아닌 웨스트앤드로 먼저 진출한 작품도 있다. 지난 2006년 파사디나 플레이하우스 Pasadena Playhouse 에서 초연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시스터 액트>는 2007년 애틀랜타의 얼라이언스 시어터 공연을 마치고 2009년 6월 웨스트 앤드의 런던 팔라디움 극장에서 정식 개막해 공연되고 있다. 브로드웨이 입성은 아직까지 불투명한 상태이지만 프로듀서들은 웨스트엔드 공연 성과에 힘입어 빠른 시일 내에 가능하리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트라이아웃 개념은 아니지만, 이미 완성된 공연이 브로드웨이 입성을 앞두고 조심스레 북미 시장 진출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2004년 호주에서 크게 히트한 댄스 뮤지컬 <더티 댄싱>은 이미 2006년 웨스트앤드 진출에 성공했고, 북미 시장에서는 시카고, 보스턴, LA, 토론토 등에서 공연을 올려 주목을 끌고 있다. 아직까지 브로드웨이 공연 계획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머지않아 브로드웨이 무대에서의 만남을 기대해 봄직한 작품 중 하나이다. 이소룡의 일대기를 담은 뮤지컬 <브루스 리: 저니 투 더 웨스트> Bruce Lee: Journey to the West 는 <나쁜 녀석들>과 <풀몬티>를 작곡한 데이비드 야츠벡 David Yazbek 과 <아이다>의 데이비드 헨리 황 David Henry Hwang 이 음악과 각본을 맡아 제작 중이다. 트라이아웃 스케줄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내년 시즌을 목표로 작업하고 있다. 또한 카툰 캐릭터로 널리 알려진 베티 붑 Betty Boop 의 뮤지컬 버전도 2010-2011년 시즌을 목표로 제작 중에 있다.

 

트라이아웃 공연을 진행하고 있는 작품들은 브로드웨이 입성을 희망하며 개발되고는 있지만 중도에 제작이 중단될 수 있다는 위험부담도 함께 안고 있다. 브로드웨이가 공연계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꿈의 무대임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모든 공연이 반드시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을 때에만 의미를 지닌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분명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작업이지만, 작품을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를 즐기며 오랜 시간 자본과 노력을 투자해 작품을 다듬고 발전시켜나가는 모든 프로듀서들과 스태프들의 노고만으로도 그들이 공연예술에 기여하는 의미는 이미 충분하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76호 2010년 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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