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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칼럼] 북한산에서 먹은 자두 너마저 [No.87]

글 |이민선 사진 |이민선 2010-12-24 4,792

걷기 여행의 트렌드에 따라 인구에 회자된 길이 있다. 모르고 갔다가 그 길이와 험난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제주도 올레와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갔다가는 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 같은 지리산 둘레길. 소문만 듣고 훌쩍 떠났다가는 힘들다고 징징대며 안 좋은 추억만 갖고 돌아올지 모르니, 제주도와 지리산을 목표로 서울에서 미리 워밍업할 수 있는 북한산 둘레길을 소개하겠다.

 


북한산의 둘레를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산책로를 다듬은 둘레길이 지난 8월 31일에 개장되었다. 한두 시간 걸을 만한 거리로 특성에 맞게 구간을 나누었는데, 각 구간의 길이는 2km에서 5km 정도이며 총 13구간에 이른다. 각 구간별로 소나무길, 명상의 길 등으로 이름이 붙어 있고 거리와 시간이 안내되어 있으니 입맛대로 골라 걸을 수 있다. 나의 선택은 3구간 흰구름길과 4구간 솔샘길. 선택 이유는 내 맘!
주말에는 사람들이 붐빈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 걱정했는데, 느긋하게 나선 오후의 둘레길은 다행히 한산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주말에도 일찍 일어나서 서두르는 탓에 주말 산행을 붐비게 만든다. 여기서도 확인되는 중요한 내 삶의 지표, 부지런한 사람이 더 많이 고생한다.
둘레길의 한 코스가 시작하고 끝나는 지점엔 나무로 된 아치문이 서 있다. 아치문을 열세 번 지나면 북한산 둘레를 완주하는 셈이니, 아치문을 지날 때마다 잊지 말고 뿌듯함을 느껴보자. 3구간 흰구름길에서는 오르락내리락 산길을 꽤 걸었다. 빌딩 숲에서와는 다른 촉촉하고 싸한 나무 냄새와 비릿한 흙냄새가 났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산 정상을 정복한 것만 같은 만족감이 느껴졌다. 산에 취한 기분을 느끼기도 잠시, 앞서 가던 아주머니 무리가 까르륵 소리를 내며 웃는 바람에 정신을 차렸다. 아주머니들은 산에만 오면 저렇게 소녀처럼 즐거우신가보다. 특별한 것 하나 없어 보이는데도 신기한 듯 웃어젖힌다. 문득 그들의 차림을 보니 모두 짙은 꽃분홍색 하나쯤 지니고 있다. 모자든, 가방이든 셔츠든. 앗, 그러고 보니 내 운동화에도 꽃분홍색이 떡하니 낫 모양을 그리고 있어서 흠칫 놀랐다. 하지만 나는 아줌마 인자보다는 아저씨 인자가 강한 사람이 아닌가. 나는 소녀처럼 웃지 않고 무심히 지나쳐 간다.

 


 

 

 

 

 

 

 

 

 

 

 

 

 

 

 

 

 

 

 

 

 

 

목책으로 구분되어 있는 둘레길에서 잠시 벗어나 한적한 숲으로 들어갔다.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려던 것은 아니고, 햇빛을 가려주는 아늑한 나무 차양 아래에서 간식으로 요기를 하기 위한 것. 지금은 철 지난 과일인 자두(분명 천도복숭아인 줄 알고 샀건만 조금 큰 자두였다!)와 음료수로 휴식 시간을 가졌다. 짧은 산책이지만 자고로 뭐든 입에 넣어야 나들이 기분이 나는 것 아니겠는가. 일행이 느닷없이 산에서 보았던 죽은 사람 이야기를 해주었다. 대낮이긴 하지만 숲에서 듣는 시체 경험담은 은근히 짜릿했다. 그때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적막을 깬 벨소리에 깜짝 놀라 물색없이 까르륵 웃어댔다.
화계사를 지나 전망대에 올라보니 산 아래 마을들이 내려다보인다. 저 아래 어디쯤에서 동네 노래자랑이라도 하는 모양인지 구수한 노랫소리가 배경음악 역할을 한다. 맑은 날이라고 해도 희뿌연 서울의 공기가 저 멀리 솟은 봉우리의 회색빛을 더해서 아쉽다. 산에 올라오면 어쭙잖더라도 시라도 한 수 읊으려 했건만, 그것은 다음번 5구간 명상의 길에서 시도해야겠다. 내가 시에 문외한이긴 하나, 몰리에르 단막극에서 보았던 자작 행세하는 하인만큼은 할 수 있지 않으려나.

“오~ 도둑이여~ 내 마음을 훔쳐간 도둑이여~ Oh, Voleur, Voleur!”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7호 2010년 12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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