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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도리안 그레이> [No.157]

글 |나윤정 2016-11-10 4,879

완전한 아름다움이 낳은 비극





캐릭터의
크고 작은 변화

1889년 ‘리핀코츠 먼슬리 매거진’에 연재되며 화제를 모은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작가 오스카 와일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작품이다. 그의 유일한 장편소설이자, 유미주의를 주창했던 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배질 홀워드는 내가 생각하는 나이고, 헨리 워튼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이고, 도리안 그레이는 내가 다른 시대에서 되고픈 나이다”라며, 작품에 녹여낸 자신의 사상을 역설했다.


소설은 총 20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3인칭 시점에서 이야기를 펼친다. 주인공은 아름답고 순수한 청년 도리안 그레이. 그를 보는 순간 예술적 영감을 느낀 화가 배질은 자신을 투영해 도리안의 초상화를 그린다. 반면 사교계의 중심인물 헨리는 젊음을 쾌락과 본능을 추구하는데 쓰라고 도리안을 유혹한다. 그로 인해 도리안은 자신의 초상화와 영혼을 뒤바꾸고, 그가 타락할수록 초상화는 점점 흉측하게 변해 간다.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는 소설의 큰 줄거리를 그대로 따라가되 캐릭터에 크고 작은 변화를 시도한다. 소설에서 헨리는 자신의 말이 도리안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에게 강렬한 흥미를 느낀다. 그래서 도리안 주위를 맴돌며 그의 사상을 변화시킨다. 이런 헨리의 역할은 뮤지컬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대신 여기에 인류학자라는 새로운 설정을 더했다. 헨리가 도리안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새로운 인류 실험을 위함이란 거다. 이런 설정으로 뮤지컬은 헨리의 행동에 나름의 설득력을 부여한다.


반면, 드라마가 축약되다 보니 도리안과 헨리의 일화들이 생략되어, 상대적으로 원작에 비해 헨리의 영향력이 줄어든 느낌이 든다. 소설에선 도리안이 헨리가 보내준 노란 책을 읽고 몇 년 동안 그 책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후 헨리에게 이를 원망하지만, 이러한 장면은 뮤지컬에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헨리의 넘버 ‘찬란한 아름다움’과 이를 따라 부르는 도리안의 ‘찬란한 아름다움 Reprise’를 통해 헨리의 사상이 도리안에게 전이되는 모습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헨리 : 타락 인간의 머릿속 죄악일 뿐
           즐겨라 잡으라 이 순간을

           타락한 순결한 이 알 수 없는 삶이여
           미천한 고귀한 숙명 모순의 삶이여
          기이한 황홀한 고통 인간의 헛된 삶이여
          고결한 비천한 오직 단 한 번인 삶이여
          후회 없으라 찬란한 아름다움


한편, 도리안의 첫사랑 시빌 베인은 도리안의 타락의 시작을 알리는 인물이다. 소설은 5장에서 시빌과 그의 가족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를 한다. 반면 뮤지컬은 도리안과 여동생 샬롯의 듀엣곡 ‘돌아올 그날까지’로 그 사연을 압축한다. 여동생 샬롯 베인은 뮤지컬에서 새롭게 만든 캐릭터로, 소설 속 남동생 제임스 베인의 역할을 대신한다. 샬롯은 2막에서 도리안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다시 등장한다. 소설 속 제임스는 사냥터 덤불에 숨어 도리안을 노리지만, 뮤지컬 속 샬롯은 여성 캐릭터인 만큼 브랜드 부인의 저택에서 열린 가면무도회를 통해 더욱 쉽게 도리안에게 접근한다. 자신의 언니 시빌을 떠올리게 하는 샬롯은 결국 도리안을 죽이려다 발코니에서 추락해 죽음을 맞이한다. 뮤지컬은 캐릭터의 성별을 변화시킴으로써, 이야기에 새로운 느낌을 더하고 드라마틱한 몇 개의 장면을 만들어냈다.





관능적이고 초현실적인
이미지화


소설이 펼치는 유미주의의 매력. 그리고 초현실적인 이야기. 뮤지컬은 이를 화려하고 관능적인 이미지로 시각화한다. 1막의 마지막 장면 ‘Against Nature’는 끊임없이 쾌락의 끝을 향해 질주하는 도리안의 모습을 펼친다. 황홀경에 빠진 듯한 도리안의 현란한 춤은 쾌락을 좇는 그의 인생을 상징하는 듯하다.


자기 대신 추악하게 변해 가는 초상화를 숨기는 도리안의 모습에도 특별한 이미지가 강조된다. 2막의 첫 장면 ‘넌 누구’에서 도리안은 초상화를 상징하는 형상들과 팽팽하게 대립한다.


도리안 : 난 인정 못 해 이것은 결코 현실이 아냐
                넌 단시 추한 그림 속 초상화일 뿐
초상화 : 난 바로 너야 이것은 결코 거짓이 아냐
                넌 단지 거짓 인생 속 내 그림자 또 다른 나



초상화를 숨기려는 도리안과 이를 저지하려는 초상화. 하지만 첨예한 갈등 끝에 결국 도리안은 초상화를 어두운 골방으로 밀어 넣는다. 반면 소설에서 도리안은 자신의 옛날 공부방에 초상화를 숨기려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마주한다. 도리안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오 년 동안 한 번도 공부방을 열어본 적이 없는데, 그곳에서 다시 이상하리만큼 자신을 미워했던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돈 없는 건달과 달아나 자신을 낳고 갑작스레 숨을 거둔 도리안의 어머니. 헨리는 불우한 성장 배경이 도리안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에피소드는 뮤지컬에서 생략되었다. 뮤지컬은 도리안의 비화보다는 그의 내적 고뇌에 더 집중하며, 이를 초상화와의 대립으로 시각화했다.


한편 배질과 도리안의 관계도 더욱 관능적인 이미지로 그려진다. 배질은 도리안의 초상화에 자신의 영혼을 투영할 만큼 도리안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다. 소설에서 도리안은 초상화를 보여 달라는 배질을 막기 위해, 오히려 초상화에 담긴 배질의 비밀을 되묻는다. 배질은 “자네를 열렬히 숭배하는 내 비밀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챌까 봐 두려웠지”라며, 도리안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그 고백을 통해 도리안은 ‘낭만적인 사랑이 덧씌워진 우정’은 비극임을 느낀다.


반면, 뮤지컬은 2막에서 배질이 도리안에게 초상화를 보여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도리안은 ‘유혹’이란 본능적인 방법을 택한다. ‘무엇이 기다릴까’ 장면에서 도리안은 배질에게 키스를 하고, 은밀한 곳으로 데려가 서서히 옷을 벗기는 과감한 행동을 한다.


배질 : 니 주변 모든 이들을 질투했고, 나 혼자서만
            너를 차지하고 싶었어
도리안 : 언제나 변해 가는 얼굴
배질 : 그래서 나는 지금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
 ...
도리안/배질 : 누구도 알 수가 없는 삶이여
                         마지막 거긴 무엇이 기다릴까
                         찬란한 빛을 향하는 끝없는 욕망
                         도리안 : 갖고 싶다면
배질 :  가질 수만 있다면


이를 통해 뮤지컬은 도리안과 배질의 관계에 농밀함을 더한다. 알고 보면 이 작품은 오스카 와일드의 동성애 혐의에 대한 증거물로 제시된 바 있다. 뮤지컬은 작품에 숨겨진 동성애 코드를 직접적으로 무대에 끌어올리며, 이를 관능적인 이미지로 만들어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7호 2016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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