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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인터뷰] 조정치, 천천히 가더라도 분명히 제 길을 가리라는 믿음 [No.103]

글 |이민선 사진 |김호근 2012-04-25 4,381

큰 포부나 욕심을 지닌 자만이 뜻을 이루고 앞서 나갈 수 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젊은 뮤지션 조정치가 직접 전한 말은 아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꿈을 이루고 제 길을 갈 수 있다는 믿음이 더욱 강해졌다. 대중음악계에서 한 획을 긋고 있는 윤종신이 포크 음악의 도래와 함께 이 뮤지션의 가능성에 주목했듯이, 내가 오늘 그를 만난 것에 대해 훗날 ‘아, 선견지명이 있었어’라고 말할 수 있도록, 조정치가 지금처럼 꾸준히 제 길을 걸어서 그 자신도 대중도 원하는 음악을 계속 들려주리라 믿는다.

 

 

얼마 전에 윤종신, 조정치와 하림, 세 뮤지션이 ‘신치림’이라는 그룹명으로 음반을 내셨죠? 누구의 아이디어였나요? 그 생각은 다 (윤)종신 형 머리에서 나온 거예요. 종신 형이 근래에 포크 음악에 대한 관심이 커졌어요. 제게 그런 음악을 해보자고 제안해서, 이미 ‘신치’라는 이름으로 몇몇 가수들의 음악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어느 날, 종신 형이 하림 형에게 같이하자고 부탁했고, 취중에 하림 형이 좋다고 답해서 ‘신치림’이 조성됐죠. 종신 형이 즉흥적이면서도 번득이는 데가 있거든요. 뭐, 종신 형 혼자 작당한 거죠. 저는 의지가 강한 사람은 아니어서, 시키면 하고 막상 닥치면 재밌게 하는 편이에요.

 

그럼 처음부터 포크 음악이라는 컨셉을 가지고 시작했겠군요. 네, 맞아요. 하림 형도 최근에 더 단순한 스타일의 포크 음악을 좋아하고 또 그런 곡들을 써오고 있었어요. 저도 그런 쪽에 기반을 두고 음악을 했고. 포크 음악을 하자는 데는 전혀 이견이 없었어요. 사실 종신 형은 포크, 통기타 붐이 일 거라는 걸 훨씬 예전부터 예상하고 있었어요. 물론 세시봉에게 선수를 뺏겼다고 섭섭해 했지만. 어쨌든 포크는 세 명 모두 좋아하는 공통분모예요.

 

음반의 테마를 여행으로 잡은 것도 윤종신 씨 아이디어인가요? 그렇죠. 저나 하림 형은 좀 더 쿨한 스타일인데, 종신 형은 좀 더 끈적하고 감성적인 면이 있어서, 종신 형이 고른 컨셉으로 만든 음악이 가장 대중적으로 어필하는 것 같아요. 세 사람이 무턱대고 곡을 써서 옴니버스 형식의 음반을 만드는 게 아니라,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꾸미는 게 좋겠다는 데 생각을 같이했어요. 신치림 음반에 특별히 대단한 한 곡, 킬러 트랙이 있다기보다 아홉 곡이 모여 앨범 하나를 이룬 게 더 의미 있는 것 같아요. 마지막 트랙 ‘배낭여행자의 노래’는 저희 셋이서 함께했던 <디렉터스 컷>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하림 형이 불렀던 노래예요. 여행지를 향해 달리는 버스 안에서요. 우리 모두 그 노래가 맘에 들었고, 아마 그 노래를 처음 들었던 버스 안에서 여행을 컨셉으로 한 앨범을 만들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 노래를 들었을 때, 정말 여행을 가본 사람이 만든 곡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런저런 내용의 가사가 ‘먹고 싶다’는 말로 끝나거든요. 정말 여행을 떠난 사람들은 먹고 싶은 음식을 생각하면서 돌아오는 것 같아요. ‘텅빈 배낭 가득 찬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온다’는 가사도 정말 좋았고. 그 곡이 출발점이 된 것 같아요.

 

세 분은 어떻게 친해진 건가요? 종신 형은 김C 형의 소개로 만났어요. 종신 형이 기타 위주의 편곡을 하고 싶다며 기타리스트를 소개해달라고 했는데, 제가 김C 형 측근이었던 터라 저를 소개해주고 그는 독일로 가버렸죠. ‘월간 윤종신’의 2010년 6월 호에 ‘치과에서’라는 곡이 있어요. 그 곡의 편곡 작업을 하면서 처음 만났어요. 그렇게 긴 인연은 아니죠. 저는 중고등학교 때 종신 형의 노래를 듣고 자란 세대인데도, 형을 만나보니 저랑 잘 맞았어요. 저는 사실 음악적인 것보다 인간적인 면, 더 세밀하게 말하자면 기운이 맞아야 뭐든 함께할 수 있어요. 제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작업을 잘 못하거든요. 그런데 종신 형은 사람을 다룰 줄 아는 스타일이에요. 일을 잘 시키고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공동 작업에서 상대가 잘하도록 이끌어주고 유연하게 진행하고. 그해 6월에 함께 작업한 앨범이 나오고, 곧이어 7월에 제 솔로 앨범이 나왔어요. 형이 제 앨범을 들어보고 재밌어 해주셨고, 형 나름대로 제 장점과 단점을 파악했겠죠. 이후에 몇몇 다른 가수들의 음반 작업도 함께하게 됐어요. 하여튼 종신 형을 만난 건 저한텐 되게 특별한 일이에요. 제가 쭉 연주자로서 살다가 처음으로 개인 음반 작업을 하면서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일들도 많이 해야 했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때였죠. 그런 전환점에서 형을 만난 것 같아요. 하림 형은 ‘신치림’ 하면서 만난 셈이에요. 그전에도 <디렉터스 컷>에 함께 출연했고, 왔다 갔다 하면서 마주치긴 했지만. 아, 하림 형은 여기 이리카페 죽돌이에요. 하림 형이 워낙 사람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이제는 제 얼굴을 기억하더라고요.

 

세 사람 중에서 노래는 누가 제일 잘한다고 생각해요? 일단 저는 제가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요. 두 분은 각자의 개성이 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하림 형 목소리를 더 좋아해요. 음악을 하면 할수록, 악기도 그렇고 목소리도 그렇고 음색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노래를 들었을 때 그림이 그려지는 사람이 있는데, 하림 형은 그런 사람이에요. 그가 만드는 음악도 대단하지만, 저나 종신 형은 하림의 최고 매력은 목소리, 노래라고 생각해요. 그는 뭐든 자기화 하는 해석력이 있어요. 종신 형은 이야기하듯이 노래하죠. 또박또박한 발음하며. 종신 형은 노래를 더 오래하려면 말을 좀 줄여야 할 것 같아요. 말하다가 목이 다 쉬거든요. 나이가 있는지라 성대가 금방 지치는 것 같아요.

 

아이돌 그룹을 홍보할 때 멤버들마다 담당을 정해서 알리곤 하잖아요. 누구는 미모 담당, 누구는 개그 담당. 이런 식으로 세 분의 역할을 이야기한다면요? 종신 형이 대내외적으로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는데, 말과 개그 담당이죠. 저는 형들의 말 받아주고 장난쳐주는 역할이랄까요. 하림 형이 보기와는 다르게 귀여운 구석이 있어서, 저랑 종신 형이 놀리면 잘 당해요. 곧잘 열 받아해서 더 놀리기 재밌는 사람 있잖아요. 하림 형은 신치림의 얼굴이라고 생각해요. 얼굴이 잘생겨서가 아니라, 우리 음반에서 가장 내세우고 있는 게 하림 형이에요. 형이 하고 있는 활동은 무척 많지만, 오랫동안 음반을 내지 않아서 뭘 하고 있나 궁금해 하고 기다리실 분들에게 그를 보여주자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래서 타이틀곡도 하림 형이 만들고 부른 곡으로 하자는 게 애초의 계획이었고요.

 

 

앨범을 내기 전에 오랫동안 기타리스트 활동을 했는데, 기타는 언제부터 쳤나요? 중학교 1학년 때쯤? 학업에는 별로 취미가 없었고, 당시에 PC 통신을 너무 열심히 한 나머지 전화 요금이 10만 원 정도 나왔어요. 아버지한테 혼나고 컴퓨터를 뺏겼죠. 집에서 할 게 없어서, 1년 전에 어머니가 사주신 통기타가 처박혀 있는 걸 보고 치기 시작했어요. 저보다 음악을 좋아했던 친구 따라서 듣고 조금씩 흉내 내며 놀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네요.

 

그때 주로 들었던 음악은 어떤 것인가요? 록이랑 가요. 이문세나 유재하, 팝송도 좋아했고. 기타리스트라는 직업상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연주하고 들었는데, 결국 가장 마음에 남는 건 가요더라고요. 그렇다고 제가 아주 대중적인 음악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어찌 됐든 가요라는 범주 안에 드는 음악을 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던 것 같아요.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기 전,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음악 활동을 했나요? 고등학교 때 기타 서클 부장이었어요. 학교 축제 때 공연도 하고, 딩가딩가 하던 여느 애들처럼 생활했죠.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전문 교육 기관을 다녔어요. 당시에는 실용 음악을 배울 데가 많지 않았어요. 일산에서 신사동까지 지하철로 왕복 세 시간, 일주일에 세 번씩 다녔죠. 하여튼 학교 다닐 때도 늘 기타 치는 게 일상의 중심이었어요.

 

우연히 시작한 것치고는 기타를 무척 좋아하게 됐네요. 다른 일은 안 했으니까요. 그리고 재밌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적성에 딱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치면서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거리가 있어서 좋았어요. 이런 건 어떻게 연주할지 고민해보게 되고. 제가 좋아했던 게임을 봐도 그렇고, 제가 오타쿠 기질이 있나봐요. 단순한 것보다는 파고드는 걸 좋아하고, 또 혼자 하는 걸 좋아해요.

 

기타리스트 활동을 오래 하다가, 직접 작사·작곡을 해서 음반을 낸 건 오랫동안 꿈꾸었던 일인가요? 아니면 자연스럽게 행해진 일인가요? 저는 꿈꾸면서 사는 사람도 아니고, 포부를 크게 갖는 사람도 아니에요. 뭐든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기타를 막 시작한 중학생 때도 노래를 만들었고, 컴퓨터 게임을 할 때도 게임만 한 게 아니라 간단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곤 했죠. 열심히 다작하진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다보니 제가 만든 곡들이 쌓이더라고요. 별로인 것들은 버렸지만, 좋은 것들은 계속 가지고 있었죠. 그릇이 차면 비워 놓을 데가 필요하잖아요. 스물여덟 살 때였나, 인디에서 테크노뽕짝 같은 음악을 하던 ‘볼빨간’이란 형이 음반 작업을 한번 해보라고 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그런데 워낙 남는 시간에만 작업하다보니 결국 서른세 살에 음반이 나왔죠. 5년 걸렸네요. 물론 써놓은 곡들은 꽤 있었지만, 컨셉을 정해서 그에 맞는 것은 놔두고 맞지 않는 것들은 버리고 새로 쓰다 보니…. 음악 하는 사람들에겐 자기 음반을 내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 같아요.

그런데 1집 앨범에 대한 반응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들은 건 아니었지만, 들은 사람들은 좋아해줬어요. 여전히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으니까 천천히 이어갈 계획이에요. 돌아오는 겨울에 다시 개인 앨범을 내볼까 해요. 이번엔 좀 욕심을 가지고 하려고요. 보통 첫 앨범에 공을 많이 들이는데, 저는 ‘누가 듣겠어’ 하는 마음으로 정말 욕심 없이 낸 거라 아쉬운 부분이 있더라고요. 이번에는 아쉽지 않게, 그래도 아쉬움은 있겠지만 덜 아쉽게, 성의를 가지고 해보려고요.

 

 

1집 앨범의 제목이 ‘미성년 연애사’였던 것은 그걸 가장 잘해서… 인가요? 연애요? 좋아하죠. 지금 한 사람만 오래 만나고 있긴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연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제게 굉장히 큰 부분이었거든요. 사람들이 많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찾은 건 아니었고,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어린 친구들의 이야기보다는 내 또래가 느낄 만한 내용을 담고 싶었고요. 뭐, 연애를 잘하는 건 아니에요.

 

최근 TV 방송에서 이야기한 개인적인 연애사 때문에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1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잖아요. 아, 그건 종신 형이 그렇게 몰아가서, 그런 재미에 편승해서 이야기한 거죠. 저 같은 사람이 연애 비법 같은 걸 얘기하는 게 사실 웃기잖아요. 장난이지, 제게 뭐, 별거 있겠어요.

 

그런 걸 보면 방송의 영향력이 크단 걸 느끼지 않아요? 확실히 그렇죠. 어쨌든 이런저런 일들을 통해서 제 이름이라도 아는 사람들이 더 많이 생겼고. 그런데 뭐 저를 크게 알리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제가 어린 사람도 아니고, 이 나이에 그런 데 의미를 두진 않아요.

 

거창한 게 아니더라도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언젠가 이런 건 이루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있나요? ‘우리 동네 사람들’이라는 팀이 있었어요. 지금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음악감독을 하고 있는 강승원 씨가 있던 그룹인데요. 김광석 씨가 다시 부른 ‘서른 즈음에’가 이분들의 노래죠. 저랑 볼빨간 형이 도모했던 게 ‘우리 동네 사람들’이 낸 앨범 같은 걸 만들어보자는 것이었어요. 약간 재즈스러운 포크 음악. 전자 음악을 기반으로 하는 앨범도 만들고 싶어요. 그렇게 안 보이시겠지만, 제가 그쪽으로 관심을 갖고 있고 세계적인 추세도 그렇고요. 추세를 따른다기보다는 재밌는 요소들이 많은 것 같아서 해보고 싶어요. 당분간 할 건 아니고, 제 이름으로 할 일도 아닌 것 같지만, 언젠가 시도할 건수가 생기겠죠. 저는 뭐 이 정도지,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서 공연하고 싶다거나 그런 큰 꿈은 없어요.

 

4월 초에 신치림이 공연을 하죠? 이번 음반에 수록된 9곡 모두 각각 뮤직 비디오를 찍었어요. 지금 공개된 건 세 곡뿐이지만. ‘월간 윤종신’ 작업도 매번 함께하는 오프 비트라는 영상 팀이 참여했는데, 그 친구들 무척 대단해요. 싼값에 잘하고. 제주도에서 찍은 9편의 영상을 보여주는 상영회라고 표현하는 게 더 맞을 것 같아요. 영상을 보여주고 노래도 하는 형식으로 진행할 것 같아요. 종신 형은 워낙 오랫동안 공연을 했고, 하림 형도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하면서 공연을 많이 경험했어요. 저는 상관없지만, 두 분은 평범한 공연을 할 때는 지난 사람들이에요. 단지 세 사람이 모여서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일반적인 공연은 별로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조금은 더 연출된 공연을 하기로 했어요. 약간 연극적인 요소가 들어갈 수도 있고. 내일 작가 회의를 해봐야 알 것 같아요. 4월 3일 서대문에 있는 NH아트홀에서 2회 공연합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3호 2012년 4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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