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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FOCUS] 퓰리처상이 선택한 10편의 뮤지컬 [No.213]

글 |안세영 사진 | 2022-09-28 1,817

퓰리처상이 선택한 10편의 뮤지컬

 

 

미국 내 최고의 공연에 주어지는 상


미국 언론인 조지프 퓰리처의 유언에 따라 1917년 제정된 퓰리처상은 ‘언론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릴 만큼 그 권위를 인정받는다. 하지만 이 퓰리처상이 공연에도 주어진다는 사실은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퓰리처상은 언론 분야 15개 부문 외에도 예술 분야 7개 부문에서 그해 가장 탁월한 업적을 이룬 인물에게 주어지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공연(Drama) 부문이다. 퓰리처상 공연 부문은 그해 미국에서 공연된 작품을 대상으로 심사하며, ‘미국 작가가 미국인의 삶에 대해 쓴 작품’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수상작은 두 단계를 거쳐 선정된다. 먼저 심사 위원이 후보작 세 편을 추천하면, 컬럼비아대학교 언론대학원 퓰리처상 위원회에서 투표를 통해 최종 수상작을 결정한다. 공연 부문 심사 위원은 보통 비평가 3명, 학자 1명, 극작가 1명으로 구성된다. 공연 부문은 퓰리처상이 제정된 1917년부터 존재했지만, 첫해에는 수상작이 나오지 않아 1918년 첫 수상작이 나왔다.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3대 극작가 유진 오닐, 테너시 윌리엄스, 아서 밀러도 이 퓰리처상을 받은 바 있다. 특히 유진 오닐은 퓰리처상을 네 번이나 받아 현재까지 최다 수상자의 타이틀을 지키고 있다.


공연 부문 퓰리처상은 대부분 연극에 돌아가지만 간혹 뮤지컬이 그 영광을 차지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퓰리처상을 받은 뮤지컬은 단 열 편뿐이다.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뮤지컬은 1932년 수상작 <그대를 위해 노래하리(Of Thee I Sing)>이다. 대통령 후보가 표심을 얻기 위해 미인 대회를 열고 우승자를 영부인으로 맞이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가 엉뚱한 여자와 사랑에 빠져 곤경에 처하는 이야기다. 당대 정치권을 풍자한 이 작품은 뮤지컬이 정치와 같은 무거운 주제를 다룰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작품의 성공에는 클래식과 재즈를 결합하여 미국 음악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작곡가 조지 거슈윈의 음악이 크게 기여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그는 퓰리처상을 받지 못했다. 그때만 해도 퓰리처상 공연 부문은 극작가에게 수여하는 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규칙은 1950년 <남태평양(South Pacific)>이 뮤지컬 사상 두 번째로 퓰리처상을 받으면서 깨졌다. <남태평양>은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이 주둔한 남태평양의 작은 섬을 무대로 펼쳐지는 두 쌍의 사랑 이야기다. 종군 간호사와 프랑스인 농장주, 해군과 섬의 원주민이 포화 속에서 국적과 인종을 뛰어넘어 사랑을 꽃피우는 모습을 그렸다.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황금기를 이끈 명콤비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에 의해 탄생했는데, 퓰리처상 위원회는 두 사람 모두에게 상을 수여했다. 뮤지컬에서 음악이 드라마를 전달하는 핵심적인 요소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이때부터 뮤지컬의 경우 극작가, 작사가뿐 아니라 작곡가도 퓰리처상 수상자에 포함하게 되었다. 참고로 로저스와 해머스타인 2세의 또 다른 작품 <오클라호마!>는 퓰리처상 공연 부문에서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1944년 특별상을 받았다.

 

브로드웨이의 게임 체인저


뮤지컬 황금기였던 1960년대에는 두 편의 퓰리처상 수상작이 나왔다. 두 작품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일색이던 당시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유행에서 벗어나 색다른 주제를 다루었다. 1960년 수상작 <피오렐로!(Fiorello!)>는 1934년부터 1945년까지 세 번이나 뉴욕시장을 연임한 실존 인물 피오렐로 라과디아를 주인공으로 한 전기 뮤지컬이다. 부패 정치를 청산하고 노동자 계층을 위한 정책을 펼쳐 시민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라과디아의 업적을 무대로 옮겼다. 1962년 수상작 <노력 없이 출세하는 법(How to Succeed in Business Without Really Trying)>은 창문 닦는 일을 하던 주인공이 성공 비결이 적힌 책을 읽고 대기업에 입사해 승승장구하는 이야기로, 출세를 위해 배신을 서슴지 않는 야비한 주인공을 내세워 미국의 기업 문화를 우스꽝스럽게 풍자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사이에는 10년에 한 번꼴로 수상작이 등장했다. 1976년 수상작 <코러스 라인(A Chorus Line)>은 실제 뮤지컬 코러스 댄서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무대에 서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코러스 개개인의 인간적인 사연이 관객의 마음을 울렸다. 뮤지컬 황금기를 지나 침체되어 있던 브로드웨이를 구제한 <코러스 라인>은 1990년까지 장기 공연을 이어갔다. 1985년 수상작 <조지와 함께한 일요일 공원에서(Sunday in the Park with George)>는 화가 조르주 쇠라의 점묘화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에서 영감을 얻었다. 상업성 짙은 뮤지컬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혁신적인 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의 작품으로, 극의 내용 또한 예술성과 상업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예술가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에서 손드하임은 열한 가지 색으로 그림을 그린 쇠라를 따라 열한 가지 악기로 음악을 만들고, 점을 찍는 화가의 붓놀림을 스타카토 모티프로 표현했다. 1996년 수상작 <렌트>는 뉴욕의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이 냉혹한 현실 속에서 꿈과 사랑을 지키고자 애쓰는 이야기를 그린 록 뮤지컬이다. 다양한 인종과 성지향성을 지닌 캐릭터를 등장시키고 동시대 사회 문제를 녹여내 뮤지컬을 즐기지 않던 MTV 세대를 극장으로 끌어들였다.

 

동시대 뮤지컬의 위상


<렌트> 이후 뮤지컬이 다음 퓰리처상을 거머쥐기까지는 14년이 걸렸다. 2010년 수상작 <넥스트 투 노멀>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여성과 그 가족의 이야기라는 특수한 소재 안에 보편적인 미국 중산층 가정의 애환을 담아냈다. <넥스트 투 노멀>의 퓰리처상 수상은 논쟁을 불러오기도 했는데, 왜냐하면 심사 위원이 선정한 3편의 최종 후보에 포함된 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심사 위원이 선정한 후보작 세 편은 모두 연극이었지만, 위원회가 이를 뒤엎고 <넥스트 투 노멀>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이것이 전례 없는 사건은 아니었다. 퓰리처상 위원회는 심사 위원이 선정한 최종 후보가 모두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수상작 없음’을 발표하거나 추가로 다른 작품을 추천받아 수상작으로 선정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2007년에도 이사회는 심사 위원이 추천한 최종 후보를 모두 물리치고 연극 <래빗홀>에 상을 주었고, 수상작이 없는 해도 열다섯 번이나 있었다.


하지만 2016년 <해밀턴>, 2020년 <스트레인지 루프(A Strange Loop)>까지 비교적 짧은 간격을 두고 뮤지컬이 연달아 퓰리처상을 받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달라진 뮤지컬의 위상을 느끼게 한다. <해밀턴>은 미국의 초대 재무부 장관을 지낸 알렉산더 해밀턴의 생애를 현대적으로 무대화한 힙합 뮤지컬이다. 작품의 극작과 작곡을 도맡은 린 마누엘 미란다와 주인공 해밀턴 모두 이민자 출신이기에, 작품 속에 흑인, 라틴, 아시안 등 비백인 배우를 대거 캐스팅했다. <해밀턴>은 개막과 동시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백인 중심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브로드웨이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스트레인지 루프>는 여전히 백인 중심으로 돌아가는 브로드웨이 무대를 정면으로 겨냥한다. 이 작품은 뮤지컬 작곡가를 꿈꾸는 흑인 게이 주인공이 백인 이성애자 중심의 세상에서 어떤 좌절을 겪는지 유쾌하지만 신랄하게 보여준다. 출연진은 전원 흑인 퀴어 배우로 캐스팅했다. 극작가 겸 작곡가 마이클 R. 잭슨이 자신의 삶을 투영해 작품을 썼는데, 흑인이 쓴 뮤지컬이 퓰리처상을 받은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스트레인지 루프>는 오프브로드웨이 공연 이후 퓰리처상을 받았는데,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하지 않은 뮤지컬이 퓰리처상을 받은 것 또한 처음 있는 일이다.

 

 

올해 토니 어워즈가 기대되는 이유


퓰리처상은 매년 4월 또는 5월에 수상작을 발표한다. 그 뒤를 이어 6월에 미국 공연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 토니 어워즈가 열린다. 퓰리처상과 달리 토니 어워즈는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작품만을 대상으로 심사하며, 연극과 뮤지컬을 구분해 시상하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뮤지컬은 토니 어워즈에서도 베스트 뮤지컬상을 차지해 그해를 빛낸 최고의 작품임을 거듭 인정받는다. 그런데 <조지와 함께한 일요일 공원에서>와 <넥스트 투 노멀>은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조지와 함께한 일요일 공원에서>는 브로드웨이 최초로 동성애자 커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라카지>에, <넥스트 투 노멀>은 웨스트엔드에서 건너온 <빌리 엘리어트>에 베스트 뮤지컬상을 내주었다. 이 밖에 <그대를 위해 노래하리>는 1947년 토니 어워즈가 제정되기 전에 공연된 작품이기 때문에, <스트레인지 루프>는 오프브로드웨이 공연 이후 코로나19로 인해 브로드웨이행이 지연되었기 때문에 토니 어워즈와는 인연이 없었다. 다만 <스트레인지 루프>의 경우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올해 토니 어워즈 베스트 뮤지컬상 수상이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다.


퓰리처상 위원회는 1983년부터 수상작과 함께 최종 후보 3편도 함께 공개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5편의 뮤지컬이 이름을 올렸다. 1985년 <콜로누스의 가스펠(The Gospel at Colonus)>, 2009년 <인 더 하이츠>, 2014년 <펀 홈>, 2017년 <240년의 대중 음악사(A 24-Decade History of Popular Music)>, 2020년 <소프트 파워(Soft Power)>가 바로 그 작품들이다. 퓰리처상을 받은 10편의 뮤지컬과 최종 후보에 오른 5편의 뮤지컬은 제각각 다른 매력을 뽐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저마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뮤지컬을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시키고 후대 창작자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는 점이다. 브로드웨이에 또 한 번 지각변동을 일으키며 퓰리처상을 차지할 열한 번째 뮤지컬은 과연 무엇이 될지 기대해 보자.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3호 2022년 6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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