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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ULTURE INTERVIEW] 태양처럼 강렬하게 <태양> 김도완 [No.221]

글 |최영현 사진 |표기식 2023-03-09 846

태양처럼 강렬하게
<태양> 김도완

 

연극 <태양>은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가 신인류 ‘녹스’와 구인류 ‘큐리오’로 나뉜 세계에서 녹스 살인 사건으로 10년간 외부와 단절되었던 큐리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작품마다 또렷한 존재감을 보여준 배우 김도완은 큐리오의 카츠야를 연기한다. 그는 또 어떤 모습으로 관객을 사로잡을까. 

 

 

현실을 닮은 판타지

 

지난해 연말 막을 내린 <맥베스 레퀴엠>에 이어 <태양>으로 다시 국립정동극장 무대에 서게 됐어요. 
어쩌다 보니 연말연시를 국립정동극장에서 보내고 있네요. (웃음) <태양>은 2년 전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했던 작품이에요. 연출님과 동료 배우들의 합이 좋아서 재미있게 준비했는데 티켓이 계속 매진돼서 보조석을 깔고 공연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어요. 나중에 객석이 조금 더 큰 극장에서 다시 공연하면 참 좋겠다 싶었는데 이렇게 빨리 좋은 극장에서 재연을 올리게 돼서 정말 기뻐요. 재공연을 한다는 건 작품성이나 흥행성을 인정받은 작품이라는 거잖아요. 그런 작품에 다시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해요. 

 

같은 공연이라도 재공연에 참여하는 소감은 또 다르죠?
사람은 한살 한살 먹을수록 이전과 달라지잖아요. 전보다 경험이 더 쌓이고, 생각도 더 깊어지고. 제 개인의 변화가 제가 연기하는 인물에도 영향을 끼쳐요. 같은 공연에 같은 배역으로 출연하더라도 해가 지나면 이전보다 이해의 깊이나 표현의 폭이 달라져요. 그래서 재공연이 재미있는 것 같아요. 저 스스로도 제가 얼마나 달라질지 기대되거든요. 

 

<태양>은 어떤 작품인가요? 설정이 아주 재미있더라고요. 
이야기의 배경은 바이러스가 창궐한 근미래예요. 바이러스를 이겨낸 신인류 녹스는 보통 인간보다 똑똑하고 신체 능력이 탁월해요. 병에 걸리지도 않고 심지어 늙지도 않죠. 하지만 태양을 보면 죽어요. 마치 뱀파이어처럼요. 녹스는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점차 사회 전반을 장악하고 부유한 삶을 누려요. 구인류로 전락한 큐리오는 녹스와 반대로 자연의 순리에 따라 시간이 지나면 나이를 먹고 결국에는 죽는 보통 사람이에요. 녹스 중심 사회에서 큐리오는 척박한 삶을 살아요. 나이 많은 큐리오는 녹스를 괴물이라면서 혐오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기회가 된다면 자식은 녹스로 만들고 싶어 해요. <태양>은 녹스 살인 사건이 일어난 큐리오 마을에서 시작해요. 살인 사건 때문에 큐리오 마을에 내려졌던 제재가 10년 만에 풀리면서 큐리오와 녹스가 다시 교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어요. 

 

무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데 처음 <태양>의 대본을 읽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어요. SF 영화에 나올 법한 이야기지만 현실이 많이 반영돼 있거든요. 예를 들어 바이러스로 삶이 바뀌었다는 설정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를 떠올리게 해요. 두 진영으로 나뉘어 대립하는 모습도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죠. 분명 낯선 이야기인데 공감되는 점이 많아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녹스라면, 혹은 큐리오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고, 태양처럼 당연하게 여겼던 존재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죠. 쉽고 재미있으면서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게 이 작품의 매력인 것 같아요. 

 

극 중에서 맡은 역할은 큐리오인 카츠야예요. 이야기의 발단이 되는 인물이죠?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막연히 녹스 쪽 인물을 맡을 줄 알았어요. 신인류라면 움직임이 다를 것 같았거든요. 제 장기가 몸을 잘 쓰는 거라 당연히 녹스에 속할 거라고 지레짐작했죠. (웃음) 그런데 연출님이 큐리오인 카츠야를 하자고 하시는 거예요. 예상치 못한 제안이라 좀 당황했죠. 카츠야는 녹스를 살해하고 도망가서 큐리오 마을을 어려움에 빠뜨려 놓고는 10년 만에 아무 일이 없다는 듯이 마을로 돌아오는 인물이에요. 다른 인물에 비해 대본에 드러난 이야기가 적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여지가 많죠. 연출님과 제가 만든 카츠야는 비겁하지만 한편으로는 정의감이 있어요. 큐리오를 녹스에게서 해방시켜 주고 싶어 하거든요. 이런 해석에 맞춰서 카츠야의 동작이나 행동을 연구했어요. 

 

무도인을 연상케 하는 카츠야의 첫 등장은 정말 강렬해요. 누구의 아이디어였나요?
첫 리딩이 끝나고 연출님이 바람의 파이터처럼 등장하면 재미있겠다고 농담처럼 아이디어를 던지셨어요. 근데 꽤 괜찮을 것 같더라고요. 다음 연습 전까지 가라테 동작을 참고해서 카츠야의 움직임을 만들었어요. 연출님이 제가 만든 카츠야의 동작을 보자마자 만족해 하셔서 운 좋게 캐릭터의 방향을 빨리 잡았죠. 

 

카츠야 외에 녹스 살인 사건의 피해자 역할도 맡았죠? 녹스로 등장할 때는 <백조의 호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데 현대 무용 같은 안무가 인상적이었어요. 
이번 공연에서 녹스와 큐리오를 둘 다 연기하는 건 저밖에 없어요. 큐리오랑 녹스 역할을 같이 해보라고 하셨을 때 연출님은 처음부터 다 계획이 있으셨구나 싶었죠. (웃음) 안무는 초연 당시 연출님, 안무가님 그리고 제가 함께 짰어요. 셋이 머리를 맞대고 태양 아래서 죽어가는 녹스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지 한참 고민했어요. 무대에서는 어떤 상상이든 마음껏 펼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별의별 아이디어가 다 나왔어요. 사실적으로 살려달라고 외쳐보기도 하고 뜨겁다고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고. 하하하. 결국에는 한 편의 현대 무용처럼 시적으로 완성됐죠. 

 

작품 속에서 녹스와 큐리오는 외모뿐만 아니라 움직임도 달라요. 녹스는 로봇처럼 움직이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녹스는 불필요한 동작을 줄이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움직이려고 해서 로봇처럼 움직인다는 설정이에요. 연출님이 두 집단의 차이가 시각적으로 잘 드러났으면 하셨어요. 특히 녹스의 움직임이 일반적이지 않길 바라셨죠. 그래서 안무가님이 로봇 춤이나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를 참고해서 녹스의 움직임을 만들었어요. 녹스가 로봇처럼 말하고 움직이면, 큐리오는 좀 더 감정적으로 말하고 행동하죠. 예를 들어 화를 낼 때 더 격앙돼서 연기하는 식으로요. 두 집단이 여러모로 대비되니까 비교해서 보는 재미가 클 거예요. 

 

작품에서 움직임이 중요하다 보니 연습실 풍경도 남다를 것 같아요.
<태양>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다들 몸을 쓰는 걸 좋아해요. 움직임을 몸에 익히는 과정이 힘들긴 하지만 다들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녹스가 움직임 훈련을 많이 해요. 초연 때는 안무가님이 연습실에 상주하셔서 녹스 역 배우들과 하루는 스텝, 하루는 상체, 하루는 로봇 춤 이런 식으로 매일 훈련했어요. 큐리오는 따로 훈련을 안 해서 너무 편하죠. (웃음) 저는 주로 가라테 동작이나 현대 무용 같은 움직임을 연습해요. 제가 워낙 몸을 쓰는 걸 좋아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다양한 동작을 연기에 접목할 수 있어서 즐겁게 연습하고 있어요. 

 


무용수에서 배우로

 

작품마다 몸 쓰는 게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원래 무용을 전공했다고요?
어렸을 때부터 현대 무용을 배웠어요. 국립현대무용단 창단 멤버로 2년 정도 활동하다가 허리를 다쳐서 무용을 그만두게 됐어요. 그때가 무용수로서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서른두 살이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더라고요. 재활 치료 후 새로운 일을 시작했지만 무대를 잊을 수 없었어요. 문득 예전에 무용극을 했던 게 생각났어요. 같이 작업했던 분들이 저보고 연기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고 연기에 도전해 보라고 그랬거든요. 그게 갑자기 떠올라서 같이 무용극을 했던 분들에게 연락했어요. 다들 연기하기에는 늦었으니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했지만 천만다행으로 그중 한 분이 극단 여행자의 양정웅 연출님을 소개해 주셨어요. 

 

극단 여행자 단원으로 연극배우의 길에 접어든 거예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극단에 들어가서 연기를 배웠거든요. 처음 연기할 때 발성이나 화술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니까 대사를 하는 게 무척 어려웠어요. 감정은 좋지만 대사가 안 들린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죠. 한번은 국립극단에서 공연할 때 당시 예술감독님이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제 실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하셨어요. 어찌나 창피했는지 몰라요. 근데 그 예술감독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한테 지적받으니까 무슨 수를 내야겠더라고요. 그때부터 더 이를 악물고 노력했어요. 줄넘기하면서 대사 연습도 해보고, 진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어요.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다시 예술감독님을 만났는데 정말 많이 늘었다고 칭찬해 주시더라고요! 너무 행복했어요. 고생한 보람도 있었고요.

 

평생 해온 일과 전혀 다른 일에 도전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어요?
첫 번째는 무대가 좋아서예요. 저에게 무대는 힐링의 공간이거든요. 무대에서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게 참 행복해요. 두 번째는 여기서 포기하면 앞으로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았어요. 연기가 쉬울 거라는 생각은 안 했어요. 연극 무대에서 자리 잡을 때까지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고요. 연극을 시작할 때 저에게 쓴소리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해요. 그분들 덕분에 배우로서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빠르게 연극 무대에 적응할 수 있었어요. 그때는 쓴소리로만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약이었더라고요. 입에 쓴 약이 몸에 좋은 것처럼요.

 

연극배우로서 자리를 좀 잡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 있었나요?
<휴먼 푸가>를 하면서 배우로서 자신감을 많이 얻었어요. 솔직히 그 당시에 고민이 많았어요. 연기를 하고 싶은데 자꾸 몸을 많이 쓰는 역할로 저를 찾으시는 거예요. 그게 싫어서 한동안 무용을 전공했다는 걸 숨기기도 했어요.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공연을 할 때 장두이 선생님께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선생님이 “우리나라에 너 같은 배우는 없어. 넌 정말 소중한 배우야.”라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왜 안 하려고 했을까. 시간이 흐르면 몸을 많이 못 쓸 텐데 할 수 있을 때 더 해보자고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그래서 <휴먼 푸가>를 하게 됐고, 그 작품을 본 김정 연출님이 출연 제안을 해주셔서 <태양>에 참여하게 됐죠.

 

벌써 배우의 길에 접어든 지 10년이 지났더라고요. 혹시 올해 특별한 계획이 있나요?
예정된 공연을 잘 마무리하는 게 목표라면 목표예요. 그 외의 계획이나 목표는 없지만 건강을 잘 챙겨보려고요. <맥베스 레퀴엠>이 끝나고 몸이 좀 안 좋았어요. 공연하는 한 달 동안 울고 소리 지르면서 살았더니 몸에 무리가 왔나 봐요. 배우에게는 몸도, 마음도 비워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앞으로 건강 관리를 잘 하려고요. 배우로서 목표가 있다면 흐르는 대로 순리에 어긋나지 않게 사는 거예요. 요즘 <태양>을 하면서 부쩍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사람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게 인생이다. (웃음) 순리 안에서 잘 살아보는 게 배우로서의 목표입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1호 2023년 2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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