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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Beyond Lyrics] <헤드윅>의 ‘위키드 리틀 타운’ [No.117]

글 |송준호 사진제공 |쇼노트 2013-07-09 6,741

소외된 자를 향해 내민 손 헤드윅과 토미의 ‘위키드 리틀 타운’

 

 

 

 


현대는 흔히 탈경계, 다문화, 혼종의 시대로 불리곤 한다. 조금씩 다른 이 명칭들의 중심에는 기존의 획일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수많은 가능성을 모색하자는 유연한 태도가 있다. 하지만 이런 흐름과는 달리 언어나 인종, 문화 코드 또는 성 정체성의 차이에 따른 차별은 여전하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세상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서러운 이방인의 운명을 감내하며 살아간다.


<헤드윅>은 세상 모든 이방인의 쓸쓸한 운명을 혼자 떠안은 듯한 인물에 관한 이야기다. 동베를린 출신의 게이이자 트랜스젠더, 드래그퀸이라는 복잡한 정체성을 지닌 그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못된(wicked) 세상을 힘겹게 가로지른다. 록과 펑크 음악에 대한 재능과 유머 감각을 무기로 호기롭게 삶의 무게를 견뎌내지만, 남편에게 버림받고 애인에게는 배신당한 인생은 화나고 짜증나며 슬픈 것일 수밖에 없다. 신나게 노래를 부르다가도 돌아서며 서글픈 감상을 이야기하는 <헤드윅>의 전개는 혼란스러운 그의 내면을 반영한다.

 

총 11곡으로 이루어진 <헤드윅>의 넘버는 일반적인 다른 뮤지컬에 비해 적은 숫자지만 부족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각각의 곡은 모두 묵직한 무게감이 있고 헤드윅의 인생을 말해주는 서사 역할을 하기 때문. 신나는 오프닝 곡 ‘Tear Me Down’을 비롯해 대표곡인 ‘The Origin of Love’, 동성애 매매춘을 은유하는 ‘Sugar Daddy’, 원제이자 극 중 헤드윅의 밴드 이름이기도 한 ‘The Angry Inch’, 그리고 트랜스섹슈얼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Wig in a Box’ 등이 그렇다.


이 곡들은 철저히 헤드윅만의 이야기다. 이성애자 관객들에겐 공유할 수 없는 ‘타자’의 이야기다. 헤드윅 역시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일단 들어봐’라는 느낌으로 이 곡들을 부른다. 그런 그가 세상을 돌아보며 말을 거는 곡이 ‘Wicked Little Town’이다. 운명의 무게에 짓눌려 있던 그가 처음으로 타인에게 손을 내미는 곡이다. <헤드윅>에는 같은 제목에 가사만 다른 두 곡이 있는데, 첫 번째 곡에서 헤드윅은 ‘Wicked Little Town’에 갇힌 토미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이 노래를 부른다.

 


네 눈엔 태양이 있고 You know, The sun is in your eyes  

비구름 하늘까지 머물고 있어 And hurricanes and rains and black and cloudy skies
맑았다 흐린 날처럼 You are running up and down that hill

오르고 내리는 인생 You turn it on and off at will

우리네 삶은 돌고 또 돌지 There`s nothing here to thrill or bring you down

 

 

 

 

 

아리스토파네스의 ‘반쪽이’ 이야기부터 섹슈얼리티 문제, 냉전 시대의 정치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담론이 들어있는 까닭에 <헤드윅>의 노랫말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반면 이 곡은 상대적으로 편안한 느낌이다. 사용되는 어휘들이나 멜로디의 정서도 ‘그들만의 힘겨움’보다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보편적인 고달픔에 대한 것이다. A-A`-A`로 비슷한 선율이 반복되는 이 곡은 직역에 가까운 번역이 이루어졌음에도 원곡의 메시지나 정서를 가장 자연스럽게 풀어내고 있다. 2005년 국내 초연 당시 이지나 연출가와 번역에 참여했던 임양혁 쇼노트 제작이사도 명곡들이 많은 <헤드윅> 중에서 노랫말의 완성도 면에서 이 곡이 가장 만족스럽다고 밝힌다. 그만큼 원어의 의미를 잘 살리면서도 우리말로 잘 옮겼다는 뜻이다. 이 곡의 핵심은 세 단락 모두에서 반복되는 후렴구다. 풋내기 소년 토미가 산전수전 다 겪은 헤드윅의 세계에 빠지는 장면이지만, 이 부분은 흡사 엄마가 아기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듯 포근한 가사와 멜로디로 구성돼 있다.

 

 

길 잃고 헤매는 당신 And if you`ve got no other choice

따라와 나의 속삭임 You know you can follow my voice

건너요 차가운 도시 through the dark turns and noise

위키드 리틀 타운 of this wicked little town  

 

 

<헤드윅>의 대부분 곡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은 제목이 담긴 가사나 상징적인 문구는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놔둔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다른 뮤지컬들과는 달리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가사를 무리하게 번역하면 원래의 정서와도 맞지 않고 어색해진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두면 불성실해 보이기 때문에 장치를 마련했다. 가령 ‘날 부숴 Tear Me Down’, ‘남은 건 Angry Inch’ 등 각 곡의 캐치프레이즈 부분 앞에 우리말로 꾸며주는 가사를 집어넣은 것이다. ‘Wicked Little Town’도 앞에 ‘건너요 차가운 도시’를 넣어 뒤따라오는 중심 문구를 수식하고 있다.


그런데 임 이사는 “이 곡의 경우엔 ‘Wicked’라는 단어의 난감함이 더 컸다”고 털어놓는다. 뮤지컬 <위키드>에서야 ‘묘한’ ‘사악한’ 정도의 뉘앙스로 해석하면 되겠지만, 이 곡에서의 Wicked는 ‘못된’, ‘음탕한’ 등 작품과 관련해 더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특정 단어로 옮기기에 어려운 단어라 원어를 그대로 쓰는 게 낫다고 연출진은 판단했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다.

두 번째 곡은 배신한 토미가 헤드윅에게 용서를 구하며 부르는 노래다. ‘Forgive me, For I did not know’로 시작되는 노래는 엄마에게 변명하는 어린아이 같지만, 중반부터는 오히려 ‘운명은 없어. 그만 징징거리고 이제 그만 거기에서 나와’라고 말하듯 의젓해진다. 이어서 ‘따라와 나의 속삭임, 건너요 차가운 도시’로 헤드윅이 해준 말을 그대로 돌려준다. 운명에 갇히거나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존재를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치유의 조언이다.

 

 

이제는 받아들여 봐요 `Cause, with all the changes you`ve been through
당신 존재의 이유를 It seems the stranger`s always you

두려워 말고 건너요 alone again in some new  

위키드 리틀 타운 wicked little town

 

 

<헤드윅>에는 수많은 담론들이 교차되어 있지만, 정작 이 뮤지컬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순한 것일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플라톤의 말처럼 나에게 맞는 반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먼저 인정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분노와 슬픔의 근거를 세상에 돌리며 지쳐가던 헤드윅이 이를 깨달으면서 삶의 돌파구를 찾은 것은 안락한 경계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7호 2013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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