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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ulture in Musical] 다시 셜록이 필요한 세상 [NO.103]

글 |김영주 2012-04-27 4,380

출간 이래 단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다는 인기 소설이 있다면, 그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 만화, 뮤지컬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1881년에 처음 발간된 소설이라면, 그리고 그 모든 작품들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잇달아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면 그건 신기한 현상이라고 말해도 될 듯하다.

 

 

 

 

2012년 가장 핫한 1854년생
큰 키, 날카롭고 기민해 보이는 인상, 체크무늬 베레모에 프록 코트를 입고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문 중년 남자가 돋보기를 들고 무언가에 집중해 있다면 곧바로 셜록 홈즈라는 이름이 떠오를 것이다. 추리문학사상 가장 널리 사랑받은 주인공인 이 영국인은 1854년 1월 6일 또는 5월 15일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곁에는 그림자 같은 조수이자 친구인 존 왓슨 박사가 늘 함께 하면서 세계 최초의 민간자문탐정을 자칭하는 남자의 놀라운 행로를 글로 남긴다. 어린 시절 처음 <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은 아이들은 종료된 사건을 왓슨이 회고하는 형식 때문에 그들의 모험담이 실화일 것이라고 믿기도 한다.


셜록 홈즈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사실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은 비단 어린 아이들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1972년 12월 16일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소설에서 홈즈와 왓슨의 하숙집 주소로 명시된 베이커 거리 221번지 B호에는 세계 각지에서 홈즈에게 보낸 편지들이 쌓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홈즈의 돋보기를 갖고 싶다고 부탁하는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의 부탁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게 재미있다. 당신의 숙적 모리어티로 추정되는 인물을 내가 만났는데 아무래도 이스라엘 스파이 같았다는 중동에서 온 편지부터, 비행기 납치 사건을 해결해달라는 캐나다인 남성의 호소까지 다양한 사연이 섞여 있다. 셜록 홈즈 연구가인 윌리엄 베어링 굴드가 홈즈의 사망연도로 지목한 1957년으로부터 불과 15년 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 후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그에 대해 논문을 쓰고 계간지를 발표할 정도로 열정적인 팬들은 대륙을 넘어서 존재한다. 영국에서는 홈지언이라고 하고 미국에서는 셜로키언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바뀌어도 줄어드는 법이 없다. 홈즈를 위해 거리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려주는 대가로 1실링의 일당을 받고, 특별한 과제를 수행했을 때는 1기니의 상금을 받는 베이커 거리 돌격대 아이들 중 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면서 자라난 아이들 중 일부는 자신의 상상력으로 홈즈를 다시 세상에 불러냈다.

 

 

 


셜록 홈즈의 일부가 된 사람들
작가인 코난 도일조차 독자들의 반응이 부담스러워서 자기 뜻대로 죽이거나 은퇴시킬 수 없었던 이 비범한 캐릭터는 후세에도 많은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셜록 홈즈> 시리즈의 영향권 안에서 만들어진 추리물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걸작부터 일본 만화 <명탐정 코난>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이 다양하다. <셜록 홈즈>의 인물관계나 캐릭터를 차용한 흔적은 언뜻 보면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미국 의학 드라마 <닥터 하우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피해자에 대한 공감이나 연민, 정의감보다는 사건 자체에 호기심과 흥분을 느끼는 홈즈의 성격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이 캐릭터는 후대로 넘어와서 다양하게 변주되는데, <닥터 하우스>의 제작진들은 홈즈(Holmes)와 발음이 비슷한 단어(Homes)와 뜻이 같은 하우스(House)를 주인공의 성으로 삼고, 왓슨과 유사한 역할을 하는 파트너 윌슨을 짝지어준 다음, 환자가 병을 앓게 된 사연을 추적하는 추리물의 형식으로 극을 이끌어 갔다. 닥터 하우스 역시 훈훈한 인류애보다는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데 훨씬 관심이 많다. 그가 사는 집의 호수가 221B인 것쯤은 애교라고 할 수 있다.


뮤지컬 <셜록 홈즈>는 권교정의 만화 <셜록>과 마찬가지로 코난 도일의 캐릭터 설정과 추리 방식을 빌려서 새로운 사건들을 옴니버스 식으로 이어가는 작품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캐릭터를 가져오는 것은 서사적으로 제약이 많은 뮤지컬 장르에 유리하기는 하지만, 추리물과 뮤지컬은 사실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추리의 수준이 올라가면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이 어렵고, 그 수준이 낮아지면 너무 쉬워서 재미없는 퍼즐놀이가 된다. 하지만 뮤지컬 <셜록 홈즈>는 코난 도일이 <주홍색 연구>에서 사용했던 것처럼 추리와 로맨틱한 비극을 적절히 잘 섞어냈다.


미야자키 하야오로 하여금 원작의 주인공들을 모두 견공으로 의인화한 사랑스런 모험추리애니메이션 <명탐정 셜록 하운드>를 만들게 했던 것 역시 자신의 어린 시절을 사로잡았던 셜록 홈즈에 대한 애정이었다. 셜록 홈즈와 왓슨의 이야기가 수많은 이들을 매료시킨 것은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의 성격을 완성시킨 코난 도일의 치밀하고 촘촘한 트릭 때문만은 아니었다. 진정한 의미로 세상이 바뀌었던 19세기 말 격변기의 유럽에서 아서 코넌 도일은 평범한 사람들이 경험하기 힘든 많은 일들을 겪었고 자신이 보고 느낀 세계의 변화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욕망을 작품 속에 흥미롭게 반영했다.


그는 에든버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중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 대신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포경선에서 8개월간 의사로 일해야 했고, 졸업 후에는 아프리카로 가는 화물선으로 직장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는 의대에서 선박의사로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기술만 배운 것이 아니었다. 에드가 앨런 포우의 추리 소설을 처음 접한 것도 그 시절이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만남이 있었으니 외과 실습 교수인 스승 조지프 벨과의 인연이다.


진찰을 할 때는 환자의 말을 듣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특징을 주의 깊게 살펴야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조지프 벨은 강의 중 환자를 진찰 할 때 추리기법을 사용했으며 외모의 특징이나 체취, 옷에 남은 얼룩이나 신발에 묻혀온 진흙 따위를 가지고 환자의 배경을 정확하게 맞추는 귀신같은 능력을 보여주었다. 조지프 벨 교수는 훗날 제자가 자신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되자, 소설이 연재되었던 <스트랜드 매거진>에 기고한 글을 통해서 수업 시간에 그 마법 같은 추리를 계속 선보였던 것은 제자들이 진찰할 때 필요한 관찰력을 키울 수 있도록 흥미를 끌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우리 눈에 비친 그 남자
코난 도일의 주인공일 때도 셜록 홈즈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천재이자 놀랄만큼 냉철한 과학 신봉자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뇌를 활용하지 못한 채로 권태로운 시간이 흐르는 것을 참지 못해서 자극을 위해 코카인을 복용하기까지 하는 모순적인 인간이다. 하지만 이는 오랜 시간 연재가 이어지고. 소설의 집필 순서와 사건이 일어난 순서가 일치 하지 않음으로서 생긴 크고 작은 작품 속 오류들과 마찬가지로 오히려 독자들을 열광시키고 집중하게 하는 매력이 되었다.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대에 만들어진 캐릭터인 셜록 홈즈에게 가이 리치는 액션 영웅 이미지와 함께 타인의 감정을 배려할 줄 모르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지나치게 선명하게 받아들이는 괴짜 천재의 이미지를 부여했다. BBC가 만든 TV 시리즈 <셜록>에서는 아예 두뇌는 뛰어나지만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들과 같은 섬뜩한 병명 ‘소시오패스’를 진단해 주기도 했다.


드라마 시리즈 <셜록>은 오늘날 사람들이 홈즈를 필요로 하는 이유 뿐만 아니라, 현대인의 관점에서 홈즈가 어떻게 보이는지 까지 생생하게 묘사된 작품이다. 코난 도일이 쓴 최초의 셜록 홈즈 시리즈인 <주홍색 연구>와 제목까지 같은 시즌 1의 첫 회에서 흥미로운 것은 홈즈가 왓슨과의 첫 만남에서 그의 가족사를 줄줄이 읽어내는 단서가 된 물건이 회중시계에서 스마트폰으로. 코카인이 니코틴 패치로 바뀐 것만은 아니다.

 

셜록 홈즈에 대한 열광에서는 이 논리도 해결책도 없는 혼란스러운 시대에 냉철하고 냉소적이면서도 어떻게든 정답을 찾아줄 것 같은 초인적인 두뇌와 관찰력의 소유자를 필요로 하는 대중들의 심리가 읽힌다. 그런데 BBC의 <셜록> 첫회 를 보면서 우리는 그가 자신의 뛰어남을 증명하는데 중독되어 있고, 그를 따르면 평범한 대도시가 생사의 위기가 넘치는 전쟁터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는 는 사실을 알게 된다. 코난 도일의 소설 속에서 다른 사람들을 파악하고 정의 내리는 것은 홈즈의 권한이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도 그를 분석한다. 다시 말하지만 바뀐 것은 회중시계와 스마트폰만이  아니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3호 2012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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