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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서편제> 진화의 끝이 아닌 성장 과정 [No.103]

글 |원종원(뮤지컬 평론가) 사진제공 |랑 2012-04-09 4,441

최근 흥행 뮤지컬의 경향

둘중 하나다. 요즘 서구 극장가의 흥행 뮤지컬 이야기다. 관객이 몰리는 무대는 대부분 인기 영화를 재구성한 무비컬 아니면 왕년의 대중음악을 빌려와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이라서 하는 말이다. 국내에서는 <사랑과 영혼>이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진 <고스트>, 거미줄을 날리며 하늘을 나는 슈퍼 히어로 <스파이더맨>, ‘Can`t Take My Eyes Off You’로 유명한 포 시즌스의 음악이 등장하는 <저지 보이스>, 아바의 노래들로 만든 <맘마미아!>, 퀸의 음악으로 만든 <위 윌 록 유>,  쟈니 캐시, 앨비스 프레슬리 등 전설적인 로큰롤 스타들이 참여한 선 레코드의 마지막 스튜디오 녹음을 뮤지컬로 재연한 <밀리언 달러 쿼르텟> 등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아예 두 장르를 모두 버무려놓은 <프리실라>도 대중적 인기라면 빼놓을 수 없는 근작 뮤지컬이다. 요즘 글로벌 뮤지컬 시장의 흥행 아이콘들인 셈이다.

 

흘러간 명작 영화나 예전의 히트 대중음악을 활용하는 일차적 이유는 분명하다. 이미 대중성을 검증받은 콘텐츠를 무대로 재연하는 것이니 관객 입장에서는 그만큼 쉽게 신뢰할 수 있을 테고, 제작자 입장에서는 홍보의 부담이나 흥행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말 그대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거양득의 마케팅 전략이자 상업자본의 선택인 셈이다. 원 소스 멀티 유즈(OSMU)의 적용이 용이한 무대예술이라 가능한 공식이다.

 

하지만 무작정 만든다고 다 좋은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부류의 뮤지컬들이 완성도를 갖추기 위한 필요조건은 사실 유명한 원 소스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문화적 생산물로부터 얼마나 거리감을 둘 것이며 또 멀티 유즈의 묘미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인가에 달려있다. 잘 알려진 원작을 확보하는 것은 작품 제작의 모티프이자 시발점일 뿐, 무대를 보는 재미를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한다면 사실 아니 만드니만 못한 경우도 많다.

 

 

 

관심 콘텐츠의 뮤지컬화

특히 최신 인기물을 가져와 뮤지컬로 만드는 일은 더욱 조심스런 작업이다. 일단은 원형 콘텐츠의 힘을 빌려 대중의 관심을 극대화시킬 수는 있겠지만 사실 장점보다 난관이 더 많다. 시청률 1위의 드라마를 그 열기가 사라지기 전에 재빨리 뮤지컬로 만들면 관객이 넘쳐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엄밀히 따지자면 그저 안일한 발상이자 착각에 불구하다. 각각 재화의 성격도 현저히 다르거니와 원작과의 인정할 만한 거리감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비싼 티켓에 대한 당위성을 주지 못할 뿐 아니라 뮤지컬로 만들어야 할 명분도 얻을 수 없다. 물론 적극적인 홍보 전략이나 유명 연예인의 기용으로 반짝 흥행을 기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명력이 긴 좋은 뮤지컬로 만들어내기란 요원하다. 우리보다 상업 극장가가 발달한 영미권 공연 시장에서도 굳이 ‘왕년’의 콘텐츠를 가져다 뮤지컬로 만드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해를 품은 달>이나 <뿌리 깊은 나무>보다 <다모>나 <파리의 연인>에 더 기대가 높아지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뮤지컬로 만들어진 <서편제>는 뮤지컬 제작 소식이 거론됐던 초기부터 관계자들로부터 꽤나 기대를 모았던 재미난 시도였다. 일단 영화가 등장했던 것이 1993년이었으니 20여 년의 세월 동안 무대용 콘텐츠에 대한 기대심리가 충분히 숙성될 수 있었고, 게다가 오밀조밀하고 아기자기한 판소리의 음악적 묘미를 즐기기에 라이브 무대만 한 환경도 따로 없을 것이라는 추측도 한몫을 했다. 멀리 한 편의 그림 같은 앵글에서 소리를 하며 걸어오는 등장인물들을 롱 테이크 촬영 기법으로 묘사하는 등 영화는 이야기에서뿐 아니라 형식적인 면에서도 무척이나 실험적인 면을 지니고 있었는데, 결국 뮤지컬로 제작되며 무대가 영화에서처럼 얼마나 파괴와 재구성의 미학을 재연해낼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했다.

 

초연이 상연되고 이러저러한 구설을 지나 2012년 이제 앙코르 무대가 막을 올렸다. 한으로 굴곡진 소리 길을 다룬 작품 자체의 운명이 기구한 탓일까, 그동안 초연 프로듀서의 급작스런 별세와 극작을 맡았던 조광화 연출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수상식 소감, 그리고 이에 따른 뮤지컬 협회와 언론사, 몇몇 관계자 등이 결부된 여러 논쟁들을 거쳐 이 작품은 다시 객석 앞 무대로 돌아왔다. 세 살배기 뮤지컬치곤 우여곡절을 많이 겪은 탓인지 마침내 들려온 재공연 소식이 개인적으로도 반갑고 또 안쓰럽다. 그래도 제작진의 쓸쓸한 마음과 못다한 애정이 다시금 생명력을 불어넣어 무대로 구현된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앞선다.

 

 

 

장단점이 부각된 재공연

아무래도 초연에 비해 달라진 부분이 많다. 일단 소극장 뮤지컬에서 중대형으로 몸집이 불어났다.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덕분에 작은 공연이 큰 규모로 성장할 때의 장점과 단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무대는 넓어졌고 그래서 세세한 연출이 늘어났지만 동시에 빈틈도 많아졌다는 의미다. 전작에 비해 조금 더 친절해진 스토리 라인과 복선들,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캐릭터들의 등장은 등장인물들의 심리나 내면 묘사를 한층 성숙시켜준 반면, 극의 긴장을 이완시켜주거나 주위를 환기시킬 만한 큰 무대에 어울리는 재미나 볼거리의 부재는 아쉽게도 뮤지컬적인 매력을 반감시켰다. 세 시간 남짓한 공연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진 것은 아마도 차마 아까워서 덜어내지 못한 이야기들로 인한 무게감에도 원인이 있었겠지만 관객을 쥐락펴락하지 못한 채 다소 느리게 진행되는 극 전개와 넓고 단순한 무대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을 것이다.

 

영화 <서편제>가 오정해라는 국악계의 대중스타를 만들어냈다면, 뮤지컬 <서편제>는 소리꾼 이자람을 뮤지컬 마니아들에게 깊게 각인시키는 전환점이 될 것 같아 즐겁다. 연출의 말처럼 극 안에서 그녀는 그냥 송화 그 자체다. 조금 구부정하게 걷는 본새에서 구슬프게 흐르는 우리 가락의 맛깔스러움에 이르기까지 일거수일투족이 자연스럽고 사랑스럽다. 유봉의 죽음에 목 놓아 토해내는 그녀의 소리는 그 자체로 이미 감동이요, 아픔의 치유다. 객석 여기저기서 훌쩍거림이 들리기 시작하는 것도 대부분 이 장면에서부터다. 우리 소리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작품 출연을 결심했겠지만 뮤지컬 같은 상업 무대에서도 오래 두고 자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심마저 든다.

 

반면 제일 아쉬운 점은 음악이다. 사실 <서편제>를 뮤지컬로 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대부분 가장 관심이 쏠렸던 점은 우리 가락을 뮤지컬이라는 형식을 통해 새로운 선율의 재미도 찾고 감동도 느끼며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으리라. 그러나 윤일상 작곡가가 선보인 선율은 극 안으로 녹아들지 못했다. 덕분에 우리 가락은 그 자체로 감동을 주기보다 그저 극적 상황을 포장해주는 정도의 역할로만 머물러 있었다. 이는 영화 <서편제>에서 판소리가 멋스럽게 포장되어 가장 주요한 작품 의식의 표현 도구로 활용된 것에 비교해 봐도 여간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극 중 아버지 유봉은 젊은 시절 라이벌이었던 소리꾼을 찾아가 이것저것 뿌리 다른 음악들로 섞어 만든 창극을 비난하는 대목이 등장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뮤지컬 <서편제>는 그 스스로가 이 비난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원래 영화 음악에서 김수철이 보여준 음악적 실험이나 훗날 무용음악 ‘영의 세계’나 ‘팔만대장경’ 등을 통해 펼쳐보였던 음악적 영감을 무대에서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특히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끊임없이 감동과 배려만을 바라게 되는 관객은 이기적인 욕심쟁이에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서편제>이기에, 그 작품이 남긴 향기와 발자취가 너무 크고 아름답고 또 애잔하기에 관객들은 더 기대하고 더 바랄 수밖에 없다. 훗날 이번 앙코르 무대가 이 작품이 보여준 진화의 끝이 아닌 더 성장하기 위한 과정으로 기억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외부 필자의 기고는 <더뮤지컬>의 편집 방침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3호 2012년 4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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