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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MINI SPECIAL] 여성의 눈으로 본 2018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로르카의 희곡이 오늘날 공연되는 법 [No.183]

글 |글 | 이수진 극작가 겸 칼럼니스트 정리 | 안세영 2018-12-26 5,132

여성의 눈으로 본 2018 뮤지컬

 

올해 초 공연계에 파장을 몰고 온 미투 운동은 현실의 성폭력을 처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무대 위에서도 변화를 이끌어 냈다. 주체적인 여주인공을 내세운 창작뮤지컬 <레드북>이 열띤 지지를 받았고, <맨 오브 라만차>, <번지점프를 하다>를 비롯한 다수의 작품이 성차별적이거나 성폭력적인 장면을 수정했다. <광화문 연가>의 월하, <더데빌>의 X, <록키호러쇼>의 콜롬비아처럼 성별에 관계없이 배우를 캐스팅하는 젠더 프리 캐스팅도 활성화되었다. 크고 작은 변화의 물결이 감지된 2018년, 무대 위 여성의 입지는 얼마나 나아졌을까? <더뮤지컬>이 연말결산의 일환으로 뮤지컬 속 여성 캐릭터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시리즈 기사를 마련했다. 먼저 미투 운동 이후 재공연을 올린 작품들이 달라진 시대 감수성에 맞춰 문제적 장면을 어떻게 수정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한 해 동안 올라간 흥행 뮤지컬 속 여성 캐릭터를 소환해 그들이 극 중에서 그려지는 방식의 문제점을 짚어 본다. 마지막 글에서는 올해의 화제작 <베르나르다 알바>에 집중한다. 남성 편향의 공연계에서 10명의 등장인물이 모두 여성인 <베르나르다 알바>는 올해 가장 혁명적인 작품이다. 여기서는 이 공연이 여성이 처한 사회적 현실을 어떻게 고발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한편, 원작 희곡이 뮤지컬로 옮겨지면서 여성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파헤친다. 

 

<베르나르다 알바> 로르카의 희곡이 오늘날 공연되는 법

 

시인이자 극작가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는 자신이 자란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을 사랑하면서도 증오했다. 그에게 안달루시아는 억압받는 여성성 그 자체였다. 그가 쓴 시골 비극 삼부작 『피의 결혼식』, 『예르마』,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은 모두 여성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로, 가부장제의 폐해에 의해 비극으로 치닫는다. 로르카의 마음속에서 안달루시아에 대한 사랑과 미움 중 더 큰 자리를 차지한 건 무엇이었을까. 정답은 알 수 없겠지만 그의 작품 속에서는 분명 사랑 쪽으로 부등호가 열린다. 

 


 

가부장제의 감옥에 갇힌 여성들

지난 11월 로르카의 희곡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각색한 마이클 존 라키우사의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가 국내 무대에 올랐다. 열 명의 출연 배우가 모두 여성이라는 점에서 큰 화제를 낳았던 이 작품은 알바 가문 여자들의 이야기다. 집안의 가장을 막 땅에 묻고 집으로 돌아온 베르나르다가 이 집이 자신의 소유임을 선언하는 장면으로 극이 시작된다.  
 

사실 로르카가 희곡을 썼을 당시 각각의 인물이 상징하는 바는 뚜렷했다. 반반한 여성이라면 아내부터 하녀까지 누구라도 건드리고 보는 남편 안토니오는 이미 수명을 다하고 퇴장한 왕정, 왕이 죽기를 기다려 그 자리를 꿰찬 아내 베르나르다는 독재자 프랑코, 집안을 전복하려는 하녀 폰시아는 사회주의자, 자신의 욕망에 따라 행동 양식을 결정하는 딸들은 귀족과 중산 계층, 실질적으로 집안을 떠받치고 있는 하녀들은 서민을 상징했다. 하지만 이 모든 인물이 단순히 계급을 상징하는 데 그쳤다면, 작품은 그저 그런 풍자극으로 세월과 함께 잊혔을지 모른다. 그러나 등장인물 모두에게 여성이라는 굴레를 씌우는 순간 이들은 복합적이고 다양한 결의 인물이 되었다. 


 

가부장제 아래서 여성들은 자신이 속한 계급과 무관하게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빼앗긴 존재들이다. 때문에 작품 속 모든 여성은 안토니오의 죽음을 제각각의 이유로 손꼽아 기다렸다. 안토니오의 죽음을 애도하는 말이라도 하는 건 돈 많은 첫째와 젊고 예쁜 막내 사이에서 혼기를 놓친 둘째 정도다. 베르나르다 알바는 그가 죽자 안토니오의 룰을 더욱 강화하는 것으로 소유권을 보여주려 하지만 정신 나간 친엄마부터 막내딸까지 모조리 마음은 콩밭으로 향한다. 베르나르다는 그 누구의 마음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권위와 남의 눈만 신경 쓰다 내부로부터 붕괴되는 비극을 맞는다. 
 

베르나르다와 그 딸들의 욕망이 펄펄 끓다 못해 화산처럼 터지는 것 역시 기형적이다. 욕망도 자유도 이들은 단 한 번도 제대로 맛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상상 속의 자유와 새벽에나 아주 잠깐 맛보는 욕망의 편린들이 이들의 뇌를 녹여버린다. 척추 장애가 점점 심해져서 결혼의 희망을 버린 마르티리오는 큰 언니와 결혼할 남자인 페페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힌다. 막내인 아델라는 페페와 실질적인 연인 사이다. 페페는 안토니오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는 존재지만 사랑에 눈이 먼 딸들은 이를 보지 못한다. 페페가 아니면 꽁꽁 닫힌 집을 탈출할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좁게 보면 마치 남자 하나에 목매는 여자들의 머리끄덩이 잡는 싸움으로 귀결되는 비극이지만 실제로는 ‘좁게’ 살 수 밖에 없도록 밀어 넣는 거대한 가부장제가 이들에게 파멸을 선사한다. 애당초 이들에게 비극이 밀어닥친 것은 집 밖을 향한 호기심이 미친 듯이 타오르는 다섯 명의 혼기 꽉 찬 여성들을 창문까지 닫아걸고 8년상을 치러야만 한다고 밀어붙인 베르나르다이자, 베르나르다가 속한 계급의 관습이다. 가장 어리고 가장 당찬 아델라가 성년도 되기 전에 페페가 죽었다고 생각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모습은 매우 상징적이다. 이미 현관문 사이로 아비 없는 아이를 밴 동네 처녀가 어떻게 돌팔매질을 당하는지 보아온 아델라는 자신의 탈출구가 막히자 죽음으로 기어이 새로운 탈출구를 찾아내고야 만다. 대체 베르나르다의 ‘집’이 얼마나 지옥같길래. 

 

원작보다 퇴보한 무대 위 여성상
 

로르카의 또 다른 작품 『예르마』는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과 비슷한 내용이지만 완전히 다른 결말을 보여준다. 주인공 예르마는 극이 시작했을 때 이미 결혼해 있다. 이는 마치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에 나오는 딸들의 결혼 생활을 예고하는 듯하다. 예르마는 오래전부터 남편에 대한 관심과 희망을 모두 잃고 인생의 마지막 희망으로 자식을 원한다. 낯설고 적대적인 타인들로 가득한 집에서 자신의 편을 만드는 방법은 자신의 배로 자식을 낳는 방법뿐이니까. 하지만 남편은 아이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마지막 장면에서 예르마는 자신의 의견을 단 한 번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섹스의 상대로 자신을 대상화하면서도 전혀 잘못을 느끼지 못하는 남편을 목 졸라 죽여버린다. 남편의 죽음은 곧 예르마 자신의 죽음이다. 남편의 집안에서 예르마의 지위는 남편으로 인해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르마는 수동적으로 자살하지 않고 분노에 미쳐 남편을 먼저 죽인다. 그것도 목을 졸라서. 살인은 자신의 인생을 망친 당사자에 대한 분노가 응집된 행위다. 
 

로르카가 『예르마』를 발표한 건 1934년의 일이다. 당시 스페인에서 여성이 아버지나 남편의 보호 없이 직업을 가지고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시골 여인 예르마는 더욱 보수적인 환경에 처해 있다. 그럼에도 예르마는 공동체와 가족에 동화되기는커녕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친다. 하지만 2016년 런던에서 초연되어 올해 NT 라이브로 국내 국립극장에서도 상영된 <예르마>는 다르다. 사이먼 스톤이 연출하고 각색한 이 공연은 작품의 배경을 현대의 런던으로 옮기고, 예르마를 ‘보통의 삶’을 추구하다 망가지는 여인으로 그렸다. 작품 속 예르마는 기괴할 정도로 임신에 집착한다. 임신만 할 수 있다면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의 아이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리고 남편의 목을 조르는 대신 자학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다. 1934년의 예르마도 남편의 목을 졸랐건만 2016년의 예르마는 스스로 파멸한다. 80년 넘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성 주인공의 성격은 오히려 더 편협해지고 퇴보했다. 이 작품이 현재의 런던을 보여준다는 평단의 평이 사실이라면 여성들의 입지에는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2006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역시 원작과 결말이 조금 바뀌었다. 결말에서 베르나르다는 페페에게 총을 쏘고 마치 그가 죽었다는 듯이 말한다. 그 말에 자극받아 쐐기를 박는 것은 짝사랑과 욕망에 눈이 먼 마르티리오다. 왜 거짓말을 했냐는 다른 자매의 힐난에 ‘벌을 주려고’ 그랬다 답하는 마르티리오의 대사는 원작에는 없다. 벌은 아델라의 자살로 실현된다. 원작 속 아델라가 실패한 지배자인 베르나르다의 말로 목을 맸다면, 뮤지컬 속 아델라는 연적 마르티리오의 대사로 목을 맨다. 욕망의 싸움에서 여성의 적은 여성이 된다. 살짝 바꾼 결말 때문에 아델라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가부장제의 대리인 베르나르다가 아닌 욕망 그 자체로 변경된다. 로르카는 80년 전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 여성들이 선 자리는 얼마나 나아진 것일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3호 2018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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