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혁의 목표는 매년 30퍼센트씩 성장하는 것이다. 더도 덜도 아닌 30퍼센트인 이유는? 언제나 작년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때면, ‘딱 30퍼센트만 더 잘했더라면’이라는 아쉬움을 스스로 떨치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즉 30퍼센트는 그가 스스로에게 합격점을 줄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인 셈이다. 2021년,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이하 <외쳐, 조선!>)의 단 역할을 맡아 뮤지컬 배우로서의 첫발을 당차게 뗀 그가 다시 한번 <외쳐, 조선!> 무대로 돌아왔다. 그는 오늘도 30퍼센트의 성장을 꿈꾸며 무대에 오른다.
<외쳐, 조선!>을 다시 만난 만큼, 데뷔 후 4년간의 시간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겠죠?
지난 4년은 제 부족함을 알아가는 시간이었어요. 27살에 데뷔했으니, 저 나름대로는 어리지 않고, 무대에 오를 준비가 충분히 된 상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저는 단이처럼 무모하게, 열정과 패기만 믿고 움직였던 것 같아요. 특히 이번 시즌 공연을 준비하면서 2021년 시즌의 공연 영상들을 다시 보는데, 고통스럽더라고요. (웃음) 분명히 최선을 다해서, 만반의 준비를 한 뒤 무대에 오른 거였는데, 지금 보니 내가 어느 부분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너무 잘 보이는 거죠. 그래도 마음가짐 자체는 그때가 더 단이스러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것도 두렵지 않고, 불같이 타오르는, 그런 마음이요.
다시 <외쳐, 조선!>과 단을 만난 지금 정혁 씨의 마음가짐은 어떤데요?
책임감이 커요. 어깨가 무겁다는 말이 실제로 체감될 정도로요. 이전에는 막내로서 형, 누나가 이끌어 주는 대로 따랐다면, 이제는 새로 투입된 멤버들을 위해서라도 제가 중간에서 역할을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무게감을 느껴요. 제가 처음 이 작품을 만났을 때 같은 단 역할의 희준이 형에게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거든요. 그래서 저 역시 새롭게 합류한 분들에게 하나라도 더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했어요. 뭐랄까, 단이로서 바라봐야 했던 세상을 이제 정말 똑바로 마주하게 된 기분이에요.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혁 씨의 내면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텐데, 이번 시즌의 단을 바라볼 때 새롭게 느껴지는 점이 있던가요.
저는 작품을 떠나보낸 후 그리움을 크게 느껴요. <외쳐, 조선!>의 지난 시즌 공연을 마친 후에도 그랬고요. 그런데 그 그리움이 단이에게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가족에 대한 그리움, 동료에 대한 그리움 등이요. 2021년에는 세상과 부딪히고, 투정 부리고, 부정적인 감정이 많은 단이였다면, 이제는 투정이나 불만보다는 애틋함이나 그리움이 많은 단이가 되었어요. 작품을 그리워한 제 마음이, 인물을 애틋하게 바라보게 된 제 마음이 자연스럽게 캐릭터에게 녹아들었나 봐요.
극 중 단은 골빈당을 만나 성장하는 과정에서 유대감, 그리움, 배신감 등 다양한 감정을 마주합니다. 그중 단으로서 유독 크게 느껴지는 감정이 있다면요.
첫 번째가 앞서 말한 그리움이라면, 두 번째는 그 그리움 속에 숨어 있는 분노와 울분이에요. 진의 정체를 알게 되는 장면부터 ‘운명’ 넘버를 부르는 장면까지가 단으로서 가장 많은 감정을 쏟아내는 순간인데, 그때는 정말 다른 무엇보다 단이가 지닌 울분을 있는 그대로 토해내는 것에 집중하고 있어요.
2021년, 2023년에 이어 <외쳐, 조선!>과 함께하는 세 번째 시즌입니다. 그간 박정혁의 단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무엇을 잃지 않고자 했는지 궁금합니다.
변하지 않은 건 ‘진심‘이에요. 이 작품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늘 진심으로 대했고, 지금도 그 진심을 이어오고 있어요. 그리고 또 하나 있다면 ’뜨거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단이가 장난치고 까부는 것 같아 보여도 그 속은 뜨겁게 끓고 있거든요. 진심과 뜨거움, 이 두 가지는 제 안에 계속해서 품고 있어요. 변화한 게 있다면, 처음에는 마냥 단이의 발걸음을 쫓아갔던 제가 이제는 단이와 나란히 서서 그의 시선으로 이 이야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에요.
작품, 캐릭터가 익숙해질수록 처음에 느꼈던 뜨거움은 식기 마련이잖아요. 뜨거움을 지키기 위해 정혁 씨는 어떤 노력을 했나요.
무언가가 계속해서 제 안에 축적될 수 있도록 행동했어요. 책도 많이 읽고, 영화도 많이 보고, 운동도 하고, 레슨도 받고…. 내 안에 무언가 쌓여야 그걸 장작 삼아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처음 단이라는 인물을 만났을 때의 목표 중 하나가 ‘다음 시즌에 다시 단 역을 맡게 된다면, 그땐 지금보다 적어도 30% 이상 성장해 있자’는 것이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단이와 맞닿기를, 그래서 인물을 더 잘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랐거든요. 30% 성장은… 아직 이루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요. (웃음)
여담이지만, 최근 공연 중 ’뜨거움‘을 충전한 순간이 있었어요. 마티네 공연이었는데, 공연 중간중간 유독 호응을 잘해주시는 어머님 관객이 한 분 계셨어요. <외쳐, 조선!>은 특히 관객분들의 에너지가 중요한 작품이다 보니 객석에서 그렇게 함께 호흡해 주시는 게 느껴지면 배우 입장에서도 큰 힘이 되는데, 그날도 그분 덕에 힘을 얻으며 공연하고 있었죠. 그러다가 커튼콜 때 제가 관객분들의 호응을 유도하기 위해 입을 떼는 순간, 그분이 저보다 한발 앞서서 ‘질러!’라고 외쳐주신 거예요. 그걸 들은 배우 모두 순식간에 흥이 올라서, 다들 커튼콜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뛰놀았어요. 객석에서 그렇게 즐겨주시는데 저희가 어떻게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아마 이번 시즌 최고의 에피소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웃음) 이 에피소드뿐만 아니라, 저희 공연을 즐겨주시는 모든 관객분들 덕분에 정말 행복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어요.
<사칠> <배니싱> 등 대학로 소극장 공연을 통해서도 관객을 만났습니다. <외쳐, 조선!>과는 다른 결의 작품들인데, 2, 3인극을 통해 관객을 가까이서 마주하며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깨달았나요.
매 순간 진실해야 한다는 것을 크게 깨달았어요. 내가 나오는 장면이 아닐 때, 무대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요. 관객분들은 100분 동안 계속해서 저를 통해 한 캐릭터를 보고 계시는데, 제가 무대 뒤에서 순식간에 캐릭터가 아닌 박정혁으로 돌아간다는 게 왠지 모르게 관객분들을 배신하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특히 2, 3인극은 소수의 배우가 공연을 이끌어 가기 때문에 배우 한 명이 흐름을 놓치면 관객 역시 그 흐름을 따라올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 배우가 그날 공연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무대 뒤에서도 최대한 캐릭터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두 작품을 통해 이런 가르침을 얻은 덕분에 <외쳐, 조선!>으로 돌아온 후, 공연이 진행되는 150분 동안 제가 단으로서 존재하는 시간이 훨씬 길어졌어요.
지난해에는 <수사반장 1958>을 통해 처음으로 드라마 출연에 도전했었죠. 새로운 경험은 어땠나요?
지금 생각해도 꿈만 같은 기억이에요. 저를 좋게 봐주신 작가님께서 저를 위해 새로운 캐릭터를 써주셔서 합류하게 된 거였는데, 우선 저는 그 사실만으로도 감사했어요. 이렇게 멋진 현장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기에 매 순간 정말 몸을 아끼지 않고 최선을 다해 임했고요. 액션 장면을 찍을 때는 제작팀에서 챙겨주신 보호 장구도 착용하지 않고, 아픈 줄 모르고 날아다녔죠. 그런 모습을 좋게 봐주신 건지 촬영을 거듭할수록 제가 이끌어가는 장면이 생기고, 계약에 없던 촬영분이 추가되기도 했고요. 작품을 함께한 이제훈, 이동휘 형님들이 저에게 직접 카메라 앞에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주셨던 순간도 여전히 꿈 같아요. 앞으로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양한 현장에서 새로운 연기를 하고 싶어요.
데뷔 이후 일 년에 한두 작품씩, 천천히 걸어가고 있어요. 배우의 길 위에 있는 지금, 정혁 씨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제대로’ 하는 것. 최고의 노력으로, 최선의 결과물을 선보이는 것. 공연이 끝난 후, 저 스스로 아쉬운 날이 있어요. 큰 실수를 한 건 아니지만, ‘컨디션이 조금만 더 좋았다면’, ‘마이크가 떨어지지 않았다면’, ‘그래서 더 집중할 수 있었다면‘ 같은 생각이 드는 날이요. 제게 ‘제대로 하는 것’은 그런 사소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예요. 천천히, 한 작품씩 소화해 나가는 것도 그 노력의 일환이고요. 무엇보다, 지금처럼 꾸준히 성장하면서 나아가는 게 저의 가장 큰 목표입니다. 늘 30퍼센트의 성장을 바라보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