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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뮤지컬 캐릭터에게 보내는 편지, <사의 찬미> 언제 어디에서건 당신의 삶이 찬란했길 [No.192]

글 |박보라 2019-09-29 3,164

뮤지컬 캐릭터에게 보내는 편지

 

예로부터 일 년 사계절 중 유일하게 ‘독서’와 함께 설명되는 가을이 왔습니다. 맹렬하게 내리쬐던 햇볕이 조금씩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는 시기, 가을은 독서만큼이나 글쓰기가 어울리는 계절 아닐까요. 그래서 이제 곧 머지않아 다시 만나게 될 당신께 편지를 띄웁니다. 나는 당신과 이 책을, 이 영화를, 이 드라마를, 함께 나누고 싶노라고.


 

언제 어디에서건 당신의 삶이 찬란했길

 

심덕 언니, 저는 도쿄로 향하던 관부연락선의 한 객실 안,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를 기억해요. 죽음을 찬미한다니,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이토록 슬픈 노래를 불렀을까 싶더군요. 그 노래의 가사는 이랬죠. ‘눈물로 된 이 세상이 나 죽으면 그만일까.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맛깔나게 담배를 피우는 언니의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왔죠. 제가 언니의 삶에 푹 빠져버린 이유는 따로 있어요. 언니가 선택한 삶의 마지막 아닌 마지막 결정이 낭만적이었거든요.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곳에서 같은 시간에 눈을 감을 수 있다는 건 참으로 특별하잖아요. 이태리로 향한 언니는 ‘인생의 2막’을 살았겠지만요. 그 이후로 거의 백 년이 지났어도 경성 아니, 서울은 고루하고 답답해요. 그래서일까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바다로 뛰어들어 새로운 세상으로 가겠다고 다짐한 언니가 백번이고 천 번이고 이해가 됐죠. 다만 그 남자가 결혼한 유부남이라는 소식을 듣자마자, 언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이건 아니야’라고 수없이 소리치고 싶었지만 어쩌겠어요. 이 또한 언니가 선택한 걸요.

지난해 가을, 부산에서 <초연>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언니가 참 좋아할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이유라고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매혹적인 분위기가 언니와 잘 어울리겠다 싶었거든요. 성조가 9개나 된다는 광둥어를 듣다보면 노래를 듣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게다가 동양과 서양이 오묘하게 조합된 홍콩의 분위기를 보면 언니도 마음이 홀라당 빼앗길걸요? 언니가 이태리로 가는 긴 여정에 잠시 홍콩에 들렀으면 참 좋을 텐데 말이죠. 분명 언니도 홍콩을 좋아할 거예요. 홍등 사이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마저도 낭만적이고 매혹적인 곳이니까. 영화는 왕년의 라이벌이었던 두 여배우가 한 연극에 함께 출연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예요. 전 연기력과 대중적인 인기는 물론 행복한 가족까지 가졌던 배우 옥문을 보면서, 언니가 언뜻언뜻 생각나더군요. 슬프게도 그녀는 하루아침에 본인이 가진 모든 걸 잃어버려요. 비행기 추락 사고로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 내연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유학 간 아들은 갑작스럽게 커밍아웃을 해요. 심지어 남편이 죽은 후, 빈털터리가 된 그녀는 살고 있던 집을 떠나 허름한 집으로 이사하죠. 언니도 알다시피 불행은 전염병과 같아서 걷잡을 수 없이 퍼지잖아요. 전 언니가 행복한 삶의 최고점에서 사람에게 상처받고 세상에 비난받는 옥문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윤심덕을 모르는 일본 유학생이 없을 정도로 촉망받는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였지만, 언니를 둘러싼 여러 소문은 결국 언니를 벼랑 끝으로 몰았으니까요. 영화에서 옥문은 솔직하게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아요. 그러니까,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내고 말죠. 전 그 모습이 참 좋았어요. 상처는 아물고 새살이 돋는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언니 역시 이태리에서 옥문처럼 상처를 치유하고 소신 있게 자신을 끝까지 지켜 나갔길 바라요. 세상에게 받았던 손가락질은 전부 잊어버리고 언니의 꿈과 행복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연극의 커튼콜과 함께 끝난 영화 너머의 옥문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언니의 마지막을 정확하게 모르는 것처럼요. 다만 이건 알 것 같아요. 언니는 자신의 상처를 되돌아보고 다시 살아간 옥문처럼 참 멋진 삶을 살았을 거라는 걸요. 심덕 언니, 전 언니가 죽음보다는 삶을 찬미하길 바라요. 누가 뭐래도 언니는 삶이 더 잘 어울리는 여자니까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2호 2019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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