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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ULTURE INTERVIEW] 『극장에 대하여』 저자 이승엽, 극장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No.199]

글 |박병성 사진 |심주호 2020-04-16 5,591

『극장에 대하여』 저자 이승엽
극장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공연 분야, 특히 극장 일을 하고 싶은 이라면 한 번쯤 들춰보았을 책이 있다. 바로 『극장경영과 공연 제작』(서울: 역사넷, 2002)이다. 2002년 발간한 이 책은 이미 절판되었지만 여전히 예술 경영 전공자의 필독서로 꼽힌다. 이 책의 저자 이승엽 교수가 18년 만에 신간 『극장에 대하여』(마인드빌딩, 2020)를 발간했다. 1987년 예술의전당 공채 2기로 예술 경영에 입문한 이승엽 교수는 그곳에서 14년간 공연 기획, 제작, 운영, 경영지원 팀장으로 실무 감각을 익혀 왔다.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던 그는 2015년 국내 대표 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 사장을 3년간 역임하며 시즌제를 정착시키고, 극장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론적 지식과 현장의 실무 경험을 두루 갖춘 저자와 극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공 극장의 네트워크와 역할
『극장경영과 공연 제작』을 내고 18년 만이다. 다음 책을 쓰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가 무엇인가?  공동으로 연구한 자료집이나 예술위원회에서 발행하는 단행본 형식의 저작물은 몇 권 냈다. 시장에 내놓은 책은 오랜만이긴 하다. 예술 경영 책들은 현장과 닿아 있기 때문에 금방 낡아버린다. 제도나 법률이 바뀌면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 그럴 시간을 놓치고 부담만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프롤로그에서 이 책은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한 워밍업이라고 했다. 어떤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룰 예정인가?
약간은 엄살인데, 극장경영을 말할 때 필수적인 프로그래밍, 재원 조성, 관객 개발, 조직 관리 이런 각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이 책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그런 구체적인 것을 다루지 않는다는 걸 밝히기 위함이었다. 각론들은 구체성을 더해야 한다. 이런 내용은 내가 쓸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프로그래밍이나 정책의 큰 방향은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구체적이고 트렌디한 세부 내용을 쓰기에는 내가 낡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이야기일수록 생생해야 현장에 도움이 되는데 옳은 이야기만 해서 뭐하겠나. 

이번 책에서는 극장에 대한 개론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후 필요한 작업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준다면.  본격적인 이야기를 했다기보다는 그것을 위한 워밍업이긴 하다. 책에서는 극장의 종단면으로 역사에 대해 살피고, 횡단면으로 극장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와 현대 극장의 트렌드를 다루고 있다. 이후 작업은 앞서 말한 각론들인데 이건 앞선 저서에서도 어느 정도는 살피고 있다. 이 책을 쓰면서 좀 더 집중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 우리나라의 공공 극장 네트워크와 역할이다. 

공공 극장의 역할에 대해 별도로 살펴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가 무엇인가?  에필로그에도 썼지만 우리 공연 시장에서 공공 극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70% 정도 된다. 그것도 최근 민간 극장 형태의 뮤지컬 전용 극장이 많이 생겨나서 완화된 것이지, 10년 전만 해도 80%대까지 이르렀다. 반면 공연 단체는 공공 비중이 12%에 불과하다. 콘텐츠는 민간에서 만들고 공공 극장에서 유통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우리 공연 시장이 효과적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공공 극장의 변화가 압도적으로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적어도 예술 분야에서는 연구나 리서치가 많이 되어 있다. 그럼에도 공공 극장의 역할을 살피는 연구는 심도 있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실적인 이유로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 이것은 피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2007년에도 <공공 극장 활성화를 위한 진단과 제언>이란 글을 세미나에서 발표하고 이 책에도 실었다.   이 책에서 기존 글을 인용한 것은 유일한 대목인데 문예회관에 대해 몇 가지 제안을 했다. 문제는 그것이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지금은 어느 정도 여건이 성숙됐다. 예산 문제가 큰데, 지자체가 극장에 예산을 책정하는 것이 지자체의 의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결국은 주민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문화의 편익에 대해 공감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재생 사업을 할 때도 주부 부처는 건설부인데도 문화라는 말을 넣는다. 문화가 단순히 메타포나 포장용이 아니다. 지금이 변화의 적기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판단이 다를 수 있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예술의 편익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두텁다.  

1장은 극장의 역사를 살피고 있다. 본격적으로 극장의 역사를 다루기에 앞서 문화 예술에 대한 개념부터 정리하고 역사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머시브 시어터나 사이트-스페시픽 시어터에 대해 이야기할 때 중세 연극적인 형태를 띤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말에는 생략된 부분이 있다. 우리가 아닌 유럽의 중세이다. 우리 중세엔 그런 개념이 없다. 우리는 종종 서구의 것을 우리 것이라고 간주하고 얘기한다. 서구화 또는 근대화는 지난 100년 동안 이루어진 일인데 그것이 우리의 인식 구조를 지배하고 있다. 문화 예술이라는 말이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은데 다른 나라에서는 쓰지 않는 단어다. 그런 차이를 이야기하기 위해 문화 예술을 예로 든 건데 사족이 길었다. 

극장을 영어로 옮기면서 흔히 시어터(Theatre)라고 하는데 둘의 차이에 대해서도 자세히 이야기한다.  서양의 시어터는 공연을 상연하는 건물, 즉 베뉴(Venue)로서의 의미 이외에도 연극 예술, 연극 단체 등을 모두 포괄하는 폭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극장은 베뉴로서의 한정적인 의미로만 사용한다.   이 책에서도 좁은 의미로서 극장을 사용한다. 재밌는 것은 우리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구별하는데 그 개념이 나온 곳에서는 뮤지엄이란 하나의 단어로 쓴다. 서구의 것을 받아들였지만 우리의 조건에 맞게 변화한 것이다.  

우리는 왜 시어터의 의미를 축소해서 받아들였을까?  이건 언어학자의 도움을 좀 받아야 할 것 같은데, 라틴어나 영어권 계열의 나라에서는 시어터의 단어도 비슷하고 폭넓게 사용하는 개념도 다 비슷하다. 시어터가 객석을 지칭하는 그리스어 테어트론(Theatron)에서 왔는데 언어의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공유했을 것이다. 극장이라는 말이 동아시아권에 생긴 것은 근대 이후이다. 전에는 시어터가 다양한 의미를 함의하고 있었지만 의미가 분화된 상태에서 동아시아권에서 받아들이다 보니 하나의 의미만 가져오게 된 것 같다. 표음 문자였다면 또 다를 수 있었을 텐데 표의 문자이다 보니 한자 언어의 특성상 한정된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미래의 극장
2002년 앞선 저서를 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공연계, 또는 극장 부문에서 크게 차이를 느끼는 점이 있는가?
2002년에는 원고량이 지금의 두 배여서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쓰기는 쉬웠다. 그만큼 공연 생태계가 덜 분화되고 단순했다. 사회 전반이 그렇듯 여러 측면에서 다양해졌다. 극장만 따지자만 앞선 저서에서는 극장 자체를 부정하는 이야기가 없었다. 이번 책에서는 상당 부분이 극장을 부정하는 내용이다. 이머시브 시어터나 재생 극장은 전통적인 극장을 부정하는 것들이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가장 큰 차이라면 우리가 어떤 모델을 만들 수 있는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강경화 장관과 BBC 방송의 인터뷰를 보고 해외에서 이 사람이 우리 수상이면 좋겠다는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세계인이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변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당사자인 우리도 놀라울 정도로 어떤 부분에서는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특히 청년 계층은 상실감이나 불안감도 크겠지만 정서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글로벌 기준을 가지고 있다. 

3장 현대 극장의 트렌드로 제일 먼저 ‘토털 시어터’를 꼽았다. 마치 ‘트랜스포머’처럼 변신하는 토털 시어터의 개념은 낯설다.  토털 시어터라는 말을 범용적으로 쓰진 않는다. 그로피우스가 80~90년 전에 처음 이 명칭을 사용했고, 그 뒤에는 그런 용도로 쓰지 않았다. 공연장 하드웨어를 필요한 만큼 지을 수 없으니까 극장 공간을 변화시켜서 공연에 최적화된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로피우스의 토털 시어터는 재정 문제로 실행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개념도로만 남아 있다. 볼륨을 조정한다든가 해서 건축가들이 다양한 시도를 한 도면들이 있는데 실행된 것은 없다. 도전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책에는 직접 방문한 해외 공연장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담겨 있다. 우리는 흔히 공연장에 가면 외관만 보게 되는데, 직업상 특별히 다르게 보는 것이 있나.   관객이 아니라 파트너로서 극장에 방문할 때 모든 곳을 다 둘러볼 수 없지만 구내식당은 꼭 둘러본다. 편향된 생각인지 모르지만 구내식당이 그 극장의 수준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경험상 구내식당의 메뉴와 가격, 품질, 크기 이런 것들을 판단하면 극장의 수준과 대충 비슷했다. 

본문에 나오는 문구이기도 한데, ‘모든 극장은 특별하다’를 부제로 붙였다.   그건 출판사가 제안한 것이다. 평소에 항상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모든 극장은 ‘특별하다’라기보다는 영어로 하면 ‘Specific’하다, ‘개별적이다’라는 말이 더 맞다. 극장마다 다 다르다는 것이다. 보편적인 요소는 있겠지만 각 극장에 모두 해당하는 솔루션이나 정답은 없다. ‘극장에 대하여’라는 책 제목은 내가 정했다. 출판사의 적잖은 저항에 부딪혔다. 주어도 없고 목적어도 없는 부사구이지 않나. 성격 때문이기도 한데 캐주얼하고 단정적이지 않은 제목을 붙이고 싶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무미건조한 이 제목을 흔쾌히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보완적으로 지금의 부제를 제안했던 것 같다.

3장에서는 현대 극장 트렌드로 여덟 가지를 서술하고 있다. 이를 포괄할 만한 현대 극장의 트렌드가 있을까?  에필로그에서 리처드 서던이 시간과 시대가 아니라 단계에 따라 공연 예술의 발전 과정을 구분했던 일곱 단계를 소개한다. 그렇다면 그다음 여덟 번째 단계가 무엇일까. 미래 극장의 키워드는 비정형, 탈장르, 융·복합, 혼종, 다양성 등이 될 것이다. 아마도 여덟 번째 단계는 기존의 극장은 천천히 무너지고 새로운 공간이 대체하지 않을까. 

앞선 대답이 이미 어느 정도 대답이 되었지만 마지막은 미래의 극장에 대한 질문이다. 미래의 극장을 전망해 준다면?  책에서 왜 미래의 극장에 대해 짧게 썼냐면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단정 지어 말하는 것을 피하는 스타일이기도 하지만 다른 부분에 비해 자신 없는 표현들이 많다. 지금처럼 열려 있는 상태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극장에 굉장히 많은 이해 관계자가 엮여 있다. 가장 중요한 이해 당사자는 관객이고 두 번째는 예술가이다. 그러나 그동안 극장이 꼭 그렇게 운영되지는 않았다. 소수의 운영자들이 스스로 정한 원칙이나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했다. 우리의 문화 예술에 대한 인식이 성숙해지고 있다. 앞으로는 관객과 예술가의 욕망을 더 고민하게 될 것이고 그것이 극장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9호 2020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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