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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지속 가능한 공연예술 ③ - 영미권 공연예술계가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법 [No.213]

글 |오한솔(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 2022-09-28 1,800

영미권 공연예술계가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법

 

그리스 시대에도, 로마 시대에도, 중세를 지나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도, 꽤나 오랜 세월 공연은 야외에서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날씨는 공연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다 공연이 실내 극장으로 들어온 17세기 이후부터 날씨는 더 이상 관극의 중요한 일부로 여겨지지 않았다. 때로는 빗줄기를 뚫고, 때로는 언 땅을 조심스레 디디며 극장에 가야 할지라도 공연은 이어져 왔다. 그러나 이제 날씨는, 그리고 그 총합인 기후는 단순히 극장의 바깥 풍경에 머무르지 않는다. 인류가 기후 위기에 직면하면서 예술과 자연환경이 상생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행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적, 전 지구적 요구에 다른 나라의 극장과 단체들은 어떻게 응답하고 있을까? 어떻게 해야 공연과 생태가 건강하게 공존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변화를 실천에 옮기고 있는 영미권 단체들을 소개한다.

 

 

꽃과 벌이 있는 탄소 중립 극장 National Theatre


수년 전부터 많은 영국 극장들이 환경 이슈를 고민하여 작품 라인업을 구성해 왔다. 최근에는 작품을 통해 기후 위기에 대한 관객의 의식을 제고하는 것에서 한발 나아가 극장 운영과 제작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추세다. 특히 내셔널 시어터는 영국을 대표하는 국립극장으로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2019년에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 기관이 되겠다고 발표하고, 개관한 지 반세기가 지나 노후화된 설비를 대대적으로 손보았다. 객석과 로비에는 적은 양의 전기로 더 밝은 빛을 내는 LED 조명을 설치하고, 단열 설비를 정비하는 등 시설 개보수를 통해 에너지 소비 효율을 높였다. 극장 운영에 소요되는 전기는 풍력과 태양력 발전을 통해 조달하며, 빗물 저장 탱크에 모인 빗물을 화장실 용수로 사용한다. 이들은 매년 구체적인 에너지 절감 목표치를 설정한 후 그 과정을 계속해서 모니터링하고 웹사이트에 공유하고 있다.


공연 제작 과정 또한 친환경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공연된 연극 <파라다이스>와 <트러블 인 마인드> 모두 재사용 또는 재활용 자재를 사용해 무대를 꾸몄다. 장기적으로는 영국 공연계에서 제시하는 친환경 공연 제작 가이드라인인 ‘시어터 그린 북(The Theatre Green Book)’에 따라 자재 중 50%를 재사용·재활용품으로 사용하고, 65%는 공연 후에 재사용·재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처럼 자원 순환을 적극 실천하는 한편, 새로 구매하는 자재나 소품이 발생시키는 탄소발자국을 꼼꼼히 계산하고, 해로운 화학물질 또한 줄임으로써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공연 외에도 관객이 극장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에 친환경적 사고가 녹아있다는 점이다. 극장에 도착하면 곳곳에 조성된 정원에서 토종 식물과 꽃을 만날 수 있다. 생물 다양성을 세심하게 고려한 조경이다. 로비의 기념품 가게에서는 작은 병에 담긴 ‘내셔널 시어터 꿀’을 팔고 있다. 꿀벌들이 극장이 위치한 사우스 뱅크 일대를 부지런히 오가며 모은 꿀이다. 극장 식당에서는 환경 윤리와 탄소발자국을 고려해 설계된 메뉴를 만날 수 있다. 모든 메뉴에 비건 옵션을 다양하게 추가했고, 나머지 재료 또한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신선 육류와 과채류는 대부분 국산으로 조달하며, 영국 외의 국가에서 공수하는 식자재의 경우 공정거래나 열대우림동맹(Rainforest Alliance) 인증을 받은 것만 쓴다. 이 밖에 커피 찌꺼기를 모아서 열효율이 높은 친환경 난방 연료를 제작하기도 한다. 이처럼 내셔널 시어터는 극장의 입장에서 어떻게 지속 가능한 공연을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하고 실천으로 옮기는 동시에 웹사이트를 통해 이런 변화의 과정을 관객 및 다른 단체들과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친환경 투어라는 새로운 모험 Julie’s Bicycle & New Adventures


공연과 환경의 교차점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투어 프로덕션이다. 많은 사람과 설비가 수개월에 걸쳐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과정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투어가 공연 산업의 중요한 일부가 된 현실에서 투어 프로덕션들이 친환경 실천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이에 따라 지속 가능한 투어 모델에 대한 논의 역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런 논의의 선두에 있는 두 단체가 바로 ‘줄리스 바이시클(Julie's Bicycle)’과 <백조의 호수>로 잘 알려진 안무가 매튜 본이 이끄는 ‘뉴 어드벤쳐스(New Adventures)’다. ‘줄리스 바이시클’은 런던 기반의 비영리 단체로, 창립자 앨리슨 티켈이 친구들과 함께 ‘줄리스’라는 식당에서 나누었던 지속 가능한 예술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했다. 이들은 기후 위기에 대해 고민하는 예술가들과 단체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창의적 해결책을 공유하는 행사를 주최하고, 친환경 컨설팅 및 트레이닝 서비스를 제공한다. 개별 단체가 각자의 상황에 맞는 친환경 계획을 수립하도록 돕는 매뉴얼을 무료로 배포하고, 기관들과 협력해 지속 가능한 정책 수립에도 참여하는 등 모든 층위에서 문화예술과 지속 가능성의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줄리스 바이시클’의 노력과 영향력을 잘 보여주는 한 예로 몇 해 전 이들이 민간 단체 ‘뉴 어드벤쳐스’와 손잡고 개발한 ‘크리에이티브 그린 투어링(Creative Green Touring)’ 파일럿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뉴 어드벤쳐스는 세계 투어 시스템의 리더이자 수혜자로서 자신들의 역할과 책임을 자각하고, 투어 과정을 더욱 친환경적으로 만들고자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섰다. 뉴 어드벤쳐스의 친환경 정책은 2016년~2017년 <빨간 구두> 투어의 탄소 배출 감사를 통해 프로덕션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여기서 나온 데이터를 기반으로 2018년 영국 내 <백조의 호수> 녹색 투어를 위한 정책을 사전, 사후 단계로 나누어 설계했다. 먼저 투어 시작 전 화물 운반 및 투어 팀의 이동 과정에서 예상되는 탄소 배출량 그리고 공연에 들어가는 전력과 자재 등을 일차적으로 점검한다. 그리고 투어가 끝나면 재평가를 거쳐 ‘크리에이티브 그린 인증’을 받게 된다. 이 파일럿 프로그램을 통해 뉴 어드벤쳐스는 2018년 업계 최초로 크리에이티브 그린 인증의 영예를 안았다.


친환경적인 투어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뉴 어드벤쳐스 내부에는 몇 가지 변화가 생겨났다. 우선 환경 문제를 전담하는 ‘그린 어드벤쳐스’라는 부서를 신설해 프로덕션이 환경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다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공표했다. 이에 따라 <백조의 호수> 분장실 풍경도 달라졌다. 여태까지 백조 분장에 사용되었던 메이크업 펜슬을 물감으로 대체했는데, 공연 중 두 번씩 샤워해야 하는 무용수들의 샤워 젤 사용을 줄이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한다. 또 하나 특기할 만한 것은 극장과의 소통 과정에 ‘그린 라이더(Green Rider)’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공연 팀이 극장에 필요한 장비들을 요구하는 문서인 ‘테크 라이더’와 비슷한 그린 라이더는 극장 측에 프로덕션의 친환경적인 비전을 공유하고 실천을 요청하는 문서다. 이를테면 공연 당일 관객에게 대중교통 이용을 장려할 것, 공연 팀의 식사는 인원수에 맞춰 필요한 만큼만 준비할 것, 백스테이지에 분리수거 함을 설치해 줄 것 등이다. 까다로운 요구 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프로덕션 혼자서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투어의 나머지 반쪽을 담당하는 극장들의 역할과 책임 또한 환기하고 요구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이런 선례를 통해 앞으로 점점 더 친환경적인 투어 프로덕션이 늘어날 것을 기대해 본다.

 

 

브로드웨이의 초록 대장 Broadway Green Alliance


브로드웨이에서는 어떤 변화와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을까? “13개월에 걸쳐 작업했던 무대 세트가 단 13회 공연 후에 쓰레기장에 처박히는 걸 본 후 본격적으로 재활용(Recycling), 새활용(Upcycling)을 추구하게 됐습니다.” 불에 그을린 문짝, 코르크 마개같이 버려진 물건과 창고에서 건져낸 자투리 자재로 꾸민 연극 <피터 앤 더 스타캐처>의 무대로 2012년 토니상을 수상한 디자이너 도니알 웨를의 말이다. 얼핏 ‘브로드웨이’ 하면 떠오르는 화려하고 환상적인 엔터테인먼트는 지속 가능성이라는 개념과 썩 어울리는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웨를의 작업은 창의성과 지속 가능성이 양립 가능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웨를은 본인의 작업에서 친환경적 디자인을 실천하는 것 외에도 ‘브로드웨이 녹색 연합(Broadway Green Alliance(이하 BGA))’에서 ‘프리/포스트 프로덕션 위원회’ 공동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공연 제작 전후 발생하는 폐기물을 줄이는 방법을 고민하고, 뉴욕 지역의 공연예술 공동체에 이를 소개하는 활동이다.


그가 활동하는 BGA는 2008년 <위키드>의 프로듀서 데이빗 스톤의 주도하에 꾸려져 15년째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BGA의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바로 ‘그린 캡틴’이다. 리허설 첫날, 프로덕션 팀 가운데 한 명을 그린 캡틴으로 지정해 BGA와 프로덕션의 친환경 노력을 공유하는 매개자 역할을 맡긴다. 개인 컵 사용하기, 화학물질이 들어간 얼음 팩 대신 냉동 완두콩으로 마사지하기 등 각 프로덕션마다 재미있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친환경 공연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인기 배우들이 그린 캡틴을 자처해 캠페인 홍보에 앞장서기도 한다. 오늘날 모든 브로드웨이 공연에 그린 캡틴이 활동하고 있으며, 오프브로드웨이와 지역 극장까지 포함하면 전국적으로 800여 명의 그린 캡틴이 활동하고 있다.

 


BGA는 브로드웨이의 풍경을 구석구석 바꾸어 놓았다. 우선 에너지 절감을 위해 모든 브로드웨이 극장 실내외 조명을 LED와 절전형 전구로 교체했다. 백스테이지도 달라졌다. 마이크와 손전등에 들어가는 일회용 건전지는 전부 충전식 배터리로 바꾸어 폐기물을 줄였고, 공연이 끝나면 친환경 세제를 사용해 에너지 소비 효율이 높은 세탁기에 빨래를 돌린다. 이 외에도 바인더 무료 대여 프로그램을 운영해 자원 순환을 장려하고, 일 년에 두 차례 진행하는 폐가전과 섬유 수거 운동을 통해 폐기물이 무분별하게 매립지로 가는 것을 막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공연 생태계 역시 자연 생태계의 일부라는 자각을 보여준다. 공연계가 지속 가능성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 일부 창작자나 관객은 ‘무대에서 볼거리가 사라지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길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니알 웨를의 무대 디자인이 보여주듯, 친환경에 대한 논의가 곧 창의력에 대한 제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후 위기는 오랜 세월 많은 사람이 무심코 내린 선택이 모이고 쌓여서 생겨났다. 이 말은 역으로, 개개인의 선택이 모이고 쌓이면 다른 변화도 낳을 수 있다는 뜻일 테다. 앞으로 공연계에 친환경 정책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과제는 창작자와 관객 양쪽 모두에게 탄소 배출 절감이 곧 예술적 타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설득하고 증명함으로써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예술적 결정과 경험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 될 것이다.

 

>> 지속 가능한 공연예술 ① - 공연예술계 기후행동
>> 지속 가능한 공연예술 ② - <기후비상사태: 리허설> 국립극단의 저탄소 공연 제작기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3호 2022년 6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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