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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OLUMN] <데스노트> 길에 떨어진 노트를 가져도 될까 [No.224]

글 |고봉주(변호사) 사진 |오디컴퍼니 2023-05-30 1,142

<데스노트> 
길에 떨어진 노트를 가져도 될까

 

 

떨어진 노트를 가져간 라이토


<데스노트>는 사신이 사용하는 ‘데스노트’에 이름이 적힌 사람은 죽는다는 설정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우연히 길에 떨어져 있던 데스노트를 손에 넣은 주인공 라이토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데스노트에 흉악범들의 이름을 적어 죽게 만든다. 비록 죽은 자들 모두 형사 처벌을 받아야 할 흉악범이지만 라이토의 행위가 범죄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이와 별개로 라이토가 길에 떨어진 노트를 주워서 마음대로 사용한 행위는 적법할까?

 

라이토의 행위가 적법하냐 아니냐는 데스노트의 원래 소유자인 사신 류크의 의사에 따라 좌우된다. 만약 류크가 데스노트를 분실했을 뿐 소유권을 포기하거나 점유를 상실할 의사가 없었다면, 데스노트를 임의로 가져간 라이토는 점유이탈물횡령죄로 형사 처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극중에서 류크는 자신의 소유물인 데스노트를 일부러 인간 세상에 떨어트렸다. 류크가 처음부터 누군가 데스노트를 주워 이용하게 만들 목적으로 이런 일을 벌인 거라면 라이토가 점유이탈물횡령죄로 처벌받을 일은 없다. 다만 류크의 의사에 따라 둘 사이의 법률 관계는 달라질 수 있다.


첫째로 류크가 데스노트의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고 일정 기간 빌려주는 경우, 류크와 라이토는 사용대차 법률 관계가 된다. ‘사용대차’란 상대방에게 무상으로 목적물을 인도하고 상대방은 이를 사용한 후 반환할 것을 약정하는 계약이다. 쉽게 말해 무상으로 물건을 빌려주는 것을 말한다. 이와 비교되는 개념으로 ‘소비대차’가 있는데, 이는 상대방에게 금전 등의 소유권을 이전하고 상대방이 금전 등을 반환할 것을 약정하는 계약이다. 이 역시 쉽게 말해 돈을 빌려주는 것을 말한다. 정리하면 사용대차는 무상이고, 목적물은 금전이 아니며, 그 소유권이 상대방에게 이전되지 않는다. 반면 소비대차는 유상과 무상 모두 가능하고(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거나 받지 않는 경우를 떠올려 보라), 목적물은 금전이 대표적이며, 소유권이 상대방에게 이전된다. 따라서 류크가 데스노트의 소유권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면 데스노트를 발견하여 사용한 라이토와의 법률 관계는 사용대차라고 판단할 수 있다. 

 

둘째로 류크가 누구든 데스노트를 줍는 사람에게 소유권을 넘기겠다는 의사를 가진 경우, 이는 법률상 증여에 해당한다. ‘증여’는 무상으로 재산을 상대방에게 수여하고 상대방이 이를 승낙하는 계약을 말한다. 증여의 목적물은 돈이나 물건 모두 가능하다. 소유권이 상대방에게 이전된다는 점은 소비대차와 같지만, 그 목적물을 나중에 다시 반환할 의무가 없다는 점이 다르다. 즉, 돈을 빌리면 갚아야 하지만, 돈을 증여받으면 갚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류크가 라이토에게서 데스노트를 돌려받을 생각이 없다면 그것은 증여라고 봐야 한다.


이쯤에서 의문을 품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인간 세상에 떨어트린 데스노트를 어떤 사람이 주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류크가 그 사람과 계약을 체결했다고 볼 수 있는지 말이다. 법적으로 ‘계약’은 청약과 승낙이 합치하면 성립하는데, 여기서 청약은 불특정 다수인에 대해서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가격표를 붙인 상품을 가게에 진열하거나 자동판매기를 설치하는 것은 누가 될지 모르는 손님에 대한 청약이 된다. 류크가 누구든 줍는 사람에게 빌려주거나 증여할 생각으로 데스노트를 길에 놓아둔 것 역시 청약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라이토가 노트를 주워 류크의 청약을 승낙한 순간, 류크와 라이토 사이에는 사용대차 또는 증여 계약이 성립했다고 볼 수 있다.

 

 

사형수를 범죄 수사에 이용한 L


사람들이 범죄자를 처단하는 미지의 존재를 ‘키라’라고 부르며 신봉하기 시작하자, 키라를 잡기 위해 베일에 싸인 명탐정 L이 나선다. L은 사형 집행이 예정된 사형수를 자신으로 위장시켜 생방송에 내보낸다. 이를 본 라이토는 L을 죽이기 위해 방송에 나온 사형수의 이름을 데스노트에 적고, 결국 L이 아닌 사형수가 죽게 된다. 이처럼 공권력을 행사하여 사형수를 범죄 수사에 이용하는 행위는 적법할까?

 

우리나라는 형의 종류와 집행 방법을 형법에서 법률로 규정하고 있다. 법에 정해진 형의 종류에는 사형, 징역, 금고, 자격상실, 자격정지, 벌금, 구류, 과료, 몰수가 있다. 이외에 형벌의 종류를 임의로 만들어서 부과하는 것은 금지된다. 형의 집행 방법도 법으로 정해져 있는데, 사형은 교정시설 안에서 교수형으로 집행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극중 L과 경찰의 공권력 행사는 위법하다. 비록 방송 당일에 사형 집행이 예정되어 있었다고 하나 사형수가 형법에서 정한 교수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목숨을 잃었고, 그 집행도 교도소 내에서 이뤄지지 않았다. 만약 예정된 사형 집행 시각보다 이른 시각에 방송을 했다면 사형수는 법에서 정한 것보다 더 빨리 목숨을 잃었으므로 여러모로 적법한 공권력 행사라 할 수 없다.

 

이 경우 사형수의 유족은 국가를 상대로 국가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 국가배상은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그 손해를 배상하는 것을 말한다. L과 경찰은 사형수가 키라(라이토)에 의해 죽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방송에 내보냈으므로, 수사라는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로 형법을 위반해 사형수에게 손해를 입혔다고 볼 수 있다. 설령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다 해도 최소한 과실은 인정된다. 하지만 사형수는 이미 사망했으므로 대신 그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4호 2023년 5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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