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라이징 스타 특집_<봄을 닮은 얼굴들>
이토록 반짝이는 봄, 무대 위에도 다채로운 반짝임이 가득합니다. 꽃봉오리 터지듯 눈부신 가능성을 한껏 발산하고 있는, 지금 무대 위에서 가장 반짝이는 여덟 명의 배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배우 김단이의 삶에서 ‘꿈’은 전부와 다름 없다. 어린 나이부터 무대에 서기를 소망했던 그는 꿈이 현실이 되는 날만을 기다리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갈고닦았다. 그 과정에서 삶의 무게가 그를 짓누르는 날도 있었지만, 김단이는 꺾이지 않았다. 자신에게 찾아올 단 한 번의 순간을 고대하던 그는 비로소 찾아온 ‘뮤지컬 배우’라는 기회를 손에 꽉 쥔 채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
2021년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으로 데뷔한 후 4년이 흘렀습니다. 배우의 길을 걸어온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4년이 정말 금방 지나간 것 같아요. 처음 데뷔했을 때를 떠올려 보면, 되게 희망찼어요. 배우 지망생 시절 주변 선배들이나 교수님이 항상 ’시작이 어렵지, 한 번 물꼬를 터놓으면 그 후로는 수월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래서 ’이제 나에게도 뮤지컬 배우라는 길이 열리겠구나!‘ 했는데, 현실은 녹록지 않더라고요. (웃음) <스프링 어웨이크닝> 이후 다음 작품을 만나는 게 쉽지 않았거든요. 오디션 기회도 많지 않았고요. 안주하지 말고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새로운 대학교에 편입했어요. 연기도 다시 배우고, 발성도 다시 배우고. 차근차근 기초부터 다시 다져서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각오였어요. 그렇게 다시 배우로서 자질을 기르다가, 극단 걸판의 오디션을 보게 됐고, <드롭스>와 <앤ANNE>이라는 작품을 만나 다시 무대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스프링 어웨이크닝>을 마치고 2022년 <드롭스> 무대에 서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2023년 <앤ANNE>을 마치고 <비아 에어 메일>을 만나기까지 또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더라고요. 배우로서 많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시기였겠죠.
마음이 많이 약해졌었어요. 하필 그때 ‘넌 키가 작아서 배우 생활 오래 못 할 거다‘ 같은 말을 많이 들었어요. 지금 들으면 ’네가 뭔데!‘ 하면서 넘길 수 있는 말인데,(웃음) 마음이 약해져 있을 때 그런 말을 들으니까 쉽게 흔들리더라고요. ’진짜 나랑 안 맞는 길인가?’, ‘내가 억지로 버티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래서 이런 저런 일을 한번 해봤어요. 그중 하나가 백화점에서 향수를 판매하는 거였는데, 제가 거의 ‘판매왕’이 될 정도로 판매를 잘 해서(웃음) 담당자 분에게 ‘직원 할 생각 없냐‘고 제안까지 받았을 정도예요. 그런데 그 제안에 선뜻 대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마음 한편에 여전히 연기에 대한 욕심이 남아있었던 거죠. 그러다가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어요. <비아 에어 메일> 출연 제안 연락이었어요.
비행기를 타고 운명 같은 작품이 날아온 거네요. (웃음)
감사한 마음에 바로 대본을 읽어봤는데, ‘메일보이‘ 역할이 저랑 닮은 구석이 너무나 많은 거예요.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면서도 비행사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메일보이의 모습이 제가 잠시 잊고 있었던 제 꿈을 상기시켜 줬고요. 내가 이 인물에 대해 느낀 감정을 관객분들에게 잘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바로 출연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작품에 대한 애정이 큰 만큼 공연을 준비할 때도 정말 많이 고민하고, 노력했고요. 관객분들이 저의 ’메일보이‘를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무엇보다 <비어 에어 메일>을 하면서 좋은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났어요. 함께한 배우, 스태프 분들 모두 너무나 다정한 분들이었어요. 일을 하면서 크고 작은 상처를 안 받을 수는 없잖아요? 저는 그 상처를 유독 크게 받는 편이었는데, <비아 에어 메일>에서 만난 언니, 오빠들이 그 상처를 어떻게 해야 나만의 방식으로 극복할 수 있는지 많이 알려줬어요. 여러모로 잊지 못할 작품이에요. <비아 에어 메일>을 시작으로 <이블데드> <쿠로이 저택엔 누가 살고 있을까?>까지 연이어 만나서, 2024년은 제게 벅차고 과분한 한해였어요.
차지연 배우를 보고 뮤지컬 배우를 꿈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꿈을 꾸게 된 순간을 다시 한번 돌아볼까요.
전 9살 때부터 춤을 췄어요. 자연스럽게 아이돌 가수가 되는 걸 꿈꿨고, 생각보다 더 빠른, 초등학생 시절에 가수 데뷔를 하기도 했어요. 오래 활동하지는 못했지만요. 그 후로도 가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학창 시절 내내 연습만 했어요. 그러다가 고등학생이 되었고요. 주변의 친한 언니, 오빠들, 친구들은 다 데뷔를 하는데 저만 아무것도 못 하고 가만히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왜 열심히 한 과정만 있고 결과는 없는 거지?’ 싶어서요. 지금 돌아보면 뭐든 할 수 있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저는 어린 시절부터 너무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아부었다 보니 인생이 다 끝난 것 같고, 지치더라고요. 그러던 중 같이 노래 학원을 다니던 언니가 음악 프로그램 방청을 가자고 하는 거예요. 근데 그때 저에게 방송국은 내가 닿을 수 없는, 닿지 못한 공간처럼 느껴져서 오히려 피하고 싶었거든요. 언니가 진짜 한 번만 같이 가자고 부탁해서 못 이기는 척하고 갔는데 게스트로 차지연 배우님이 출연하셨어요. 그분이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시는데, 너무 반짝이고 행복해 보였어요. 어둡고 암울하던 그때의 저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던 거죠. 마치 벼락을 맞은 것처럼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촬영 쉬는 시간에 차지연 배우님을 찾아가서 고백했어요. 언니 같은 뮤지컬 배우가 될 테니 기다려 달라고. 다음 날 바로 뮤지컬 입시 학원에 들어갔어요. 집에서 학원까지 왕복 3~4시간 정도 걸렸는데, 그 거리를 매일 같이 오가면서 죽자사자 연습해서 결국 뮤지컬과에 입학했죠.
차지연 배우가 이 사연을 들으면 정말 감동하겠는데요. (웃음)
안 그래도 이 이야기를 아는 주변 배우들이 지연 언니한테 말해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어요. 언니한테 부담이 될까 봐요. 또, 지연 언니에게 제 첫인상이 언니의 팬이 아닌 멋진 동료로 기억됐으면 좋겠거든요!(웃음)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차지연 배우와 엄마와 딸로서 호흡하게 됐어요. 소감이 어떤가요.
언니가 ’우리 딸‘이라고 불러주시거든요? 언니한테 티는 안 내지만 그럴 때마다 진짜 심장 터질 것 같아요. (웃음) 사실 연습 초반까지는 제가 언니와 함께 공연을 한다는 게 실감이 안 났어요. 그냥 제가 너무 좋아하는 언니의 연기를 코앞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행복했을 뿐이에요. 이제 두 언니(조정은, 차지연)의 딸로서 공연이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죠. (웃음)
말 나온 김에,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프란체스카와 버드의 딸, 캐롤린 역을 잘 표현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는지 들어볼까요.
캐롤린이 마냥 프란체스카의 딸이라는 역할로서만 존재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이오와를 떠나고 싶어 하는 모습이 프란체스카의 어린 시절과 닮았다고 생각했거든요. 더군다나 프란체스카가 가족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붕 떠 있다는 점을 캐롤린은 눈치채고 있었을 거예요. 프란체스카도 자신을 닮은, 자신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캐롤린을 보면서 선택에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 거고요. 그래서 캐롤린으로서 프란체스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캐릭터 외적으로는, 이렇게 장기간 원 캐스트로 출연하는 게 처음이어서 건강 관리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어요. 공연이 끝나는 날까지 기복 없이 공연을 소화하는 게 목표입니다.
지난 3월에는 중소극장 뮤지컬을 대상으로 하는 ’혜공인더파크 어워즈’에서 신인상을 받았어요. 관객 투표의 몫이 큰 시상식인 만큼 더욱 뜻깊은 수상이었을 듯합니다.
후보에 오를 거라고도 생각을 못 했는데, 상까지 받게 되니 정말 어안이 벙벙하더라고요. 더 열심히 해야겠다, 지금까지 들인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공연을 사랑하고, 내가 받은 사랑을 무대에서 표현하는 데에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한쪽 벽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어요. 2024년에 했던 공연들과 그 작품에 출연했던 배우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거기에 제 이름과 제가 출연했던 작품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걸 보는데 울컥하더라고요. ’내가 드디어 공연계의 일원이 됐구나, 나는 이제 시작이다’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단이 씨의 인생 대부분이 꿈을 꾸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시간으로 채워져 있잖아요. 단이 씨에게 '꿈'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꿈과 학창 시절을 맞바꾼 것 같아요. 꿈을 이루기 위해 연습에 몰두하면서 친구와의 추억 같은 학창 시절의 즐거움은 포기했거든요. 대학교에서도 맨날 밤까지 연습실에만 있었어요. 누가 들으면 ’인생 재미없게 살았다’ 할 정도로요. 근데, 저에겐 그게 재미고, 즐거움이었어요. 연습을 할 때마다 실력이 점점 늘어나는 제 모습을 보는 게 제일 재미있었고요. 다른 무엇보다, 저는 그냥 계속 꿈꾸고 싶었어요. 무대 위에서의 내 모습,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들의 모습, 그들을 바라보며 행복해하는 내 모습을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정말 어렸을 때부터, 무대는 제가 너무나 많은 꿈을 꿀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에요. 그래서 계속 무대에 있고 싶어요. 그 꿈을 이룬 지금이 말 그대로 꿈만 같아요.
대부분의 배우는 선택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늘 불안정함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잖아요. 마음이 흔들릴 때 중심을 잡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나요.
어딘가로 훌쩍 떠나버려요. 현실과는 전혀 다른, 아예 새로운 곳에 저를 떨어트려 놓는 거죠. 저한테는 그게 생각을 정리하고, 머릿속을 비우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더라고요. 한 작품을 마무리한 후에도 꼭 여행을 가려고 해요. 수개월 동안 함께한 캐릭터를 한 번에 떠나보내는 일이 제게는 되게 힘든 일이거든요. 그래서 이 친구를 품에 안고 살아가기 위해,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해 함께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거예요.
그토록 어렸을 때부터 꿈꿨던 무대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요즘이에요. 단이 씨가 생각하는 무대만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무대도 저에게 여행 같아요. 사실 저는 아직도 저 자신을 잘 모르겠거든요.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저는 유독 ’저는 이런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는 게 어려워요. 그런데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고, 한 인물로서 살아가는 과정이 나를 찾아 나서는 여행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로운 작품, 새로운 캐릭터를 만날 때마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나의 생각을 발견하고, 타인의 생각을 발견하면서 스스로를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관객분들도 공연을 볼 때 현실의 고민은 잠시 접어두고 새로운 세계로 여행을 떠나시는 거잖아요. 그래서 제게는 무대가, 공연이 관객들과 다 함께 떠나는 여행 같아요.
배우가 아닌 인간 김단이가 이루고 싶은 또 다른 꿈이 있나요?
필름 카메라 한 대를 들고 세상을 누비는 것. 말하고 보니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로버트 같네요. (웃음) 원래 사진 찍히는 것보다 찍는 거를 더 좋아하는 편이어서, 언젠가는 카메라를 한 대 들고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게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예요. 언젠가 가보고 싶은 나라들, ‘사진으로 남기면 정말 멋지겠다’ 생각이 드는 도시들을 하나씩 정리해 두고 있어요. 저의 가장 큰 꿈이자 마지막 꿈입니다.
관객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되길 바라나요.
예전에는 믿고 보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었어요. 물론 그 대답 역시 여전히 유효하긴 하지만, 저는 '어떤' 배우보다는 그냥 '배우'로 기억되고 싶어요. 어떤 키워드로 단정 짓기는 아직은 어려운 것 같아요. 시간이 더 흐른 후에는 제게 잘 맞는 키워드가 생각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저 ‘배우’로 기억되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