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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헬퍼봇, 뉴욕은 어때?…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브로드웨이 공연 관람기

글 |김선형(객원 필자) 사진 |김선형, Matthew Murphy and Evan Zimmerman 2025-06-04 213

※ 이 글은 다량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을 이미 관람하신 분이 이해하기 쉬운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공연과 여행의 가장 큰 공통점은 비일상성입니다. 일상에서 벗어나 그것을 즐기는 순간만큼은 다른 세상에 놓이죠. 그래서 공연 마니아들은 누구보다도 순간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눈앞의 장면에 몰입하고, 때로는 지나간 시즌의 공연을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저도 그중 한 사람으로, 특히 대학로에서 상연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2016년 초연과 2017년 재연을 참 좋아했습니다. 로봇이 주인공임에도 아날로그스러운 감성이 좋았습니다. 사실은 그래서 <어쩌면 해피엔딩> 브로드웨이 공연 관람을 망설였습니다. 흔히 ‘로봇’이나 ‘사이보그’가 소재일 때 사용하는 네온 풍의 홍보물이 제가 원하던 감성과는 맞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2025년 토니어워즈에서 <어쩌면 해피엔딩> 브로드웨이 공연이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다는 소식에 결국 티켓을 예매하고 말았습니다. 좋아하는 공연에 대한 추억이 혹여나 망가질까 봐 두려웠던 제게 환상적인 기억이 된 2025년 <어쩌면 해피엔딩> 브로드웨이 공연 관람기를 나눠 봅니다.

 

 

늘어난 캐릭터와 출연 배우의 수
올리버, 클레어, 제임스(및 멀티) 역의 세 배우만 출연했던 한국 공연과 달리 브로드웨이 공연에서는 캐스트가 4명입니다. 제임스 역의 배우가 함께 맡았던 재즈 가수 역할(Gil Brentley)의 배우가 따로 있기 때문이에요. 제임스의 아들(Junseo), 클레어의 주인 커플 캐릭터(Jiyeon, Suhan)도 추가됐습니다. 추가된 캐릭터들과 함께 각각 한두 장면씩 내용도 추가되어, 한국 공연보다 서사가 보강됐습니다.

 

올리버의 가장 친한 친구 화분이 ‘HwaBoon’(화분)이라는 이름으로 플레이빌과 캐스팅 보드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점은 재미있었습니다. SNS 계정도 있어 들어가 보니 무려 팔로워 9,600명에 육박하는 꽤 대단한 인플루언서였어요.

 

 

 

대극장화, 어색하지 않아요
출연 배우가 늘어난 이유 중 하나는 극장의 규모가 커졌기 때문일 겁니다. 대학로의 300석가량 중소극장에서 상연된 이 공연은 브로드웨이의 1천석 규모 대극장에서 상연되고 있습니다. 클레어와 올리버의 방과 복도가 명확히 구분되고 홀로그램도 사용하며 무려 회전 무대 장치도 사용합니다. 무대에 홍보물과 같은 네온 풍 조명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걱정했던 것만큼 미래적이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조금 더 크고 세련되어진 느낌이었어요.

 

가장 멋지다고 느낀 무대 장치는 홀로그램 영상이었습니다. 클레어의 주인 커플은 홀로그램을 연상시키는 영상으로 등장해 극 중에서 클레어와 대화를 나눕니다. 실제 사람 크기와 비슷하게 홀로그램 영상을 구현해, 배우가 무대 위에 등장하지 않음에도 등장하는 듯한 효과가 있습니다. 로봇인 클레어의 기억이라는 장면 특성을 잘 활용한 연출이라고 생각했어요.


Ending-Happy Ending-Maybe Happy Ending
브로드웨이 공연은 위와 같은 3막 구성으로 이루어집니다. 한국 공연과 내용이 크게 다르진 않지만, 자막으로 막을 짚어줘서 한 번 더 내용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사실 브로드웨이 공연과 한국 공연의 큰 차이점은 넘버라고 생각합니다. 공연 중반부 몇몇 넘버에서는 한국 공연 넘버에서 한두 마디 정도만 변주된다면, 극 후반부에는 아예 다른 넘버도 등장합니다. 두 헬퍼봇이 사랑에 빠진 뒤 설렘을 노래하는 ‘First Time in Love’와 자꾸 고장 나는 클레어를 올리버가 달래며 둘이 사랑을 약속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삭제됩니다. 대신 두 헬퍼봇이 함께 연인의 시간을 즐기는 재즈풍의 넘버 ‘Then I Can Let You Go’로 대체되죠. 또, 두 헬퍼봇이 기억을 지우기에 앞서 잊거나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당부하는 ‘그것만은 기억해도 돼’ 대신에 기억을 지우는 것이 아주 나쁜 끝은 아니라고 노래하는 ‘Maybe Happy Ending’이 추가됩니다. 삭제된 넘버들은 배우도 관객도 눈물짓게 한 슬픈 분위기였던 반면, 새롭게 추가된 넘버들은 비교적 밝은 분위기라 감정의 무게를 덜어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뉴욕의 거리 비가 내리던 날

브로드웨이의 관객은 한국 관객보다 훨씬 반응을 크게 합니다. 웃기도 크게 웃고 박수도 자주 치죠. 객석 분위기가 한국과 크게 달라, 관객의 반응 또한 퍼포먼스처럼 느껴졌습니다. 손을 마주 댄 후 서로를 향한 감정을 자각한 올리버와 클레어가 입을 맞추는 장면에서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는데, 저 또한 쾌감이 느껴졌습니다.

 

이 공연은 ‘한국스러움’을 다소 적극적으로 드러냅니다. 기존처럼 서울과 제주를 배경으로 할뿐더러 무대 영상에 한글을 종종 사용합니다. 한국 공연에서 주소연 음악감독을 향해 “소연에게 전화”라고 말하는 대사는 전미도 배우의 사진과 이름을 배경에 띄우며 “Call Mido”라고 말하는 대사로 바뀌었습니다. 제임스는 James Choi라는 이름으로 한국인이라는 배경이 추가됐으며, 클레어의 주인 Jiyeon 역을 맡은 배우 Arden Cho와 그의 연인 Suhan 역을 맡은 배우 Young Mazino 모두 한국계입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후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가장 좋았던 장면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코 ‘반딧불이 쫓기(Chasing Fireflies)’ 장면입니다. 제가 봤던 시즌의 한국 공연에서는 올리버 역의 배우가 무대장치를 활용해서 첫 번째 반딧불이를 표현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브로드웨이 공연에서는 지휘자가 등장해 첫 번째 반딧불이를 지휘봉의 끝으로 표현합니다. 지휘자가 지휘하다가 음악이 커지며 무대 뒤편이 열리는 순간, 의상과 악기에 반딧불이와 같은 조명을 단 연주자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이 회전 무대 위에서 연주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반딧불이가 가득한 숲이 펼쳐지는 듯했습니다. 그 연출 방식에 압도되어 한참을 앞의 배우들이 아닌 뒤의 연주자들을 바라봤습니다. 상상력의 한계선이 깨지는 느낌이었어요. 이미 좋아하는 공연이 더 좋게 바뀔 수 있다는 점에 벅찼습니다.

 

 

이 외에도 이미 한국에서 이 공연을 여러 번 관람했기에 홀로 짜릿하거나 흐뭇했던 순간이 많았습니다. 무대 영상에서 만난 전미도 배우의 얼굴이 반가웠고, ‘My Favorite Love Story’ 넘버에서 클레어가 “뉴욕 말고 파리”라고 말해도 올리버가 뉴욕을 고집하는 장면에서는, 뉴욕에서 공연이 올라온 현실의 상황이 결국 올리버의 고집대로 두 헬퍼봇이 뉴욕으로 오게 된 듯한 극 중 상황과 맞물려 즐거웠어요. 재즈를 좋아하는 올리버의 가방에 서울재즈페스티벌의 로고 패치가 부착된 것을 보며 한국 공연보다도 섬세한 소품 활용에 감탄했던 기억도 나네요.


현재 <어쩌면 해피엔딩> 브로드웨이 공연은 뮤지컬 분야 최고 권위상이라 불리는 토니어워즈의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상태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클레어 역의 Helen J Shen이 여자 주인공 부문 후보에 오르지 못해 아쉬운데요, 그럼에도 대학로에서 출발한 이 작품이 많은 부문에서 수상해서 더 많은 관객을 만나게 되길 희망합니다. 어쩌면 가능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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