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뮤지컬 페스티벌-Beyond 대학로’가 지난 10월 15일과 16일, 양일간 진행된 파이널 리딩 쇼케이스를 통해 네 편의 신작 뮤지컬을 세상에 공개했다. 고전 문학, 설화 등 원작을 재해석한 네 작품은 각기 다른 매력을 발산하며 정식 공연의 가능성을 기대케 했다.
공연기획사 컴퍼니 봄이 주최·주관하는 ‘차세대 뮤지컬 페스티벌- Beyond 대학로’(이하 ‘차세대 뮤지컬 페스티벌’)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비예술인 최초발표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뮤지컬 창작자를 꿈꾸는 예비예술인을 지원하는 창작 뮤지컬 인큐베이팅 프로젝트다. 미공연 작품을 완성도 높게 무대화할 잠재력을 지닌 자, 기존의 뮤지컬 스타일을 뛰어넘어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자, 국내외 공연 경향과 혁신 사례를 탐구하고 적용할 역량이 있는 자를 발굴하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였다.
‘차세대 뮤지컬 페스티벌’은 작가, 작곡가, 연출가 3인 1팀 체제로 운영됐다는 점, 9개월이라는 긴 멘토링 기간을 거쳤다는 점에서 기타 지원사업과 차별성을 지녔다. 박소영 연출, 한정석 작가, 한재은 작가 등 한국 창작 뮤지컬을 이끄는 창작자 다수가 멘토로 참여했다는 점도 시선을 끌었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총 33팀이 지원했고, 1차 심사에서 9팀이 선발됐다. 각 팀은 약 4개월간의 멘토링, 창작 과정을 거쳐 20분 분량의 대본과 2곡 이상의 넘버를 완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2차 심사를 진행했고, 4팀이 우수 작품으로 선정됐다. 이후 심화 멘토링을 거쳐 발전된 작품이 이번 쇼케이스에서 공연됐다.
‘차세대 뮤지컬 페스티벌’ 파이널 쇼케이스는 지난 15일, 16일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진행됐다. 쇼케이스의 포문을 연 작품은 박예나 작가, 김광현 작곡가, 문서희 연출가의 <불효 뺑덕>이다. ‘심청전’을 현대적으로 전복해 재해석한 작품으로, 인당수에 빠진 심청과 용궁의 궁녀로 살아온 덕이의 상황을 대비시키며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써 내려갔다. 정준 작가, 신경미 작곡가, 장우성 연출가가 멘토로 참여했으며, 배우 이휴, 전민지, 김지훈이 무대에 올랐다.
두 번째로 선보인 작품은 <여우, 누이>(김유진 작가, 김지영 작곡가, 안소현 연출가)다. 전래 설화 ‘여우누이 이야기’를 1930년대 한국 배경으로 각색한 호러 미스터리 장르 뮤지컬이다. 귀부인이 된 한 여성이 다락방에서 들려오는 기이한 소리를 들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가족 안의 억압과 공포를 억눌린 여성들의 목소리와 연대로 확장시키는 작품이다. 동요 ‘여우야 여우야’를 넘버의 주요 테마로 활용해 순수함과 섬뜩함을 동시에 전하는 것이 특징이다. 배우 전하영, 주다온, 이규학이 출연했다.
16일에는 <피리 부는 여자>와 <헨리에타 지킬>이 관객을 만났다. <피리 부는 여자>(고요난 작가, 이설 작곡가, 모노 연출가)는 세일럼 마녀 재판과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를 결합해 재구성한 작품이다. 공동체가 두려움을 이유로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통해 오늘날에도 반복되는 ‘낙인과 배제의 구조’를 그려낸다. 중극장 이상 규모로의 확장 가능성을 지닌 작품으로, 서원, 임다인, 남가현, 김시은, 조수빈, 신수민 총 6명의 배우가 참여했다. 한재은 작가, 한정림 작곡가, 박소영 연출가가 멘토로 함께했다.
뮤지컬로 잘 알려진 고전 ‘지킬 박사와 하이드’ 세계관을 확장한 <헨리에타 지킬>은 지킬 박사의 딸 헨리에타를 주인공으로 한다. 아버지의 그림자와 사회의 의심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해야 하는 헨리에타가 오롯이 한 인간으로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불과 얼음’ 뮤지컬 창작 아카데미에서 만나 한 팀이 된 김하민 작가, 최은수 작곡가, 전세계 연출가의 작품이다. 배우 백하빈, 도유현, 윤희, 이기영이 참여했다.
이번 쇼케이스는 공연당 준비된 약 130석의 좌석이 전 회차 매진될 정도로 관객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그뿐만 아니라 창작자, 공연 제작사 관계자 등 업계 내부의 관심 역시 높았고, 일부 작품에는 쇼케이스 공연이 끝난 직후부터 발 빠른 제작자들의 러브콜이 쏟아지기도 했다. ‘차세대 뮤지컬 페스티벌’을 총괄한 컴퍼니 봄 송경옥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차세대 뮤지컬 페스티벌’은 어떻게 시작됐나.
오랜 시간 공연을 기획∙제작하고, 교직에 있으면서, 공연 업계에 진출하고자 하는 학생들을 향한 관심이 컸다. 그들을 위해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사업 소식을 접했고, 지원사업 참여를 결심했다. 그때부터 최근 진행된 지원사업 프로그램을 하나하나 조사했고, 각종 지원사업 프로그램에 참여한 바 있는 신진 예술인, 멘토로 참여한 창작자들을 10명 넘게 인터뷰했다. 그 과정을 통해 참가자들이 생각하는 지원사업의 장, 단점을 파악할 수 있었고, 그들이 느낀 아쉬움을 개선할 수 있는 구조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차세대 뮤지컬 페스티벌’의 부제는 ‘Beyond 대학로’다. 이러한 부제를 붙인 이유가 있다면.
예비예술인들은 지원사업에 선정되기에 적합한 작품, 본인들이 자주 접한, 익숙한 구조의 작품을 써 내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지원사업에 응모하는 작품 중 대부분이 대학로에서 주로 만날 수 있는 2, 3인극 형태다. 그 부분이 안타까웠다. 큰 가능성을 지닌 예비예술인들이 다양한 방향성을 시도하고, 형식과 소재 면에서 신선한 도전을 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부제에 담았다.
장장 9개월에 달하는 멘토링 기간, 작가-작곡가-연출가의 3인 1팀 구성이 이번 프로젝트의 특징이었다.
대부분의 창작 지원사업은 작가, 작곡가를 선발하여 창작 과정을 거친 뒤, 쇼케이스 등 공연을 준비하며 기성 연출가를 합류시키는 경우가 많다. 경험이 쌓인 기성 연출가가 합류하며 작품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도 물론 많지만, 연출가가 이끄는 대로만 가다 보면 작가, 작곡가의 색채를 잃게 될 위험성이 있다. 또, 창작 지원사업이 작가, 작곡가를 중심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연출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는 멘토링의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아쉬웠다. 그래서 작가, 작곡가, 연출가 세 사람을 한 팀으로 구성해 그들이 온전히 자신들의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멘토링 기간이 긴 것도 이러한 생각과 맞닿아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예비예술인들은 창작 기간 동안 멘토들과 꾸준히 소통하며 작품을 발전시켰다.
이번 페스티벌을 자평해 보자면.
각 작품의 완성도가 높았고, 일반 관객 및 관계자의 반응도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것은 예비예술인들의 열정이다. 이번 쇼케이스를 준비하는 내내 창작진들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봤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끝까지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진심이 무대에서도 보였다. 그 모습이 정말 감사했다. 앞서 언급했던 ‘신선한 도전’ 측면에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추후에는 이머시브 공연, 베리어 프리 공연, 퍼펫을 활용한 공연 등 기존에는 도전하기 어려웠던 양식, 소재를 ‘차세대 뮤지컬 페스티벌’을 통해 과감히 도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기존의 틀을 벗어난 공연을 새롭게 창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다양성’을 꾸준하게 추구하다 보면 언젠가 정말 신선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차세대 뮤지컬 페스티벌’의 다음 스텝은 어디로 향할까.
지원사업을 통해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좋은 인재를 발굴하는 것에 집중하고자 한다. 이번 프로젝트의 참가자들이 창작자로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유의미한 후속 서포트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오랜 시간 공연을 제작해 온 입장에서, 작품의 성공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이 작품이 한국 뮤지컬 시장에 어떤 의미를 남길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업적으로 실패할지언정, 새로운 도전을 이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발전시키려면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다. 단기적인 지원사업 내에서는 그러한 시간을 들이기가 어렵다. 예비예술인이 단단하게 성장하려면, 완성도 높은 작품이 탄생하려면 지원사업의 지속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영국의 사우스워크 플레이하우스처럼 신작을 꾸준히 개발하고, 공연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는 날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