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성수연은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웹진 <연극in>에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제목의 인터뷰를 연재했다. 인터뷰 자리에는 응당 육하원칙 중 3요소인 '누가, 언제, 어디서'가 정해져 있으니, 비워져 있는 3요소인 '무엇을, 어떻게, 왜'를 묻겠다는 당찬 포부였다. 성수연은 동시대 창작자들을 만나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고, 그 일을 왜 하는지 질문하며 한국 연극계의 면면을 포착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 올린 21인과의 대화가 책으로 엮여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다. 출판사 북트리거의 『무엇을, 어떻게, 왜』다. 물성을 지닌 문장들은 각자의 삶의 무대 위에 서 있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어떻게, 왜 할 것이냐고 말이다.
오늘은 배우 성수연이 아닌 인터뷰어 성수연에 대한 인터뷰예요. 오랜만에 인터뷰이로서 자리에 앉은 기분이 어떤가요.
인터뷰 장소에 오는 길에 걱정을 많이 했어요. '말을 잘해야 할 텐데…'(웃음) 두 사람의 대화를 글로 정리하는 데 얼마나 많은 공이 들어가는지 아니까요. 인터뷰를 진행하는 입장일 때도 처음 대화를 시작하는 순간이 되게 떨렸는데, 오늘도 그렇네요.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지난 12월 신촌극장에서 공연했던 <주소는 정확히 모르겠지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요. 극작과 연출, 출연은 물론, 무려 조명, 음향 오퍼레이팅까지 직접 소화한 1인극이었죠. 첫 공연 날 객석에 앉아 있는데, 과거와 현재, 미래의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 지금 여기의 성수연이 하고 싶은 말이 모두 담겨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세상에, 첫 공연을 보셨다고요? 저 그날 실수를 정말 많이 했는데! (웃음) 제가 최근 관심을 가지고 있는 토픽이 '비인간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인데, 그 주제와 맞닿아 있는 <버그를 러브하기>라는 작업을 지난 여름과 가을에 했었어요. 그런데 그 작업을 마치고 나니, 다음 질문을 찾아 나설 힘이 제 안에 남아 있지 않더라고요. 이미 12월에 신촌극장에서 공연을 올리기로 결정된 상황이었는데 말이에요. 그 상태에서도 어떠한 작업물을 만들어낼 수는 있었겠지만, 치열한 연구 없이 무대에 올린 결과물을 미래의 제가 부끄러워하게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지금의 나 자신에게 가장 정직하게 '말 걸기'를 했을 때, 당장 날 것을 꺼내도 부끄럽지 않은 이야기가 뭐가 있을까를 생각하다 보니 <주소는 정확히 모르겠지만>처럼, 지금의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작업으로 이어졌어요.
앞선 답변에서 두 개의 키워드가 기억에 남아요. '질문 찾기'와 '말 걸기'. 저희가 오늘 만난 이유인 『무엇을, 어떻게, 왜』와도 맞닿아 있는 키워드죠. 창작자와 인터뷰어의 공통점은 질문을 찾고, 그 질문으로 세상에 말을 거는 사람이라는 점이잖아요. 그 두 역할을 동시에 해내는 수연 씨는 평상시에도 많은 물음표를 품고 사는 사람인가요?
음… 그런 것 같아요. 언젠가부터 답을 바로바로 내리지 않으려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어떤 질문을 받으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떠올리는 게 일반적인 생각의 흐름이잖아요. 당장 답을 내리기 어려운 질문을 받을 때도, 머릿속 세포들은 이미 답을 내리기 위한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 답을 내리기 어려운 질문이라는 걸 분명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괜히 초조해지죠. 그래서 내게 주어진 질문에 지금 당장 답을 내리려고 하지 않고, 질문을 또 다른 질문으로 연결하는 연습을 언제부턴가 의식적으로 하고 있어요.
주어진 질문에 당장 답을 내리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어떤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창작자로서 활동하다 보니 점점 그렇게 변하게 된 것 같아요. '꿀벌 연기는 어떻게 하는 거지?'라는 질문을 예로 들어 볼게요. 물론 정답을 정의할 수도 없는 질문이지만, 갑자기 신에게서 영감을 받아서(웃음) 정답을 찾았다고 할지언정, 그때부터 제가 할 일은 그 정답을 장면화해서 연기하는 거잖아요. 그렇게 답을 내려놓고 연기하는 게 연극과는 왠지 묘하게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자신도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데, '오늘 내려놓은 답이 과연 내일도 유효할 것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확신이 없더라고요. 그렇다면, 어떤 질문에 대해 답을 내리더라도 다른 가능성에 대한 여지를 많이 열어두거나, 답을 내리기보다는 질문의 언어로 바꿔서 품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물론, 뭐든 확신 있게 답을 딱딱 내릴 때 속이 시원하기도 하죠. 늘 뭔가를 유예한 상태로, 미진하게 살아가는 게 갑갑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지금의 저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무엇을, 어떻게, 왜> 인터뷰 시리즈는 2021년에 시작해 2024년까지 이어졌어요. 창작자에게 인터뷰 연재란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어떤 마음으로 시작했나요?
저는 창작 작업을 할 때, 제가 작업하고자 하는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는 분들의 인터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리서치 차원에서요. 그러면서 이야기를 전달받는 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경험이 많이 쌓였고, 미친 듯이 질문하는 사람이 되어본 경험도 있으니 <연극in>으로부터 인터뷰 연재 제안을 받았을 때 제가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었죠. 그런데, 이렇게 글로 나가는 인터뷰는 완전히 다른 일이더라고요. (웃음) 어려운 일일 거라 예상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어요. 하지만, 제가 그 당시에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들, 예를 들어 사석에서만 맴돌다가 사라졌던 말들에 담긴 연극인들의 멋짐과 혼란을 독자분들에게 잘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인터뷰를 했던 것 같아요.
수연 씨의 인터뷰를 읽으면 한 편의 공연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두 사람의 대화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해요. 그만큼 연극적이면서 생생한 글이죠. 말로 오간 대화를 웹진용 기사로, 웹진용 기사를 다시 책의 판형에 맞춘 글로 옮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겠죠? 이번 인터뷰집에는 단행본만을 위한 글인 프롤로그, 에필로그가 추가되기도 했고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인터뷰를 준비하고, 글로 옮기는 게 진짜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당연히 질문을 미리 준비해 가지만 막상 인터뷰 자리에서는 대화가 산으로 가기 마련이고…. (웃음) 그 대화를 글로 옮기는 녹취록 작업을 하다 보면 나만 알기 아까울 정도로 재미있는 내용이 많아서 이걸 어떻게 살려야 할까 고민도 오래 하게 되고. 사람마다 말 습관이 있잖아요? 비록 비문이 될지언정 인터뷰에도 그런 말 습관을 잘 담을 수 있도록 특히 노력했어요. 일종의 2인극 대본을 써내려 가는 마음이었달까요. 인터뷰의 구조를 짜고, 글로 풀어내는 과정이 정말로 창작에 준하는 작업이었다는 생각을 해요. 또, 웹진에서 연재할 때는 인터뷰이, 혹은 인터뷰에서 나누는 이야기들에 대해 잘 알고 계시는 독자가 대부분이었지만, 책은 공연 예술계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 혹은 공연 예술계에 대한 관심이 있어도 인터뷰를 진행했을 당시의 이슈를 잘 모르는 독자분들이 생길 거잖아요. 그래서 그런 분들에게 인터뷰에 대한 정보를 잘 전달하기 위해 '프롤로그'를 다시 쓰는 작업에 꽤 공을 들였어요. 쉽지 않았지만, 저 자신에게도 많은 공부가 되는 시간이었죠. 이 글을 보면서 '이런 사람이, 이런 공연이 있었다고? 공연 보러 가야겠다.' 같은 생각을 하는 독자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이번 인터뷰집 발간을 준비하면서, 그간 만났던 인터뷰이들을 다시 만나 대화를 나누었잖아요. 한 사람의 사유나 가치관이 시간을 거치며 변화한 모습을 마주하면서 수연 씨는 어떤 생각을 했나요.
웹진 인터뷰를 할 때는 각기 다른 사람들을 각기 다른 시기에 만났는데, 이번 인터뷰집을 위한 추가 인터뷰는 일정 시기에 몰아서 진행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이렇게 시대가 변해가고 있구나'라는 감각을 많이 느꼈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이 시대를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연극계가 이런 흐름 속에 변화하고 있구나, 우리가 이 흐름 속에 존재하고 있었구나' 느꼈죠.
한 사람의 생각이 변해가는 걸 알아채는 기쁨을 느낀 것은 물론이에요. 정확한 문장은 아니지만,인터뷰 중에 유은숙 배우님이 '고유한 나라는 건 없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나라는 사람은 정말 많은 이들의 생각에 빚지고 있는 거라고, 처음부터 고유하게 나의 것으로 만들어진 것은 극히 드물고, 주변에서 수없이 영향받는 와중에 지금 잠시의 '나의 생각'이 있는 거라고. 그 말이 이번 인터뷰집 작업을 하면서 크게 와닿더라고요. 인터뷰를 하던 그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내가 이 대화들 속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돌아보게 됐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 단행본 작업을 처음 시작할 때 3~4년 전의 인터뷰가 지금의 독자에게도 유효할지 고민했었거든요? 근데 책 작업을 하고, 인터뷰를 다시 읽어 내려가면서 확신이 들었어요. '유효하다, 재미있다!'(웃음) 저 역시도 과거의 인터뷰를 다시 보며 새로운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게 느껴졌으니까요.

수연 씨는 연기뿐만 아니라 몸으로 표현하는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하잖아요. 기록되지 않는 순간의 예술을 하는 입장에서, 무언가를 기록한다는 건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음… 조금 여러 생각이 드는데요. 어떠한 시기에, 어떠한 사람들이 했던, 어떠한 말들이나 생각들, 움직임들은 잘 기록되지 않기에 누군가는 의식적으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이반지하님이 인터뷰 중에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사회의 중심으로 가면 갈수록, 이 사회의 중심이 나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으려고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고요. 고된 삶을 살아온 선배가 들려준 말이자, 사회의 작동 원리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통찰이잖아요. 범람하는 콘텐츠 세상에서 이런 말이 그냥 흘러가지 않을 수 있도록 종이 위에 잡아 둔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건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더 나아가서 언어로 규정할 수 없는 이 시기 연극계의 흐름, 연극인들이 어떤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이 어떻게 바뀌어 가고 있는지에 대한 흐름을 한 번쯤 갈무리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저는, 활자 기록이 좋아요.(웃음) 활자 기록은 그 자체로 질문 같거든요. 때에 따라 그 행간을 얼마든지 다르게 읽을 수 있는.
그런 의미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가 연재되었던 웹진이자 연극 현장 기록의 공간이었던 <연극in>의 휴간이 더더욱 아쉽게 느껴져요. 앞서 말씀하셨듯이 수많은 콘텐츠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왜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하고, 기록을 남겨야 하는 걸까요?
이제는 누구나 SNS 등 여러 플랫폼을 통해 자신만의 기록을 할 수 있는 때잖아요. 그럴 때일수록 누군가는 사소하다고 느낄 수 있는 생각과 자료들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행위의 중요성이 커진다고 생각해요. 사실 기록, 아카이빙이라는 건 관성적인 성격이 있어서 누군가 의도적으로 물길을 틀려고 애쓰지 않으면 같은 방향으로만 흐르거든요. 관성에 질문을 던지고, 물길을 타격해서 방향을 트는 게 또 다른 기록의 역할이자 다양한 기록의 중요성이라고 생각해요.
김국희 배우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이야기인데, 같은 연극계 안에서도 '국희계'와 '수연계'는 또 다르거든요.(웃음) 저희 외에도 또 다른 ’계’들이 수없이 많고요. 많은 이들이 'K-컬처'를 주목하고,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같은 작품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고 할지라도, 모든 '계'들이, 즉 모든 예술인이 똑같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같은 작품을 만들겠다고 달려가는 건 아니에요.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질문을 치열하게 던지기에 각기 다른 멋진 결과물들이 나오는 거죠. 무조건 무수한 대중이 좋아해 줘야만 가치 있는 예술인 게 아니잖아요. 서로 다른 성격의 예술이 우리 사회를 지탱해 나가고 있는 건데, 이제는 그런 예술들을 더 이상 아무도 논하지 않으려 할까 봐 겁이 나기 시작했어요.
이런 인터뷰만 해도, 최소 2명이 필요한 프로젝트죠. 단순히 내가 내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기록이에요. 누군가가 누군가의 말을 곱씹고, 이해하고, 정리해 낼 수 있어야 나오는 결과물이죠. 아주 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고, 규모와 상관없이 의미 있는 활동이에요. 하지만 개인의 차원에서는 지속하기 어려운 일이거든요. 가장 좋은 건 이런 프로젝트를 이어갈 동력이 되어주는 매개체가 존재하는 건데, 그런 매개체들조차도 자본의 구조적 논리에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다는 게 씁쓸한 현실이에요.
움직임이 아주 작아 잘 보이지 않았던 예술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갔던 훌륭한 생각들,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곤 했던 사람들의 행동들이 무엇인지, 더 나아가 우리가 어떠한 예술과 실험과 시도에 빚지고 있는지를 더 많은 사람이 알게 하려면 계속 담고 기록하는 수밖에 없어요. 누군가 기록하지 않으면 모르니까. 누군가는 기록을 해야, 우리가 늘 빼앗기던 걸 빼앗기지 않을 수 있으니까.

책의 서문에서, 독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더라고요. ‘너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어?’ 지금의 성수연은 어디로 가고 있나요?
진짜 잘 모르겠어요. 지금 내가 있는 여기가 어디인지부터 생각하게 되고요. 그래서 제가 지난 12월에 올린 공연의 제목이 <주소는 정확히 모르겠지만>이었나 봐요. (웃음) 내가 바라는 '어디'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내가 가고 있는 세계, 내게 오고 있는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시간이 갈수록 더 모르겠어요.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어딘가로 가고 있는 거 같긴 하다…'. 이런 답변 괜찮을까요? (웃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 중 많은 이가 그렇게 느낄 거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도 그렇고요. (웃음)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어딘가로 가고 있는' 상황이 두렵거나 불안하지는 않은가요?
그 불안함을 이제는 좀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불안한 게 당연하지'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까. 이상한 예시일 수 있지만, 언젠가 수영 강습이 너무 가기 싫어서 괴로운 거예요. 그러다가 어느 날 '그래, 강습은 원래 가기 싫은 거지. 당연해.'라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가기 싫은 마음이 좀 나아졌어요. (웃음) 그런 것처럼 그냥 '나 지금 되게 불안하구나? 근데 불안한 게 당연한 거지 뭐.' 이렇게 받아들이면 어느 순간 괜찮아지더라고요. 근데 뭐… 저도 그렇게 받아들이려고 노력은 하는데… 잘 모르겠네요.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웃음)
<무엇을, 어떻게, 왜> 인터뷰는 언제나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그날 대화에서 떠오른 질문을 주고받는 ‘질문 주고받기’로 마무리하잖아요. 오늘의 우리의 대화도 ‘질문 주고받기’로 마무리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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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희 우리는 무엇을 쥐고 살아가야 하는 걸까?
성수연 꽉 쥐고 있는 걸 놓을 때, 아까움을 느꼈던 기억이 더 커? 아니면 시원함을 느꼈던 기억이 더 커?
이솔희 무언가를 내려놓을 때, ‘진짜로’ 놓을 수 있을까?
성수연 가장 마지막으로 ‘이건 진짜로 열심히 했다’고 느낀 게 언제야?
이솔희 열심히 살면 이 시간의 흐름이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갈까?
성수연 너는 최근에 누구의 시간에 의해 가장 많은 영향을 받고 있어?
이솔희 떠나간 시간을 붙잡을 수 있을까?
성수연 음… 완전히 붙잡을 수는 없지만 조금은 붙잡아 둘 수 있는 것 같아. 붙잡은 시간이 책이 되었지. 『무엇을, 어떻게, 왜』 읽어 볼래? (일동 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