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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칼럼] 섬에서 만난 K와 뮤지컬

글 |현수정(공연평론가·중앙대 연극학과 겸임교수) 사진 |. 2026-01-30 776

현수정 공연 평론가가 매달 하나의 테마를 정해 뮤지컬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보는 칼럼을 연재합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섬」

 

한국뮤지컬은 섬 같다. 서로 다른 문화들이 만나고 뒤섞이며 독특한 정체성이 형성되는 곳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동시대의 심리적 풍경을 섬세하고 밀도 높게 담고 있다. 서구에서 들어온 뮤지컬은 이곳에서 역동적으로 변주되어왔다. 이러한 섬은 'K-뮤지컬'의 배양토이고 잠재력이다. 최근 ‘K-뮤지컬’이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되고, 개념 정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적잖게 들린다. 수많은 한류 연구들에서 언급하듯 'K'는 국제적인 지향을 담고 있다. 그런 만큼 외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섬 안에 다채롭게 새겨진 주름들을 면밀히 살피는 시선이 먼저 필요해 보인다.

 

주름이 형성되는 과정

뮤지컬은 미국을 텃밭으로 하여 다양한 나라에서 이주해 온 창작자들과 관객들이 만들어낸 장르다. 유럽에서 들어온 오페레타와 버라이어티, 미국에서 성행한 보드빌과 벌레스크, 그리고 크레올의 레그타임 같은 음악 등이 녹아들면서 발달했다. 태생부터 디아스포라적 혼종성을 특징으로 하는 예술인 것이다. 또한 다양한 장르가 융합된 만큼 새로운 것들을 빠르게 흡수하며 진화하는 특징을 지닌다. 한국뮤지컬도 처음부터 국내외의 문화가 다양한 방식으로 교섭하며 역동적으로 변화해 왔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다채로운 흐름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20세기 초반 서양 연극의 다양한 사조가 한꺼번에 유입되었던 한국연극을 생각하면, 한국뮤지컬의 발달은 비교적 동시대적이었다. ‘뮤지컬 코미디’라 불리었던 초기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19세기 후반에 형성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창작뮤지컬의 시초로 여겨지는 <살짜기 옵서예>가 초연한 1966년은 미국 뮤지컬의 황금기와 맞물려 있다. 1943년부터 1960년대 중반 정도까지 미국에서는 뮤지컬의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 황금기였다. 그런 만큼 이 작품은 멜로드라마적이며 낙관적인 서사, 주요 인물 장면과 앙상블 장면의 교차, 대사와 노래가 맞물리는 방식 등에서 부분적으로 브로드웨이 문법을 차용한 모습을 보여준다. 원작인 『배비장전』의 서사, 국악 리듬과 악기 등이 이러한 형식과 어우러지는 방식이 당시로서 매우 신선했다.

 

또한 1960년대에는 지금과 같은 라이선스 방식은 아니었지만 해외뮤지컬의 소개도 이루어졌다. 드라마센터의 <포기와 베스>(1962)와 실험극장의 <동키호테>(1967)가 대표적이다. 1970년대에는 극단 가교가 오프-브로드웨이 뮤지컬인 <판타스틱스>를 <철부지들>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하는 등 다변화된다. 이후 1980년대에는 현대극장을 비롯한 민간극단들이 창작뮤지컬과 해외뮤지컬을 선보인다. 그리고 롯데월드 예술극장, 서울예술단 등을 통해 전문 배우와 스태프가 양성되기 시작한다.

 

여담으로 얘기하면, 『더뮤지컬』 2007년 3월호 기획기사인 ‘나의 첫뮤지컬’을 보면, 적잖은 관계자들이 <아가씨와 건달들>을 들었다. 이 작품은 1983년 민중·광장·대중극단이 첫선을 보인 후 오랜 기간 재공연되었다. 1989년 개관한 롯데월드 예술극장도 1990년에 민중극단과 합작으로 이 작품을 제작해 관객몰이했다. 미국 황금기 뮤지컬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작품이 한국에서 뮤지컬의 대중화에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하다.

 

한편, 한국뮤지컬의 산업화가 본격화된 것은 2001년 <오페라의 유령> 라이선스 공연 이후지만, 그 바탕은 1990년대에 이미 어느 정도 준비되었다. 삼성영상사업단 등 거대자본의 유입, 에이콤·신시뮤지컬컴퍼니·서울뮤지컬컴퍼니 등 전문극단의 활동, 그리고 PC 통신을 중심으로 한 1세대 마니아와 같은 인프라가 마련된 것이다.

 

그렇게 2000년대 들어서서 영미권의 메가뮤지컬이 수입되고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뮤지컬도 들어온다. 2005년에 이르면 공연예술 수익 중 뮤지컬 부분이 과반수에 이르는 등 시장이 급속도로 확장된다. 또한 오프-브로드웨이 뮤지컬도 실시간으로 발굴되어 공연되는 가운데, 창작뮤지컬 붐이 일어난다. 2000년에 극단 갖가지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감성적인 발라드로 호응을 얻었다면,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개발된 <빨래>, <김종욱 찾기> 등이 상업 무대에서 소박하고 진정성 있는 이야기로 공감대를 형성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전형적인 구조를 따르기보다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진 때다. 2007년에는 당시의 장밋빛 기대감을 반영하며 대극장 뮤지컬 네 편이 개막했다. 그중 <대장금>은 한류를 이끈 TV 드라마가 무대화된 것이고, <댄싱 섀도우>는 국제적인 제작진을 통해 차범석의 『산불』이 각색된 것이다.

 

창작뮤지컬이 쏟아져 나온 시기는 2010년 이후다. 이때는 뉴욕에서 공부했거나 다양한 교육기관에서 훈련받은 젊은 창작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음악극창작협동과정 등 뮤지컬 교육도 체계를 갖추게 된다. 특히 음악극창작협동과정은 NYU 대학원 뮤지컬 창작과 및 BMI 레만 엥겔 뮤지컬씨어터 워크숍과 닮은 구조의 교육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 문법이 작품들 속에 적극적으로 반영되도록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이러한 내부의 주름은 K-뮤지컬이 만들어지는 내재적 동력으로 작용했다.

 

뮤지컬 <홍련> 공연 장면. 사진=마틴엔터테인먼트

 

동시대 정서들이 머무는 곳

영국 『가디언』의 수석 연극평론가 아리파 악바르는 <마리 퀴리>의 런던 공연에 대한 리뷰에서 여성 두 명이 이끄는 서사 구조에 대해 흥미를 표명했다. 최근 한국뮤지컬에서는 이러한 여성 버디 서사가 상호구원의 비전을 향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홍련>, <유진과 유진>, <라흐 헤스트>, <번 더 위치>, <관부 연락선>, <인화> 등이 그러한 예다. 여기서 인물들은 물리적 혹은 심리적 위기를 겪는 상태에서, 취약함을 살피고 돌보는 방식으로 유대관계를 맺는다. 이 중 재공연을 앞둔 <홍련>은 대표적인 설화의 주인공들인 홍련과 바리가 서로를 도우며, 기억과 애도를 통해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과정을 밀도 높게 보여준다. 이는 여성 관객층이 주를 이루는 한국뮤지컬의 특수성 속에서 형성된 젠더 감수성과 연대감을 환기한다.

 

이와 함께 브로맨스를 담은 서사가 스릴러극의 성격을 띠며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 지난해에도 <두 낫 디스터브>, <모리스> 등이 초연하며 주목받았다. 이러한 흐름은 다양한 수입 뮤지컬의 영향 속에서 형성되었는데, 그중에서도 2007년 3월에 국내에서 라이선스로 초연된 오프-브로드웨이 뮤지컬 <쓰릴 미>를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서사는 여성 서사와 대척점에 있는 것 같지만, 섬세하게 들여다보면 연결되어 있다. 대상화의 위험 없이 안전하게 관계와 감정을 탐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실존했던 서양의 예술가를 조명한 창작뮤지컬이 다수인 것 또한 독특한 현상이다. 지난해에도 <프리다>, <랭보>, <니진스키>, <스트라빈스키>, <라흐마니노프> 등이 상연되었다. 대체로 브로맨스 서사와 결합된 양상을 띠지만, <프리다>처럼 여성 서사를 담은 작품들도 있다. 작가·작곡가·화가·무용가 등 예술가 소재 뮤지컬이 끊임없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예술가 특유의 멜랑콜리가 주는 매력에서 찾아볼 수 있다. 멜랑콜리는 정신분석학에서 사랑하는 존재를 잃었을 때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상태를 가리키지만, 철학에서는 시인과 예술가 등 비범한 사람들의 특징으로 설명된다. 이는 광기 어리거나 고뇌하는 모습과 연관이 깊다. 이처럼 “서구 예술 전체를 지배하는 근본 정조”1)를 차용하는 양상이 흥미롭다.

 

한국뮤지컬이 동시대의 감수성을 선취한다는 점도 주목할 수 있다. 특히 동물, 휴머노이드, AI 등의 비인간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요즘 인문학의 중심에 있는 포스트휴머니즘을 잘 담았다. <어쩌면 해피엔딩>, <천 개의 파랑>, <라이카>는 인간의 편의를 위해 쓰이고 버려지는 비인간 인물들을 통해, 급변하는 세상에서의 돌봄과 공생의 윤리를 생각하게 한다.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유앤잇>, <오즈>는 디지털 시대의 애도 방식과 인간 정서의 회복을 그린다. 그리고 <긴긴밤>은 상실과 절망을 함께 견디며 나아가는 동물들의 모습으로 삶에 대한 사유를 이끈다.

 

뿐만 아니라 역사극도 다변화되는 추세다. 지난해 주목을 받은 <쉐도우>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임오화변을 ‘타임 루프 판타지’ 형식으로 다뤘다. 해외 작곡가가 참여하고 뉴욕의 워크숍을 통해 개발된 작품이다. 록 기반의 폭발적인 넘버들, 세련된 조명과 영상, 현대적인 의상이 인물들을 ‘지금, 여기’로 타임 루프시키는 느낌을 줬다. <한복 입은 남자> 역시 시간 여행이 펼쳐지는 가운데 현재와 르네상스, 한국과 이탈리아를 오가는 설정을 담았다. 화가 루벤스의 그림과 조선시대 과학자 장영실의 행적을 추적하며 펼쳐지는 역사 미스터리극으로, 장영실과 세종의 내면적 관계가 골자를 이룬다. <일테노레>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 최초의 오페라 테너로 활동한 이인선과 독립운동 서사를 결합시켰다. 여러 번 반복되는 서정적인 클래식 넘버의 모티프는 억압된 역사적 상처에 대한 애도를 느끼게 했다. 그런가 하면, 올해 1월에 개막한 <몽유도원>에서는 정가의 구슬프면서도 맑은 음색이 서양 오케스트라와 만나 절도 있으면서도 아련한 분위기를 이끈다.

 

뮤지컬 <명성황후> 공연 장면. 사진=에이콤

 

‘K-뮤지컬’이 향하는 곳

한편, ‘K’라는 접두사가 글로벌 지향이라는 것과 함께, 유동적이라는 점도 수많은 연구에서 언급되어왔다. ‘K’라는 한국의 고유한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뮤지컬’이라는 융합 장르는 역동적으로 변형되는 특징을 지닌다. 때문에 K와 뮤지컬의 만남은 정체될 수 없으며 다양하고 새로운 생성의 과정 위에 있다. 섬은 바로 그러한 움직임이 이루어지는 장이다.

 

한국 문화를 지칭하는 ‘K’는 ‘K-팝’에서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K-팝’은 일본에서 한국의 대중가요가 소개되던 1990년대 말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은 1999년 10월 9일 미국의 음악 산업 전문 매체인 『빌보드(Billboard)』에서다. 한국 특파원이었던 조현진이 가요와 ‘J-팝’을 비교하는 맥락이었다. 김창환 프로듀서의 말을 인용하면서 영어권에서의 접근성이 좋은 말을 고른 것이다.2)  ‘K-뮤지컬’도 ‘K-팝’처럼 출발 지점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담고 있다. K-팝, K-드라마 등 한류가 본격화된 2010년 이후 아시아 진출은 중심으로 통용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는 2011년 8월 3일 『한국경제』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CJ ENM의 중국 및 일본 진출과 ‘원 아시아 마켓’ 전략에 관한 기사에서다.

 

물론 그 이전에도 아시아 진출의 움직임이 있었고, 이것을 호명할 용어가 생긴 것이었다. 2007년에 아뮤즈가 PMC프러덕션의 <달고나>를 5% 조건으로 라이선스한 것이 로열티를 받은 최초의 사례다. 제목을 일본의 탄산음료 음식인 ‘라무네(ラムネ)’로 변경하는 등 대폭 수정하는 방식이었다. 이후에도 일본과 중국에서 논 레플리카 라이선스 방식으로 호응을 얻으며, 문화적 번역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한편, 영미권 진출은 다른 양상으로 시작되었다. 문화교류 형식의 공연을 제외하면, 에이콤이 제작한 <명성황후>와 <영웅>이 선구적인 사례다. <명성황후>는 1997년과 2002년에 뉴욕과 런던에서, <영웅>은 2011년에 뉴욕에서 약 2주 동안 공연했다. 동아시아권의 경우들과 달리 완성된 대극장 공연이었고, 현지와 상호작용하며 각색이 이루어지는 구조는 아니었다.

 

K-뮤지컬에 국가 브랜드로서의 의미가 뚜렷해진 것은 이러한 영미권 진출과 맞물린다. 역사뮤지컬인 <명성황후>와 <영웅>의 투어 공연은 뮤지컬의 본고장에서 이뤄낸 유의미한 성과로 평가되었고, 이러한 사례가 한류 정책에 반영된다. 한국뮤지컬과 영미권의 관계에서 ‘뮤지컬’은 ‘K’가 참조하는 추상적인 정전(canon)이 된다. 그러나 여기서 모방은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미묘한 차이를 드러낸다. 포스트식민주의 이론가인 호미 바바가 말한 것처럼 ‘거의 같지만 완전히 같지 않은’ 상태가 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기존의 헤게모니를 흔든다. 이때 의도하지 않은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이 형성되는 공간이 열린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브로드웨이 공연 장면. 사진=NHN링크

 

최근 영미권에서는

최근 영미권에 진출한 한국뮤지컬은 역동적인 트랜스컬처의 흐름을 보여준다. <마리 퀴리>는 2023년 6월부터 두 달간 런던 채링 크로스 시어터에서 논레플리카 라이선스 방식으로 공연되었다. 제작사 라이브의 강병원 대표가 프로듀싱했지만 영국 연출과 배우들이 참여했으며, 공연 시간을 압축하고 대본을 수정했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K-뮤지컬 로드쇼’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중장기 창작지원사업’을 통해 이루어졌다. 완성된 결과물보다 과정의 공유에 초점을 맞춘 지원사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 제작사가 해외에서 신작을 개발하는 시도도 눈에 띈다. 오디컴퍼니의 신춘수 대표가 리드 프로듀서로서 제작해 2023년부터 브로드웨이에서 상연 중인 <위대한 개츠비>가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8월부터 약 3개월 동안 GS아트센터에서 상연되었다. 창작진의 대부분이 외국인으로 구성되었지만, 한국뮤지컬 시장을 일구는 데 일조한 프로듀서의 경험과 방향성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면서, 원작 소설이 지닌 시대적 정밀함은 덜어내고 두 인물의 욕망과 사랑을 중심으로 다양한 관객층에 다가섰다.

 

그런가 하면 <메이비 해피엔딩>의 브로드웨이 진출은 특수한 경우라 할 수 있다. 한국뮤지컬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두 언어로 창작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박천휴와 윌 애런슨은 우란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한국에서의 트라이아웃 이후인 2016년에 뉴욕에서 리딩을 진행했다. 이때 리처드 로저스상을 수상하는 등 좋은 평가를 받았고, 지금의 리드 프로듀서인 제프리 리처즈의 연락을 받게 된다. 이들은 영어의 문화적 특징을 반영하고 전사나 상황 설정을 명료하게 보완했다. 그리고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정수 중 하나인 재즈를 강조하며 관객에게 다가갔다. 동시에 한국의 고유성을 살리며 호기심과 신선함을 느끼게 했다. 서울과 제주도라는 공간적 배경을 만화적으로 구현하고 한글 단어를 영사했다. ‘화분’이 번역되지 않고 그대로 불린 것은 특히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로봇이라는 낯선 소재는 오히려 인종과 국가를 넘어서는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특히 올리버와 클레어가 히키코모리처럼 고립된 채 겪는 외로움과 낙오감은 동시대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잠재력을 지닌 배양토

이 글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대극장 뮤지컬과 라이선스 뮤지컬의 흐름 역시 한국뮤지컬의 중요한 결이다. 이처럼 다채로운 한국뮤지컬은 이제 해외 진출이라는 돌파구가 필요하다. 브로드웨이에서 더 이상 실험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는 추세임을 생각하면, 이러한 움직임은 시기적으로 잘 맞아떨어진다. 한국뮤지컬은 어쩌면 우리가 예측해 온 것보다 훨씬 큰 잠재력을 품은 섬인지도 모른다. 이제 문화는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특히 대학로 뮤지컬은 섬세한 감각으로 사회적 사건과 심리적 풍경을 반영하며 독특한 흐름을 형성해 왔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정서의 에너지를 주고받는 정동적 특징이다. 이 작품들은 논리적 재현보다는 환상성을 통해 감각과 상상력을 동원하고, 관객을 능동적인 참여자로 이끈다. 환상성이 “어떤 문화가 지닌 꿈, 공포, 정치 등을 밝히는 열쇠”3)라는 점에서, 한국뮤지컬이라는 섬은 동시대를 부유하는 정서들이 머무는 곳이다.

 

전략적 해외 진출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화를 산업으로 바라보는 논리에 너무 치중한다면 동질화로 향할 수 있다. 이는 K-팝을 비롯한 한류 연구에서도 제기되어 온 비판적 쟁점이다. 관건은 창작자들이 긴 호흡으로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을 숙성시킬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최근의 사례들에서 알 수 있듯 K-뮤지컬의 경쟁력은 속도가 아니라 축적된 시간에서 만들어진다. 아울러 이제는 그간 한국뮤지컬의 자료들을 정리하고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한편, 지난해 넷플릭스에서 상영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오늘날 K-컬처가 어떤 조건 속에서 생성되고 유통되는지 엿보게 하는 흥미로운 사례다. 이 작품은 소니 픽처스라는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제작되었지만, 매기 강 감독을 비롯한 한국계 창작자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며 디아스포라적 혼종성을 보여줬다. 글로벌 플랫폼·자본·제작 시스템, 그리고 관객의 초국가적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진 성과다. 이는 문화가 더 이상 국적이나 지역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한국뮤지컬이라는 섬 역시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며 열려 있는 장이 된다. 이 섬에서 구성되는 K-뮤지컬을 규정하는 것보다, 그 안에서 축적되는 주름들을 섬세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1]김동규, 『멜랑콜리 미학』, 문학동네, 2017, 12쪽.

[2]Tamar Herman, “Looking Back at How ‘K-Pop’ Came to Billboard 20 Years Ago,” Billboard, October 11, 2019.

[3]캐스린 흄, 『환상과 미메시스』, 한창엽 옮김, 푸른나무, 200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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