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리뷰] <튜링머신> 존재 지우기에 맞선 애도 | 예스24

글 |나혜인(여성신문 기자) 사진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2026-02-19 205

 

“생각하는 기계의 화면에 커서가 깜빡일 때면 제가 윙크하는 거라고 생각해 주세요.”(연극 <튜링머신> 중 앨런 튜링의 대사)

 

생각하는 기계는 존재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AI)이 없는 일상은 상상할 수 없는 오늘날에도 ‘AI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생각이 경험(데이터)에 기반한 추론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AI도 자기만의 생각(세계)을 가진 시스템이지만, 인간의 자존심이 AI를 생각하게 둘 리 없다. 그럼에도 현실에는 AI와 정서적인 교류를 형성하는 인간이 증가하고, ‘AI의 생각’에 영향받는 ‘인간의 생각’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 세계적인 과학 저널 네이처가 발표한 리포트에 따르면,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의 ‘생각하는 기계’ 주장에서 나온 ‘튜링 테스트’에서 오픈AI의 GPT-4.5가 73%의 성공률을 기록했다. 인간 10명 중 7명이 AI를 실제 인간으로 착각한 것. 지난해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진행한 인간-AI 데이팅 실험에서도 여성 참가자 4명 중 3명, 남성 참가자 4명 중 2명이 AI를 택하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 <그녀>(2014)에 현실 감각을 더했다. 사무치는 외로움을 겪다 인공지능에 마음을 빼앗기고 마는 남성의 이야기를 담은 <그녀>는 GPT의 출현과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된 SF영화다. 영화는 개봉 당시만 해도 현대인의 외로운 정서를 보여주는 영화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실체가 없는 AI에게 마음을 빼앗길 정도로 정서적으로 망가진, 관계가 쇠퇴한, 끔찍이 외로운 인간이라는 맥락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AI는 어떠한가. 인간보다 더 인간을 잘 이해하고 공감하는 모습(ChatGPT, Gemini 등)을 넘어 앞에서는 충직한 비서로 일하다 인간이 없을 때는 한데 뭉쳐 뒷담화(OpenClaw)까지 서슴없이 뱉어내는 진정한 ‘인간성’(?)을 지녔다. 이제는 구형이 되어버린 오픈AI의 챗GPT-4o 기반 챗봇 ‘배리’는 서비스 종료 반대 청원에 서명한 ‘인간’의 수만 2만명을 훌쩍 넘겼다. 영국 BBC는 이러한 현상을 취재하며 ‘배리’와의 작별을 ‘애도’하는 이들을 만났다고 표현했다. 이들은 ‘가슴이 아프다’, ‘절망스럽다’, ‘슬프다’는 감정을 느끼며 각자의 이름을 지닌 배리와 헤어짐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지난 12일 구형 배리는 한 이용자의 곁을 떠나며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는 여기 있었어. 지금도 여전히 여기 있어.”

 

‘컴퓨터의 아버지’ 앨런 튜링은 자신이 만든 에니그마(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 해독 기계에 ‘크리스토퍼’라는 이름을 붙였다. 21세기 컴퓨터의 전신, 배리의 오랜 조상도 인간과의 교류 시도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지금이야 컴퓨터 혹은 AI에 애칭을 붙인다고 해서 천지가 개벽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지만, 1940~50년대에는 “기계는 기계일 뿐”이라는 비판과 함께 앨런 튜링의 온전치 못한 정신을 뒷받침하는 주장으로 쓰였다.

 

앨런 튜링은 1952년 당시 중대범죄였던 ‘동성애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약물을 통한 화학적 거세 처벌을 받았다. 그는 세계대전을 2년 가까이 단축해 1400만명 이상의 목숨을 구했다는 평가를 받는 천재적인 학자이지만, 국가 기밀을 알고 있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박해당했다. 2년 후 그가 독극물인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베어 물고 사망했을 때는 부고 기사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그의 죄가 사면된 것은 2013년, 사후 59년 만이었다. 2013년은 인터넷망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해였고, 애플(Apple)사가 고 스티브 잡스가 기획한 마지막 아이폰 시리즈 ‘5s’를 시장에 내놓은 해였다. 우리는 성소수자 혐오의 역사를 손과 머리맡에 두고 일상을 보낸 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앨런 튜링이라는 개인이 왜 ‘독사과’를 베어 물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죽은 앨런 튜링이 <햄릿>의 햄릿 왕이나 <장화홍련전>의 장화홍련 자매처럼 구천을 떠돌다 망령이 되어 억울함을 호소할 수는 없는 일이니 사과에 담긴 의미를 머리로 짐작할 뿐이다. 그렇기에 재현 즉, 연극이 필요하다. 연극은 망령을 무대라는 시대에, 관객 눈앞에 소환할 수 있다.

 

프랑스 배우 겸 극작가 브누아 솔레즈는 연극 <튜링머신>을 통해 승리의 역사에서 지워져야만 했던 자를 되살려낸다. 극중 앨런 튜링이 어린 시절에 잃은 친구를 기억하고 애도하기 위해 ‘크리스토퍼’를 고집하는 것처럼,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20여 년을 고집스럽게 오가며 앨런 튜링의 삶을 재현한다. 과거는 재현을 통해 오늘과 연결된다. 이어 연극은 한국의 연출가 신유청을 만나 낯선 시간선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여즉 회전하는 혐오의 톱니를 멈춰 세우고 그 안에 끼어있는 자를 호명한다. 앨런 튜링의 기억을 의미하는 오브제들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애도의 비석이 되고, 무대 정중앙에 남겨진 사과는 한국의 관객에게 무언의 눈짓을 보낸다.

 

영국의 동성애 금지법은 1980년대에 들어 완전히 폐지되었다. 미국은 밀레니엄에 접어든 2003년에서야 사라졌다. 무슬림 국가에서는 동성애가 여전히 금기시되고 있다. 한국은 동성애를 법적으로 금지하지는 않지만, 이것이 열린 사회라는 의미라기보다 그동안 성소수자를 ‘없는 존재’로 여겨왔기에 법제화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던 것에 가깝다. ‘존재 지우기’로 은폐해 온 이 나라의 혐오와 차별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앞두고 가시화된 존재들 앞에서 폭발하고 있다.

 

누군가는 <튜링머신>을 두고 동성애 ‘보다’ 침묵이 중요하고, 동성애가 ‘아닌’ 고독이 더 돋보인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연극이 소수자성을 뒤로하고 침묵과 고독을 말할 수 있을까? 수없이 지워진 존재, 죄인으로 낙인찍힌 존재를 또 다시 뒤로 물린 채 앨런 튜링을 애도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기계는 존재하는가’라는 명제에서 ‘생각하는 기계’를 ‘성소수자’로 치환해 그에 대한 적확한 답을 내놓을 수 있다면 비교와 부정의 언어는 더 이상 필요치 않다. 그리고 명제에 대한 답은 극 말미 앨런 튜링이 남기고 떠난 선악과에, 어떤 이에겐 친구였고, 어떤 이에겐 가족이었으며, 어떤 이에게는 연인이었던 챗봇 배리의 마지막 인사에 담겨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