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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칼럼] 공감각적 경험의 환기, '연결되기'를 향한 비전

글 |최승연(뮤지컬 평론가) 사진 |. 2026-03-31 192

최승연 뮤지컬 평론가가 매월 주목할 만한 뮤지컬계 이슈를 심도 있게 들여다봅니다.


 

뮤지컬 <제임스 바이런 딘> 공연 장면. 사진=씨일공일

 

2025년 18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선정작이 모두 무대에 올랐다. 2008년에 시작된 공연예술창작산실은 매년 3~4편의 규모로 올해의신작 뮤지컬 부문을 운영했으나, 2024년 제17회부터는 총 7편으로 규모를 확장하여 2배에 가까운 작품을 배출하고 있다. 이번 18회 뮤지컬 부문 선정작은 <푸른 사자 와니니>((주)에이엠컬처, 1월 3일~25일, 노원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제임스 바이런 딘>((주)씨일공일, 1월 9일~3월 1일, 극장 온), <초록>(북극성, 1월 27일~3월 29일, 링크아트센터드림 드림2관), < A여고 사서의 영광과 비극 >(주식회사 홍컴퍼니, 1월 27일~4월 26일, 링크아트센터드림 드림3관), < Roger >(주식회사 창작하는 공간, 3월 5일~5월 31일, NOL 서경스퀘어 스콘 2관), <적토_고삐와 안장의 역사>(극단 죽도록달린다, 3월 7일~29일, SH아트홀), <조커>(주식회사 엔제이원, 3월 12일~29일, 극장 온) 7편이다.

 

뮤지컬 <푸른 사자 와니니> 공연 장면. 사진=에이엠컬처

 

인력: 신진부터 중견까지

17회부터 눈에 띄는 경향은 오랜만에 신작을 내놓는 중견과 대학로에서 활발하게 작업하는 창작자들, 그리고 신진까지 두루 포괄하여 다양하고 다층적인 스펙트럼 안에 선정작을 배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넬리블라이>(17회)의 기획부터 작/연출까지 맡았던 변재중, <라파치니의 정원>(17회)의 작가 김수민, 작곡가 이다솜은 학교에서 현장으로 진입하고, 음악 조감독에서 작곡가로 성장한 신진 작업자들이다. 반대로 2024년 17회 선정작인 <오셀로의 재심>의 작가 박새봄,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의 작/연출 오미영, 그리고 2025년 18회 선정작 <적토>의 작가 한아름은 각각 <인당수 사랑가>(2002), <한밤의 세레나데>(2006), <영웅>(2009)으로 ‘뮤지컬 작가’로 데뷔한 중견 작가들이다. 세 여신이 이끄는 아이러니와 역설로 가득한 재판극, 치매 노인의 일상을 따뜻하게 조명하는 판타지극, 󰡔삼국지󰡕의 적토마 에피소드를 한 흐름에 담은 고전 각색물은 이들의 작가적 정체성을 명확히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젠더, 노인, 비인간을 화두로 하는 동시대적 테마가 뮤지컬로 심화되는 모델을 만들었다. 이와 더불어 오미영과 노선락, 한아름과 서재형 콤비의 현재진행형 작업을 통해 이들의 역사적 위치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 역시 큰 수확이다. 작곡가로는 <오! 당신이 잠든 사이>(2005), <김종욱 찾기>(2006)의 김혜성 작곡가가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17회), <푸른 사자 와니니>(18회)로 연속 선정되어, 극의 흐름을 명확한 멜로디 라인에 담아 관객에게 각인시키는 특유의 스타일을 유연하게 보여주었다.

 

한편, 17회에 비해 이번 18회에서 작가, 작곡가 콤비의 작품이 선정작의 대부분을 차지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학로를 주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 A여고 사서의 영광과 비극 >의 한재은과 박현숙, <조커>의 추정화와 허수현, < Roger >의 김정민과 성찬경을 포함하여 개발 단계의 여러 작품을 통해 합을 맞춰온 <제임스 바이런 딘>의 배서영과 최진용, <초록>의 현지은과 박윤솔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이러한 현상은 극작과 작곡 단위의 팀 작업이 뮤지컬 창작의 지도를 그리는 핵심 작업임을 웅변하며, 나아가 창작 단위의 숙련도와 완성도가 현장 유통을 책임지는 근본임을 대변한다. 그 외에 <로빈>(2020), <캐빈>(2025)의 작가 현지은은 <그해 여름>(17회)과 <초록>(18회)으로 2년 연속 선정됨으로써 사랑과 치유의 테마에서 인간의 정념을 드라마틱하게 파고드는 스타일로의 확장성을 보여주었다. 데뷔작 <일라이>(2023) 이후 대본 번역과 창작을 오가며 활동성을 보여주던 작가 김수아 역시 가족극 <푸른 사자 와니니>로 작업 반경을 확장했다. 또한 17회에 선정되었던 <무명호걸>의 작/연출 승운,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의 작가 김하진은 각각 <떳다 ㅅㄱ>(2024), <뮤지컬24>(2025) 그리고 <소란스러운 나의 서림에서>(2025)를 통해 자신의 더욱 역량을 발전시키고 있다.

 

뮤지컬 <조커> 공연 장면. 사진=주식회사 엔제이원

 

방법론: 각색(adaptation)과 다시쓰기(rewriting)

뮤지컬에서 각색은 시장성을 높이는 오래된 창작 방법이지만, 이번 18회에서는 특히 각색의 원작과 참고 자료의 폭이 넓어졌다는 특징을 보였다. 총 7편 중 5편(71%)이 각색물 혹은 실존 인물 소재작으로서, 한국 동화, 한국 단편소설, 동서양 고전, 서양의 역사적 인물과 그의 예술이 창작의 소재로 흡수되었다. 이는 7편 중 6편(86%)에 달했던 17회보다 근소하게 낮아진 수치였으나, 결국 뮤지컬에서 완전한 오리지널 창작은 쉽지 않은 프로젝트임을 증명했다. 이는 한국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며, 대규모의 제작비가 투입되고 있는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에서는 훨씬 더 강화된 양상으로 관찰되고 있다.

 

총 10권으로 된 이현 작가의 동명 동화(2015) 중 1권을 각색한 뮤지컬 <푸른 사자 와니니>는 동물을 의인화한 가족극으로 탄생됐다. 뮤지컬 <긴긴밤>(2024)과 같은 지향성 안에 있지만 규모 면에서 더 크고, 와니니로 대표되는 새로운 세대가 자신의 고유성을 발견함으로써 부족의 역사를 전승한다는 측면에서 아버지의 법을 따라 역사를 잇는 디즈니 뮤지컬 <라이온 킹>(1997)과 다르다. 한편, <초록> 역시 소설 각색물로서 <푸른 사자 와니니>와 함께 묶일 수 있지만, 한국과 서양의 고전 <배따라기>(1921)와 <오셀로>(1603년 경)를 결합하여 ‘질투’와 ‘소외’로 소용돌이치는 인간 내면을 깊이 있게 다뤘다는 특징을 보였다. 서사와 인물 구도는 <배따라기>에서 가져왔으며, ‘초록’의 상징성은 질투를 ‘초록 눈의 괴물(green-eyed monster)’이라 규정한 <오셀로>의 이아고 대사에서 착안하여 다층적으로 확장했다. 14세기에 집필된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 적토마 에피소드를 추려내어 말(토적토)을 역사의 주체로 세운 <적토> 역시 각색의 방법론을 활용했다. 역사의 후면에서 비주류로 존재했던 토(토끼)적토가 대항마 호(호랑이)적토와 스승 절영을 넘어 영웅적 발걸음으로 삶의 황금기를 지나 다음 세대에게 역사를 물려주는 전체 흐름이 배우들의 리드미컬한 움직임으로 구현되었다. 극단 죽도록달린다의 역사와 정체성은 무대 활용 방식과 배우의 퍼포먼스에 그대로 녹아 있었다.

 

뮤지컬 <적토> 공연 장면.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임스 바이런 딘>과 <조커>는 실존 인물 제임스 딘과 빅토르 위고를 소재로 그들의 삶과 작품을 ‘다시쓰기’ 한다. 여기서 다시쓰기(rewriting)는 두 배우와 작가의 작품이 놓여 있던 실제 맥락을 극적 상상력의 원천으로 활용하여, 뮤지컬로 재구성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두 공연의 핵심에는 배우들의 연극 놀이가 있으며, 이 연극 놀이를 통해 공연은 여러 차원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펼친다. <제임스 바이런 딘>은 극적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들며 삶과 죽음, 현재와 과거를 뒤섞는 과정에서 제임스 딘의 생애와 영화를 거꾸로 추체험하도록 되어 있다. 익숙하지 않은 화성과 아르페지오 반주로 ‘뒤섞임’과 ‘난데없음’의 감각을 표상하는 넘버는 매우 특징적이다. <조커> 역시 ‘극중극’을 통해 위고가 처한 망명자-작가로서의 현실과 소설 <웃는 남자>(1869)의 서커스 장면을 병치시키며 현실과 이상, 정의와 불평등, 관념과 행동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러한 입체적인 구조의 저변에는 제임스 딘의 불안정했던 생애와, 보나파르트의 제정에 대항했던 빅토르 위고의 정치적 행보가 두껍게 놓여 있다.

 

뮤지컬 < A여고 사서의 영광과 비극 > 공연 장면. 사진=홍컴퍼니 

 

완전한 창작물은 < A여고 사서의 영광과 비극 >, < Roger > 2편이다. 두 공연은 편안하고 익숙한 정서 안에서 극의 테마를 끌어안는 공통점을 보인다. 먼저 < A여고 사서의 영광과 비극 >은 1990년대 초반 여고생의 삶을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며 그들의 꿈과 현실을 귀엽고 발랄한 터치로 그린다. 1993년을 사는 4명의 여고생 명경, 지수, 환희, 수영이 우연히 학교의 비리를 파헤치며 성장하고 동시에 미래를 바꾸는 ‘꿈’을 꾸는 이야기를 미스터리적 구조와 편안한 음악으로 풀었다. < Roger >는 서로 다른 지역에서 배와 비행기를 관제하는 디디와 스카일러가 ‘주파수’로 만나 원한과 복수의 감정을 극복하고 공동체 안에서 ‘연결’되는 감각을 되찾는 이야기다. 정서적으로 자유롭고 충만한 상태를 조명과 영상으로 표현하는 연출이 감각적이며, 극의 흐름에 맞게 정서를 쌓아 올리는 넘버가 클래식과 라틴계 음악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두 작품은 무엇보다도, ‘1990년대 초반의 여고생’, ‘관제사’라는 새로운 소재를 창작뮤지컬의 풍경에 포함시키고, 이를 통해 한국의 현재와 뮤지컬의 극적 현실 사이의 간극을 한층 좁히며 ‘보헤미안 정신’의 예술적 상상력을 구체화했다.

 

뮤지컬 <초록> 공연 장면. 사진=북극성

 

비전: 삶에 대한 관조, 공동체성의 회복, 미래로 나아가기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18회 선정작들이 공연 내외부에서 각자 미래를 향한 비전을 심어놓는 방식이다. 이 비전은 공연의 내/외부를 향한다. 먼저 외형적인 면에서, 중대극장 규모로 성장할 수 있는 라인업이 두드러졌다. <적토>와 <조커>가 그 대상작으로, 두 작품은 이번 올해의신작 기간 중 사용했던 소극장보다 중극장 이상에 적합한 세계관과 미장센을 구축해 놓고 있었다. <적토>의 2층 무대, 총 12명의 배우가 펼치는 퍼포먼스와 에너지 넘치는 군무, 무대 바닥의 턴테이블이 극의 테마를 시각화하는 연출, 극적인 멜로디가 강하게 울리는 넘버는 물론이고, <조커>의 디폴트 공간인 빅토르 위고의 망명지 건지(Guernsey) 섬 오트빌 하우스, 휘장을 사방으로 올린 채 서커스 장면으로 변신하는 극중극 무대, 그리고 <웃는 남자> 그윈플렌의 이미지와 혁명을 꿈꾸는 ‘조커(들)’이 오버랩되는 그로테스크한 미학은 더 큰 규모의 물리적 공간감을 필요로 했다. 이 두 작품의 공연 규모는 애초에 중대형으로 디자인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는 창작뮤지컬의 소극장 중심 생태계에 하나의 가능성을 심어놓은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공연 내부로 시선을 모으면 더 중요한 지향점이 관찰된다. 이번 선정작들은 공통으로 ‘삶의 순환’을 이야기하고, ‘더 큰 세계’에 대한 비전과 ‘새로운 미래’를 향한 메시지를 결론에 제시한다. 삶의 거대함과 인간의 정념 앞에서 관조적인 태도를 취하는 <적토>와 <초록>, 불확정적인 미래를 뚫고 나갈 가능성을 현재에 심어놓는 < A여고 사서의 영광과 비극 >, 과거와 현재의 변증법적 완성을 통해 삶을 긍정하는 <제임스 바이런 딘>, 각자의 개별성 위에 구축된 공동체 안에서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푸른 사자 와니니>와 < Roger >, 각양각색의 존재들이 자신만의 발걸음으로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조커>. 이러한 경향은 비탄과 파멸의 순간을 극적으로 포착하고 이를 고정된 플롯으로 반복해 온 대학로 뮤지컬의 경향으로부터 점차 탈피하거나 혹은 그 안에서 섬세하게 진화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미래를 향한 초석을 놓는다.

 

이는 18회 선정작 공연들이 부분적으로 ‘이머시브성(immersivity)’을 지향함으로써 관객을 더 이상 관찰자로만 대하지 않는 경향과도 맞닿아 있다. 공연의 이머시브성, 이머시브적 경험이란 관객이 실질적으로 ‘거기에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 극장의 판타지 세계에 관객이 ‘몸으로 존재한다’는 공감각적 감각을 갖는 것과 관련된다.

 

뮤지컬 < Roger > 공연 장면. 사진=창작하는 공간

 

가령, <제임스 바이런 딘>의 객석을 향해 일직선으로 놓인 무대의 천장 조명, <초록>과 < Roger >의 객석 상부에 달린 조명이 관객을 극 안에 존재하게 하는 방식이 좋은 예다. <제임스 바이런 딘>은 관객이 이례적인 조명 디자인을 통해 자동차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운동성을 체감함으로써 제임스 딘의 포르쉐 550 안에서 그들의 여정을 함께 하는 듯한 감각을 갖도록 견인했다. <초록>과 < Roger >는 인물들이 단절을 깨고 서로 연결되는 장면에서 객석 천장의 레트로한 색감의 조명을 켜서, 관객이 인물들이 느끼는 ‘연결의 감각’에 실시간으로 동참할 수 있도록 했다. 나아가 < Roger >는 객석의 이머시브적 경험을 더 크게 확장해 놓아 한국 사회의 거대한 재난 트라우마를 상기시키고 치유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메이데이를 선언한 아메리칸 274가 안전하게 불시착하도록 두 인물이 협력 관제하는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관객은 치밀하게 디자인된 시노그라피를 통해 마치 관객 자신이 그 현장에 직접 존재하는 듯한 실재감을 느끼게 된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 지표에 의하면, 2025년 1년간 창작뮤지컬로 벌어들인 총티켓판매액이 라이선스 뮤지컬을 상회하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창작이 2,297억 원, 라이선스 뮤지컬이 2,221억 원이었다. 이 통계 지표는 창작과 라이선스 뮤지컬의 개념과 범주가 점차 모호해지고 있는 현재 다소 부정확한 요소를 품고 있으며, 또 거시적인 차원에서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 창작뮤지컬의 독자성과 고유성이 시장을 움직이는 동력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로를 중심으로 형성된 한국 뮤지컬의 역동성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향해 변화해야 할지, 또한 ‘제도’의 목표점 역시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며 어떻게 발전, 변화해야 할지 진중하게 모색될 필요가 있다. 이번 18회 선정작들의 경향은 이에 대한 지금/여기의 응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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