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이 오는 10월부터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강렬하고도 아름다운 무대로 [안트로폴리스 5부작 ANTHROPOLIS Ⅰ~Ⅴ](이하 [안트로폴리스 5부작])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
[안트로폴리스 5부작]은 독일 극작가 롤란트 쉼멜페니히가 고대 그리스 신화 속 테베 왕가의 비극을 탐구한 작품으로, 독일 함부르크 도이체스 샤우슈필하우스에서 2023년 초연, 2024년 재연되었다. 작품은 고대 신화 속 인물들을 그대로 옮겨오거나, 현대화를 거쳐 5부작으로 선보임으로써 2,500년 문명사의 궤적을 강렬하고도 아름답게 그려냈다는 호평을 얻었다. 또한 독일에서 관객이 10시간 이상 극장에 머물며 3일 동안 5부작을 몰아보는 마라톤 공연을 시도하는 등 [안트로폴리스 5부작]은 유럽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단숨에 주목받으며 2024년 독일에서 ‘올해의 극장(Theater des Jahres)’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안트로폴리스(Anthropolis)는 독일어로 인간의 시대를 뜻하는 안트로포챈(Anthropozän)과 도시를 의미하는 폴리스(Polis)가 결합된 말로, [안트로폴리스 5부작]은 문명사회에서 공동체를 이룬 인간 본성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작품은 <프롤로그/디오니소스 Prolog/Dionysos>부터 <라이오스 Laios>, <오이디푸스 Ödipus>, <이오카스테 Iokaste>, <안티고네/에필로그 Antigone/Epilog>까지 신화 속 이야기의 시간 순서대로 진행된다. 또한 우리에게 친숙한 디오니소스, 오이디푸스, 안티고네와 함께 라이오스, 이오카스테처럼 상대적으로 낯선 신화 속 인물까지 재조명해 고대 문명사회에서부터 현재까지 권력, 세대 간 갈등, 도덕적 딜레마에 관한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날 것의 인간 야수성으로 무대에 펼쳐 보인다.
특히 [안트로폴리스 5부작]은 국립극단이 국내 초연으로 선보이는 해외 우수 신작으로, 연초에 발표한 2025년부터 2027년까지 3개년의 작품 구성을 대표하는 표제인 '현존과 좌표'를 담아낸 작품이기도 하다. 5부작은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존재 양식에 집중해 실존과 욕망, 자유의지, 잠재된 힘 등 지금의 관객에게도 유효한 동시대적 메시지를 묵직하게 던진다.
고대 신화에서 테베 도시의 건설과 파괴가 반복되는 비극은 오늘날 산업혁명, 전쟁, 이상기후 등 다양한 변화를 겪은 문명사회와도 맞닿아 있다. 이 순간에도 지구 곳곳에서 발발하는 인류의 위기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자연과 신이 인간에게 이토록 폭력적이고 끊임없는 고통을 내린 비극의 구조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 팬데믹으로 인류가 또 다른 형태의 ‘위기의 시대’를 겪으면서 인간 공동체를 비롯한 사회 또한 완연히 달라졌고, 이에 [안트로폴리스 5부작]은 팬데믹으로 인해 해체된 인간 공동체 속에서 드러나는 본질적인 인간성에 대한 탐구로 시작되었다.
국립극단이 2025-26년에 걸쳐 국내 초연으로 선보이는 [안트로폴리스 5부작]은 오는 10월 10일부터 26일까지 윤한솔 연출이 이끄는 1부작 <프롤로그/디오니소스 Prolog/Dionysos>가 강렬한 서막을 열고, 11월 6일부터 22일까지 김수정 각색·연출의 2부작 <라이오스 Laios>가 그 바통을 이어받는다. 독특한 개성과 감각적인 연출력으로 한국 연극계에서 주목하는 윤한솔, 김수정 연출이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사회의 면면을 각각의 작품으로 야심 차게 선보인다.
<프롤로그/디오니소스>는 테베 왕가의 건국과 탄생 과정을 소개하는 <프롤로그>, 신인 제우스와 인간인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난 디오니소스가 자신의 신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인간들을 벌하고 신성에 도전하지 않는 자들에게 파멸을 안겨준다는 이야기를 담은 <디오니소스>로 구성되어 있다. 공연 시작 전 배우가 공연 준비를 하는 분장실을 무대 위로 옮겨와 배우들이 실제로 무대 위에서 분장하며 연기를 선보인다. 이는 공연의 막이 올라가기 전 배우들이 공연을 준비하는 상황을 극 중 테베 도시가 건설되는 과정에 빗댄 것으로, 극의 앞부분에서 배우가 극의 내용을 소개하는 ’프롤로그‘ 형식은 신선하고 강렬한 첫인상으로 관객과 만난다.
이번 작품은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18명의 배우가 오르는 대규모 프로덕션으로, 2025 국립극단 시즌 단원인 고용선, 김시영, 김신효, 박은호, 서유덕, 심완준, 정주호, 조성윤, 조의진, 홍지인 등과 강하, 박수빈, 윤자애, 장성익, 조문정, 조수재, 최지현, 한지수 배우가 함께해 폭발적인 에너지로 무대를 가득 채울 예정이다. 또한 5명의 라이브 연주자가 배우들과 함께 무대 위에서 호흡한다.
<라이오스>는 작가 롤란트 쉼멜페니히가 5부작 중 유일하게 원작 각색이 아닌 직접 창작한 희곡으로, 1부작을 보지 않아도 작품을 이해하는데 문제 없이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은 디오니소스, 오이디푸스, 안티고네 등에 비해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라이오스라는 인물에 주목, 신화 속에서 조연에 그쳤던 라이오스를 서사의 중심으로 옮겨와 그동안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다루지 않았던 오이디푸스의 아버지인 라이오스가 테베의 왕위에 오르기까지의 전사(前史)를 재구성했다. 또한 작품은 고대 신화 이야기에 케밥 가게, 오토바이, 인스타그램 등 현대 동시대적 요소를 가미한다. 극 중 시점 또한 연대기적 구성을 탈피해 여러 관점과 시간을 교차시키는 서사의 모호성을 연극적으로 확장해, 관객과 함께 상상하는 작품으로 완성하고자 한다.
<라이오스>는 무대 위 오직 한 명의 배우만 등장하는 ’1인극‘으로 진행된다. 작품은 단일한 문학적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서사시, 대화, 독백, 지시문 낭독 등 다성적(多聲的) 텍스트를 단 한 명의 배우가 다역의 다성적인 목소리로 전한다. 95분 내내 <라이오스> 무대를 책임질 배우는 전혜진이 낙점됐다.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매 작품 도전적으로 캐릭터 변신을 꾀하며 화제성과 흥행성을 모두 갖춘 배우로 자리매김한 전혜진이 10년 만에 연극 복귀작으로 <라이오스>를 선택해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이에 전혜진은 라이오스, 그의 아내 이오카스테, 예언자 피티아, 테베의 시민들 등 극 중 인물이자 서술자로서 다성적인 내면과 행동을 묘사하는 ’이야기꾼‘으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안트로폴리스 5부작]의 무대미술은 <활화산>으로 2024 동아연극상 무대상을 수상한 임일진이 맡았다. 각각의 작품마다 상징적인 컨셉을 구현한 무대를 통해 결국 ’테베‘라는 공간으로 5부작이 모두 연결되는 세계관을 완성하고자 한다. 또한 <프롤로그/디오니소스 Prolog/Dionysos>와 <라이오스 Laios>는 임일진을 비롯해 김성구 조명디자이너, 김지연 의상디자이너, 백지영 분장디자이너, 전민배 음향디자이너가 함께 1~2부작의 시·청각 비주얼을 맡아 관객을 황홀한 세계로 이끈다.
이후 국립극단은 2026년에 3부작 <오이디푸스 Ödipus>, 4부작 <이오카스테 Iokaste> 그리고 5부작 <안티고네/에필로그 Antigone/Epilog>까지 무대에 올려 5부작의 대장정을 완성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