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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ARTIST’S ROOM] 김유선 분장·가발 디자이너 [No.149]

글 |배경희 사진 |양광수 2016-03-02 6,712

긍지로 닦아온 길


분장 경력이 어느덧 30년을 바라보고 있는 김유선 디자이너. 그는 분장디자이너로 시작해 가발과 가면 디자인까지 담당하며 비주얼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국내 대표 디자이너다. <레 미제라블>, <레베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 그가 참여한 작품 가운데 현재 공연되고 있는 공연만 일곱 편이 넘는다. 베테랑 디자이너가 지나온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논현동의 한 골목에 위치한 킴스 프로덕션의 사무실 겸 작업실. 작업실에 들어서자, 네 명의 분장 팀 스태프들이 특이한 형태의 검은 가발 수선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명성황후>는 체력 소모가 큰 안무가 많은 작품이라 배우들의 땀 배출량이 엄청나요. 그만큼 가발 손질을 자주 해줘야 하죠.” 검은 가발의 정체는 바로 <명성황후>에서 사용되고 있는 상투. 작업 테이블 뒤로 보이는 커다란 박스 안에는 얼마 전 제작을 마친 <마타하리>의 두상 모형이 가득 담겨있다. “분장사가 아니라 점점 가발 디자이너가 돼가는 것 같아요.” 김유선 디자이너가 농담조로 말했지만,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이 참여하는 대다수의 작품에 분장 겸 가발 디자이너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의 작업실에서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다름 아닌 작품별로 가발을 모아둔 박스. 한 작품이 끝날 때마다 다음 시즌에서 재사용이 가능하도록 꼼꼼히 손질해 박스에 밀봉해 두는 것이 그의 가발 정리법이다. 해마다 늘어나는 가발 상자를 관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프로덕션 창고에서 가발을 보관할 경우 손상될 위험이 커서 직접 보관한다. “가발은 소모품이라 디자인에 변화가 없더라도 시즌마다 새로 제작해야 하지만, 우리나라 제작 여건상 그렇게 못할 때가 많아요. 한 번 제작한 가발은 다음 시즌에서 배우별 사이즈에 맞게 수선해 재사용하는 게 일반적이죠. 주조연 캐릭터 가발은 최대 두 번, 앙상블 가발은 최대 세 번까지 사용하고, 그 이상 사용하면 폐기해요.”


선반에 즐비하게 놓인 상자 다음으로 눈길을 끈 것은 스팀 다리미. 분장 팀 작업실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물건에 눈길이 가자, 김유선 디자이너가 스팀 다리미에 얽힌 사연을 들려준다. “96년에 우리나라에서 <브로드웨이 42번가>를 처음 올릴 때, 해외 프로덕션에서 파견된 스태프들 중에 가발 팀도 있었어요. 외국 가발 스태프가 가발 손질 작업에 스팀 기능이 있는 가발 오븐기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당시만 해도 우린 그런 게 있는지조차 몰랐어요. 가발 디자인에 대한 인식 자체가 미비했던 때였으니까. 급한 대로 오븐기 대신 썼던 게 이 스팀 다리미예요. 그런데 작업을 할수록 오븐기가 필요하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한 게 제빵 오븐기를 변형해 가발 오븐기를 만드는 거였어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그땐 모든 게 다 처음이라 작품마다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브로드웨이 42번가>가 가발의 중요성을 알게 해줬다면, 작업 노하우를 습득하게 해준 것은 2001년에 공연된 <오페라의 유령> 라이선스 초연이다. 당시 김유선 디자이너는 국내 분장 슈퍼바이저로 참여해 분장은 물론이고 가발과 가면 제작을 도맡았는데, 해외 팀의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해 많은 노하우를 얻게 됐다. “우리 뮤지컬 시장에 큰 전환점이 된 작품으로 흔히 <명성황후>(1996)와 <오페라의 유령>(2001)을 꼽는데, 두 작품이 스태프들에게 미친 영향도 어마어마해요. 두 작품을 통해 당시 우리보다 한발 앞서 있던 해외 프로덕션의 작업 방식을 경험하면서 많은 걸 배웠거든요(<명성황후>는 1998년 뉴욕 링컨센터에서 공연을 올린 바 있다). 스스로 그 두 작품이 터닝 포인트가 됐다고 생각하는데, 아마 지금 활발히 활동하는 중견 스태프라면 누구나 공감할 겁니다.” 그는 자신의 노하우가 집약돼 있는 작업 바이블(작품별로 분장이나 가발에 관련된 모든 정보를 한데 모아 둔 책) 역시 어깨 너머로 본 것을 따라 만든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분장사로 공연계에 입문한 그가 분장 겸 가발 디자이너로 입지를 다지기까진 수십 년의 노력이 필요했다. 이제는 때때로 가면 디자인까지 겸하고 있을 정도다. “수년 전만 해도 라이선스 작품의 경우 해외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의견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이젠 전적으로 우리에게 맡겨 주죠. 최근에 작업한 <레 미제라블>이나 <킹키 부츠>에 사용했던 것들 모두 우리가 직접 배우들에 맞게 재작업했어요. 이젠 감히 우리도 세계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각 작품에 사용된 가발이 들어있는 가발 박스는 작품에 따라 수천만 원대를 호가한다. 가발은 모든 작업이 수작업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그 가격이 비싸다고.  




작업실 한쪽에서 발견한 유명 뮤지션들의 콘서트 비디오테이프. 대부분이 90년대에 모은 것들이다. 콘서트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기 때문에 요즘에도 유명 뮤지션들의 콘서트 영상은 놓치지 않고 확인한다고.





지난해 초연한 <팬텀>의 가면은 김유선 디자이너가 직접 디자인한 것.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9호 2016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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