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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질풍노도의 뮤지컬<사춘기> [No.65]

글 |조용신 사진제공 |설치극장 정미소 2009-02-12 9,510


 

1891년에 쓰여진 프랑크 베데킨트(Frank Wedekind, 1864~1918)의 희곡 <사춘기(The Awakening of Spring)>는 1880년대 독일 사회를 배경으로 인습과 규범이 지배하는 기성 시민사회와 성장하는 청소년 세대간의 소통 단절을 다루고 있다. 1차적인 소통이 이루어져야 할 가정과 학교에서는 진지한 대화가 실종된 상태이고 종교는 아이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한다. 온몸으로 사춘기를 겪고 있는 청소년들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깨어나는 성(性)’에 대한 호기심과 충동은 죄의식 속에서 제약당하고 있다. 일찍이 베데킨트가 꺼내놓은 이러한 도발은 한세기가 훌쩍 지난 현재에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21세기 한국의 뮤지컬 창작자들에게 원초적인 영감을 선사하고 있다.

 

창작뮤지컬 <사춘기>(연출 김운기, 대본/가사 이희준, 작곡 박정아)는 우리 곁에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좌절, 반항, 일탈, 죽음 등의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속속들이 다루고 있다. 그것도 강렬한 록음악이라는 새로운 의상으로 갖춘 뮤지컬의 어법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베데킨트가 지적한 소통 단절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려 한다기 보다는 그 자체를 충분히 즐기고 있다.

 

창작뮤지컬 <사춘기>가 베데킨트의 동명의 희곡에서 가져온 것은 멜키오르, 벤들라, 모리츠의 삼각 캐릭터와 아이들과 소통하려는 노력도 없고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기성세대의 추상적인 모습과 같은 큰 틀 뿐이다. 주춧돌 몇 개를 제외하고는 완전한 해체 후 재창작이라는 과정을 거쳐 베데킨트의 원작에서 자유와 일탈을 꿈꾸던 청교도학생들은 21세기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로 바뀌었다. 예민한 감수성을 가졌지만 성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파멸해가는 소년 멜키오르 대신 이 작품에서는 영민이 처음부터 파우스트에서 영혼을 팔아넘긴 존재로서 자신이 정교하게 구축한 사이버 블로그 세계를 통해 오히려 기성세대를 조소하며 극을 이끈다.

 

이야기는 한 남자 고등학교 시험날에 속을 알 수 없는 영민이 전학을 오면서 시작한다. 같은 반의 선규는 반장과 ‘학교짱’의 견제에도 보란 듯이 수석을 차지하는 영민을 따르게 되고 두 사람은 급속도로 친해진다. 영민의 그로테스크한 성격을 규정하는 요소 중에는 그가 아버지의 외도로 태어난 서자(庶子)이며 어머니와의 소통이 불가하다는 점도 있다. 백댄서를 꿈꾸는 선규는 이를 반대하는 무서운 군인 아버지를 위해 시험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부담감에 영민의 기이한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은 영민의 초대로 시험 부정행위 방법을 총망라한 영민의 블로그 ‘메피스토’와 자살사이트 ‘쇼펜하우어’에 방문하는 것. 한편 자원봉사와 성경읽기가 유일한 취미인 모범 여학생 수희 역시 영민에게 끌려 충동적인 정사를 나눈 후 임신을 하게 된다. 한편 선규는 부정행위가 적발되어 무기정학을 당하지만 영민은 자신에게 불똥이 뛸 것을 사전에 차단하는가 하면 임신한 수희에게도 매정하게 대하는 등 점차 악마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한편 반장은 게이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선규는 마음속의 지배하고 있는 커다란 짐을 털어내지 못하며 이 모든 질풍노도의 젊은이들은 파국을 맞는다.

 

때로는 극단적으로 전개되는 의식의 흐름은 마치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럭비공처럼 드라마의 널튀기를 감행한다. 적절한 송모멘트가 되면 무대 한켠에 위치한 라이브 밴드에 의해 증폭기를 거쳐 귓청을 울린다. 박정아가 작곡한 음악은 마녀들의 축제를 찬미하는 전체 앙상블곡 ‘발푸르기스의 밤’이나 영민과 수희의 이중창 ‘그레첸’ 등에서 보듯 얼터너티브 록 스타일의 적절한 리프를 활용해 선명한 멜로리 라인을 들려주고 있다. 여장남자 배우들의 깜짝 변신으로 과한 웃음을 주며 여학생들의 환타지를 노래하는 ‘남친을 보내달라’도 시청각이 어우러져 잔상을 남긴다. 이희준의 가사는 상징과 직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시도한다. 게오르그 카이저의 ‘아침부터 자정까지’를 연상시키는 ‘아침부터 자정까지 도시의 거리를 점령하고 그 누구도 부수지 못하는 검고 무거운 성문을 닫는다’는 표현은 카이저의 표현주의에 베데킨트의 낭만주의적 요소의 영향이 혼재되어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구분동작으로 ‘호모 섹스쿠스’로 진화하는 장면을 포함한 오재익의 코믹한 안무는 신선하다. 의외로 많은 안무의 비중은 작품 전반을 무겁게 짓누르는 비극성을 다소 완화시켜주고 있다.

 

세면이 블랙으로 채워진 텅빈 정미소극장 무대에서 극적인 공간을 규정하는 것은 2차원적인 프로젝션을 활용한 직선의 움직임과 아바타 같은 이미지 뿐이다. 그 나머지는 모두 일곱 명의 신인 배우들의 몫이다. 전체적으로 앙상블 역할 배분과 여장 연기 부분에서의 약점은 보였지만 극의 투톱인 영민 역의 박해수의 눈빛 연기와 선규 역의 맹주영의 들떠있는 연기는 작품과도 조화를 이룬다. 무대의 홍일점으로 수희/영민 엄마의 1인 2역을 소화하고 있는 전미도는 외모에서부터 배역과도 일치하며 가창력과 연기면에서도 주목하게 된다.

 

`사춘기`는 아름다운 로맨티시즘이 지배하는 창작뮤지컬계에 정서적인 방황에 휩싸여있는 십대 청소년들의 현실과 고통을 위트와 비트로 재료로 하여 내놓은 용기있는 뮤지컬이다. 길고 어두운 터널로 기억되는 저마다의 사춘기를 지나 이제는 세상의 인습과 규범에 묶여서 맥박을 잃고 살아가고 있는 기성세대들에게도 이 작품을 통해서 잊고 있었던 건강한 웃음을 되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원작 프랑크 베데킨트, 대본/가사 이희준, 연출 김운기, 작곡 박정아, 안무 오재익, 출연 박해수, 맹주영, 전미도, 조창우, 이기섭, 윤원재, 임철수
2008.8.15~10.12,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 일반 3만원/ 학생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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