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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OPLE & PEOPLE] 박인선 연출가와 이지승 감독, 복수의 시대, 정의의 부재가 만든 그늘 [No.117]

사진 |심주호 진행·정리 | 송준호 2013-07-02 3,675

세상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는 않아서
어디에든 반드시 억울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 때문일까.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인기 있는 이야기가 바로 복수극이다.
점 하나 찍고 돌아온 장서희를 아무도 몰라봤던 이상한 복수극
<아내의 유혹>은 아직도 패러디될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올해도 드라마 <돈의 화신>과 <야왕>이 복수를 소재로 시청률을 높였다.
스크린에서도 딸을 유린한 성폭행범을 직접 잡아 단죄한 엄마의 이야기
<공정사회>가 화제가 됐고, 복수극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와 <두 도시 이야기>는 개막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복수극의 인기를 대리만족이나
대중 서사의 쓰임새로만 해석하기엔 뭔가 개운치 않다.
이유가 뭘까. <몬테크리스토>의 박인선 연출가와
<공정사회>의 이지승 감독이 합석해 이 찜찜함의 정체를 고민해봤다.

 

 

    

 

허무함, 복수의 결과

대개의 픽션에서 다루는 복수의 결말이 비슷한 경우가 많죠. 통쾌함은 순간이고 씁쓸한 여운으로 처리되는 식으로요. 복수의 속성이 그런 것일까요.
이지승   저도 오기 전에 <몬테크리스토>의 지난 공연 영상과 줄거리를 찾아봤는데 복수가 허무하게 마무리된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검색을 좀 해봤더니, 연출님의 이번 연출 방향도 ‘허무함’이더라구요. 그건 제 영화와도 일맥상통하는 코드거든요. 복수가 속 시원하게 완료되는 컨셉이 아니라, 하고 나서도 좀 씁쓸하고 허무한 느낌을 주는 설정이랄까.
박인선   저도 <공정사회>를 보면서 바로 그 부분에서 접점을 발견했어요. 잃은 걸 되돌릴 수는 없거든요. 자기만족일 뿐이죠. 그래서 저는 <몬테크리스토>가 단순한 복수극이라기보다는 용서를 위한 여정으로 보고 있어요. 복수를 마무리하고 원수들을 다 죽였는데도 자기 사람, 친구는 돌아오지 않거든요. 어쩔 수 없이 마음 한쪽에 씁쓸함이 남게 되죠. <공정사회>에서도 복수는 성공하지만 딸의 상처는 회복되지 못한 채 살 수밖에 없잖아요. 결국 상황이 원상 복구되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렇다고 복수를 그냥 포기할 수도 없고. 하지만 한다면 생각처럼 후련할까, 카타르시스를 느낄까, 이런 부분에서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이지승   뮤지컬에서는 복수가 시각적으로 어떻게 표현되나요?
박인선   악당 세 명이 나오는데 이들은 사랑, 명예와 탐욕, 사회적 위신을 위해서 단테스를 샤또 디프(Chateau d`if)라는 감옥에 보내거든요. 사회적으로 위험한 내용을 담은 편지와 주인공을 엮어 사상범이라는 죄목으로 가두죠. 나중에 단테스가 몬테크리스토로 돌아와 덫을 만들고 그들을 끌어들여 파멸로 이끌어요. 뮤지컬에서는 이걸 노래 한 곡 안에서 다 처리해요. 모든 걸 잃은 사람들은 좌절감에 죽기도 하구요.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이 복수가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고민들이 뒤에 나오게 되죠.


사적 복수에 대한 이야기는 시대와 장르를 넘어 항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서사죠. 당하고도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일까요.
이지승   그 부분은 함부로 말하긴 어려워요. 따뜻한 세상, 밝은 세상, 또는 제 영화처럼 ‘공정사회’를 바라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텐데, 이게 이상적으로만 여겨지고 현실적으로 잘 이루어지지 않는 세상이잖아요. 그래서 그걸 영화적 표현으로 만든 게 <공정사회>에요. 복수극의 인기는 일말의 위안이나 카타르시스를 얻기 위해서가 아닐까 해요.

 

 

 

현실은 픽션보다 냉혹하다
<공정사회>의 남편이나 경찰은 아줌마에게 2차 상처를 준다는 점에서 성폭행범과 동일 선상에 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몬테크리스토>에도 그런 공모자들이 있죠. 그래서 이들에 맞서기 위해 조력자가 필요하고.
박인선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면 해내기 어려운 게 복수인 듯해요. 뮤지컬에는 다양한 조력자들이 나오는데, 영화에서는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이 아줌마 혼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안쓰럽더라구요. 흥신소의 도움을 빌리긴 하지만 그것도 결국 돈으로 거래한 거니까요. 그래서 외로운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이지승   흥신소를 등장시킨 건 이 사회를 비꼰 거예요. 돈의 논리도 물론 있지만, 힘 있는 남편, 경찰, 이런 사회 시스템에 의지할 땐 사건 진행이 지지부진한데, 흥신소는 매우 소량의 돈으로도 순식간에 문제를 해결하거든요. 그에 맞게 편집해 앞부분까진 서서히 진행되다가 흥신소 장면 이후로는 전개가 급격히 빨라져요. 영화에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불과 200~300만 원이면 범인을 눈앞에 데려다 놓을 수 있다는 설정도 있어요. 그런데 취재한 바에 따르면 실제로도 그 정도 금액이면 그런 일이 가능하더라구요.


단테스도 결국 막대한 재산을 얻게 되면서 그런 복수가 가능했죠.
박인선   단테스도 기연을 만나지 않았으면 감옥에서 탈출을 했더라도 아무것도 못했을 거예요. 돈도 돈이지만 상류층인 귀족들만의 문화도 같이 획득하게 되거든요. 결국 기득권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복수가 수월해진 겁니다. 아줌마도 시스템이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으니까 결국 돈으로 흥신소를 이용해 복수를 하게 되잖아요. 한마디로 복수를 위해서는 의지도 중요하지만 결국엔 시스템을 움직일 수 있는 돈이나 권력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즉 사회적 신분을 올려야 한다는 거죠. 복수를 하고자 하는 이들은 대개 힘없는 약자니까.
이지승   그래서 영화에서 아무것도 없는 아줌마가 그렇게 고생을 했던 거죠(웃음).
박인선   그러고 보니 <공정사회>는 실화를 배경으로 쓴 시나리오라고 들었습니다.
이지승   복수 이야기를 하려고 실화에서 차용한 건 아니에요. 제가 만약 이걸 리얼하게 다루려고 했다면 극 중 인물도 복수를 못했겠죠. 아줌마가 어떻게 사회를 상대로 복수를 하겠어요. 그래서 영화적 판타지를 위해 범인을 처단해야 했죠. 일단 범인에게 복수를 하고 그다음에는 도와주지 않는 사람들, 즉 남편과 경찰에 대한 복수를 했어요. 어떻게 하면 다 엮어서 복수를 할까 고민했던 것 같아요. 또 가장 잔인하게 복수하는 방법이 뭘까 생각하다 ‘치과’라는 환경을 썼죠. 한국 영화에서 그만한 장면은 아마 다시는 안 나올 수준으로요.
박인선   전 사실 그 장면에선 범인의 ‘그것’을 자를 거라고 예상했어요. 요즘 워낙 성범죄 사건이 많고 피해자의 상처도 커서 그런 여론이 많기도 하니까요.
이지승   실제로도 그런 의견들이 많았어요.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고 아줌마한테 감정 이입을 많이 해서 “거기를 잘라버려야 하는데!” 하시거든요. 이게 자기 일이라고 하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일이잖아요. 저도 치과적 방법을 떠올리기 전에 ‘이놈을 가장 고통스럽게 죽일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생각했는데, 사실 그중에 성기도 있었어요. 그런데 연출님도 생각해낸 것처럼 예상가능한 결말이 저는 싫었던 거죠(웃음).
박인선   대사가 정말 적나라했어요. 특히 상담소에서 하는 얘기요. 우리 사회에 성추행범, 성폭행범이 그렇게 많고, 더 충격적인 건 67%나 되는 그 많은 인원이 잡히지도 않았다는 사실이에요. 또 잡혀도 곧 풀려난다는 이야기에는 화가 나더라구요.
이지승   그건 제가 쓴 부분이 아니라 피해자 상담사와 전화 통화하면서 들은 얘기를 그대로 옮긴 거예요. 이 영화는 2003년에 일어났던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데, 생각해보세요. 2003년이면 그놈이 몇 년을 살았겠어요? 10년을 살았을 리가 없고(강조하며), 지금은 어딘가 우리 주변에서 살고 있을 거란 말이에요. 이 얼마나 끔찍한 세상이에요? 이번 윤창중 사건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은 이런 범죄에 막 2백 년 형, 2천 년 형을 구형하는데 우리는 불과 5년, 6년 정도라는 말이죠. 이런 이야기가 아마 뮤지컬에도 나올 것 같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무너뜨린 극악무도한 범죄에까지 인권을 적용하는 게 과연 온당할까요? 저는 정말 모르겠어요.

 

 

사적 복수는 정당한가

<몬테크리스토>에도 주변인들이 단테스에게 복수보다는 용서를 권유하는 장면이 나오죠. 사실 그게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 부분이지만, 직접 당한 입장에서는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이라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거든요.
박인선   당연히 그렇겠죠. 단테스가 마지막에서야 그걸 깨닫게 되지만, 실제라면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영화에서도 아줌마가 결국 복수를 했기에 망정이지, 만약 못했더라면 제 생각에는 현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을 것 같아요.
이지승   맞아요. 살아있는 게 더 큰 고통이잖아요. 딸아이가 자라면서 겪게 될 고통을 계속 지켜봐야 한다는 건 거의 지옥일 테고.
박인선   범인들이 참 문제에요.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치밀하게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거든요. 영화에서도 그렇지만 뮤지컬에서도 악당들이 주도면밀하게 공모를 하고 희생자의 빈틈을 파고들 어 작전을 성공시키는 야비함을 보여주죠.


그걸 보면 사적 복수의 통쾌함이 주는 장점이 분명히 있고, 또 창작자로서 사회에 던져야 할 메시지의 과제도 있을 텐데요. 이 점에서 연출상의 균형을 맞추기가 어려웠을 듯해요.
이지승   그 지점이 사실 고민스럽기는 했어요. 영화가 저예산 독립영화이다 보니 많은 분들이 보지는 못했지만, 만약 더 많은 분들이 봤다면 사적 복수가 과연 정당한 것이냐에 대해 논란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수위 조절이 쉽지 않았어요. 처음에 영화가 기획될 땐 ‘아줌마판 <테이큰>’이라는 컨셉이었어요. 하지만 힘없는 아줌마가 어떻게 복수를 하겠어요. 또 그런 마음을 먹기도 쉽지 않고. 그 갈등을 보여주는 게 거울에 붙어 있는 흥신소 전단지를 발견하는 장면이에요. 그리고 결심한 후에는 눈빛, 외모가 바뀌죠. 과거의 자신을 버렸다는 거예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야 하니까. <몬테크리스토>에서도 그런 갈등의 장면이 있나요?
박인선   아뇨, 단테스가 복수에 사로잡히게 되면서 갈등 없이 쭉 복수의 일념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친구들이 옆에서 조언하면서 심적 변화가 있긴 하지만요.


두 분이 그런 입장에 처한다면 복수를 하실 것 같나요?
박인선   원론적으로는, 복수는 애초에 시작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더 좋은 상황이 생길 수가 없거든요. 그 순간의 자기만족을 위한 것일 뿐이니까요. 제가 만약 단테스처럼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안 할 것 같아요.
이지승   ‘예스’라고 단언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그런 상황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수는 있겠다’고 답한 적은 있어요. 영화에서 아줌마는 40일 동안 오직 그 한 가지 생각에만 꽂혀 있거든요. 그 상황에서 과연 이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싶어요. 저도 아줌마처럼 그럴 것 같아요. 단 제 경우라면 죽이지는 않을 거예요. 대신 죽도록 패서 다리를 부러뜨린달지. 만약 그게 안 되면 저도 흥신소로 가겠죠.
박인선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바뀌네요. 하긴 단테스도 14년 넘게 갇혀있으면서 그런 생각들이 자신을 옥죄는 멍에로 작용했는데 주위의 말이 들릴 리가 없겠죠. 그런 걸 보면 법이나 제도라는 게, 개인을 지켜주면서도 억울하게 하는 부분도 있어요. 모든 경우에 정의롭게 작동되는 것도 아니구요. 그런 시스템의 맹점 또는 허점을 영화가 잘 꼬집어준 것 같아요.
이지승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개막이 얼마 안 남았는데 요즘엔 얼마나 연습하 세요?
박인선   평균 열두 시간 정도? 물론 모든 인원이 그 시간 동안 다 나와 있는 건 아니구요. 공간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까 시간대를 나눠서 음악이나 드라마, 무술 부분을 각각 연습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어요.
이지승   그분들은 몇 시간씩 한다고 해도 연출님은 그 열두 시간 동안 다 연습실에 있어야 하잖아요? 장난이 아니네.
박인선   (한숨 쉬며) 그런 날이 많죠. 결국 체력 싸움, 시간 싸움, 돈 싸움인 것 같아요.
이지승   그 일도 복수랑 비슷하네요(웃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7호 2013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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