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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ECIAL INTERVIEW] 일본 <레 미제라블> 양준모 [No.140]

글 | 박병성 사진 | 심주호 2015-05-26 8,172

 

토호의 장 발장

4월 17일 장 발장 세 명과 주요 배우들이 일본 매체 앞에 섰다.  그중에는 한국 뮤지컬 배우 양준모도 있었다. 일본에서 활동하지 않았던 한국 배우가 오디션을 통해 일본 뮤지컬에 참여한 것은 양준모가 처음이다. 일본어를 전혀 할 줄 모른다는 말에 기자와 팬 들이 술렁였다.  이미 무대에서 양준모의 공연을 봤기 때문에  그가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만큼 무대에서 양준모의 일본어 발음은 훌륭했다.  일본 <레 미제라블>은 초연 후 28년째 지속되고 있다.  뮤지컬 중에서도 최고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으며 오랫동안 팬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작품이다. 그런 작품에 주인공으로  한국 배우 양준모가 섰다. 그는 일본 언론과 팬 들로부터 호의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스스로도 아마 자신의 생애에 가장 의미 있는 도전이 될 것이라는 일본 뮤지컬 <레 미제라블> 참여기를 현지에서 직접 들어보았다. 



일본 무대에 선 한국 배우


어제 공연에 오리지널 장 발장 콤 윌킨슨이 방문했다. 부담스럽진 않았나?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콤 윌킨슨이 일본에서 콘서트를 해서 공연을 보러 올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보다는 두 번째 서는 무대라 공연에 대한 부담이 더 컸다. 한국에서는 연기나 노래 하면서 의상이나 분장 등 다른 것에 신경 쓸 때가 있다. 여기서는 다른 데 신경 쓰면 일본어 가사를 틀린다. 온전히 상황과 연기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다. 집중력이 좋아지니까 오히려 연기가 더 늘더라. 

 

일본어 분량이 굉장히 많았는데 잘 소화하더라. 일본어를 배운 적이 없다고 들었다.
11월 <리타> 끝나자마자 전화기도 꺼두고 이 작품에 올인 했다. 그 전에는 <드라큘라>에 출연하고 있어서 준비할 수가 없었다. 다른 것은 멀티로 할 수 있지만 작품 준비를 동시에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대학교 때 여러 나라 말로 오페라 공연을 했던 것이 도움이 됐다. 토호에서 스코어 밑에 알파벳으로 가사를 다 써줬는데 그걸 보고 연습했다. 북한산에 오르면서 외웠다. 책상머리에서 하는 것보다 걸으면서 하니까 집중력이 배가되더라. 매일 북한산 둘레길을 걸었다. 


호흡이나 체력도 좋아졌겠다. 일본 무대에 도전한 계기가 뭔가?
2013년에 일본 콘서트에 참여했는데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다. 역사가 깊다 보니 공연 시스템이 남달랐다. 그 시스템을 경험하고 싶었다. <레 미제라블>도 하고 싶었다. 막상 오디션에 통과하고 나니까 망설여지더라. 와이프하고도 장기간 떨어져야 하고, 그동안 한국에서 벌여놓은 일들을 다 정리하고 가야 했다. 인생 모토가 도전하며 사는 것인데, 내가 했던 도전 중 가장 힘들고 의미 있는 도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커튼콜 때 보니 일본 배우들이 진심으로 위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그들 입장에서 내 존재가 탐탁지 않을 것 같다. 저번 콘서트 때도 그랬는데 그럼에도 내게 기회를 준 데 감사한 마음이 들더라. 먼저 인사하고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그러니까 마음을 열어주더라. 내가 덜 준비됐다면 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처음 노래 연습할 때부터 다 외워 왔기 때문에 함께할 수 있다고 받아준 것 같다.


연출가는 영국 사람이고, 일본 배우들과 연기해야 한다. 
이중 통역을 거치니까 온전히 연출의 의도를 전달받기 힘들다. 영어에 있어도 일본어에 없는 표현도 있고, 또 그것을 한국어로 옮겨야 한다. 처음에는 감에 의존해서 이해하는 것이 많았다. 그런데 캐릭터의 감정이나 심리 깊숙이 들어가면 감으로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와 연출만 이야기할 때는 동시통역하지 말고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두 명의 통역이 완전히 연출의 의도를 파악한 후 전달해 주는 방식으로 바꿨다. 그 뒤로 한결 좋아졌다. 내 책상에는 <레 미제라블> 영어 가사, 일본어 가사, 한국어 가사, 일본어 가사를 영역한 가사가 다 있다. 오기 전에 원작도 읽고, 70,80년대 영화도 다 보고 왔다. 각 가사를 보면 차이가 느껴지는데 때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있었다. 장 발장을 가석방하는 장면에서 “가석방, 그 뜻을 알아” 하면 원래 일본어 가사는 “자유인 걸까?”였다. 근데 영어 가사는 “it means I am free” 한국어 가사도 “그 뜻은 자유”로 되어 있다. 왜 의문문이지 물었는데 대답을 못하더라. 그래서 이번 버전에서는 일본어 가사도 “그 뜻은 자유다”로 바꿨다. 이렇게 바뀐 것이 두세 개 된다. 



서로 다른 공연 문화


일본 <레 미제라블>은 거의 30년 동안 공연해 오고 있다. 오랜 세월 유지한 공연인 만큼 시스템이 다를 것 같다.
연습실에서 첫 연습할 때 이미 모든 세트를 두고 연습했다. 심지어 바리케이드까지 갖췄다. 마차 하나만 빼고는 다 들어온 것이다. 오토메이션 라인까지 다 그어서 완전히 무대 세트를 갖춘 상태에서 연습했다. 연습 첫날부터 무대 크루들이 상주하더라. 우리는 소도구 정도만 놓고 연습하는 편인데 그런 점은 놀라웠다. 연습실에서 본격적으로 연습한 것은 한 달이 좀 넘는데 멀티 캐스트라 여러 팀이 연습을 해야 했다. 두 배로 시간이 드는데 이런 노하우가 있어 짧은 시간에 공연을 올릴 수 있었던 것 같다. 


공연 문화의 차이도 있을 것 같다. 일본 공연 문화의 특징은 무엇인가?
여기서 느낀 것을 일본 뮤지컬의 전부라고 판단하기에는 조심스럽다. 그래도 대표적인 컴퍼니니까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주 12회 공연을 하는데 낮 공연 시간이 빠르다. 12시나, 11시에 하기도 한다. 저녁 공연도 5시나 6시대에 한다. 공연법상 아역 배우가 늦은 시간까지 출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낮 공연에는 아역 배우들이 커튼콜 때 인사하러 나오지만 저녁 공연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또 한국에서는 점심시간이 별도로 주어지잖나. 여기는 특별한 점심시간이 없다. 있어도 20~30분. 대부분 각자 도시락을 사 와서 연습 도중에 출연하지 않을 때 먹는다. 나도 다른 배우들이 연습할 때 지켜보면서 먹는다. 


일본에서는 분장도 각자 한다고 들었다.
분장사가 딱 한 명밖에 없다. 배우 스스로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한 일환인 것 같다. 본인의 얼굴에 대해서는 자신이 가장 잘 알지 않나. 몇 번 해보니까 직접 할 때 장점을 알겠더라. 나 역시 처음 노를 젓는 장면에서 상처 입은 분장만 분장사가 해주고 나머지는 직접 한다. 그리고 나이에 상관없이 주인공에 대한 배려가 남다르다. 무대가 1층이고 메인 분장실이 5층에 있다.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두 대 있는데 공연 중에 한 대는 무조건 주인공만 이용할 수 있다. 지나갈 때도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장 발장 간다며 피해 주곤 한다. 


어제 공연을 봤는데 오래된 프로덕션이라 공연에서도 그 시간이 느껴지더라.
음악감독 빌리 할아버지는 라이선스 초연부터 이 작품을 근 30년간 작업해 오신 분이다. 이런 분들과 작업할 수 있는 것이 놀라운 경험이다. 의상을 맡은 크리스틴 할머니는 런던, 뉴욕 공연부터 전 세계 <레 미제라블> 프로덕션에 참여하신 분이다. 그분이 내가 연기한 장 발장을 보고 우셨다고 하더라.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어제 공연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지금 마리우스 중 한 명은 어린 시절 가브로쉬로 출연했던 아역 배우였다. 어린 코제트를 하다가 에포닌을 거쳐 팡틴느를 하는 배우도 있다. 어린 시절 이 극장에서 <레 미제라블>을 보고 뮤지컬 배우의 꿈을 키워 배우가 된 것이다. 그런 점들이 배우로서 매우 부러웠다. 배우뿐만 아니라 전국의 팬들을 대상으로 <레 미제라블> 노래자랑을 했는데, 어떤 분은 6개국 언어로 <레 미제라블> 노래를 불렀다. 그중 한국어도 있었는데 다 알아듣겠더라. 그만큼 작품을 좋아하고 열정이 뜨거운 분들이 많다. 


한국에 대한 관심도 많을 것 같다.
반대로 한국을 부러워하는 부분도 많다. 국가적인 지원, 대학로, 뮤지컬 학과 이런 점들을 부러워한다. 일본은 국가적인 지원이 없고, 대학로처럼 한 장소에서 다양한 창작품들을 선보이는 곳이 없다. 정식 뮤지컬 아카데미도 없어서 그런 점들은 부러워한다. 오랜 역사가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지만 한편으로 아쉬운 점도 있다고 한다. <맨 오브 라만차>나 <오페라의 유령>같이 수십 년씩 하는 작품들은 초연한 배우가 지금까지도 주인공을 맡는다. 다른 배우가 하면 티켓 판매에 그만큼 영향을 준다고 한다. 젊은 배우들이 도전하고 싶어도 상대적으로 기회를 얻기 어렵다. 





종교적 메시지로 풀어낸 장 발장


신부를 만나기 전 장 발장 연기가 굉장히 거칠더라.
연출이 그 장면에서 장 발장은 개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연출의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장 발장이 가석방된 후 아무런 생각 없이 마을에 들어갔는데 소문과 편견 때문에 쫓겨난다. ‘내가 피해자인데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지.’ 그 감정을 모아 독백에서 신에 대한 불만을 다 쏟아낸다.

 

이미 장 발장으로 출연한 경험이 있는 두 명의 일본 배우와 트리플 캐스팅이다. 양준모의 장 발장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일본은 기독교가 1% 정도이고 신이 80만 개 있는 나라이다. 극장에 처음 들어올 때도 고수레를 하고 들어왔다. 일본 사람에게 하느님과 예수님은 역사 속 인물일 뿐이다. <레 미제라블>은 기독교의 메시지가 강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크리스천이다. 장 발장이 만난 하느님, 미워하고 원망했던 하느님을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장 발장의 마음이 이해된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가 하느님을 만나기 전과 후를 구분하는 것이다. 신부를 만나고 난 후 왜 코제트를 데리고 가고, 왜 마리우스를 살리려 하는지, 왜 ‘Who Am I’를 부르는지 이해시키는 데 포인트를 두고 있다. 그래서인지 일본에 실린 리뷰를 보면 하느님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진심으로 기도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 


다른 배우들도 교회에 데려갔다고 들었다. 
같이 장 발장을 연기하는 배우에게 공부할 겸 교회에 가보자고 했더니 좋다고 하더라. 가보고 싶었는데 교회 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그동안 못 갔던 거다. 목사님한테 사정을 말하고 장 발장이 만난 신부가 되어 달라고 했다. 예배 끝나고 30분간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 이후 눈에 띄게 연기가 달라졌다. 하느님이 살아 계시다고 생각하고 연기하니까 연기가 달라지더란다. 교회에 간 경험이 어떤 연출 지시보다 도움이 되었던 거다. 소문이 나서 배우 여섯 명이 더 함께 갔다. 극 중에 성경책을 들고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성경책을 성스럽게 여기면 드는 느낌부터가 다르다. 성호를 긋거나 기도할 때의 모습도 다르고. 그래서 주교 (역을 맡은 배우)들은 꼭 교회에 데려 가고 싶었다. 그런데 주교들이 먼저 데려가 달라고 하더라. 


신부를 만나 다른 사람으로 변한 후, 시장일 때, 코제트를 데리고 도망다닐 때, 그리고 그 이후, 점점 나이가 드는 장 발장의 모습이 보이더라. 걸음걸이도 달라지고. 그래서 마지막 죽음을 맞는 장면에서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일어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넘버가 에필로그에서 ‘Bring Him Home’ 리프라이즈다. 장 발장이 남은 사람을 위해 기도하지 않나. 거기에 그의 인생이 다 담겨 있다. 정말 고생하면서 살았지만 이제 하느님 곁으로 갈 수 있다. 그때 마치 그를 맞이하듯이 팡틴느와 에포닌이 나오고 주교가 등장한다. 그때 정말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터진다. 


원래 음역은 장 발장에 어울리는 음역대가 아니다.
3년 전부터 장 발장을 준비했다. 테너로 음역대를 올리는 트레이닝을 지속적으로 받았다. 힘들었지만 다행히 음역대를 올릴 수 있었다. 11년 동안 뮤지컬을 해왔는데, 생각해 보면 그 경험들은 <레 미제라블>을 하기 위한 것 같다. <서편제>에서 딸을 둔 아버지 역할도 해봤고, <스위니 토드>나 <지킬 앤 하이드>에선 센 역할을 연기했다. 어려서부터 나이 많은 역할을 한 것이나 오페라를 한 것도 그렇다. 앞으로 해야 할 것들이 많겠지만 지금까지 해온 역할들이 <레 미제라블>을 하기 위한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0호 2015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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