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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신과 함께> 박영수 [No.141]

글 | 송준호 사진 | 김수홍 장소협찬| 머그 포 래빗 (02-548-7488) 2015-07-06 5,435

아직 오지 않은 것을 꿈꾼다

<바람의 나라>까지만 본다면 배우 박영수의 정점은 신체적 이점을 충분히 살린  ‘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후 서울예술단의 울타리를 넘어 새로운 가능성에  꾸준히 도전했다. 

순수한 눈빛의 소년은 괴도보다 악한 악당이나 소유욕에 사로잡힌 남자,  악마, 뱀파이어 등 거칠고 센 캐릭터들을 잇따라 소화해 내며 연기 폭을 넓혀왔다. 
순수와 광기의 극단을 오갔던 그는 이번에 가장 묘하고 인간적인 인물 진기한과 만났다. 
만화 『신과 함께』 속 인물 진기한은 박영수라는 필터를 거쳐 무대에서  어떤 인간으로 재창조될까.



최근 <마마, 돈 크라이>에서 뱀파이어로 무대에 섰잖아요. 전에 <쓰릴 미> 때도 그랬지만 중·소극장 무대의 박영수는 대극장과는 느낌이 좀 달라요.
아무래도 작은 극장에서는 객석이 바로 앞에 있어서 반응을 즉시 알 수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더 집중했어요. 집중이 깨지면 앞에 계신 분들한테 다 들키거든요. 사실 극장 규모를 떠나 더 디테일하게 표현하려고 눈동자나 시선 하나에도 의미를 두면서 연기하는 편이에요. 소극장에서 그게 관객들에게 더 잘 보이는 것 같고요. 


그럼 대극장 작품의 매력은 뭔가요?
에너지를 뿜는 느낌이 좋아요. 공간이 크다 보니까 그걸 채우려면 자신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려야 하거든요. <윤동주, 달을 쏘다>도 소극장이었으면 그렇게 못했을 거예요. 


배우가 경력을 쌓다 보면 대표되는 이미지나 잘하는 캐릭터가 생기기 마련인데, 아직 그런 게 보이지는 않아요. 이건 장점일 수도, 단점일 수도 있어요. 어떻게 생각해요?
원래는 이미지란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처음 연기하면서 주로 앙상블이나 멀티맨을 맡을 때는 어떻게 인물에 다가갈까만 연구했어요. 배우의 이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서울예술단에 들어와서예요. 이지나 연출님이 제가 지닌 것을 통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처음으로 조언해 주셨어요. 그때까지는 순박하고 온순한 이미지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연출님은 “얘는 살인자의 눈빛이 있어. 독사 같고 잔인한 면이 있어”라고 하시면서 저를 그쪽으로 이끄셨어요. 처음엔 반감이 들었는데 <바람의 나라>를 하면서 조금씩 성격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실제와 그런 이미지가 조금씩 맞물려가는 과정인 듯해요. 


그 말처럼 이제는 순진한 덕구도, 사악한 데빌도 모두 자연스럽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어요. 극단에 있는 인물들을 오간 셈인데, 어느 쪽이 더 와 닿아요?
희한하게 대본을 보면 인물이 확 보일 때가 있어요. ‘이거 정말 재밌겠다’ 하는 감이 와요. 말씀하신 덕구의 경우는 대본을 보자마자 ‘이건 내 거야’ 하고 느꼈어요. 오디션 때도 다들 덕구의 바보스러움에만 집중했는데, 전 시골 소년의 디테일한 순수함이 보였어요. 그렇게 느낌이 오는 배역들이 있는 것 같아요. 진기한도 오랜만에 그런 느낌이 온 캐릭터였어요. ‘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무당이 내림받듯 그냥 눈에 보여요. 눈앞에서 그 인물이 막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들이 보이는 거죠.


<신과 함께>는 저승과 이승, 두 공간에서 선과 악에 대해 얘기하는 작품이잖아요. 그동안 선한 역과 악한 역을 번갈아 맡으면서 이 문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겠어요.
<더 데빌> 때 악마의 입장에 서 있었는데, 인물을 표현하다 보니 그걸 고정하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어떤 이해관계나 특정 환경에서 선택을 한 것이지, 태어날 때부터 악해서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또 배우는 아무리 사이코패스 같은 캐릭터를 만나더라도 그 사람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동기나 배경을 만들어서 관객을 납득시켜야 하죠.  <쓰릴 미> 때도 네이슨이 살인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던 타당성을 찾아야 했어요. 그런 인물을 연기하다 보면 살인자의 마음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영혼이 갉아먹히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러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선과 악이라는 게 사실 인간 안에 다 있는 거니까 자연스러운 결론이네요. 말씀하신 <쓰릴 미>나 <더 데빌>의 캐릭터들도 그런 의미에서 결국 ‘인간적’일 수밖에 없고요.
맞아요. 원작에는 없지만 뮤지컬 대본에 그와 비슷한 진기한의 대사가 있어요. ‘인간이 실수를 하는 건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을 만든 신이라면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라.’ 그런 진기한의 인간적인 변론에 힘입어 저승 신들의 마음을 바꾸는 장면들이 있거든요. 그걸 보면서 저도 공감했고, 그래서 이 배역을 더욱더 해보고 싶었어요. 


<신과 함께>는 그간 해온 작품들과 달리 그냥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잖아요. 대본을 읽었을 때 처음에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음, 아빠에게 좀 더 살가운 아들이 되어야겠다는 생각? (왜 아빠죠?) 이게 이 작품의 힘일 텐데, 아무래도 이승에서 살아온 것들을 평가받는 내용이다 보니 제가 아빠한테 더 못했던 게 퍼뜩 떠올랐어요. 제가 살아온 34년간은 엄마와의 대화나 추억이 많았고 아빠와 보낸 시간들은 적었던 것 같거든요. 그래서 올해 어버이날에 다행히 공연이 없어서 부산에 내려가 부모님을 찾아뵙고 작은 선물도 하고 식사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왔어요. 이건 단지 죽은 다음에 심판을 받을 게 걱정돼서가 아니라, 후회를 남겨선 안 될 것 같아서예요. 




진기한은 성공의 길이 보장됐지만 그걸 포기하고 서민들을 위해 한 몸 바치는  인물이죠. 그런 화려한 스펙에 비해서 허술한 매력도 있고요. 이건 굉장히 전형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표현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사실 그 부분이 너무 뻔해서 저도 고민하고 있어요. 연출님과도 얘기했는데, 1막은 엉뚱한데 2막에서 진지해지는 진행은 진부하거든요. 특이한 점만 부각하면 그냥 엉뚱한 캐릭터가 돼버리고요. 기본적으로 진기한은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 자체에서 희열을 느끼는 인물이에요. 분명 이 친구는 저승의 신들을 만날 때마다 쾌감이 있을 거예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변태적이죠. (웃음) 원래 천재나 비범한 사람들은 스스로 난관을 찾아다니며 도전하는 성향이 있거든요. 그래서 진기한에게는 사람을 구할 때마다 ‘또 구하고 싶어’라는 희열감이 있어야 해요. 물론 대본에는 그런 부분이 없어요. 전 그걸 찾고 있는 거예요. 


잘 짚어낸 것 같아요. 그런 미묘한 매력은 사실 만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거잖아요. 눈밑에 늘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고, 씩 웃는 표정 같은 건 무대에서 표현하기 어렵죠.
그 디테일한 포인트를 찾는 중이에요. 그는 천재인 만큼 저승의 모든 관문을 알고 있어요. 다만 풋내기 변호사라 실제로 겪는 건 김자홍과 마찬가지로 처음이거든요. 이 설정을 확실히 캐릭터에 넣어놨어요. 그래서 어떤 부분에서는 오히려 김자홍보다 더 무서워하고 괴로워하는 거죠. 만화를 읽은 관객들도 ‘맞아, 진기한이 저랬지’라고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원작의 인물들은 작품 속에서 성장을 안 해요. 그냥 각자 임무를 완수하는 내용이죠. 심중의 변화도 없어요. 뮤지컬에선 어떤가요?
여기서는 진기한이 악착같이 준비하는 신입 사원 같은 느낌이거든요. 충분히 예상했고 자료도 준비했지만, 그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관문이 나와요. 그런 대목에서는 그도 심장을 졸이면서 좋은 의뢰인을 만나야 나도 제대로 된 변호를 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어요. 그런 경험을 하며 이 친구도 성장을 할 것 같아요. 또 맨 끝부분에 강림과 만나는데, 저승을 이끌어가는 인물들의 만남을 통해 성장하는 부분이 표현되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서울예술단이 한국 고유의 문화 콘텐츠로 공연을 만들다 보니 매번 반복될 수밖에 없는 패턴이 있잖아요. 권선징악 같은 주제랄지. 그런 건 배우들도 아쉬움이 있겠어요.
안 느낀다면 거짓말이죠. 저희도 항상 무대에 올라가면서 걱정하는 것들이 그런 거예요. ‘너무 뻔한데 이게 관객들도 재밌을까?’ ‘이 장면이 과연 두 시간 반이라는 시간에서 필요한 걸까’ 같은 의문이 많아요.  국공립 단체에 있는 배우로서 관객들을 충분히 만족시키고 있나에 대한 고민도 늘 해요. 하지만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이 많죠. 그래서 어떻게 하면 더 흥미롭게 표현할까에 대한 생각을 정말 많이 해요. 전 세계인이 봐도 ‘뭐 이런 공연이 다 있지?’ 하는 공연을 만들고 싶은 꿈도 생겼어요. 


배우가 되기 위해 거쳐 온 과정들이 굉장히 치열했잖아요. 그건 그만큼 무대에 대한 열망이 컸기 때문에 가능했을 거예요. 지금은 어때요. 그 시절 생각했던 것만큼 잘하고 있나요?
한없이 부족하죠. 그때는 다만 무대에서 노는 게 즐겁고 행복했어요. 정말 ‘미친’ 에너지가 나오던 시절이었죠. 하지만 그런 에너지를 느끼고 움직였던 희열이 아직도 제 몸에 있거든요. 그걸 느낄 때 무대에 계속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전 지금 당장 특별한 뭔가가 중요하지는 않아요. 앞으로 살아갈 50~60년의 인생을 봤을 때 지금 하는 일과 만나는 사람들과의 어울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서두르지 않겠다는 거죠?
서두르고 싶지 않아요. (웃음) 요즘엔 오히려 주변에서 서두르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영수야, 배우가 꽃피울 수 있는 시기가 바로 30대 중반인데 넌 그러고 있다고 생각하니?’ 같은 말도 많이 들어요. 그런데 전 매화가 피는 시기가 있듯이 다 때가 있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다들 왜 꽃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전 단단한 줄기나 뿌리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차피 꽃은 지고, 마지막까지 못 필 수도 있어요. 또 생을 마감하고 나서 피는 꽃도 있어요. 윤동주의 시도 시대의 아픔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그 정서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의 꽃이 피는 시기를 다른 누가 정하는 건 싫어요. 


아까 공연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건 제작이나 연출을 해보고 싶다는 뜻이죠? 그 말은 아직까지 자신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고, 보여줄 게 남았다는 말이겠죠?
네. 누구의 작품이 아닌, 그대로의 저를 보여줄 수 있는 공연을 만들었으면 하는 꿈이 있어요. 배우는 어쩔 수 없이 평가를 받는 입장이잖아요. 진짜 제 자신을 못 보여드리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게다가 남은 시간 동안 제가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는 거죠. 그래서 항상 다가오지 않은 것들에 대한 희망이 있어요. 10년 전만 해도 제가 뮤지컬 배우를 할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웃음) 그래서 저는 제 인생에서 얼마나 더 신기한 일들이 있을까 궁금하고, 그것에 대한 희망이 있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1호 2015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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